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 사쿠라 채널
 

자신이 살아온 지옥같던 나날들을 호소하던 사쿠라한테 린이 "흐응.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거"라 해놓고 막상 배드엔딩 40번에선 멘탈 무너진다 비웃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겠지만, 글쎄. 사쿠라가 멸칭으로 불리는건 싫어하면서 린이 사쿠라가 당했던 끔찍한 능욕을 버티지 못했다고 비웃는건 상당히 이중적이라고 느껴짐. 같은 능욕을 당했는데 사쿠라만 불쌍하고 린은 비웃음거리인가?

물론, 린은 사쿠라를 죽이려했고 따스한 동정을 바랐던 사쿠라에게 냉정한 말로 응수해 사쿠라의 분노를 샀다는 차이점이 있음. 하지만, 린은 사쿠라에게 타인의 아픔을 잘 모른다고 털어놨듯이 Fate 루트의 세이버도 동정하지 않았고, 본인 루트인 UBW 루트에서조차 캐스터가 시로의 끔찍했던 과거를 까발린 이후에도 시로를 동정하거나 위로하지 않았음. 이미 지나간 일이라 자기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타인의 고통을 잘 모르는데 아는 척 해봤자 오히려 위선이라 생각하니까. 사쿠라에게 냉정한 말을 쏟아낸 것도 같은 맥락임.

즉 린은 자신의 참혹했던 과거를 호소하는 사쿠라를 그저 동정하지 않았을 뿐임. 오히려 사쿠라의 과거를 결코 가벼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토 저택에 처들어가 소위 '수련장'을 찾아낸 린의 독백에서 드러남.

'———그것은, 자신과 얼마나 다른 세계였는가.

냉철한 가르침, 과제의 곤란함, 새겨진 마술각인의 아픔. 그러한 “후계자”로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왔는가를 비교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등에 진 고뇌, 넘지 않으면 안 됐던 벽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극복해 온 장해도 역시 그 외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힘들고 곤란한 것을 극복해 온 걸로는, 틀림없이 토오사카 린이 한 수 위겠지.

그렇기에 오대원소 사용자( average • one ), 마술협회가 특대생으로 맞아들이려고 할 정도인 젊은 마술사( 천재 )다.
이 방에 소굴을 이룬 벌레들을 통솔해라, 라고 하면, 그녀라면 반년이면 보다 뛰어난 술식을 짜낼 수 있다. 마토의 후계자가 10년 걸려서 아직 습득하지 못한 마술을, 린이라면 반년이면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그 우둔한 학습방식. 술사를 벌레들에의 노리개로 삼는다는 방식에 견뎌낼 수 있겠는가 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녀는 말을 삼킬 수 밖에 없다.'​ (HF 루트 8일째)

"……그런가. 아버지 분부를 어긴 건, 이게 처음이구나."

'멍하니 중얼거린다. 별반,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깬 것 때문에, 소중한 무언가가 부서진 것도 아니니까.
다만, 후회하는 게 있다고 하면, 그건

"……바보네. 어차피 어길 거라면, 더 빨리 들이닥칠 걸 그랬어."

10년 이상이나 계속 참아왔던, 누군가에 대한 후회였다.' (HF 루트 8일째)

​극장판 1부에선 시간상 "이딴게 수련장이라고...!"라는 린의 대사 한마디로 넘어가는 장면이지만, 원작에선 사쿠라의 끔찍했던 과거를 알게된 린의 후회나 두려움 등 내면 묘사가 드러나는 중요한 장면임. 내면 묘사를 제쳐두고 논점의 단서만 짚어보자면, ​이 장면에서 린은 사쿠라가 겪었던 고문과 능욕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고 인정했음. ​

그럼 11년동안이나 견뎌낸 사쿠라보다 린의 멘탈이 약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쿠라의 독백도 바로 다음 날에 나옴.

