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승리의 날 열병식, 서방의 언론엔 이름모를 처음 보는 전차들이 포착되었다. 기존의 T 시리즈 와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의 새로운 전차는 이질적이면서도 멋진 외관에 미스터리한 성능으로 밀리터리 동호인들과 군사 전문가들, 언론의 눈을 사로잡았고 매우 강력해진 제원표상 성능으로 제 1세계의 군대들을 긴장하게 했었다. 바로, 실체가 드러나기 전 까진 최강의 전차로 여겨진 오늘의 주인공, T-14 아르마타의 이야기다.

90년대는 소련과 러시아에 있어서 악몽의 해 였다. 많은 동구권 국가들이 WP를 탈퇴하고 자신들의 우두머리이자 압제자였던 소련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기 시작했고, 나라 안팎으로 전쟁과 각종 사고로 위태위태 했던 소련은 끝내 해체되어 제 2세계는 뇌사 상태에 빠졌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의 대규모 실정으로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수준이 나락까지 떨어져 국민들은 엄청난 혼란 속에 하루아침에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까지 잃고 노숙자로 전락해야 했다.

그리고 군대와 방산 업계도 90-00년대는 악몽이긴 마찬가지였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끼고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함께 일취월장하던 무기 기술과 군대는 냉전이 막을 내리자 마자 돈만 많이 먹는 하마 취급을 받으며 애물딴지 신세가 되어버렸고, 실제로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아예 전투기 분야를 록히드 마틴에 매각할 정도였다. 물론 제 1세계가 이 정도니, 경제적으로 훨씬 궁핍했던 러시아가 어땠을 지는 뻔했다. 실제로도 울리야놉스크급, Yak-141 같은 많은 첨단 무기의 개발이 좌초되었고 전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에 옴스크트란스마시사가 개발한 쵸르늬 오룔과 T-95라는 명칭 까지 부여 받은 우랄바곤자보드의 Object 195가 있었지만 쵸르늬 오룔은 애초에 선택 조차 못받아 단명했고 T-95는 나온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다 결국 2011년 계획 취소가 확정 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굳이 있는 전차들을 다 대체할 생각이었을까?

1991년 발발한 걸프 전쟁에서, 소련은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조금 하자가 있어도 물량으로 커버하면 된다" 라는 교리로 만들어진 무기의 한계를 두 눈 뜨고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강력한 전차라며 제 1세계가 두려워 했던 T-72는 날으는 사신 AH-64A 아파치, 걸프만의 학살자 M-1A1 에이브람스 앞에서 추풍낙엽 처럼 쓸려 나가며 전 세계 앞에서 글자 그대로 포탑 사출 쇼를 벌여주며 T-72에 대한 인식은 전투력 측정기 수준 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게 주어진 숙제는 엉망인 경제를 수습하고 물량이 붕괴해 버린 상황 속에서 기존의 물량전 위주 교리를 뜯어 고쳐 서방식 소수 정예 교리로 새롭게 단장하고 무기 하나하나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에 소련 시절 부터 MBT를 양산해 온 유서 깊은 전차 제조사 우랄바곤자보드는 돈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은 T-72를 기반으로 한 개량형인 T-90 시리즈에 이어 T-72도 극한 까지 뜯어 고친 T-72B3 까지 만들어 봤다. T-72B3는 반응장갑을 포탑 전면에 쐐기형으로 붙여서 무게의 큰 증가 없이 방어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끌어 올리려 시도했고, T-90은 아예 용접 포탑을 새로 만들어 달아 방어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다. 냉전 이후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NATO의 협력자 지위 까지 올라온 덕에 열상도 프랑스제를 장착하고 서방제 정밀기기로 제작해 더욱 높아진 주포와 탄약의 정밀도 덕에 명중율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많이 모자랐다. 그렇게 뜯어 고쳐 보니, 기존 전차들의 차체는 너무 작아 확장성의 한계가 컷고 승무원의 거주성과 생존성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존 소련제 전차에서 지적된 "공간이 부족해 아무데나 뒹구는 예비 탄약이 메탈제트에 뚫려 유폭되어 격파" 당하는 문제와 승무원의 "피로 누적으로 인한 전투력 저하"를 해결하긴 힘들었다.

