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밝히는 첫해 두대의 최신 실험용 2세대 전차가 수출을 위해 해외로 나갔습니다. 두 전차모두 이전 2세대 전차와 달랐습니다. 새로운 용접포탑, 확장된 배럴이 있는 105mm이 있는 주포(87식), 새로 개발된 사격통제장비, 80식에 비해 더욱 향상된 동력과 전달장치.. 80-ii은 69-ii와 달리 대외 무역에서 실패했으며 이에 타산지석으로 삼아 두대에 새로운 전차는 당시 최신으로 개발되던 많은 기술들을 2세대 전차에 탑재하였습니다. 이상적인 조건하에 전반적인 성능은 중국이 만들었던 모든 2세대 전차중 가장 좋을 겁니다.







악어공원에 WZ1227F2 혹은 ZTZ-85-II/A, 12150ZL 800마력 엔진에 맞춤 개조형태. 


이 두 전차는 잘알려진 ZTZ-85-II, IIA 입니다. 두 전차에 실제 설계년도를 따지자면 85년이아닌 80년대 마지막 몇년이였지만 두 전차에 수석 설계사 方慰는 그 성능이 같은 세대의 최선두 전차군 수준에 미치지 못해 ZTZ-85로 명명되었다고 언급합니다. 그치만 이 2세대 전차에 당시 개발중이던 3세대 전차 기술을 접목한 이 전차는 많은 기대를 받았고 이전 전차에는 없었던 별명으로 "폭풍호(전차)"라는 별명도 받았습니다. 



85-IIA, 85-II. 각각 푹퐁 2, 푹퐁 1 전차로 불림.  


매우 촉박한 개발주기는 항상 ZTZ-85에 핵심문제로 두구두구 괴롭혔습니다. ZTZ-85는 언밀하게 실험용 전차라고 할수 있습니다. 많은 세부사항이 막 마친 과학적 개발 성과를 탑재했으며 이들을 완벽하게 통합할 시간을 부족했습니다. 국제시장에 최 고급 제품들을 비교하기도 힘들지만 시간을 이들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기술이 성숙했을때에는 국제시장에 소비자들은 이미 다른제품을 구매하고 있고도 남을 시간이였습니다.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이때 지푸라기도 잡을 수 있다면 타이밍 러쉬를 하듯이 새로운 수입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90년 폭풍호는 이란, UAE등 다양한 국가로 출장을 갔습니다. 이 시연에서 이들 전차는 성급한 과학적 성과의 접목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85식의 전반적인 성능 특히 사막 주행 성능은 끔찍했고 차량 은 거칠었고 내부 배선은 엉망이었고 가장 심각한 새로 설계된 트랜스미션은 만성질환자마냥 매일 고장이 났습니다. 결국 외국 소비자들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수출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85-IIA. ZK-03  유성기어가 들어간레후


다행히 중국 전차 개발사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파키스탄은 이들 시연을 본후 ZTZ-85에 관심을 보였읍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ZTZ-85는 분명히 원하는 이상적인 전차하고는 떨어져있습니다. 인도의 소련산 T-72도입에 따라 파키스탄은 이와 대응하기 위해서 일련의 개선요구사항을 제시하였고 ZTZ-85는 더욱 개선하여 T-72 상대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더 많은 진보된 기술의 안정적 접합을 뜻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의 요구사항에는 예를 들자면 당시 이제 막 테스트중이던 125mm 포등 3세대 전차를 위해 준비하던 최신 기술을 포함되는데 중국은 과연 친하더라도 외국에 안정적일지는 이제 확인해야할 막 끝난 기술을 적용하는게 가능할까요? 모든것은 3세대 전차 프로그램 수석 설계사에 달려있습니다.


祝榆生은 신기술이 신제품으로 나와야 신기술의 가치를 반영하고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술의 결과를 직접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생산품으로 전환하고 결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관행처럼 평가하던 "죽의장막"속 비밀보다 더 중요하고 오히려 검증할 좋은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기술 수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서 "3세대 전차의 기술을 사용하여 85-IIAP의 수출을 지원하고 85-IIAP의 수출을 통해 3세대 전차의 완성을 촉진한다."라는 표어까지 만들었습니다. 


