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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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

 

날도 저물고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추위는 점점 더해 와.

 

그러나어느 순간 누군가를 끌어안고 있어.

 

가슴이 꽉메어 오고눈에 뜨거운 것이 핑하고 괴이고 있지

 

그리운 냄새따스함.

 

그렇지만 점차 멀어져가.

 

떠밀리듯 나는 또 혼자야.

 

알 수 없는 목소리만 내 곁에 메아리로 남았어

 

언제까지나네 곁에 있을 수는 없으니깐.’

 

그렇게 남겨지니까더 추워.

 

정말로 추워...

 

 

 

 

눈을 떠보니천장은 익숙한 밤하늘의 광경이다구름에 이지러진 초승달의 희미하고도 은은한 빛.

 

온몸이 몽둥이 찜질을 당한 듯 아팠다접힐 수 있는 모든 몸의 부위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추웠다선선한 밤공기의 살랑거리는 바람이그에게는 비 내리는 가을밤의 거센 바람처럼 느껴졌다.

 

한스는 덮고 있는 담요를 좀 더 꽉 끌어안고온기를 조금이나마 보존하려 했었다

 

그가 껴안고 있는 것이 익숙하고 낡고 캐캐묵은 담요가 아니란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게... 무슨...?”

 

 

언듯 봐도 한스같은 3류 용사가 살 만한 그런 수준의 물품이 아니다고급스럽고 촘촘하게 짜여진 양모로 짜여진 최상등급의 담요다그리고갓 세탁한 듯 은은한 향기까지도 나고 있었고.

 

한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입은 옷이 죄다 깔끔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한스는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서그의 옷을 정리하고 있는 여인의 등이 보였다

 

열병으로 인해 떨리는 몸과 흔들리는 시야의 와중에도 겨우 옆에 놓인 검을 겨눌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단련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그의 바람과는 달리 목소리는 온 힘을 다 쓴 듯 지쳐버린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누구야...? 허락도 없이 남의 거처에...”

 

 

그말을 들은 여인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몸서리쳤다.

 

그 눈

 

그 눈동자영혼 없는 듯한 텅 빈 그눈

 

그것은그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오른 팔을 왼팔로 겨우 진정시키며그는 겨우 검을 뽑았다

 

한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약간의 생각은 할 여유가 있었기에.

 

해코지를 할 거라면 이미 하고도 남았을 시간 아닌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기댔다.

 

차갑고부드러운 무언가가 그의 등을 받쳐줬으니까.

 

차갑고부드러운... 

 

대체 뭐가...?

 

 

잠시 잠들어 있어널 보니까 무서워하잖아.”

 

 

깊고 안정을 주는 낮은 여성의 목소리.

 

그것이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한스를 응시하던 의문의 여인은 그대로 실이 끊어진 인형인 것처럼 제자리에 엎어져 얼굴을 가렸다.

 

한스는 근육통으로 경직된 목을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달빛에 비친 그녀의 푸른색으로 창백한 피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내 패밀리어야살아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아까 들어올 때 쯤에 당신의 허락을 받을 수는 없었어그리고 무리하지 말아줘부탁이야당신 아프잖아그렇지춥다고 했는데 몸에 열은 나고 있으니 아마 습지성 열병인거 같은데... 모든 병이 다 그렇지만그럴 땐 푹 쉬고 영양을 섭취해야 해무슨 말인지 알겠지?”

 

 

리치다

 

그리고 구면이다.

 

한스는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심부름 임무를 맡아서 했었고의도를 알 수 없이 계속 그 임무를 맡기고 있는 저택의 말 많은 리치.

 

 

이제 한스는 놀라고 싶지도 않았다혼란과 두려움이 한계에 다다르면그렇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지려워서 시야가 흔들렸기에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듯 몸을 누였다.

 

이제와서는 될대로 되라라는 생각이었다.

 

한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겨우 말했다.

 

 

담요.,, 전부 네가 한 거지?”

 

으응... 환자한테 우선적으로는 위생적인 환경을 갖춰줘야 하니깐입고 있던 옷은 전부 밖에 빨아놨어걱정 마.”

 

그런게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신경쓰고 있지 않았지만오늘 한스는 그가 남자임을 깨달았다수치심이라는 불쾌한 방식으로.

 

낯선 사람에게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이성에게 무방비로 몸을 보인 것이다.

 

매도할 화도기력도 없었다대신 한스는 겨우 떴던 눈을 포기하듯 감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는지그게 아니면 붉게 상기된 그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는지 황급히 리코리스는 말했다

 

 

저기...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신경쓰지 않는다면 무시해줘정말로 나는 안 봤어내가 하기엔 너무... 뭐라고 해야 하지아무튼 작업 수행에 효율적이지 못 할 것 같아서당신이 아까 베려 했던 패밀리어가 옷을 대신 갈아입힌 거야나는 정말로 보지 않았어정말이야바깥에서 당신한테 먹일 약을 만들고 있었다고.”

 

 

그러고 보면옅게나마 약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그가 그녀의 발치에 기대있었으니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냄새일 것이다.

 

 

그 외엔 당신 물건에 손 대지 않았어전부 마법으로 소환해온 거니까... 다 쓰고 전부 정리할테니까... 신경 쓰지 말아줘.”