결국 러시아는 이제까지 신경을 끄고 있던 완전히 새로운 "차세대 전차"를 개발하는 것 외에 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다시 팔을 걷어 붙이고 개발하며 2013년 컨셉 모형이 공개된 이후, 2015년 열병식에서 새로운 전차인 T-14 아르마타의 시제품을 공개하며 러시아의 차세대 전차 사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머리 부터 발 끝까지 완전히 새로운 전차였던 아르마타는 기존 동구권 전차에 비하면 천지개벽급의 변화가 있었다. 차체는 로드휠이 7개로 늘면서 더 길고 넓어졌고, 그 덕에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 승무원의 거주성을 개선하고 장갑재를 설치할 공간 또한 늘어나 기본 세라믹 복합 장갑 방어력만 해도 CE 1000mm 이상, KE 800mm 이상 이라는 준수한 방어력을 지니게 되었고 추후 방어력 개선의 여지도 생겼다. 물론 반응 장갑 또한 기존의 콘탁트-5나 렐릭트 보다 진일보한 말라히트 반응장갑이 장착 되었고 공간을 두고 쐐기형으로 장착 되어 기존의 장갑재 위에 바로 붙이던 옛 방식 보다 확실히 뛰어난 방어력을 갖게 되었다. 더 나아가 승무원 3명을 차체 전방에 1열 횡대 형으로 배치하고 두꺼운 티타늄 격벽으로 승무원이 타는 전투실과 탄약고를 분리해 승무원의 생존성이 대폭 향상 되었다.

기존의 전차들 보다 커진 무인 포탑 아래엔 기존 T-72/90의 케로젤과 T-64/80의 코르지나 방식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원통형 자동장전 장치가 부착되어 빠른 장전 속도를 지속적으로 발휘 가능하며 추후 152mm 업건도 가능해졌다. 포신 또한 새로 만들어 서방제 최신형 120mm 44/55 구경장 주포에 준하는 정밀도를 갖게 되었고 포구 초속도 날탄 기준 최대 2km/s 이상으로 향상 되었다. 기존 프랑스제 열상 장치 보다 발전한 자국산 포티크 열상을 장착해 포탄의 명중율도 높아졌다. 물론 53t의 무게 제한으로 포탑의 방어력은 포기했지만, 소프트킬과 하드킬에 4면 AESA (추정) 레이다 까지 모두 갖춘 아프가닛 APS 시스템이 수평 방향은 물론 상부 까지 커버하기 때문에 (단순히 대전차 미사일이나 대전차 로켓탄만 상대한다 가정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거기에 탄약도 새로워졌다. 125mm라는 구경만 같지, 종전에 비해 세장비가 늘어 길이만 900mm에 달하고 무게는 10kg이나 되는 스펙 덕에 RHA 800~900mm 이상 가는 관통력으로 왠만한 50톤대 초반의 서방제 3~3.5 세대 전차들을 정면에서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신형 날탄 3BM69/70 Vacuum-I/II (각각 DU/텅스텐 탄이다.)를 사용하며 새로운 포 발사형 대전차 미사일 3UBK21 스프린터와 3UBK25 소콜-V로 12km 까지 지상 목표는 물론 공격헬기와도 제한적으로 교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술 더 떠서, 러시아군 전차들 중 최초로 오토매틱 트랜스 미션과 1500마력 엔진을 장착해 서방제 전차와 동등한 기동성을 확보해 전간기 이래로 80년 넘게 피벗 턴도 못하는 오리 궁뎅이(본래 나치 독일에서 부르던 T-34의 별명, 제자리 회전을 하지 못해 선회 반경이 크고 방향 전환이 굼떴다.) 라는 오명도 내 던졌다. 조종성의 편의도 더욱 향상되었을 뿐더러, 선회 반경을 대폭 줄여 고질적인 문제였던 시가전 대응 능력도 향상되었다. 그 덕에 러시아군은 이 발전 된 차체의 확장성을 이용해 중 IFV T-15 BMP, 2S35 깔리치야 차기 자주포, T-16 구난 전차 같은 새로운 기갑 차량들을 위한 공용 차대로 사용해 잘게 쪼개져 있던 차량 계열을 통합해 군수 체계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이제 러시아는 옛날의 소련식 교리를 집어 던지고 옛날의 악몽을 떨쳐내어 다시 군사 강국으로써의 영광을 되찾는 일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제대로 생산 되었다면 말이다.