85-IIAP에 이야기는 당연히 계속되지만 이글은 3세대 전차를 다루기에 85-IIAP는 3세대 기술이 접목된 2세대 전차이기에 본질적으로 2세대 전차로서 이야기는 이쯤 끝내는레후~






ZTZ-85-IIAP



빠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 전차산업 발전을 세심하게 살펴온 파키스탄은 이때즈음 마침내 두나라 첨단 전차를 "공동으로 개발" 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수년간 교류끝에 1990년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85-IIAP 수출되던 그해 파키스탄도 첨단 주력전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계약이 체결됬습니다. 85-IIAP는 단순히 지금 소요를 충족하기 위한 임시책으로 목표하는 새 전차는 21세기에 파키스탄에 새로운 주력전차가 될것입니다. 



중국의 전차 트리에서  자국 사용을 위한 트리와 병렬로 수출을 위한 3세대 전차라는 새로운 라인으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중반이후 부터 파키스탄 기갑부대 의사결정자들은 기존의 기술로는 미래에 구상하는 기갑 전력을 구상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 공동 전차 개발은 과거사례나 여기저기서 수출되던 69-II이나 개량형과 달리 파키스탄이 목표를 설정하고 요구의 부응할 수 있는 전차를 개발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파키스탄 당국자들은 이전부터 중국과 접촉을 하였습니다.


 이 목표에는 기존 수출형 전차나 익숙한 요소가 아닌 다른 진보된 기술적 요소도 있었는데 중국 기술자와 개발진들에게는 이러한 요소들이 이전 해외수출 보다 더 어려운 요구라고 생각했지만 거부해서 다른 국가에게 넘기기에는 너무 큰 규모의 전차 도입 사업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논의가 끝난 후 공동개발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부터 이러한 큰 주문의 기회를 꿈꾸며 초기 협력, 탐색단계부터 중국 연구진들은 파키스탄 요구에 맞는 기술 개발에 대한 초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공동개발 서류는 이제 중국의 전차 수출이 기술 수출까지 포함하는 패키지로서 커지는 순간이였습니다.


파키스탄 육군에 미래 전차 구상이나 요구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를 필요로하는 수요 유발처는 바로 옆에 인도였습니다. 80년대 부터 T-72를 계열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를 인도육군은 81년 라이센스 계약체결후 수천대 가량을 주문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파키스탄에 심각한 위협이였고 따라서 파키스탄이 원하는 공동개발 미래전차는 인도 T-72 계열을 압도할 수 있어야 했고 향후 21세기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T-72보다 결코 나쁘지 않아야 함은 새 전차에 궁극적이고 엄격한 요구사항이 될것입니다. 



인도- Ajeya MK1 전차


그러나 이 당시 시기는 1990년 이전으로 중국에 3세대 전차 프로젝트는 이제 초기단계로 자체적인 목표 사항이나 요구사양도 구름속에서 찾고 있던 시기였는데 기술개발 역시 초기단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도 아닌 타국의 요구사항을 선듯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프로젝트는 사실상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자체적인 프로젝트도 아직 결과물이 나오기도 전에 몇몇 파키스탄 육군에 요구는 당시에는 수용하기 매우 어려운 요소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자동변속기, 스티어링 휠 제어" 같은 거 였는데 궁극적으로 ZTZ-99는 T-72 에 이중유성변속기에서 많은 참고하고 유압등을 추가하여 개선한 형태이고 제어는 여전히 레버식이였던 레후 실질적으로 실험용전차가 아닌 대량 양산된 자동변속기 장착은 더 늦은 시기였고 이를 80년대에 요청했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물론 78-4전투에서 중국은 WZ-1226을 통해 스티어링 휠제어와 자동변속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는 초기형태였고 만족할만한 완성도와 신뢰성은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해외수출형에서 이점이 있다면 중계자가 되서 좀더 선진 해외 장비를 추가적으로 수입-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1985년 중국은 독일 ZF사에서 LSG3000 변속기를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LSG3000 변속기를 사용한 동양에 어느 전차