“……할아버님. 저는 싸우지 않겠어요. 라이더는 이대로 오라버니에게 양도할게요”

'재교육을 각오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한다.
여기서 거역하면 어떤 처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손발의 감각을 끊기고, 벌레창고에 던져지는 공포는 영원히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건 2시간이 한도. 오늘은 그 몇 배나, 아니, 자칫하면 성배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속에서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다.'​ (HF 루트 9일째)

린이 사쿠라를 매몰차게 대해놓고 정작 사쿠라가 겪었던 고통의 늪에 빠지자 멘탈 무너져서 추하다고 비웃거나 멘탈 논쟁을 벌이는 것 같은데, 나는 사쿠라보다 린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나서 이미 린도 버틸 자신이 없다 인정했고 사쿠라도 2시간 이상 못버틴다는 언급이 원작에 나오기 때문에 이런 논쟁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봄. 사쿠라가 린보다 더 오래 버티고 멘탈도 더 강하다 쳐도 그래서 남는게 뭐임? 무슨 의미가 있음?

설사 논쟁에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사쿠라가 나락에 떨어진건 린의 책임인가?​ 그건 결코 아님. 사쿠라가 나락에 떨어진건 직접 나락으로 떠민 조켄과 사쿠라를 잘 키워주겠다는 마술계약을 받아두지 못한 토키오미 때문이지, 결코 린의 책임은 아님. 그럼에도 사쿠라는 린과 언쟁을 벌일 때 '언니가 구해주러 올 줄 알았다, 같은 자매인데 왜 언니만 행복한거냐, 나를 이렇게 만든건 아버지와 언니다'라며 린에게 책임을 전가함. 배드엔딩 40에선 자신을 동정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린에게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가하며 린도 시로도 라이더도 그 누구도 구해줄 수 없는 문자 의미 그대로 구제불능의 절대악으로 완전히 타락해버림. 무슨 일이 있어도 사쿠라를 구하려던 시로조차 사쿠라를 구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포기해버릴 정도로.

또 "그래. 그럼, 내 쪽에서도 딱 하나 말해둘게. 나, 괴롭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대개는 가볍게 받아넘겼고, 어떤 것도 잘 소화했어. 너처럼 코너에 몰린 적도 없었고, 몰리는 인간의 고민 따위 흥미 없었어. 그런 성격인 거야, 나. 그다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몰라.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사쿠라가 얼마나 괴롭게 느끼고, 얼마나 지독한 나날을 보내왔는지는 모르겠어. 미안하지만, 이해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사쿠라. 그런 무신경한 인간이라도 말야. 나는 자신이 좋은 환경을 가졌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라는 린의 대사에 그래도 린도 순탄하게 산건 아니지만 사쿠라보단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느냐는 의견도 많음.

하지만 '린이 사쿠라보단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명제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나는 그다지 의미 없다고 생각함. 물론, 나도 사쿠라가 린보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선 동의함. 하지만 우리가 아프리카 빈민국을 보고 '아, 나는 저렇게 가난한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나는 행복한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끔찍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보고 '아, 나는 저런 끔찍하고 슬픈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참으로 복받은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하나? 물론 키레이마냥 유-열을 즐기는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참으로 불쌍하다, 안됐다는 동정은 느끼겠지. 하지만 남이 더 힘들다고 내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고, 남이 나보다 더 불행하다고 내가 행복한건 아님.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더 많은 업무를 맡는 상급자에게 힘들다고 불평해서는 안되고, 매일매일 들려오는 참사와 끔찍한 사망 소식에 우리는 쉴틈없이 행복해야 함. 그리고,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님. 두 자매의 행복 순위를 주관에 따라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논리적 근거가 될 수는 없음.

린을 위한 해명이냐고 물어본다면 맞음. 더불어 나를 위한 변명이기도 함. 나도 린처럼 타인의 고통에 잘 공감하지 못하고 해결책부터 제시해주는 타입이라 린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잘되거든.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거나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는건 잘 알지만, 뭐 어쩌겠냐. 거짓말은 잘해도 공감하는 척 가식 떠는건 죽어도 못하겠는데. 적당히 현실이랑 타협하는거지.

결론 : 극장판만 봤는데 린이 너무 싫다면 내면 묘사 빵빵한 원작 달린 뒤 재고해주길 액션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