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철마가 요란한 경적과 함께 기쁘다는 듯 정시의 도착을 알린다.

나는 제멋대로 커튼사이의 비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단잠을 깨운 차가운 햇살에 눈을 찡그렸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들으며 도착했구나-라고 하품을 했다. 서리낀 창문 너머의 풍경을 본 나는 앞으로의 행선지에 대해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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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가는 시골의 료칸을 운영하고 있다. 시골이라곤 하지만 하늘에서 빛을 훔쳐온 듯한 화사한 봄의 산, 냇물의 쪽빛을 탐하는 푸른 산, 장마 끝의 무지개를 걸친 저무는 오색 빛의 가을 산과 끝내 하얀 털실을 몸에 두르고 겨울을 나는 산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마음속 한 구석의 허연 두근거림과 단아함을 느껴보며 야생동물의 귀소본능인듯 방학이면  돌아오는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에도가 도쿄로 개명된지는 거의 수십년이 흘렀다고 한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모든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아마 시골의 료칸의 아들이 유유히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여유의 큰 원인이 되어주었으리라.


 그러나 이번의 귀향은 일전의 한가한 무의도식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일이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투병은 도쿄에서의 지루한 학업에서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가볍게 얘기할 정도로, 어머니의 질환은 심한것이 아니였다. 


연기로 인해 검정이 묻어나있는 정거장의 천장을 지나쳐, 역을 한번 돌아본다. 노인 역무원은 목도리에 털모자를 쓰고 허연 서리가 낀 역무청 창 안에서 졸고 있었다. 상당히 추워졌음을 실감해보며 나는 조용히 코트의 옷깃을 여미며 당초의 목적지를 향하였다.


겨울을 나는 료칸은, 담장 너머로 내부의 욕탕용 물을 내보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볼 수 있었다. 추운 바람을 어느정도 막아주고, 일종의 호객요소도 되는 이 독특한 모습은 마치 구름을 띄워내는 듯하여, 도시의 잿빛으로 피어오르는 디젤기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인상의 순수함이었다. 


차분히 눈앞의것들을 즐기고싶었지만 요양중이신 어머니를 대신해 장부정리부터 시설의 점검까지 날 보채는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나는 우선

나의 방에 짐을 풀기로 하였다.


주인의 방은 1층의 입구에서 가까운자리에서, 손님을 접객하기 용이하게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방이 복도의 한복판에 있었던것이 내가 낯선 뒷모습을 보게된 계기라 할수있다.


"꺅!"


뒤쪽에서 어깨를 가볍게 치자, 그 소녀는 무안하리만치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가벼운 안부와 신변에 대한 나의 질문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태도로 질문으로 답변하였다.


"아.. 그.. 혹시 돌아오신 도련님이신가요..?"


불안을 안은 목소리는 그럼에도 맑고 깨끗하여, 나는 눈덮힌 산수의 감상이 영향을 미친것인가 하고 잠시 의문이 들었다.


몇가지 문답이 오가고 나는 그녀는 어머니가 근래에 거두신 잡일꾼으로, 귀가 잘 들리지않으니 대답을 잘 못해도 이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왜 그렇게까지 당황하며 뒤돌아본건지 알게되며, 나는 그렇게 시오리와 안면을 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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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손님을 맞을 때를 제외하면 이곳은 하릴없다. 장부정리가 끝나면 주변의 거리를 걷는것이 요 사이의 습관이 되어가고있었다.


시오리는 눈에 띄는듯 안 띄는듯, 낙엽과 눈을 쓸어내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시선을 돌리면 어느새 보인다.


그런 어딘지 초상화의 배경같은 모습이 되려 신경쓰여 가끔 말을 걸면, 잘 듣지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손을 흔들자 그녀는 빗자루질을 멈추고 마지못해 인사해준다.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하려는 순간을 놓치지않고, 나는 준비해둔 수첩과 펜을 꺼내 글을 적어내밀었다.


"아.. 필담인가요?"

"네 읽을 수 있어요. 어려운건 안되겠지만"


나는 끄덕이며 아침식사는 했는지를 물어보며 한사람의 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잡담을 하였다.


의외로 그녀는 말하는것 자체를 꺼려하진 않는듯 했다. 어찌보면 그런 그녀가 귀 때문에 외톨이가 되어있는것이 좀 더 슬프게 느껴졌다.


"하하..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분이랑은 이런 대화, 해볼기회가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글을 쓸줄알아서'


"네.. 이전에 살던곳에서 간략하게나마 배워서요"


'혹시 필요한게 있거나하면 내게 말해주렴 이곳은 날씨가 많이 추우니 얇게 입으면 병이 날거야'


"아..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실건.."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옷깃 너머로 붉게 상기된 목덜미가 보인다. 차가울수록 붉게 타오르는 그 목덜미는 설경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흘러들었다. 나는 조용히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병이 나면 다른사람들이 힘들어지잖니 몸을 잘 간수해'


눈을 사근사근 깜빡이며 조용히 시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한밤중 가계 정리를 하던 중 때아닌 밤공기속의 음성에 내가 장지문을 밀자 시오리는 대뜸 내게 말하였다.