이 변속기를 차량에 장착하여 현장 주행 및 데이터를 수집하고, 변속기에 드라이브 트레인이나 제어 시스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설계 경험을 축적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연구진들은 LSG3000 변속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된 WZ-1224와 한대에 ZTZ-80 프로토타입을 사용했고 이들을 각 공장 제품번호로 BK1850,1851이라고 불렀으며 실제 이후 변속기 설계등에 유용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  재밌는 관련 이야기

78-4 전투(프로젝트)에 WZ-1224는 RK304 변속기(7백만 마르크 기술보호료와 함께) 구입하려고 했으나 전투 책임자는 이 계약을 맺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차량은 MTU 8V331TC41엔진을 장착하고 유압식 토크 컨버터가 있는 기계식 기어박스가 있는 변속기로 테스트하였읍니다. 이후 이차량에 변속기는 LSG3000으로 교체되는레후. 




78-4전투에서 WZ-1224. 




BK1851. 가장 유명하게 불리는 것은 위에 용접포탑 테스트 차량이지만 사실 차체도 스티어링휠, 변속기, 엔진등에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기계공원에서 쉬고 있습니다. 





BK1850, WZ-1224에서 차체를 개조한것으로 1224까지 합치면 엔진이나 변속기가 수차례 서방제들로 테스트된 그야말로 챙녀급.. 



스티어링휠이 있는 BK1851에 운전수 공간. 대부분 실험완료 후 뜯어졌지만 저 상징은 아직 남아있는 레후. 


BK1850/1851에 성공적인 연구후 1987년 추가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추가 자금을 확보했는데 이 예산은 특수한 테스트 프로토타입을 재설계하고 만들수 있을 만큼이였습니다. 이 테스트 차량에 공장 제품 번호는 BK1871로 정해졌습니다. 두 '전임자'처럼 프로토타입의 목적은 차체에 많은 중점을 두었기에 추진 및 제어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것이 주목표였습니다. 다만 1871은 기존 차량과 달리 진보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차량에 엔진은 독일식 96D(MTU396민수용 기반)엔진과 변속기를 갖췄고 전반적인 파워트레인은 중국이 구할 수 있는 가장 최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사 연구용 프로토타입 차량이지만 넣은 장비에 맞게 좋은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BK1871은 1990년 차체 조립을 완료하였고 그에 맞게 여러 카운터웨이트를 넣어 진짜 포탑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모델 포탑을 장착하고 기본적인 테스트를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드디어 3편 이야기에 첫부분과 시점이 맞게 되었습니다. 1990년 파키스탄-중국 공동전차개발이 체결되었고 그해 85-IIAP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파키스탄-중국 공동 개발에서 파키스탄에 요구성능은 당시 중국이 개발중이던 3세대 전차를 위한 기술이 필요하였고 당시 판매중이던 2세대 기술을 기반으로하는 69,85로는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3세대 전차 프로그램 선임 설계사는 수출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했기에 현재 개발중인 기술은 너무 진보되었고 또 수출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장애물을 넘어 계약을 공식적으로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전차는 나중에 P90 주력전차로 명명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많은 노력이 들어갈게 뻔한 이 전차를 중국은 파키스탄을 넘어 다른 곳에 수출역시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형 제품을 두개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렇게 이 전차는 90-II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1990년 후반 중국 개발진과 엔지니아들은 이 새로운 전차의 기술적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파키스탄에 요구를 확인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갔습니다. 파키스탄은 회의에서 요구사항으로 분명히 자동 변속기 및 스티어링 휠 제어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이전 80년대 논의나 계약전 고민과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은  BK1871 차체를 기반으로 하는 계획이 있고 이를 도입하면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BK1871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수석 설계사 杜惠昌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전차를 소개했습니다. "이 전차는 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고, 매우 편안합니다!" 회의에서 참석한 파키스탄 국방부 관계자들은 질의 후 그 계획에 대해 만족을 표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관계자는 수석 설계사에세 " 杜 씨, 우리 모두 당신의 말을 잘 이해했고 이러한 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후  BK1871 프로토타입 테스트 섀시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수출용 전차가 개발되었고 이는 중국에 첫 3세대 수출용 전차 프로그램이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모조포탑은 실제 포탑으로 교체되었고 1991년 전체 조립이 완료되었습니다. 90-II 전차에 첫 프로토타입 차량이였습니다. 