여기서 러시아가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 진짜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막상 아는 대로 들은 대로 있는 대로 좋은 건 다 쓸어 담다 보니 기존에 알던 전차들과 너무나 달라졌다. 아무리 러시아가 고유가로 인한 혜택을 바탕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소련 해체의 충격에서 회복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경제력과 제조업 역량으론 새로운 규격의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생산 라인 변경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2020년 까지 2300대를 생산해 배치하겠다는 말은 그저 근자감일 뿐이었고, 32대 뽑을 예정이었던 초도 양산분은 커녕 10대의 시제 차량이 전부였다. 심지어 러시아의 부총리 조차도 "비싼 아르마타는 생산을 중지하고 가성비도 좋은 기존 T-72의 개량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는 등 양산 까지 무수한 진통과 논란이 되어 왔다. 그렇게 간신히 소수나마 양산 계획이 정해지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아르마타의 양산이 지지부진한 진짜 이유가 밝혀져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했는데, 바로 러시아의 극심한 부정부패였다. 방산비리 하면 다들 저질 물자를 납품하는 것 정도만 생각하지만, 러시아는 그것을 넘어 아예 납품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T-14의 제작사인 우랄바곤자보드가 T-14 생산 라인 설립을 위해 할당된 거액의 예산을 모조리 횡령해 양산형을 제작할 공장 하나 지어지지 않았고 러시아 측은 이것을 프로토타입이 제작된 지 약 8년이나 지난 2022년이나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T-14는 있는 T-90M의 생산 라인을 개수해서 뽑아야 할 판이 되어 버렸는데, 당연하지만 제재로 어려운 와중에 생산 라인 가짓수를 늘려가며 새로운 전차를 뽑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를 증명하듯 2024년이 되도록 단 한대의 아르마타 양산형도 등장하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생산에 성공한다 해도 마치 2차 대전기때 나치 독일이 전차의 다품종화를 추구했던 뻘짓과 마찬가지로 전차의 생산 라인과 속도만 느리고 복잡하게 만들며 현재 전장에서 주력으로 쓰이고 있는 전차중 하나인 T-90M의 생산 대수에 악영향만 미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 명백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르마타의 존재 의의 그 자체인 고성능을 위해 기술 자립을 도외시하고 무늬만 자국산 장비일 뿐인 서방제 부품을 자국에서 서방제 정밀 기기를 이용해 만든 사실상의 외산 장비나 다를 바 없는 물건을 채택한 탓에 자국의 정밀 기술은 소련 시기와 비교해 거의 발전이 없다시피한 수준에 불과했고 생산 능력은 소련 붕괴 시절의 처참한 수준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밑 바닥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단점은 2014년 크림 반도 침공 이후 지속되어 오며 러우전으로 2022년에 심화 된 대러 재제로 인해 어떻게든 프로젝트는 살려서 이끌어가려는 러시아측의 노력에도 더 이상 아르마타의 양산은 물론 유지 보수 까지도 버거운 지경에 이르게 되어 야심찬 신형 전차 개발 사업은 그렇게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고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는 신형 전차가 부족해 냉전기에나 굴리던 구닥다리 전차들 까지 끌어모아다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아르마타는 부패의 끝을 자랑하는 사회와 더불어 무능한 윗선들의 한계로 "고대의 힘"이라는 그 이름처럼 막강한 위력을 단 한번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 전설속의 환상종 같은 존재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러시아는 자신들의 문제점을 똑바로 직시하고 해결하지 못했(않았)으면서도 사실상 서방의 도움으로 일어 선 "강해"보이는" 러시아" 라는 허상에 갇혀 살면서 주변국과 서방에 쓸데 없을 만큼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오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헛된 욕망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자신보다 약한 우크라이나와 군축으로 해이해 졌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NATO의 지원으로 글자 그대로 혼쭐이 나며 총체적 난국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러시아군을 변혁 시키려는 노력의 실상은 푸틴 자신의 절대 권력을 떠 받드는 측근들인 올리가르히와 실로비키들의 이권 사수와 부정부패에 직결된, 애초부터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었던 것이고 이는 현재 동원병 훈련소나 러시아 남부에서 프로파간다로 굴러다니고 있는 아르마타 하나 외에도 수많은 실패한 신무기 계획으로 증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