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이 아픈 이들에게


다들 마음이 많이 아프죠.


사실 현대사회에서 마음에 병 하나 없이 산다는 게 참 힘든 일인 거 같아요.


서로 자기 살기 바쁜 각자도생에 경쟁, 혐오, 돈부터 시작해서 살기 힘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어쩌다 이 채널에 흘러 들어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의 눈팅을 해 왔습니다.


가족 간의 불화, 정신에의 이상, 자신에의 혐오 비난, 트라우마, 폭력피해, 낙방, 등 여러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또한 지금 제 인생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도 뭐가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적어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 번 엉성하게나마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절대 제가 타인을 도와줄 수준이 못 되지만, 정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글의 대부분 내용은 외부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 허나 그 내용에 있어서 종교성(크리스트교, 불교)을 띄고 있기에, 일부는 취소선 처리를 해 놓았습니다.


저또한 아래의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있으나 뭐가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맞다 강요할 수도 없고, 제가 뭐 대단한 걸 경험한 것도 아니니까요.


선생님들께서 적당히 판단해 주시며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의 정신건강을 빕니다. 피스.





감동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그냥 흥미로운 주제나 제목이 나올 때까지 유튜브가 되었든 아카라이브가 되었든 뉴스가 되었든 흘러흘러 들어가곤 하시나요?


할 것이 없다 싶으시면 유튜브에서 감동적인 영상 같은 거 봐 보세요.


random acts of kindness 이런 유의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짧은 영상들의 모음으로 20~30분 정도의 영상들이 많이많이 나옵니다.


그저 감동을 좀 더 많이 더 자주 받아보려고 해보세요.


감동을 느끼는 그 순간에는 잠시나마 시간이 멈추는 듯하고, 찰나지만 완벽한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혼자가 아닌 것 같은 함께인 느낌이 들고 안심되며, 저 사람을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 살아있기를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평소에는 길을 걸으면서 가족들끼리 이야기하고 웃는 사람들의 행복을 느껴보세요.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들의 이타적인 마음을 더 잘 느끼려고 해봐요.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마음을 열어보세요.


하늘을 좀 더 자주 올려다 봐요.


요새 대기가 맑아서 아주 아름답습니다.


구름을 보고 바람도 한번 느껴보세요.


뜻 밖의 이타적인 작은 행동을 해 보는 것도 좋아요.


일례로 갑작스런 폭우에 난감해 하는 사람에게 우산을 들려 주었고, 그 별것 아닌 거로도 마음이 산뜻해 질 수 있겠지요.


그렇게 감동을 받고 있다 보면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감동적인 걸 봤을 때는 이해가 잘 되겠지만, 길 가다가도 막 울게 돼요.


저는 어제 18시 경, 공원과 중학교 옆의 아파트에 운동 삼아 계단을 올랐는데 여러 감정이 들어 울었어요.


엉엉 울지는 못했지만 또르륵 정도일까요.


공원에선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고 엄마들이 함께, 중학교 잔디에선 교복 입은 남자아이들 서너명이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학교 건너편 중앙로에는 분명 아이들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자 했을,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라는 인사를 부디 전하고픈 이들이 퇴근길에 올랐고요.


대한 좋은 거, 행복한 거, 즐거운 거만 보려고 해보세요.


감사한 점, 행복한 점, 감동적인 점을 계속 찾다 보면 분명 더 좋아질 거에요.





부정적인 생각


우리는 하나의 생각에 빠지면 그 밖의 것들은 알지 못해요. 인식조차 못하죠.


지금 본인이 (부정적인) 감정(생각)에 빠져있다면 잠깐 거기서 벗어나 주변의 움직임에 집중해 보세요.


차 굴러가는 소리, 컴퓨터 쿨링펜 소리일 수도, 층간소음(진동)일 수도, 날파리 같은 게 날아다닐 수도 있겠네요.


요점는 내가 얼마나 그 생각에 빠져있었는가. 혹은 그 생각에 빠져있음으로써 이렇게나 주변의 것들을 놓쳤구나. 이렇게 될 것 같아요.


우울하고 허무하고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본인이 그 감정을 너무나 너무나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선생의 의식, 바로 지금 당신. 본인은 안 좋아한다고 여길지 몰라도, 선생의 무의식은 의식이 아니잖아요?


주변을 보면 본인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기에 그것들이 거기 있는 것이고 이건 사람또한 마찬가지겠죠.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끌리고 그러잖아요.


정말 싫어하는 감정이었다면 이미 이전에 버렸겠죠.


비슷한 논점에서, 머릿속에서 자기비난이 날뛰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무시해 봐요.


내가 나에게 고통을 이끄는 감정을 가지게 하다니. 뭔가 이상하죠? 마조 변태인가요? 자기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게 진짜 의식의 내가 가지는(원하는) 생각일까요? 정말로?


그 감정에 빠지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요.


자기비난이 막 머리에서 날뛰어도 그냥 무시해요. 


내가 그걸 안 원하면은 그건 그냥 가짜 허깨비나 다를 바 없죠.