90-II 프로토타입은 최종 조립후 짧은 테스트를 하고 바로 성능 시연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간레후 왼쪽에서 두번째가 수석 설계사인레후. 


* 수석 설계사 杜惠昌은 기본적으로 서구권 국가와 풍부한 교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BK1850,1851,1871뿐만아니라 90-II에서도 수석 설계사 역할을 했고 78-4전투에 WZ-1224/1226, 69식이나 WZ-111 중전차 프로그램에도 참가하였고 ZTZ-99개발 프로그램에서 부수석 설계사로 있었던 레후. 


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이후 독일, 프랑스, 영국등 유럽 국가 교루와 방문으로 엔진, 변속기등 파워트레인 기술을 접하였고 스티어링휠 초기설계사인데 M48 전차와 M107 175mm 자주포에서 설계를 개선하여 WZ1226 전차에 운전실 설계를 맡고 설치한레후. 많은 이야기를 한 이유는 아직까지 생존하여 SNS등을 통해 소통하기에 개발사에 여러 실제 중요 개발진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인레후. 없었으면 이 개발기에 많은 세부사항이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레후. 



1985년, 치프틴몽을 함께하는 王哲荣,杜惠昌.






90-II 1번 프로토타입 차량. BK-1871 섀시 사용.  차체 전면에 68도 각 복합장갑 배열이 특징적으로 잘보이는 레후 


그러나 1990년이후 중국에 대한 서방권에 무기 수출 통제가 심화됨에 따라 90-II에 필요한 독일 기술에 사용에 제한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96D엔진은 민간엔진 기반이지만 LSG3000 변속기는 상황이 다릅니다.  CoCom 즉 다자간 수출통제 조정위원회는 공산권에 대한 수출 물자를 조정하는 곳으로서  천안문 민주화 항쟁등 최근에 이뤄진 문제를 바탕으로 군사용으로 전용가능 한 물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90-II에 선진 파워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심장이 뽑힌 양철 나무꾼이나 다름없었고  杜惠昌이 독일과 협력하에 진행되는 90-II 파워 프로그램은 폐기되었고 후속작업은 汤宝骏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94년 90-II 프로그램은 새로운 장을 넘겨 개발을 진행했는데 프로젝트가 초기를 넘어 실질적인 프로토타입 단계로 이동하고 양측에 지표도 뚜렷해지고 전차에 들어가 다양한 체계들이 설치되고 구현됬습니다. 이 단계 즈음 되면 대체로 실제 양산차량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 전차에 심장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옵션을 모두 가진 총 4대로 대표되는 프로토타입 차량을 여럿 생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4대에 차량은 동시기에 생산된것은 아니고 시간에 따라 정치적 상황과 기술적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변화한 차량이고 대표가 4대이지만 실제 생산된 프로토타입 차량은 더 많습니다. 



실질적 프로토타입에 첫번쨰인 1번차량은 FP-1, BW123F2차량으로 MBT-2000에 첫번쨰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초기 프로토타입에 동력을 그대로 유지하여 1150마력  96D 엔진에 LSG3000 변속기를 갖춘 파워팩이 있습니다. 

 



1번과 가장 유사한 2번차량. (FP-2, BW123F2) 여전히 독일식 심장을 가졌지만 엔진을 96D대신 96DZ로 개량하여 마력을 1200마력으로 증가시킵니다.  또한 옆에 동일 차체를 이용한 BW654 구난차량도 보입니다. 





가장 유명하기도 한 3번차량. FP-3, BW123F4. 영국 CV-12 1,2000마력에 프랑스제 ESM500 변속기 장착. 마지막은 초기 중국 반응장갑과 설치 레이아웃을 보여주는 레후. 


 



양산형과 가장 닮은 4번차량. FP-4/BW123F6. 우크라이나제 1,200마력 6TD-2엔진에 유성변속기를 장착.  6TD-2를 장착해서 측면에 구멍이 없는게 주요 특징. 