 

 

한스는 마물의 말을 믿지 않았다그러나 이건 거짓말 같아 보이진 않았다

 

사실아픈 그에게는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저편히 잠들고 이 밤을 넘길 수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증오하는 마물이더라도일단 그것 때문에 마음이 풀어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답은 그래서약간은 날이 돛혔어도 평소의 무시하는 태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약간은 신경쓰는 그런 대답이었다.

 

 

“멋대로...도와줘놓고 너에게.... 고마워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리코리스는 입술을 약간 잘근 깨물었다그녀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그리고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하고 말했다.

 

 

... 그건 바라지 않을게대신 다른 부탁이 있어.”

 

저택에 일하러 가라 한다면... 그것도 안 갈거야...”

 

들었어왜 그런지 그 이유를 들으러 온 것 뿐이야말해줄 수 있어?”

 

 

한참을 입을 다문 채 있던 한스의 답은리코리스가 바라던 그런 대답은 아니었다.

 

 

너야말로.... 어째서 그 일을 나에게 시키고 싶은 거야...?”

 

 

리코리스는 곧바로 대답했다숨길 일도 아니기에.

 

 

당신을 보면 침착심을 잃게 돼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내게 이런 감정이 남아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해당신을 다른 사람 대하듯이 다룰 수가 없어당신만 얽히면 이미 수백년 전에 적출한 내 심장이 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 같아.”

 

 

한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면서중얼거렸다.

 

 

뭐야 그게... 남일처럼 말하기는...”

 

모르겠어나는 이미 몸도혼도 죽은 리치니까이런 기현상은 수백년간 연구한 내 학문에서도다른 서적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니까죽은 육신에 산 감정이 들어서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는 건이미 증명된 사실이니까연구하고 해석할거야그렇기 위해서는 당신이 필요해당신이 상시 자주 내 곁에 있으면서 내 감정반응에 대한 관찰을 도왔으면 해 ” 

 

 

한스는 한마디 지적하려다가입을 다물었다

 

한스일지라도 그녀가 말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어쩌면 수백년간 살아온 이 리치는 무지렁이 한스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그런 감정을 마물이 감히 자신에게 품는다고그것도 자기 입으로 지적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을 말할까 말까 그는 고민했지만다행히 리코리스는 그에게 도망갈 창구를 만들어주었다.

 

 

그럼내가 이제 말했으니까이제 당신이 내 의뢰를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줘.”

 

 

한스는 숨을 조금 더 크게 들이쉬었다아픔 때문에 힘이 부쳐서 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입을 다물던 한스에게서 나온 것은 감정서린 고변이었다.

 

 

너희들이 싫으니까증오하니까.”

 

그렇지만... 당신이미 다른 마물들의 의뢰를 잘 수행했잖아이 임무도 그것이랑 마찬가지..”

 

 

말을 이으려던 리코리스는 그의 분노어린 시선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아픔의 독기가 쌓여 내뿜는 그 눈빛은절대로 가벼운 무게의 증오가 아니었다.

 

 

당신같은 되살아난 것들이 내 마을내 가족 전부를 앗아갔는데?.”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도저히 그 증오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당신들이 미우면서도 증오스러워그뿐이야.”

 

 

그리고 다시 그는 입을 다물었다그대로 잠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리코리스가 생각할 때쯤 한스가 내뱉은 그것은 아까의 증오서린 고변보다는하소연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그게 어젯밤에 꾼 악몽이라는 듯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거야그리고 왜 인간들도나만 빼고지나간 옛날 일이라니앞으로는 없을 끔찍한 일이라니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나라는게 숨쉬고 살아있는 한그건 절대로 옛날일이 될 수 없는 걸 알기나 해?”

 

 

약간의 주저 끝에 리코리스는 대답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난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던 그것이 아니야...”

 

 

눈을 한 팔로 가리며 한스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나도알아안다고.... 그렇지만 그래도 당신이 미워당신같은 언데드도마물도 정말 밉다고.”

 

 

그리곤 말이 없었다아무래도 아픈 몸에 너무 힘을 많이 쓴 탓에 그대로 잠들었을 것이다.

 

리코리스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가마솥에서 끓이던 약을 퍼냈다내일 동이 튼다면그에게 먹일 생각이었다.

 

그러나이런 상황에서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가간만에 공감이라는 것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담요를 덮어주고말했다.

 

 

패밀리어는 남기고 갈게.”

 

 

그리고그녀는 간단히 종이에 메모를 남기고는한스의 거처를 떠났다.

 

지쳐 잠든 그와리코리스가 남긴 패밀리어만이 반쯤 부서진 집에 남겨져있었다.

 


...


 

한스가 겨우 일어서서마을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틀 정도 뒤의 일이었다.

 

조금 초췌해졌지만그럭저럭 간호를 받은 탓에 병마가 남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때처럼익숙한 길거리 한스가 길드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를 걷고 있을 때

 

한스는 익숙한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 한스너 맞지?”

 

마이어...”

 

 

익숙한 그 길은 길드로 향하는 것이 아닌 그가 오랫동안 신세졌던 여관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니까






마이어 7화만에 재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