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째 밤.
가고일은 자신이 날짜를 세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전까지는, 가고일의 시간 감각은 상당히 투박한 편이었다.
어제, 오늘, 내일.
밤, 새벽.
그리고 계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 하는 것처럼 하루 하루를 숫자를 붙여가며 세어본 적은 없었다.
그랬던 것을 이렇게 셈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고일은 남자가 머무르고 있는 시간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몇 년이나 폐허를 지키고 있었던 건지도 흐릿했다.
가고일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눈을 뜬,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이 장소를 지키는 것 외에 무엇을 한단 말인가.
오직 이곳에서만 가고일은 수호자였고, 수도원 폐허의 일부였고, 계속 존재하는 것을 윤허받았다.
바깥에 마을이 있었고, 숲이 있고, 보이지 않는 지평선 저 너머에 자신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지만.
이 장소를 버리는 것은 크나큰 배반처럼 느껴졌다.
설령 이 마음의 멍울이 사라진다 해도, 못생긴 돌덩어리인 자신이 저 밖의 어디에서 있을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한 죽음과도 같은 무방비한 낮 동안의 위협을 걱정하느라 불안에 떨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을 반복하는 미래를, 가고일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는 말보다는 진실된 말일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람의 세상이야. 나처럼 움직이는 석상 같은걸 위한 곳이 아니야.'
가고일은 남자가 보거나 말거나, 신상 앞에 꿇어 앉고 기도했다.
그러나 오늘 따라 신상의 얼굴이 보고 있기 힘들다.
자신이 이 수도원의 일부로서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고 험악하게 조각되었다는 사실이 미워서,
여신의 형상을 닮은 동상이 필요했을 뿐이기에 아름답게 빚어진게 전부인 신상이 미워서,
나와 네가 무엇이 그렇게도 다르냐는 억울함에 질투가 느껴져서.
오랜 세월, 빠져본 적 없었던 새로운 번뇌.
해선 안될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차츰 자신이 아니라 이 파도를 일으킨 남자에게로, 분노가 되어 향한다.
그것이 억지임을 알지만 그래도 화가 난다.
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자신 사이의 균열에서 잡초처럼 흉하게 돋아나는 부정함.
가고일은 지금의 자신이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 밤 내내 밖을 서성였다.
가고일의 마음에 남자의 존재 같은 것이 들어올 공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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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째 밤.
해가 졌지만 남자는 지붕 위에 올라간 채 내려오지 않고있었다.
아니, 가고일이 움직이는 걸 보자마자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로 주의를 끄는 것을 보면 원해서 그리 된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올라갔는지는 몰라도, 정작 내려올 방법을 찾지 못한 듯 하다.
정말 어떻게 올라간 걸까. 아니, 왜 올라간 걸까.
저 위에서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는 걸까.
어쨌든, 다 무너져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수도원의 키는 위에서 떨어지면 어디 부러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내려다주지 않으면 다치겠지.
'못살아.'
가고일은 최대한 다리를 뻗어 몸을 세웠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체고가 충분히 올라가질 않는다.
처음 조각되기를 구부정하게 쭈그린 자세로 조각된 탓에 쉽지 않다.
탄력이 있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가고일은 고민하다, 날개를 넓게 펼치고 그 위에 남자의 침낭을 올렸다.
꼬리로 침낭을 툭툭 치며 신호하자, 남자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위로 뛰어내렸다.
침낭 솔기가 퍽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가고일은 거북이처럼 바닥에 퍼졌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 인간도 상당히 무거웠다.
그래도 둘 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가고일은 이후 몇 분 동안 손가락질을 하며 알아듣지도 못할 훈계를 꽥꽥거리며 남자에게 꼽을 주었다.
말은 못알아들어도 눈치는 있는지, 남자는 시선을 피하며 겸연쩍은듯 굴었다.
가고일은 또 괴상한 자세로 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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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째 밤.
가고일은 다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니면 모험을 해보는 것이던가.
가고일이 손을 눈썹께에 대고 두리번거리는 동작과, 양팔을 바깥으로 벌린 채 양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을 해보였다.
뭘 그렇게 찾느냐는 뜻이었다.
이미 한 번 눈치챘던 탓인지 남자의 눈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가고일이 자신의 이상한 자세나 전날의 도움을 암시하듯 침낭을 들쳐메고 퍼덕거리자, 남자는 졌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도착한 이래 계속 도움을 받기만 했으니 상대가 아무리 이상한 석상이라도 마음이 안좋았겠지.
남자는 초도 기름 등불도 아닌 빛나는 쇠막대를 꺼내 바닥에 놓은 뒤, 그 옆에 공책을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간을 그린듯한 형상 하나와, 더 큰 형상 하나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그림.
남자는 작은 형상을 가리킨 뒤, 자신을 가리키기를 반복했다.
자신과 아버지 혹은 어머니인 것 같았다.
가고일은 일단 끄덕였다.
뒤이어, 한 인간이 남자의 부모를 손가락질하는 그림과 여러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는 그림이 그려졌고..
다음 그림에서 남자는 혼자가 되었다.
남자의 부모는 머리가 없어졌다.
가고일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마지막 그림은 칼을 든 인간과 그에게 쫓기는 인간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정도면 전달력은 충분했다.
남자는 자신의 부모를 팔아넘겼거나 밀고한 원수를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낮 내내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도, 이 근처에 있거나 근방을 지나갈 원수를 찾고자 함이리라.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고?'
가고일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지역에 누가 올 리 없는데..
하지만 애초에 그림을 보며 추측한 것이니 세부 사항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었다.
바깥 세상도,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도 어딘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가령, 이 이상한 조명봉처럼.
무엇보다 가고일 자신은 원수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사람을 해치기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가고일은 모든게 다 끝나버린 다음에야 눈을 떴으니까.
남자는 분명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떳떳하지 못한 일을 벌였으리라.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성소를 지키는 이로서, 가고일은 막연히 남자의 복수를 막고 타일러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수도원의 가고일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자신의 가치 판단을 거쳐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장소를 훼손하거나 얼마 남지도 않은 성유물을 도굴하고 무덤을 파헤친다면,
가고일은 신의 말씀 같은 거나 읊조리면서 엄정한 마음만으로 침입자에게 심판을 내릴 수 있을까?
분노와 슬픔에 이성을 잃고 온 몸을 다 부숴가는 한이 있더라도 복수를 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애초에 자신이 남자에게 간섭할 이유나 자격이 있기는 할까?
그 이전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수도원의 지붕을 오르는 이를 계속 머무르게 해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닌가?
남자의 부모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은 아닐까?
이 복수에 정당성이 없고, 남자는 그저 복수심에 인생을 망친 머저리인건 아닐까?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고 다시 되돌아와 머리를 때린다.
가고일은 복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남자는 씁쓸해보이는 미소를 띈 채 그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웅얼웅얼 가고일의 귓가를 스친다.
아마 괜한 이야기를 했다던가, 신경쓰지 말라던가 하는 내용이었으리라.
이것 역시 가고일이 자기 좋을 대로 상상한 것에 가깝지만.
'속도 모르고.'
그날 가고일은 밤새 신상 앞에서 기도를 암송했다.
어떤게 최선인지 자신은 모르겠으니 당신께서 생각하는 바른 길로 저 자를 인도해달라는 내용의 기도였다.
남자는 자는 척 했지만, 기도하는 가고일의 뒷모습을 보며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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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편 내로는 끝을 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