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오후
조 지 훈
마음 후줄근히 시름에 젖는 날은
동물원으로 간다.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짐승에게라도 하소해야지.
난 너를 구경 오진 않았다
뺨을 부비며 울고 싶은 마음.
혼자서 숨어 앉아 시(詩)를 써도
읽어 줄 사람이 있어야지
쇠창살 앞을 걸어가며
정성스레 써서 모은 시집을 읽는다.
철책 안에 갇힌 것은 나였다
문득 돌아다보면
사방에서 창살 틈으로
이방(異邦)의 짐승들이 들여다본다.
<여기 나라 없는 시인이 있다>고
속삭이는 소리……
무인(無人)한 동물원의 오후 전도(顚倒)된 위치에
통곡(痛哭)과도 같은 낙조(落照)가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