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실론한테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내 친부는 내 손으로 가져다 바쳤으며, 양부 역시 자신과 사랑하는 여동생을 빼내는 과정에서 목숨을 희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내 사랑하는 여동생, 라샤를 구출해내는데에는 성공했다.

앱실론에게 대다수의 힘을 빼앗겼지만 도주할 힘 정도는 남아있었다. 아무튼 라샤를 데리고 계속해서, 계속해서 몇날며칠이고 걸었다. 이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여행을 한없이 걸어나갔다.

사흘 째, 라샤가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리도 아니겠지, 눈 앞에서 양부가 죽은데다가 나도 죽을 뻔 했고, 하다못해 라샤도 목숨을 빼앗길 뻔했으니까. 전부 자신 때문이었기에 불평없이 라샤를 업은 채 이동하기를 사흘,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적당한 동굴을 발결할 수 있었다. 노숙은 면했다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간 내가 라샤를 뉘이고, 불을 지폈다.

공기가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이 아직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기라 그런지 움직이면서 먹을 걸 많이 구할 수 있었고, 물 역시 풍부하게 구할 수 있었다. 식량으로 굶주릴 일은 당분간 없다고 생각하면서 안심한 내가 연기가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대충 저녁식사를 때우고 잠든 라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라샤."

사랑하는 여동생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깨어나지 않는 잠이라도 빠진 듯 눈을 감은 라샤가 고르게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내 쌍둥이 여동생, 나를 닮아서 예쁘기 그지 없는 아이.

하지만 우린 쌍둥이가 아니었다. 태어난 날이 한없이 비슷했지만 아버지가 달랐다, 어머니가 달랐다. 그저 의자매에 불과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라샤는 내 여동생이었으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내 여동생이었으니까 친자매이던 의자매이던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라샤."

한 번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우린 피를 나눈 자매가 아니었다, 한 명의 여성과 여성의 관계였던 것이다. 요 며칠 사이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잠든 라샤를 보면서 덮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결국 본능에 몸을 맡긴 내가 그대로 잠든 라샤의 몸에 올라탄 채 양 손목을 붙잡았다.

"라샤."
"언니?"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잠에서 깬 듯 사흘만에 동생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룰려퍼졌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는 악수였다. 차라리 눈을 뜨지 않았더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이상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샤, 이빨을 들이민 내가 그녀의 목덜미를 그대로 깨물었다.

"꺄악, 언니? 지금 뭐하는거야?"
"가만히있어, 라샤."
"언니? 칼리 언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더니 사랑하는 친언니가 자신을 덮치고 있었으니, 나라고 해도 같은 반응을 보였겠지, 하지만 내가 더 참을 수 없었다. 선명하게 목덜미에 이빨자국을 내준 내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침이 그대로 나와 라샤의 사이를 이어주었다.

"늘 너와 이런 관계가 되기를 원했어."
"언니, 언니 지금 많이 피곤해서 그래. 일단 자자, 응?"
"난 정상적이야, 저기, 라샤."

이런 상황에 이르러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여동생에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정말 착한 여동생이었다, 라샤, 저기,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돌연변이는 남들과 다른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 그러면 있지, 돌연변이인 나와 순혈인 우리 라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정신차려 언니! 여자끼리는 아이가 안생겨!"

여자끼리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 당연한 정론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라샤의 모든 것에 빠져있었다. 날개가 뜯긴 이상 라샤가 이 상태에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설사 날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래부터 힘은 내가 더 강했으니 라샤는 아마도 벗어날 수 없었겠지.

"언니, 제발."

애원하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오히려 나한테는 더욱 흥분만을 야기할 뿐이었다. 저 눈, 나를 쏙 빼닮은 저 눈, 저 코,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저 코, 저 입술, 앵두같이 붉은 저 입술!

쓰다가 더 못쓰겠네요 탈주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