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야, 드디어 왔다.
더워.. 죽을 거야.. 오빠, 잠깐 여기서 좀 쉬자? 익어 버릴 거 같아. 휴, 시원해.
둘 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우리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오늘 정말 덥지? 어찌 보면 귀신이라 다행인가. 좋은 거려나? 둘 모두 수분 보충 잘 해야돼? 사람은 방심하면 금방 죽어버리니까. 정말로.
조심할게, 오빠 나 물 줘. 고마워. 자 그럼, 다시 가볼까! 영차, 휴식 끝! 믿는다고 오빠? 나오는 컴퓨터 잘 모르니까 부탁할게?
오빠 부탁드려요. 이 마을에서는 정말 당신만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 저 창고 안이에요. 자물쇠 같은 건 없으니까 바로 열릴거예요.
아 열렸다, 실례합니다. 우와 뜨거워. 먼지도 엄청 쌓여있고, 문은 열어두는 게 좋겠다. 그래서, 어라? 저거 혹시 유우카 언니 사진이야?
뭐? 왜 잠깐 어째서 왜 저게 여기, 우리 집은 왜 이걸 여기에 둔 거야? 허접해, 관리가 너무 허접하잖아? 차라리 죽여줘.. 이미 죽었네. 그보다. 왜, 어째서 이 사진이야? 왜 이 코스.. 아, 맞아. 난 제대로 셀카 같은 걸 찍은 적이 없었던 건가.
유우카 언니? 괜찮아. 테니스 복장도 어울리고 귀여워!
응, 고마워, 나오. 사실 그거 테니스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보지 말아줘. 아아 내 컴퓨터랑 개인 정보가 다 나오잖아? 인 권따위 없는 건가. 어? 그럼 다른 데이터라던가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무료소재 같은 게 된 건 아니겠지?
진짜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아, 저게 그 컴퓨터인가? 크다. 저 안에 하드 디스크가 있구나. 이건 분해해서 꺼내는 거야? 할 수 있어? 오.. 역시 오빠야. 그나저나 유우카 언니.
왜 그래?
하드디스크의 데이터 라는 게 이 사진 같은 게 잔뜩 들어 있는 거야?
네.. 그 말대로에요. 죄송합니다. 저런 걸 보여드리다니 뭐랄까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게 보여선 안 되는 오물 같은 그런 것들이 잔뜩 들어있다고 할까. 부끄러움 그 자체랄까...
그래도 그렇게 부끄러운 거라면 왜 이렇게 보존해 둔 거야? 바로 지워버리면 되는걸.
저, 정론. 나오는 날카롭네, 아주 잭나이프 같아. 이건 오타쿠, 나 오타쿠라고 자처해도 되는 건가? 특유의 문제 같은 거랄까. 천성이랄까. 그 아무리 조금 그런 거라도 끝끝내 남겨둬버리는.. 그런 거?
그렇구나. 잘 모르겠지만 힘들겠네. 그래도 뭐랄까, 점점 더 내용물이 궁금해진 거 같아.
왜?
그야 곧 없어질지도 모르잖아? 그전에 유우카 언니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걸?
응
그리고 그, 디스크 부숴버리면 안의 중요한 데이터들도 전부 사라지는 거잖아?
응응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조금 외로울 것 같아. 그러니까..
정말 기쁘지만, 미안,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없애버리지 않으면 끝까지 처분할 수 없어 보이고.
그렇구나.
응,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니야. 비밀로 해두고 싶은 거면 그렇게 할게. 아, 오빠 꺼냈어? 이게 하드 디스크? 생각보다 쪼그마하네.
오빠,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제 분해해서 부숴버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정말로 부숴도 괜찮아?
응, 빨리 이 세상에서 미련을 떨쳐 내 버려야지. 그나저나 코스프레.. 정말 그립다. 처음에는 캐릭터랑 같은 모자를 뒤집어쓴 것만으로 코스프레라고 하고 그랬는데. 그 후로 점점 심해져서 테니스도 안 하는데 라켓을 산다던가, 팔랑팔랑한 저지도 사고. 아, 저건 촬영회에 갔을 때 인가. 그립다. 본명도 모르는 오타쿠들이랑 엄청 떠들었었지. 에이 이거 사실 부장이죠? 너무 강해~ 같은 말로 엄청 떠들어 댔지.
그리고 그 시절에는 동인지도 그렸었지. 서툴렀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열정밖에 없어서 왜 그렇게 그 때는 남자랑 남자가 만지작대는 거에 목숨 걸었던 걸까? 복식시합의 팀을 사다리 타기로 정해서 그걸 주제로 그림을 그렸더니 부정 탄다고 미움받았었지. 바보 같아. 그래도 감상편지도 받았고, 그게 엄청 기뻐서 배경화면으로 해놓기도 했지. 그립다.
유우카 언니?
미안미안. 갑자기 생전 기억이 떠올랐어. 응, 괜찮아. 역시 냉정하게 생각하면 지워버려야해. 해주세요. 오빠.
드디어, 드디어 여름이 끝났어. 둘다 너무 고마워. 정말로 정말로 구원받았어요. 아 이거 혹시 성불하는 걸지도.
여기서 사라지는 거야?
미안해 나오, 여러모로 신경 쓰이게 해서. 고마웠어. 오빠도 그걸 부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음 생은 꼭 이세계에 전생해서 즐겁게 사실 거예요.
마지막 인사는 안 하도록 할게? 음, 응? 안 사라지네? 혹시 아직 오봉이 안 끝나서 그런가? 우와, 부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