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녀성에 대한 집착의 가장 밑바닥에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수컷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포유류의 번식 메커니즘에서 암컷은 임신과 출산을 직접 몸으로 겪기 때문에,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수컷은 생물학적으로 자신이 제공한 정자가 실제로 수정에 성공하여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핏줄인지 절대 육안으로나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것은 생명체의 가장 강력한 목적입니다.
만약 남성이 다른 남성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착각하여 막대한 시간, 식량, 보호, 에너지를 투자하게 된다면,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실패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부성 불확실성의 공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고대의 유일한 안전장치는 바로 ‘어떤 남성과도 성적 접촉을 한 적이 없는 여성을 독점하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처녀인 여성과 결합하여 낳은 첫 아이는 무조건 자신의 유전자라는 완벽한 보증 수표였기 때문입니다.
즉, 처녀성에 대한 남성의 선호는 원초적 본능 중 하나입니다.
진화적 본능에서 출발한 처녀성 집착은 인류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전환하며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을 발명하면서 제도화되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부(富)의 핵심은 토지와 가축이었고, 이는 대를 이어 세습되어야만 했습니다.
권력과 부를 쥔 가부장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신이 평생 축적한 재산이 적법한 핏줄(자신의 친자식)에게만 상속되도록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신체와 생식 능력을 철저히 물화(物化)하고 재산으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법전(함무라비 법전, 모세의 율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여성의 처녀성은 아버지나 남편이 소유한 경제적 자산의 훼손 여부로 평가되었습니다.
고대 유대 사회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결혼은 본질적으로 신랑 측이 신부의 아버지에게 신부값을 지불하고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받는 상업적 거래표였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은 한 번도 개봉되지 않은 완벽한 상품, 즉 처녀였습니다.
혼전 성관계를 통해 처녀성을 잃은 여성은 가치가 하락한 흠집 난 상품으로 간주되어 아버지가 제값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만약 결혼 후 신부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신랑은 자신이 사기 거래를 당했다며 환불을 요구하거나, 그 여성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훼손된 명예를 보상받았습니다.
이처럼 처녀가 훌륭하다는 관념은 본질적으로 '포장이 뜯기지 않은 새 상품이 중고품보다 비싸다'는 경제적 논리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배층은 "너의 자궁은 나의 재산이므로 다른 남자의 접근을 불허한다"는 진실을 날것으로 말하는 대신, 그것을 '도덕적 타락', '가문의 수치',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윤리적-종교적 언어로 포장했습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처녀성을 목숨처럼 지키는 것이 곧 훌륭한 신앙이자 도덕이라고 세뇌시킴으로써, 가부장제는 최소한의 감시 비용으로 여성의 생식 통제권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마리아 처녀설이 확립되던 시기는 헬레니즘 철학과 로마 문화가 지배하던 고대 지중해 세계였습니다.
이 시기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강력한 사조는 플라톤주의와 영육이원론이었습니다.
이 이원론적 세계관에서는 이데아, 영혼, 정신, 빛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은 선하고 거룩하며 영원한 반면, 육체, 물질, 피, 땀, 성욕과 같은 물리적인 현상은 더럽고 타락했으며 유한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성행위는 이원론자들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행위였습니다.
성행위는 체액의 교환, 가쁜 숨몰아쉬기, 통제할 수 없는 육체적 경련, 그리고 이성(로고스)이 마비되고 동물적인 본능만이 지배하는, 인간이 가장 포유류라는 짐승의 상태에 가까워지는 찰나로 여겨졌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를 우주를 창조한 완벽한 신으로 격상시켜야 하는 신학적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인지 부조화가 발생합니다.
완벽하고 티 없이 맑은 로고스인 신이, 감히 인간 남녀가 발가벗고 뒤엉켜 동물적인 욕정에 휩싸이는 그 축축하고 '천박한' 성행위의 결과물로 이 땅에 잉태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헬레니즘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어떻게 거룩한 신이 정액과 피와 양수라는 더러운 물질적 오물을 뒤집어쓰고 평범하게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철학적 수치심이 초기 교부들을 짓눌렀을지도 모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발명해 낸 궁극의 서사적 탈출구가 바로 ‘동정녀 잉태’일 것입니다.
예수가 육체적 쾌락과 남녀의 성적 결합이라는 '오염된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 채, 오직 성령이라는 영적이고 비물질적인 힘에 의해 진공 상태와 같은 처녀의 자궁 속에 신비롭게 안착했다는 서사를 구축한 것입니다.
즉, 제 추측 시나리오에서 마리아의 처녀성은 그녀 개인의 도덕성이 뛰어났음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의 탄생 과정에서 '인간의 동물적인 성행위'라는 혐오스러운 요소를 표백하여 도려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신학적 방부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처녀성 우상화는 4세기의 위대한 교부이자 기독교 신학의 기틀을 완성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 교리로 굳어집니다.
젊은 시절 극심한 성적 방황과 성욕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렸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개인적인 심리적 트라우마를 보편적인 인류의 신학으로 투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가 인류 대대로 유전된다고 주장하며, 그 원죄가 전달되는 생물학적 매개체를 바로 성행위 시 수반되는 색욕(Concupiscence)으로 규정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부부가 아무리 합법적인 결혼 테두리 안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의무적으로 성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육체적 쾌락과 정욕의 폭발 때문에 정자와 난자에는 원죄라는 영적 바이러스가 감염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적 체계 안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인 예수는 절대 원죄를 물려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예수가 원죄 없이 태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설정한 죄의 감염 경로인 정욕이 개입된 남녀의 성적 결합을 완전히 우회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남성의 정자가 개입하지 않고 오직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서사가 있어야만, '성욕을 통해 전달되는 원죄의 사슬을 끊었다'는 신학적 알리바이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훗날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조차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성모무염시태 교리를 추가하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도 평생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평생 동정설까지 창조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