우울하다면 우울하고 싶은 마음이 모든 걸 다 우울하게 해석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한번 의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도 계속 우울해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우울이라는 감정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든데, 너무 재밌?고 즐겁고, 허무해하는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멋있?었어요.


그럼 우울해 지고 싶은 감정이랑 행복해 지고 싶은 (우울하고 싶지 않은) 감정 중 뭐가 진짜 (나의) 감정인 건가요?


본인이 진짜 뭘 원하는지를 잘 생각해 봐요. 그 마음을 잘 느껴봐요.


만일 그것이 행복이라면, 우울한 자아가 아니라 행복한 자아,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아라면 그걸 추구하면 돼요.


더 고민할 것도 생각할 것도 (그동안의 행동을) 후회할 것도 없어요.




내 마음


많은 사람들이 지난 과거를 후회하면서 본인을 자책하고 미워하며 심지어는 혐오하기까지 해요.


본인의 어떤 부분 혹은 과거의 선택이 맘에 안 든다고 몰아붙이고 비난하는 것은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거에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떻까요?


마음이 아픈,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본인이더라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을 아픈 상태에서 꺼내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하잖아요.


도와주려는데 막 화내고 그래도 아픈 애니깐 이해가 되잖아요?


(죄송해요 비유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본인도 사실 그렇게 아프다는 걸 인지해 봐요.


내가 나 자신에게 그동안 얼마나 가혹하게 굴었는지.


아픈 환자한테 욕하고 비난하면 상태가 좋아지긴 힘들겠죠?


모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다들 마음이 아파요. 


그런 아픈 나를 이제까지 무시하고 비난하고 혐오하기까지한 또 다른 나를 느껴 봐요.


상상해 봐요.


괴로워하는 자기자신을 붙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보려고 해봐요.


문제아인 못난 나, 그걸 용서하려고 애쓰는 나, 그리고 용서해 줄 누군가 내 안의 자비로운 존재.


3자 구도로 상상해 봐요.


내가 나름대로 못난 나를 붙들고 어떻게 해보려 하는 모습이 좀 짠하잖아요.


그 못난 애도 처음부터 못나진 않았을 텐데, 언젠가는 맑고 순수한 아이였을 텐데, 걔도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걔도 나인데 나는 지금까지 걔를 방치했잖아요. 그리고 이제와서 용서하려니 그게 잘 안 돼요.


걔를 붙들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내 모습을 봐요. 나에게마저 지금껏 누군가가 그렇게 쉽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내 품에 있는 얘가 망가져 있는 게 마음이 아파서, 얘를 붙들고 어떻게든 나아지게 해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너무나 짠하잖아요.


나도 불쌍하고 세상 사람들도 다 겉만 멀쩡하지 속으로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얼마나 가엾어요.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 안의 아주 자비로운 누군가에게, 나는 잘 못 하겠으니 좀 도와달라고. 내 품 안에 망가져 있는 얘가 너무 불쌍하니깐 좀 도와달라고 해봐요.


나는 괜찮은데 얘가 너무 아프니, 내가 얘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아파할 텐데.. 대신 울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러면 보통 되게 불쌍한 기분이 들면서, 얘가 불쌍해서 내가 대신 울게 돼요.


그럼 걔 대신 운다는 느낌으로 많이 우세요.


우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어른이어도 할머니 할아버지여도 사람 없는 데에서 마음껏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세요.


그리고 그간 못 봐서 미안하다고 더 자주 오겠다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고 위로도 해주세요.


음 일단 무엇보다 나의 마음 

(심지어는 내_마음이_아프다고_인지(최소한 이런 채널에 들어올 정도로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자각)했는데도, 그런 나까지 비난하고 괴롭혔던 내 마음)

이 아프다는 걸 알아채고, 걔(나 자신)를 위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막 불쌍해서 울게 돼요. 그렇게나 아픈 나를 방치했던 내가 밉기도 하고.. 정말 스스로를 아껴주세요.. 


타인을 비난하는 형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자기자신에게 가혹하게 대할 수도 있어요.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사랑하는) 환자(혹은 (환자인) 아이)로 대해 주세요.


환자나 어린아이에게 욕하면 안되겠죠?





거울


막 힘든 일이 있고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고 하소연 할 곳도 없고 그러면 거울을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거울에 있는 내 얼굴, 눈을 보면서 진짜_나에게 말을 건다는 느낌으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해보세요.


예로, 버려질까봐 두렵다. 난 걔가 너무 싫다. 매일 헛소리 해대는 엄마가 증오스럽다. 다 죽이고 싶다. 죽고 싶다. 살아갈 의미가 없다. 연인이 날 찰 것 같아서 무섭다.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무섭다. 등등..


흡사 대화하듯 해도 되고 감정을 표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이렇게 하려면 잘 감정이 안 느껴지니깐 먼저 사람 없는 데에서 소리 지르면서 화를 풀고 하는 편이 좋을 거 같네요.


