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에게 힘을 내리는 신은 누구인가요?"

파란머리의 소녀가 주교에게 순진한 얼굴로 물어왔다. 주교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쓴 웃음을 지었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건가요?"

"저희가 사용하는 힘은 메이플월드나 그란디스의 초월자 그 누구하고도 관련이 없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사용하는 건 신성력이고.. 그럼 초월자가 아닌 다른 신을 믿고 있어서 아닐까요?"

"아리는 참 똑똑한 아이네요. 그게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건가요?"

"네! 저희를 비숍이라고 부르고 팔라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정작 서로 많이 친하진 않고.. 그럼에도 사용하는 힘은 비슷하고.. 서로 그닥 친하지 않은 두 단체에서 같은 힘을 사용하는 건 분명 같은 신을 믿기 때문 아닐까요?"

"그렇답니다. 그들은 저희랑 같은 신을 믿고 있어요. 그렇기에 비슷한 힘을 사용하고요."

"하지만.. 저는 저희가 무슨 신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는 걸요.. 모시는 신의 이름도 모르는데, 그럼 제 힘은 뭘까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신성력을 가득 담아올렸다. 주교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믿고 있는 신에게는 이름이 없으시답니다. 음.. 저희가 다른세계에서 넘어온 모험가들이라는 사실은 들은 적 있죠?"

"네. 저는 메이플 월드에서 태어났지만 주교님은 다른세계에서 태어나시고 넘어오셨다고.."

"네. 그분은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셨답니다. 그렇기에 이름이 없으시고요."

"아.. 그럼 제 신성력은.."

"아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거겠죠."

"아... 혹시 주교님은 신님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신님을 직접 뵌적도 있는걸요?"

"정말요? 어떠신 분이였나요? 다정하셨나요?"

"물론이죠. 정말 다정다감하신 분이라 저희같은 인간들에게도 관심이 많으셨죠. 아마 지금 저희를 지켜보면서 흐뭇해하고 계실지도 모른답니다?"

"그랬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다정하신 신님을 두고 왜 이세계로 넘어오게 된건가요? 원래 세계에서 평생 살았어도 될 거 같았는데 말이에요."

"음.. 저희 세계가 좀 위험에 빠졌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신님과 함께 넘어왔답니다. 하지만 넘어오시면서 많은 힘을 쓰셔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시지는 못한답니다."

"아.. 저도 언젠가 신님을 직접 뵐 수 있을까요?"


주교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녀가 메이플 월드로 넘어오게 되었을 때도 딱 이 아리따운 소녀와 비슷한 나이였었다.


"그럼요. 언젠가 뵐 수 있을거에요. 아리는 저희 교회의 찬송가를 혹시 다 외우고 있을까요?"


그래, 딱 이 나이에 과분한 관심으로 신의 사도를 맡고 있었고, 신께서 돌아가시고 울면서 장송곡을 부르며 차원을 넘어오며 그의 유해를 뿌렸었다. 다른 사도였던 한 남자아이는 유해를 뿌리는 것에 반발했지만, 그분의 뜻이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기사들과 함께 떨어져나가 팔라딘이라 칭하고 있지만, 이제는 옛화가 그래도 어느정도 풀린 듯 하다.


"물론이죠! 완벽하게 다 외우고 있다고요!"

"한번 불러볼 수 있을까요? 신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에요."


그의 죽음을 추모하던 장송곡에서 가사를 일부 바꾸어 찬송가가 되었다는 점은 참 생각할수록 묘하다. 이렇게라도 과거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후대에 남기고 싶었던 그와 나의 바램이었을까. 신을 잃은 사도들이었던 우리는 이세계에 도착하고 나서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갈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찬송가를 만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이나마 남은 미련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어버이, 우리의 신이여"

'우리의 어버이. 우리의 신이여'

"당신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당신은 세상을 항상 굽어살피죠"

'당신은 세상을 항상 굽어보았죠'

"떠남에서조차, 긴 여행에서도 결코 뒤돌아보시지 않았습니다."

'죽음에서조차, 죽음에서도 결코 구부리지 않았습니다.'

"아아 우리의 어버이는 지켜보리니"

'아아 우리의 어버이를 잃었다.'

"신이시여 편히 지켜보소서"

'신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편히 우리를 지켜보소서"

'편히 우리를 지켜보소서'

"당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헛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헛되지 않게 하소서'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그와 나, 그리고 이제 몇명남지 않았겠지. 이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신의 죽음을 모른채, 그분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산을 계승받으며 신께서 살아계신다고 믿을 것이다.

미래의 후손들은 이걸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도 이렇게 되기를 바라셨고.

하지만 이따금씩, 잊은줄 알았을때 한번씩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그를 기억하는 주교는 우울해지곤 한다.

찬송가를 다 외우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소녀를 쓰다듬으며, 주교는 소녀의 시선을 피해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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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보다 갑자기 떠오른 주제라 호다닥 써온것. 좀 급하게 쓰느라 뭔가 앞뒤 잘린거같기도 한데.. 시험 완전히 끝나고 장편으로 도전해 볼만도 한것같고..   신의 죽음이후에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탈출해 메이플 월드에 넘어온 모험가들. 다른세계에서 넘어온 모험가들 중 신을 믿으며 신의 힘을 사용하는 팔라딘과 비숍.... 시험끝나고 얼추 가닥 잡히면 한번 장문 도전각..인가?

노래 가사는... 와우 리치왕의 분노 시네마틱에서 따온것.. 가사는 물론 좀 수정했는데 느낌만 비슷하게.. 노래듣다가 뽕차서 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