"저.. 도련님 매번 밤늦게까지 일어나계시길래.."

"혹여 시장하실까봐 밤참을 만들어봤는데요.."

"아.. 그.. 생각없으시면 안드셔도.."


꼼질거리는 손가락의 물기와 앝게 풍기는 산채의 향기는 그녀가 한밤중 들인 노고를 엿보여주었다. 여전히 시오리는 얼굴을 짙은 그늘로 물들인채, 그러면서도 귀 끝까지 새빨갛게되어 신기하게도 눈토끼같아보였다.


'고마워'


갱지를 조금 찢어 간단히 답변을하자 그녀는 보일듯말듯하게 미소지으며 두손으로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정갈하게 보여 나도 웃음기가 옮겨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뚜껑을 열자 고소한 내음을 머금은 김이 훅하고 올라와 손바닥쪽이 순간 촉촉해졌다. 코 끝이 찡해진건 이 시간에 밥을 새로지은 그녀의 정성에 감동해서일까 아니면 연어조림에 깔린 깻잎조림의 상큼한 양조간장의 향 때문이였을까


깨와 후라카케가 뿌려진 밥은 그 열기가 생동감이 느껴졌지만, 새하얀 색은 마치 눈송이처럼 보였다. 한밤의 간단한 식단은 속편히 먹을 산채와 간단한 조림, 그러면서도 연어의 윤기는 기름기가 흘러 조화로웠다.


그녀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아 마치 대단한 의식인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이 기묘한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기쁜듯 미소지으며 전부먹어주셨네요..! 라고 중얼거림에 가깝게 나에게 말하였다.


'솜씨가 좋네'

'요리 배운적 있는거야?'


나의 간단함 감상에 그녀는 그저 전에살던곳에서 했었다고 대답하였다.


"저기.."


고요도 잠시, 그녀는 내게 말하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또 밤참 만들어와도 될까요..?"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운 태도인것이 신기하였지만 나는 그녀의 솜씨에 내심 놀랐기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그녀의 미소는 안도와 안심, 그 모습이 마치 고히 잠든듯 평화로워 나는 그 고요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열중하게 되었다.


잠시후 꾸벅 인사를 한 시오리긴 장지문을 닫고 사라지자, 나는 군살이 붙지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서류정리를 하였다.


그 뒤로 시오리는 낮에 나와 마주치면 좋아하는 음식이나 시각을 물어보기도하며, 나에게 다가와주었다. 조금은 얼굴의 그늘이 볕이 들어 가을 저녘노을같은 은은함이 있어 나 또한 잘된일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복도 구석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기전까진,



겨울의 한기가 내 방에도 침범해와, 나는 고다쓰라도 가져올 생각으로 창고를 찾고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세 사람이 있었다.


시오리와 젊은 하녀 두사람이었다.


시오리가 다른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것은 본적 없었기에 나는 신기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귀가 잘 안들리지 읺던가.


잘들어보니 그것은 대화가 아니였다. 그리고 상당히 소리가 커 아무리 시오리라도 바로 앞에서 말하면 들을수있을만한 크기였다.


"너 요즘 새로오신 도련님 방에 자주 드나들더라?"


"남정네 꼬셔서 팔자 펴보겠다 그런건가? 니 일이나 잘하지그래?"


"으악~"


나는 일부러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 두명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가, 그곳엔 조용히 바닥을 바라보는 시오리가 있었다.


'이따가 내방으로 와주겠니?'


수첩의 글씨를 잠시 쳐다본다. 난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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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됐으니 숨기지못하겠죠.."

"전부 말씀드릴게요.."


장지문을 닫고들어온 시오리는 채념한듯, 허옇게 질려있다. 밤중의 호롱불의 조명에 그늘져 더욱 어두워보인걸지도 모른다. 


"저는.. 어렸을적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친척집에 맡겨졌어요.."


"그곳은 친절하셔서 간단한 일과 글씨도 배울수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귀가 잘안들리게되서.. 일을 못하게되서.."


"식충이라고 여기서 나가라고..그렇게 쫓겨났어요"


"그 뒤에 거둬진 이곳에서도.. 귀가 잘안들려서 대답도 못하고.. 일도 많이 못해서.. 저를 안좋아하셔요"


"그분들 잘못은 아니에요.. 일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나쁜거니까.."


"그래도 조용히 혼자 참아내면된다.. 마음을 닫고 할 수있는 일을 하면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도련님이 오시고.."


시오리는 울렁거리는듯한 목소리를 뱉어내었다. 마치 필연을 받아들이려는듯한 모습은 애처롭게도 너무나 명백히 절망과 떨림이 엿보여 의연하기보단 안쓰러웠다.