이 후기 프로토타입들은 동력체계만 뺴면 큰 차이가 없으며 그외에 초기 프로토타입 즉 BK1871과 달라진점은 차체 전면 복합장갑 배열이 기존에 68도 가파른 각을 유지했지만 독일 레오파르트2 등에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둔해진 각을 사용했는데 중국 전차사를 볼때 이때가 첫 적용사례였습니다. 프로토타입 차량에 포탑은 새로 설계하여 교체하였는데 전체적인 모양새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크기가 바퀴 하나만큼 더 커졌으며 외부에 연막탄발사기가 한면에 4발에서 6발로 증가했습니다. 





후. 차체 전면 복합장갑에 각이 둔해지고 포탑이 커진걸 쉽게 식별가능. 또한 연막탄발사기도. 


90-II는 파키스탄을 위해 개발되고 있었기에 중국전차가 겪어야할 테스트중 일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파키스탄에 더위와 사막환경. 이러한 고산지대 열로 쩌는 환경은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0-II 부원사 马成荫 말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사막은 중국이 사막환경 테스트에 사용하는 북서부 고미 사막과 다른 환경으로 전차에 치명적인 것은 높은 먼지로 동력 전달 장치나 조준장치에 먼지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전반적인 부품에 수명과 점검주기가 단축되기에 90-II  수년간 파키스탄에서 환경테스트를 거쳤습니다. 






사막레후


환경테스트중 파워트레인과 동력장치들도 몇가지 결과를 받았습니다. 1,2번 차량에 이상적인 독일 파워팩 요소인 96D(DZ)엔진은 민수용 엔진 기반으로 극환 환경에서 신뢰도가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또한 바탕으로 개발된 중국산 엔진과 부품들은 신뢰성에서 군용요구를 맞출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상적인 엔진의 성능을 만족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민수용엔진을 바탕으로 하는 엔진은 어떻게든 제작이 가능하고 후에 개량하더라도 변속기는 여전히 파리에 있었습니다. 독일은 LSG3000을 중국에 수출하기에는 너무 진보되었다고 보았고 독일세관 요청으로 ZF와 중국과 협력관계는 중단되었습니다. CoCom은 1994년 해산을 선언하고 제한 조항이 바세나르 협정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규제는 풀리지는 않았고 독일식 계획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3번 차량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였습니다. 수출제한에 문제는 아직 없었고 챌린저 전차의 엔진과 프랑스 르끌레르 전차에 변속기는 나쁘지 않은 조합이였습니다. 열대,사막 환경에서도 이들 부품들은 큰 문제가 없었고 이는 파키스탄에서도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좋은 성능을 가진 조합으로 파키스탄에서 오랜시간동안 여러 환경에서 테스트를 수행했습니다. 




이 덕분에 3번 차량은 여러차레 테스트 기간동안 많은 사진을 남겼고 우리가 흔히 보는 사이트에서 90-II 하면 나오는 사진은 대부분 3번차량 입니다. 3번차량은 곧 차량에 반응 장갑이 장착됬는데 당시 중국 반응장갑 개념은 초창기를 지나고 있었기에 반응장갑에 개념은 장갑에 '보강재'로서 장착 방식 역시 매우 '하드코어'한 초창기형태였습니다. 다만 3번차량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된 만큼 이 반응장갑을 장착한 3번차량역시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운 레후. 




포탑에 반응장갑 모듈 크기는 크지만 몇몇 비 보호구역이 눈에 보이며 차체는 정면에 대부분은 덮여있는걸 볼 수 있는 레후.  



3호차량에 엔진-구획. 




 3호 차량에 파워 구획은 평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를 확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국-파키스탄 협력체에서는 이것을 확정하는 것을 몇가지 이유때문에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전체 파워팩은 모두 수입제품으로 당시기준 최첨단 부품이기에 비쌌고 이 비싼 가격은 당연히 전차에 가격을 상승시킬 것입니다. 파키스탄에 수입되는 서방 고급 군사용 부품이라는 점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독일에서 이미 선례가 남았고 장래에 금수 조치가 취해진다면 전차 프로그램은 말그대로 하늘로 발사되는 상황이였습니다. 파키스탄은 높은 비용과 불안정한 수급 문제로 성능에 만족했지만 이것을 채택해 끝을 보는 것에는 주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의 핵실험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금수조치를 취함에 따라 현실화 됬습니다. 이미 당시에 걱정하던 일이 불과 몇년도 안돼 현실이 된것입니다. 파키스탄은 이미 그 가능성을 우려해 서방권 파워팩을 결과적으로 채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일 수도 있고, 이미 파키스탄에서 진행하던 핵 프로그램 까지 고려해 모든것을 계획에 넣은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서방권 국가가 아니 국가에 대체 동력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파티스탄은 첫번쨰 85-IIAP를 배치 받았으나, 초기형에 생산량과 성능에 실망했습니다. 높은 기대를 가진 90-II은 분명히 몇년 이상 더 소요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85-IIAP는 파키스탄에서 가격대비 쓸만했지만 단기적 국방요구에 비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인도가 T-90를 도입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파키스탄은 더더욱 자극됬습니다. 90-II이 배치되기전, 이 공백기를 채울 단기적 국방요구에 필요한 전차가 긴급히 소요됬습니다. 파키스탄은 경쟁입찰로 새 전차 도입을 선택했습니다. 


