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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은 몇십년이 계속되었고, 양 측 모두 지친 상태이다.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해 나라의 재정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지막 최후를 준비하기 위해 13억이라는 엄청난 인구를 군대화시켜 전쟁을 준비했다.


그들은 너죽고 나죽자라는 심보로 전쟁을 일으켰고,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를 미국에게 날렸다.

이 선전포고가 바로 세계대전의 시작이자, 인류 멸망의 시초였다.

미중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끌어들여 함께 연합해 유럽을 공격하였다.

철저히 중립을 지키려던 유엔은 이 공격으로 인해 미국 편에 서게 되었지만,

이미 터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 대부분이 점령된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북유럽의 극좌파들이 중국군의 편에 서고, 유럽은 위기에 처했다.


한편 한국과 일본은 최전방에 서서 동남아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고 있었다.

이곳이 뚫리면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 판단했던 미국은 유럽에 보내려던 지원을 동아시아로 보냈다.

하지만, 이 판단은 큰 실수였다.


아시아를 빨갛게 물들인 중국은 아프리카를 쉽게 점령하고, 에티오피아 부근만이 중국군의 공격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점령되지 않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의 서유럽 국가들의 동맹을 맺었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밀고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군사력은 전쟁을 준비해왔던 중국과는 달랐다.

미국은 아직까지도 동아시아에게만 지원하고, 유럽은 큰 위기에 놓이게 된다. 


유럽은 점점 공산화되어가고 있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점점 중공군에게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그들을 조여오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미국은 동아시아에 보내던 지원의 70%를 유럽으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스위스의 취리히를 기점으로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미국의 신무기 개발로 인하여 유럽 대륙에서 우세해진 자본주의 진영은 이 때다 하며 동쪽으로 밀고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마지막인 에티오피아가 무너지며 아프리카는 완전히 공산화되었고, 또 어떤 위험이 유럽에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동아시아가 무너졌다.

군사력이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한 중국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일본의 자위대와 한국의 군대는 미국의 지원에 살고 죽는 처지였다.

그런데 지원의 70%가 유럽에게 돌아가버리고, 동남아시아와 중국, 북한의 협공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은 무너지고 만다.

이제, 중국은 러시아와 동남아를 등에 업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방어선이 뚫렸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은 서둘러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들과 협정을 맺고 중국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미국에 협조하기로 했던 쿠바가 북유럽의 지원을 받아 미국을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중국의 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방어선이 뚫리고 난 뒤, 쿠바의 기습 공격으로 미국은 꽤 큰 타격을 입었지만, 쉽게 아메리카 지역의 공산화를 막았다.

게다가 중국의 공격만을 막은 채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인도가 자본주의 진영에 뛰어들며 사태는 점점 미국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럽 대륙에 문제가 생겼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판을 뒤집은 것이다.


북쪽엔 북유럽, 동쪽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남쪽엔 아프리카.

삼면으로 공격을 받던 유럽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영국을 끝으로 인도를 뺀 유라시아는 공산주의로 빨갛게 물들여졌다.

설상가상으로 동남아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말려든 호주가 결국 무너지며 전쟁은 유라시아 vs. 아메리카로 진행되었다.


결국 핵이 터졌다.

유라시아에서 혼자 힘겨운 싸움을 하던 인도가 마지막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 꺼내 든 핵무기였다.

인도의 핵무기가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 중국과 러시아 일부, 동남아와 호주 일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고.

중국은 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중국과 공산주의 세력들이 주춤한 이때가 미국은 공격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중국 내에서 핵폭탄으로 인한 반란이 일어나 혼란스러웠고 말이다.

미국은 길게 끌지 말고 딱 서유럽과 동아시아까지만 가자.라는 마인드로 작전을 짰고.

멕시코와 브라질과 함께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제압당했던 쿠바가 마지막 힘을 짜내며 일은 틀어졌고.

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쿠바의 기습 공격으로 군사가 분산되어버린 미국은 동아시아의 근처도 가지 못한 채

미국에게 전쟁 전 미리 항복한 아이슬란드와 힘을 합쳐 겨우 영국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가만하 두고 볼 중국-러시아-동남아가 아니었으니...

반란으로 내부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억지로 군사를 유럽으로 끌고 온 중국은

아군의 무려 7%를 탈영병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대로 탈영병의 숫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

인해전술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중국은 지금까지 무기공장에서 일을 하던 늙은이들과 부녀자들까지 싹싹 긁어 모아 빈 7%를 채웠다.

그들은 이미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는 미국을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기어이 쿠바를 훨씬 뛰어넘는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날뛰려 하기 시작했다.

바로

베네수엘라.

그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미국을 따르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밀항을 통해 

옐로 케이크 수입.



베네수엘라의 핵무기 개발 시도 24개월 경과.


미국의 아메리카 본토 전력: 전체의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