"처음으로.. 분에 넘치게 많은걸 받았어요.."

"물건같은것만이 아니라.. 저를 신경써주고 언제든 말걸어주고"


황홀에 젖은듯 어딘가를 바라보는듯한 느낌의, 기억을 음미하는 시오리는 그때를 생각할때만은 걱정없이 행복해보였다.


"어떻게하면 도련님과 더 만날수있을까.. 아픈척이라도 하면 걱정해주지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것도 한두번이 아니에요.."

"하지만.."


눈을 살포시 감는 모습은, 이제는 알겠다는듯이 전부 내려놓은 듯한 탈진이였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저한테는 너무 큰 행복이였으니까요.."

"이제는 포기해야.. 아니.. 경멸하신거겠죠..?"

"진지하게 걱정해주시는데 이런생각이나하고.."

"이젠 친절하게 안해주셔도.."


"히윽!"


나는 시오리를 안아주었다. 시오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당황하며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 동정해주신건가요.. 그렇네요.. 도련님은 마음씨가 고우시니까.."


자신이 하는말이 매우 자조적이라는 사실을 시오리는 모르는것같았다. 나는 그녀를 좀더 꼬옥 끌어안았다. 살짝벌어진 옷깃 사이로 목덜미가 붉어져가는것이 보여 요염함이있었다.


"흐으.. 저기 이러시면.. 착각해버려요.."


"괜찮아"


나는 닿을지 아닐지조차 확신하지 못한채, 그녀의 빨갛게 물든 귀에 외쳤다. 외침은 속삭임이 되어 그녀의 귓볼을 맴돌았다.


"햐으.. 안되는데.. 안되는데.."

"정말.. 괜찮은건가요..?"

'햐읍-'


적막한 방, 마치 화면속 이국의 땅처럼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밤의 장막 속에서 눈만이 세상을 그려낸다. 사그러드는듯한 입술이 포개지는 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워, 따스함이 감돈다.


"아.. 이게 입맞춤.."

"처음이에요.."

"..이거..좀더.."


시오리는 어딘지 취한것처럼 흐트러져, 눈을 꾹 감은채 기뻐보인다기 보단 마치 꿈꾸는듯 몽롱하게 입술의 감촉을 느끼고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지 야릇하게 보여, 순간 스스럼없이 사랑스러워져버린다.


"햐으!"

"도..됴련님.. 혀갸.."


천천히 밀려 쓰러지는 시오리는 날것의 설렘에 잔잔한 강물의 물살을 느끼듯, 부드럽게 나를 받아들여줬다.

굳어있는 그녀의 혀를 녹이려는듯 정성스레 휘감아 씻겨준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허리를 작게 움찔거렸고, 서리낀 추위를 물리치듯 목덜미 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나의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아.. 그러케 움켜쥐시며언 옷이 흐트러뎌효.."

"보고시프신건가요..?"

"..이러케까지 저얼 바라바쥰 사라믄 처음이에요오..하웁.. 츕"


옷속으로 손을 넣자 살결이 산수에 차게 식혀진 시원한 느낌에 손끝이 짜릿하다. 봉긋한 가슴은 쇄골 위의 붉어진 곳과 달리 뽀얀 백색이지만 격하게 뛰어오르는 고동은 유달리 붉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으.. 갼지러워요오.. 간디려운뎨.. 아♡"


혀를 섞어가며 그 생명력을 탐하듯, 고동치는 가슴을 부드럽게 쥐고 간질이듯 손끝으로 문지른다. 달아오른 시오리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음란한 소리가 입을 통해 내 머릿속을 울린다.


숨을 고르려 입을 떼면,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에 더 애달파질 뿐이다. 나는 가슴끝을 입으로 물고 핥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믿음을 주고싶었던걸까? 내 품안에서 작게 흔들리는 이 소녀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하기위한 방법을 난 달리 알지 못했다. 이젠 단지 상처받지 않아주기만을 기도하며, 난 하염없이 시오리의 몸을 탐했다.


"아으으♡..♡"

"꺄윽!♡"

"헤으윽..♡"


연한 분홍의 유두가 매화빛 농밀한 적색으로 물들어감에따라 딱딱하게 세워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나는 찬찬히 그녀의 허리춤을 따라 손가락을 놀려가며, 허벅지 사이를 비집는다.


"아.. 저기.. 도련님.. 거기는..조금.."


미묘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물끄럼히 쳐다보고만다. 


"아.. 싫다는게 아니라.. 저..거긴 혼자서도 만져본적이 거의 없어서.. 그리고.."

"왠지 지금 젖어있어서 이상해서.."


이말에 나는 들판의 꽃을 따듯, 어쩌면 나도 이 파릇파릇한 소녀를 제멋대로 속여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기억만 남아 이젠 그늘을 벗어 주길 바라며 난 그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독이어 ㄱㅐ서기 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