 이 싸움에서 우크라이나 T-80UD와 중국 ZTZ-85-III가 참가했습니다. 입찰에 승리자는 .T-80UD로 결정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T-80UD(후에 T-84)가 승리했지만 파워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 떄, 우크라이나와 6TD 엔진과 접족할 기회를 가지게 되는 수확을 가져갔습니다. 




입찰에 참가자는 후방에 ZTZ-85-III/ T-80UD이지만 90-II 3호차량도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읍니다 





파키스탄에 적극적인 도움으로 6TD 계열을 장착한 90-II이 생겼는데 협의하는동안 모조로프(ХКБМ)친구들에 엔진과 이중 유성기어 변속기를 살펴보면서 생각외로 높은 성능과 작은 크기는 편견을 꺠고 깊은 인상을 가지게 했습니다. 파키스탄 역시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특이 이 파워트레인에 채용은 전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T-80UD을 이미 도입했기에 공통된 부분으로서 비용을 더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6TD 엔진을 장착한 마지막 4번 차량이 파워 솔루션으로 최종 채택됬습니다.


여러 차례 진화와 수년간 테스트 끝에 90-II 심장이 정해졌습니다. 







가장 큰 구별점은 4호차량에 응딩이 입니다. 다른 차량과 쉽게 구분이 가능한 레후. 





 심장병만 제외하고 90-II에 나머지 사항은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 개발중이던 3세대 전차를 위한 기술과 부품들을 기반으로 90-II에 사용되었는데 한곳에 투자해서, 한곳에서 회수하는 정책(一路投资,一路收回)에 따라 자체적으로 90-II을 위한 R&D 프로세스는 제한적이였습니다. 


90-II가 6TD 계열로 선정되면서 이전에 상정한 서방제 장비보다 훨씬 작은 엔진과 변속기가 들어갔지만, 설계적 이점은 제한적이였습니다. BK1871은 대형 서방제 파워팩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대형 섀시였고 6TD엔진이 들어간 후 남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변경하기에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대신 공간에 외부 준비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여 49발을 적재하게 해 125mm 전차중 최상위권에 탄약 적재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8년 경 90-II는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때 파키스탄은 다른 새 요구사항을 가져왔습니다. 한 장성이 직접 전차를 탑성한 후, 전차가 너무 덥고 운용병에 사기와 컨디션을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도록 요청 하였습니다. 


에어컨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였는데 전차용 에어컨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일이였는데 이는 기존에 활용한 기성품이나 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모두 신규로 자원을 투자해야햇고, 에어컨은 전차에 장착해 충분한 성능을 가지면서 좁은 전차내부공간에 장착할만하게 작고, 또한 내구성도 좋아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어컨 작동이 앉아있는 누구나 가능했어야 했습니다. 



부수석 엔지니어 말로는 시장에 괜찮은 에어컨 프로토타입이 될 모델을 찾기위해 몇달을 소비했다고 말합니다. 


이 에어컨 신규 개발은 2년동안 프로세스를 연기하게 만들었습니다. 1990-2000년까지 진행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5분의 일정도로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였습니다. 물론 그기간동안 에어컨이나 만지작 거린것은 아니라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몇몇 피드백을 반영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응장갑 구성이 재설계되었는데 포탑 전면에 쉽게 반응장갑을 추가 및 제거할 수 있는 브래킷 세트를 구성하고 형태역시 전면에 쐐기 모양으로 배치하면서 보호성능도 더 높였습니다. 


