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회색이었다.

  소복히 쌓인 눈 위에 사박, 사박. 새겨지는 발자국.
몇 시간 후면 다시 사라질 자취를 남기며 현관에 도착한다.
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문을 연다.

사악. 사악. 찰박. 사악. 사악.

"네리 씨, 오셨어요?"

한 여인이 칼을 갈고 있었다. 거의 막바지인 듯, 물로 헹궈낸 칼날을 닦으며 이쪽을 바라본다.

닳지도 않는 칼을. 목에서 치솟는 말을 애써 삼킨다.

"아, 별 거 아니에요. 이따가 쓸 일이 생길 것 같아서. 헤헤."

무심코 시선이 머물렀던가. 코유키는 실없이 웃으며 이쪽을 바라본다.

봄을 품은 눈동자로.

한 순간의 짧은 만남. 그리고 약속.
그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봄을 가두었다. 겨울을 이어갔다.
그가 다시 길을 잃도록. 그래서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도록.
다시 반복할 수 있게.

  "아, 맞다. 이따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주실래요?"

칼날에 동백기름을 바르며 말을 건다.

"이번에는 꼭 제가 모시고 싶어서요."

네리는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삐걱이는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적막. 그 적막 속에서.

  머리에 눈을 쌓아놓고 헤매는 당신을 느낀다. 어슴푸레한 불빛을 보고서 발걸음이 바빠지는 모습.
몸을 누일 장소를 찾아 반가운 걸까. 아니면 그녀를 만날 생각에 들뜬 걸까.

사박, 사박 발걸음 소리가 다가와 문 앞에서 멈춘다.

코유키는.

너무 오래 기다려서. 이제는 기억도 흐릿해서. 원망도 그리움도 바래버렸지만. 그래도. 그래도 반가워서. 물기 섞인 목소리로.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당신이 들어온다.

"오랜만이에요."


* * * * *

술 한잔 했습니다...
코유키 2편 내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