미친놈처럼 야수의 심정으로 소리소리 지르면서, 욕지거리도 하고 부모님이든 내 운명이든 신이든 어차피 상상이니깐 멱살잡고 욕도 해 보고 하늘에 삿대질도 해 보고, 화를 푸는 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화를 풀고 나서 감정을 말로 하면서 느껴주다 보면 막 어린아이처럼 엉엉 주저앉아 울게 됩니다.


울고 나면은 훨씬 감정이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自殺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생각)이지만 저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봐요.


귀신이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존재하는, 식물에게 감정 비슷한 뭔가가 있는, 뇌가 생각의 감옥이 아니라는, 한의학이 일부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잠정적인) 증거들이 신기해서 많이 찾아본 영향일지도 모르겠어요.


자각몽, 꿈, 유체이탈, 전생체험, 최면, 바디스캔, Karma業, 천망, 뇌파, 동물의 육감, 플라시보 효과, 믿음용서사랑, 데자뷰(기시감), 동시성현상, 집단무의식, 태몽, 상상통, as if 법칙, 운, 송과체, 차크라, 등..


億劫의 생애를 홀로이 보낸 불쌍한 我해에게 있어 소원이라면, 모든 감정을 다 버리고 완전히 끝나고 싶어요.


분명 에휴 죽으면 다 끝나는데 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랬었는데, 죽으면 어차피 다시 태어난다고 믿으면 그 공포?로 어찌어찌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주변환경부터 친구 부모 사회 등, 태어나기 전 내가 희망하고 선택한, 혹은 무의식적인 業에 의해 정해진, 내 인생의 상황에서부터 도망친다면, 존재의 직무유기를 행한다면, 같은 테마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말이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사형의 방법이었나 그런 영상부터 해서 어떻게 죽을까 연구도 했었는데, 저산소증(hypoxia였나?)이라는 단어 한 개 정도가 기억나네요.


저도 예전에 자살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물론, 실존주의부터 해서 키르케고르 니체 쇼펜하우어 뭐 별 걸 다 걸고 넘어졌어요.


근데 그래도 단언할 수 있을 거 같애요. 자살은 결코 길이 아니에요.


위에서부터 말을 계속 추측성, 가능성에 빗대 완곡하게 쓰고 있는데 이건 아니라고 봐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의식이 있는 한) 당연한 거고 전혀 문제 없다고 봅니다만, 그 생각은 빠르게 무시해 주시고, 부디 말로, 손으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쓰는 이도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보는 이도 다 슬퍼져요.





행복


이 미친 세상 한복판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자기 할일을 해내고 남들을 돕고 즐겁게 해주고 본인도 행복하게 살고.. 이런 건 인생의 목표로는 어떨까요?


(너무 목표가 거대하면, 부담스럽고 다가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심지어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또 자기비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확률이 높겠죠.)


뭘 해야 행복해질까 이걸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행복을 더 잘 느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굳이 뭘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행복도 결국 감정이잖아요.


감동이든 행복이든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그런 종류의 쾌의 상위의 쾌이지 않을까요?


음식을 먹을 때도 참치캔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놓고 최대한의 감각적(심미적) 쾌락을 이끌어 보세요.


(행복이라는) 감정에 둔감하다면 그 감정(행복)에 더 민감해지게 더 많이 자주 느끼려고 해봐요.


흔히들 왜 사느냐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답하잖아요.


정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거 아닐까요?


모두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충분해 차고 넘쳐요.


정말로 진짜 만약에 누군가에겐 존재할 가치가 없었더라면, 그런 이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애초에 우주 차원에서 존재에 대한 승인이 없었겠죠!  (일종의 인류원리일까요..)


그러니 부디 (미래, 타인, 세계, 자기자신, 등 뭐가 되었든) 너무 무서워 하지 말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가 주세요.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놈이 문제라는 말도 있잖아요?


마치 자기자신을 비난하는 애, 걔가 문제인 것처럼요.


자기자신을, 아해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세요.





참고


거울명상에 대해서는 [김상운의 왓칭]가 좋을 듯 합니다.


많은 영감을 받고 인용?한 자료에요. 개인적으론 pdf로 매일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유에, 지적해 주시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수정하겠읍니다.


dada수행글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kr5uv59tiYmV_Z2R6xUXa-aKPG1BUcTm]


상술한 글에선 타인에 인한 폭행피해나 운명(업?)? 같은 외부적 요소에의 해결책은 너무나 종교적이기에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링크한 자료에 있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한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오래됐지만 에반게리온 25, 26화도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진짜 나 자신(무의식)은 어렸을 때의 나와 (수준이) 같다고 합니다. 대부분 5살 정도로요.


그래서 에반게리온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짜 나는 저기 깊숙한 데에서 울고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억압된 어린 (혹은 전생의) 감정들을 풀어내는 것이, 소리질러 화를 어느정도 풀어준 후에 하는 감정 느껴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붓다가 말한 알아차림으로의 中道가 이 감정체에 대한 얘기였을까요? 억압도 무시도 아닌 중도.


그 울고 있는, 힘들어 하는 소중한 아해 (兒孩: 어린아이) (我해: 나의 태양, 내 자신) 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세요.


정신질환 챈 모두가 본인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서,부디 이 채널을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