이제 90-II 우리가 보는 그 형태로 완성됬습니다. 


2000년 90-II은 마침내 완성되어 MBT-2000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같은 해 IDEAS 파키스탄 방산 관람회에 탁실라 중공업(HIT)는 90-II에 완성형태 프로토타입 한대를 선보이고 이름을 알-칼리드로 지정했습니다. 



알-칼리드


90-II 프로그램은 원래 중국과 파키스탄간에 전차 프로젝트였고 파키스탄이 필요로 하는 21세기를 위한 3세대 전차를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했습니다. 10년 간의 연구개발로 MBT-2000, 알-칼리드는 4자간 계약으로 확장됬는데 주물주 파키스탄과 주 연구개발 담당 중국외에 엔진과 관련된 우크라이나와 정밀 부품 공급(주로 열화상분야)을 담당한 프랑스가 새로 추가됬습니다. MBT-2000은 예상한 목표를 달성했고 프로젝트는 끝났습니다. 


MBT-2000을 2001년 부터 중국은 파키스탄에 자체적인 제작을 위해 탁실라 중공업 생산라인 구축을 지원했고 극초기분은 그대로 파키스탄을 위해 선박으로 운송했고, 이후 배치분을 위한 핵심 부속과 부품을 수출하였고 최종조립은 파키스탄이 담당하였습니다. 




20년이 지나서 알-칼리드에 생산, 배치 현황을 보면 목표한 기간 만큼 배치, 생산되지는 못했습니다. 초기에 탁실라 중공업에 역량 부족과 예산 부족으로 대량샌상 단계에서도 그렇게 많은 숫자가 단기간에 배치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생산 기간에 따라 상당한 숫자가 배치된 알-칼리드는 이제 파키스탄이 자체적으로 개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 군은 독자적으로 모든 부속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수입되는 부품에 국산화 요구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여러 다른 국가와 기술협력으로 이를 대체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엔진으로 이미 협력한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와 협력인데 KBA-3 125mm와 기술을 통해 기존 주포를 대체하고 FY-2 반응장갑을 대체할 AORAK 반응 장갑을 개발하며 사격통제장치에 대안으로 유럽국가들과 협력을 추진했습니다. 이런 여러 개량요소를 가지면서 최종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알칼리드인 칼리드-1 주력전차입니다.   



 다만 전체적인 과정은 많은 지연을 겪었습니다. 칼리드-1 프로그램은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됬지만 2020년 중순경에 대량배치형 칼리드-1 전차가 배치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칼리드-1 전차 개발에 우크라이나와 중국에 많은 도움이 있다고 표현함에 따라 그들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알-칼리드와 달리 칼리드-1은 독자적인 파키스탄이 진행하는 과정으로 기존에 공동개발과 다릅니다. 칼리드-1에 과정과 변화는 전체적으로 중국 3세대 전차 개발사하고는 많은 괘적에서 다르며 알-칼리드완성과 함께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를 들어가면서 파키스탄과의 계약은 끝났지만 MBT-2000에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파키스탄이 아닌 중국에서 자체적인 MBT-2000 개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미 잘 완성된 수출형 전차를 나두고 굳이 다른 전차를 꺼낼 필요도 없으며 파키스탄에 환경용으로 개발되었다고 꼭 다른 환경에서 그 가치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계약이 끝나면서 MBT-2000을 위한 모든 R&D 자금 지원을 해주던 파키스탄대신 중국에서 받았고 장갑 모듈에 대한 변화(혹은 감축옵션), 사격제어장비에 대한 다양한 옵션(프랑스/중국 열화상장비 옵션 혹은 아에 열화상 옵션을 뺴기)등 수출시장에 맞춘 옵션을 개발했습니다. 다양한 옵션 놀이 덕분에 겉으로 비슷하더라도 국가마다 수출된 내부 사양은 완전히 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MBT-2000 개량옵션은 바로 장갑이 개선된 신형 포탑으로 대폭 개량된 MBT-2000 모델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양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사진에 WZ4009 구난차량을 보면 2010년대까지 즉, VT-4가 시장에 나올떄에도 MBT-2000은 여기저기 테스트될정도로 굴러다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외에 독특한 변종은 2000년대 중반 90-III으로 대부분 세부사항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로 이 프로젝트가 후에도 MBT-2000과 통합됬는지 여부는 불명입니다. 이렇게 MBT-2000은 파키스탄이후에도 여러 국가에 판촉되었는데 






모로코군에 MBT-2000. 파키스탄이후 첫 사용자. 



