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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중화민국군으로써 중일전쟁 등에서 항일전으로 싸워오시고 한국전쟁에서도 개판난 병력들을 수습하는데에 성공하여 한강구축선에서의 방어를 성공하신 김홍일 중장(예편 당시 계급)이 있음. 

참고로 김홍일 중장은 미국과의 의사충돌이 너무 잦아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와는 반대[*]로 어쩔수 없이 잘랐다고 함. 


참고로 김홍일 장군님은 이전에 국민혁명군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국방개론"이라는 것을 저술했는데 김홍일 장군님의 생각이 생각보다 공세적이어서 올려봄


김홍일이 구상한 한국군의 편성은 어떠했을까. 김홍일은 일국의 각 분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비군의 유효 상한 비율은 인구 대비 8/1000 수준이라고 설정했다. 따라서 1949년 당시 인구 3,000만 명 중 상비군은 24만 명이 적정하다고 제시되었다. 또한 김홍일은 “육군은 공세적 작전을 취하야 적을 국내로 드리지 않고 전장을 국외로 정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1개 사단은 탱크, 모터사이클, 기관총, 각종 화포 등 중급 장비를 갖춘 12,000명으로 하고, 최소 상비사단 15개가 필요하다 주장했다. 특히 이 중에서 만주와 시베리아의 대평원작전에서 장갑사단 3개 및 모터화사단 3개, 국경산악지대작전에 산악사단 2개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육군과 함께 ‘입체전’을 위해 폭격기를 위시한 공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차 하나도 미국 측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침할까봐서 안 주던 시절에 최소 15개 사단을 창설하고 모든 사단에는 전차와 포병을 배치하며, 

심지어 기갑사단, 현재의 한국으로 치면 기계화사단을 3개 사단, 모터화사단, 아마도 모터를 기반으로 한 기병사단을 3개, 심지어 산악사단도 2개 정도를 창설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공군을 강화해야한다고 했는데 특히 실제 한국은 받지 못했던 "폭격기"를 언급하였다. 


기갑사단 3개에 대해서는 시베리아, 만주를 겨냥하도록 서술하였으며 위협적인 인접국가 역시도 중국(공산당), 소련, 일본으로 상정하고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북한은 소련에 의해 "배양"되고 있는 존재로 지목하였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에 대해서 공업의 국가화, 석유의 부족, 미국의 무기공여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다고 함. 


군챈러들의 의견을 알려주시길 바란다. 


[*]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 역시도 김홍일 장군님의 인지도 등을 고려해서 안 짜르려고 했는데 미국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고 미국은 김홍일 장군이 사사건건 요구하는게 많고 항상 따지고 든다고 싫어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