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네토라레는 순애와 같을까? 두 상반된 개념은 도저히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럴 것이 네토라레는 사랑하는 사람이 '배반'을 하고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애에게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 중 금기를 네토라레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실행한다. 하지만 원효대사가 구정물을 깨끗한 물처럼 마신 것과 같이 그 본질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변화되기 마련이다. 그런 배경에서 RJ346888는 순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RJ346888는 이미 11개의 작품이 나왔을 정도로 인기 있는 시리즈이다. 대체적인 이야기를 풀자면 사야카란 여자친구가 있는 주인공이 불량학생인 레이나와 불장난을 즐기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그저 '놀이'로 밖에 보지 않았던 서로를 시리즈가 거듭할 수록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으로  변모한다. 우리가 이 시리즈를 즐기는 이유는 이들의 불장난을 체험하는 것도 있지만 서서히 쌓여가는 서로 간의 감정을 느껴보는 오묘한 기분도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은 4편에서 절정에 다다르고 우리는 이들이 합쳐질 수도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할 때 RJ346888가 등장했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원했던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지 않고 또 하나의 불장난을 보여준다. RJ346888는 레이나의 어머니와 주인공의 불장난이 그려진다. 그리고 거기서 우린 이것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주인공은 우리가 레이나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미 다른 누군가와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린 또 한 번 네토라레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주인공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이미 주인공은 자신의 '여자친구'인 사야카를 다섯작품을 통틀어 배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적극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야카를 배신해서? 아니면 사야카를 배신한 레이나를 배신해서? 어쩌면 레이나의 엄마를 배신한 레이나를 배신해서일 수도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며 우린 어떠한 걸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우린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집트 왕자>란 애니메이션을 아는가? 모세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장센과 노래로 풀어낸 멋진 애니메이션이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여기서 등장하는 신의 목소리가 즉, 성우가 모세를 맡은 성우와 같다는 점이었다. 평론가들은 이 점을 아주 높이 산다. 왜냐하면 신의 목소리와 모세의 목소리를 같게 함으로써 어쩌면 이 둘의 존재가 같다는 걸 혹은 신이란 존재가 자신의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고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유념하면서 RJ346888의 성우를 살펴보자. 우리는 거기서 레이나의 성우와 레이나 엄마의 성우가 같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이 둘은 어쩌면 비슷한 존재 아니, 같은 존재라는 걸 이 작품은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비슷한 경우를 이 시리즈는 후속작에서 보여주고 있다.


 후속작인 RJ429571을 보면 우리는 가장 고결할 줄 알았던 사야카가 남자친구가 아닌 남자에게 안겨서 타락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볼 수 있다. 또 사야카는 RJ429571의 주인공인 선배에게 안기면서 그 선배의 명령대로 다른 남자들과 난교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장 상반된 것으로 보였던 레이나와 사야카는 작품이 진행되면서 서로가 향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다. 레이나는 주인공과 관계를 맺은 이후로 더 이상 난잡했던 서클에 출입하지 않았으며 사야카는 선배와의 관계에 빠지면서 점차 그 서클에 몸을 담게 되고 있다. 즉 레이나는 사야카가, 사야카는 레이나로 점점 변해가며 서로 같아지는 모습을 우리는 이 시리즈, 누키후레란 시리즈를 통해서 보고 있는 거다. 


 누키후레에서 우리는 네토라레가 순애로 변하는 모습을 혹은 순애가 네토라레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변한 걸까? 어쩌면 두 상반된 개념은 변한 게 아니고 그대로 있었을 뿐이고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변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 오래 전 구정물을 깨끗한 물처럼 달게 마셨던 원효대사가 한 말을 생각해보자.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