 미얀마군에 MBT-2000




방글라데시군. 



그외에 아쉬운 사례로 페루군이 있는 레후. 



MBT-2000 이야기를 마치고 3세대 전차개발사에 이번화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90-II와 ZTZ-99에 관계에 대한 내용을 말해봅니다.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소리는 85-II에서 90-II이 개발되었다. 혹은 90-II에 발전, 자국산용으로 만든게 ZTZ-99 라는 소리인레후. 숫자적으로 볼때 85-90-96/ 85-90-99 모두 별 문제가 없고 연대 역시 큰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 85/90은 3세대 전차 프로그램이 특정 단계를 달성후 단계적 성과를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 수 있도록 장려한 프로젝트에 거대한 결과물인 레후. 중국에 2세대 전차에 3세대 전차를 위해 개발된 기술을 접목한게 85이고 3세대 전차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것이 90일뿐인레후. 85/96 관계역시 연구개발일정이 겹치지만 뻐대는 80-88-96입니다.


90-II 역시 123 프로젝트에 파생으로 만들어졌고 ZTZ-99에도 적용되는 기술이 90-II에도 들어갔으나 결국 골격은 하나입니다. 123프로젝트에서 나온 기술로 파키스탄에 환경에 맞춰 90-II, 알칼리드가 탄생했으며 ZTZ-99는 123프로젝트에 직접 결과물입니다. 둘 사이 관계는 한 뿌리이지 90-II이 99에 뿌리가 아닙니다.  




 "한곳에 투자하고, 한곳에서 회수한다" 라는 정책에 따라 개발될 기술을 통해 해외수출을 통해 프로그램에 경제적이득을 늘리려는 성과물이였습니다. 123 프로젝트 결과중 맏이는 분명히 ZTZ-99지만, ZTZ-85IIAP, 90II, 96/96A 까지 모두 혜택을 받았습니다. 더 넓은 범위로 따지자면 125mm 업그레이드 같은 일부 기술 수출, 예를 들면 파키스탄에 59/69식 수출형에 125mm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고 이것이 123프로젝트에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연구시설 현대화, 생산시설 현대화, 추가 건설같은 산업능력 발전에 투자되었습니다. 


3세대 전차가 결실을 맺기도 전에 123 프로젝트에 결과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출되 66.7억 위안에  매출을 창출했고 이는 고소란히 재투자되었습니다. 


21세기 첫 10년동안 엔진관련 기술에 발전과 안정화로 MBT-2000을 괴롭히던 엔진문제를 해결한 역량을 갖췄지만 MBT-2000에 설계는 2010년대 혹은 그이후보다는 90년대에서 00년대를 상상하는 설계로 한계가 있었고 국제시장 경쟁력은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결국 MBT-2000에 추가 개선 노력에 가치는 감가되었고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MBT-2000이 쇠퇴됨에 따라 새로운시대에 새 국외시장 요구에 부응하는 전차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것은 현재 나와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한것은 VT-1/1A라는 이름에 대한 여부로 많은 곳에서 이렇게 언급하지만 노린코 공식 판촉물이나 카달로그에는 MBT-2000으로 호칭되기에 VT-1/1A보다는 MBT-2000이라는 명칭이 더 적합해보입니다.  








다음화.. 




다음화는 ZTZ-99에 마지막이 될것인 레후. 1990년대중반이후 123프로젝트에 3세대 전차 동적테스트차량, 프로토타입 묘사(시뮬레이션) 차량 이후 나온 ZTZ-99 프로토타입 차량과 1999년 미디어에 첫 공개 2000년 ZTZ-99 공식 명칭 명명에 순간에서 2003년 123프로젝트 실 폐쇄까지 따라갈 예정인 레후. 



꼭 봐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