강인한 전사가 되고 싶었다. 앞장서서 파티원들을 지키며 결코 무너지는 일 없는 그런 전사가.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길을 택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아.”


 전장에서의 딴생각은 비록 잠시뿐이었지만 빈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쿵! 


 나는 뿔버섯에게 얻어맞은 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이언 바디를 마스터하지 않았다면, 다진 리본 돼지처럼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사님, 젠 밀리잖아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별이 그러진 두건을 쓴 마법사가 날 흘겨보았다. 나보다 레벨도 낮으면서. 


 이놈의 사다리는 어찌나 긴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데 한세월이다. 


 “허억 허억. 헉!”


 사다리를 거의 다 올랐을 때, 뿔버섯이 보였다. 그 뿔버섯은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쿵! 나는 또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전사님, 괜찮으세요?” 


 푸른 가운을 입고 찢어진 눈을 한 도적이 내 곁에 다가왔다. 


 “헤이스트.” 

 바람 소리와 함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적의 스킬인 헤이스트였다. 


 “내,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서 젠이나 돌려. 전붕아.”


 도적은 키득키득 웃으며 뒤돌아서 표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절벽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헤이도 주고,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니야?’

 ‘그러게, 헤이스트 비용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뭐 어때, 전붕인데. 불쌍하잖아.’ 

 ‘근데 왜 전사를 골랐지?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나?’


 나는 이를 아득 악물었다. 

 여기서 뭐라고 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그냥 눈앞의 적을 해치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퍽!


 한손에 든 돼지도감으로 뿔버섯의 머리를 후려쳤다. 헤이스트를 받은 덕분일까. 뿔버섯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아…” 


 기쁨도 잠시, 헤이스트가 꺼지자 다시 뿔버섯보다 느린 뚜벅이로 돌아오고 말았다. 


 ‘잠시 포션 좀.’


 나에게 헤이스트를 줬던 그 도적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저, 도적님. 헤이스트 한 번만…”


 도적은 특유의 찢어진 눈으로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오천.”

 “네?”


 “오천 메소 주면 걸어 줄게.”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버프 받는데 돈을 내라니.


 “그냥 안 받고 말지.”

 “아니, 필요할걸?”


 도적은 조곤조곤 말했다.


 “만약 헤이스트를 사지 않는다면, 나는 저 밑으로 소리칠 거야. ‘전붕이가 파스 안 쓰고 평타 쓴다!’ 라고. 여기서 쫒겨나긴 싫잖아, 안 그래?” 


 투구 사이로 뻔뻔한 얼굴을 보며, 나는 진작 레벨을 올리지 않은 걸 후회했다. 40레벨만 찍었으면, 내 인벤토리에 있는 2상 제코로 저 찢어진 눈알을 닭꼬치마냥 꿰어버리는 건데. 


 인기도를 내려버리고 싶었지만, 새벽에 자시에서 팔아버린 탓에 오늘은 더 이상 인기도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인벤토리에서 5천 메소를 꺼내어 도적에게 건넸다. 


 ‘저거면 파란 포션이 몇 갠데…’


 도적은 오천 메소를 받더니, 갑자기 출구 반대쪽, 절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전붕이가 파스 안 쓰고 평타 쓴다!!!”


 “이, 이게 무슨…”

 “진작 줬으면 됐을 거를, 괜히 시간만 끌고 말이야. 너 떄문에 포션 사 오는 게 늦었으니까, 책임져야지?”


 슈욱, 슈욱.


 아래쪽에서 텔레포트 소리가 들려왔다. 맨 아래층에 있던 파티장이 나를 잡으러 오는 소리가 분명했다.


 “이 자식이!”

 “쳐 봐 병신아. 아이고! 전붕이가 사람 잡는다!!!”


 나에게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도, 도적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퍼억! 


 “하아. 하아.”


 유타의 돼지도감이 붉게 물들었다. 


 “꺄아악!” 


 뒤늦게 올라온 파티장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파티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파티장은 겁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손에 든 도감을 휘둘러…


 “…사님, 전사님!”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휴식 시간 끝났어요. 사냥하셔야죠.”


 이곳은 개미굴이 아니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오르비스고, 내가 잡고 있는 건 버섯이 아니라 조그만 강아지들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도적이 아니라 궁수였고. 


 “위층 혼자 잡는 거 안 힘드시나요?”

 “본 헬름하고 이카망 끼니까, 혼자서 맵 전부 다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제가 잡을 건 남기고 잡아주세요.”


 하하하… 


 나는 그날 도감을 휘두르지 못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파티에서 쫒겨났지만,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았다.

 그 도적이 다른 파티에서 분탕질을 친 게 소문이 쫙 퍼졌기 때문이다. 내 누명도 금세 풀렸고. 파티장이었던 클레릭은 사과의 말과 함께 하얀 포션을 나에게 잔뜩 건네주었다.


 다행히 다른 파티에 들어가서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덕분에 오르비스까지 올 수 있었다.


 물론 편하지는 않았다. 와일드보어를 잡다가 썬콜이나 클레릭에게 스틸 당하기도 하고. 주니어 샐리온을 잡을 때도 스틸을 종종 당했다.


 그렇지만 악질들의 수만큼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퀘스트 템인 식탁보와 이상한 약을 나눠주었던 클레릭. 자신이 쓰던 장비들을 건네주었던 고레벨 전사. 지나가며 헤이스트를 써주던 시프…


 나쁜 일들만 생각하면 끝이 없기에, 좋은 일들을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나도 언젠가 퀘스트 템을 나눠 주고, 지금 쓰고 있는 아이템을 물려주고, 지나가며 하이퍼 바디를 써주고…


 지금은 얼마 전 붉은 빛의 정원 1에서 만난 헌터와 2인 파티를 꾸려 주니어 샐리온을 사냥 중이다. 외모 꾸미는 데 전 재산을 탕진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중이라나?


 “와, 아공 떴다!”

 “사흘 만이네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헌터는 주문서를 결혼까지 갈 기세로 끌어안았다.


 “혹시, 갖고 싶은 거 없어요?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겠네요!”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시죠. 또 이상한 거에 탕진하지 말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러면… 전사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저녘 노을 탓일까.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인생 처음으로 써 본거라 부끄부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