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天人)들은 재주도 좋아. 이런 날개로 하늘을 다 날고.”

희고 긴 손가락이 날개를 쓰다듬었다. 그것은 그저 날개를 신기히 여겨 만져본 것뿐이었지만 당사자인 소년은 오만가지 생각을 들게 하는 손길이었다. 소년은 이를 감추고 싶어 했으나 깜짝 놀라 튀는 몸의 반응은 어찌 할 수 없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많이 놀랐나봐? 얼굴도 빨개지고.”

 

매화는 소년을 놀리며 웃음을 지었다. 눈처럼 흰 머리카락이 산바람에 날려 살짝 흔들렸다.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차라도 마시고 갈래?”

 

.”

 

앞서 산을 올라가는 매화를 보며 소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얀 뱀의 하반신은 매끄러웠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을 때면 고혹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양손을 귀에 갖다 댔다가 뺨에 갖다 대보니 불덩이 같았다.

 

빨리 안 가라앉을라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등 뒤에 달린 날개를 털어 헌 깃털을 털고 깃 모양을 정리했다. 소년은 다시 뺨에 손을 대보고 난 후에야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벌써 매화는 저 멀리서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눈덩이 같네...’

 

멀리서 보니 그녀는 미처 녹지 않은 눈처럼 보였다. 그녀의 별명이 왜 만년설(萬年雪)인지 다시 한 번 이해가 가는 때였다. 다만 매화 자신은 이 별명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실제로 소년이 불러본 적은 없었다. 산에 배달을 갈 때마다 선배인 응룡이 또 만년설을 만나러 가냐고 비웃듯이 물어봐서 그리 짐작했을 뿐이었다.

 

용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생각을 하니 응룡의 생각도 났다. 그녀는 벌써 반 년 전부터 그에게 부서를 이동하라고 끈질기게 권유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건 축축해서 싫다고 하는데도 말이지.’

 

여의주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무두리들과는 달리 천인들은 그저 날개를 휘적거려 하늘을 날 뿐이다. 비나 눈이 오기라도 하면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며칠은 감기로 고생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를 공석에서도, 그리고 그녀가 억지로 끌고 간 술집에서도 열심히 설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자신이 안고 날면 되지 않느냐는 터무니없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무슨 생각을 그러게 하나?”

 

소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숨결까지 닿은 거리에 매화의 얼굴이 있었다. 보석같이 붉은 눈이 소년의 갈색 눈과 마주쳤다.

 

 

일 생각 좀 하느라요.”

 

또 그 여자가 괴롭혀?”

 

괴롭히는 건 아닌데, 이제 그만 권유해줬으면 한다고 할까...”

 

하기 싫은데 자꾸 말하면 괴롭히는 거지. 걔가 성격이 못돼서 그렇다니까.”

 

선배 성격이 나쁘진 않은데, 그 부분만 좀...’

 

마지막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매화나 응룡이나 서로 상대 이야기만 나오면 으르렁거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 손 줘. 네가 날아오다가 지쳐서 그래.”

 

? 아니 안 그래도 돼요.”

 

소년은 손사래를 쳤지만 매화는 손을 잡아채고 산 위에 놓인 암자로 향했다. 앞서 했던 노력도 무색하게 뺨이던 귀던 부지불식간에 빨갛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매화가 그 부드러운 손으로 소년의 손을 단단히 잡은지라 어물쩍 빠져나갈 수는 없었는데, 놔달라는 말은 목이 단단히 잠기기라도 한 것인지 나오지 않았다.

 

매번 고맙다니까. 이 산까지 와주는게.”

 

매화가 차를 내왔다. 그윽한 향이었다.

 

제 일인걸요,

 

소년은 살짝 머쓱해 했다. 탁자 아래로 손을 비비 꼬며, 굳이 일이 아니어도.. 하는 생각이 목구멍 위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참았다. 매화는 상자를 까서 배달 물품을 확인하데 집중하고 있었다.

 

쌀도 쌀이지만, 난 야광주가 없으면 비를 못 내리니까 말이지.”

신령들에게 한 주치 식량이나 도술을 부리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배달해주는 것이 소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저도 여기 오는게 좋기도 하고요!”

 

자신이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을 그저 일로만 치부하고 싶진 않았다. 아주 살짝.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표시를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주 많이, 얼굴이 붉어졌다.

 

 

모든 것이 멈췄다. 물건을 뒤져보던 바스락 거리던 소리도, 뱀 꼬리로 바닥을 쓸던 소리도, 모든 소리가 정지된 정적의 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처마에 한 방울, 두 방울씩 비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쏟아지는 듯이 퍼붓는 빗소리로 바뀌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 ”

 

 

매화가 무언가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탁자에서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더니 뱀 하반신으로 소년을 감쌌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무기는, 수양을 해서 까만 비늘을 다 탈피해야만 용이 될 수 있어.”

 

잡념을 모두 없애고 용이 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해.”

 

그러더니 상체를 일으켜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었다.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피부와 비늘이 드러났다. 그러나 엉덩이에 한 조각. 까만 비늘이 붙어있었다.

 

네가, 내 마지막 잡념이야.”

 

매달리듯 엎어지며 긴 혀를 소년의 입에 넣었다. 움츠려든 소년의 혀를 능욕하듯 감싸고 애무했다. 긴 입맞춤이었다. 참아왔던 숨이 소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미안해. 나도 제멋대로인 성격이라서.”

 

이번엔 목덜미였다. 뜨거운 혀가 목덜미를 천천히 달렸다. 그때마다 소년은 달콤하게 숨을 토하고 뻣뻣한 신음을 질렀다. 그녀는 소년의 연갈색 곱슬머리를 쓰다듬고 귓바퀴에 혀를 넣고 돌렸다. 매화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옷 위로 유두를 희롱하고, 칭칭 감은 하반신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소년을 자극했다. 소년은 길고 높은 신음을 지르며 사정했다. 매화는 소년이 몇 차래에 걸쳐 사정하는 것을 옷 너머로 느꼈다. 감았던 몸을 놓았다. 그리고 그 붉은 눈을 소년과 마주 쳤다.

 

 

소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모자란 이해를, 소년은 본능으로 채웠다. 소년은 매화의 야무지게 봉긋한 가슴에 달려들었다. 아이라도 된 양 허겁지겁 젖을 빠는 모양을 보고 매화는 비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한 손으론 소년을 안고 토닥이면서 한 손으로는 머리를 안고, 소년의 얼굴을 가슴에 더 파묻었다. 그러고는 꼬리를 기민하게 움직여서 소년의 바지를 벗겼다. 속옷을 벗기고 발기한 음경을 해방하자 소년은 가슴에서 입을 떼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매화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균열을 벌렸다.

 

비 오는 소리, 비가 처마를 세차게 때리는 소리, 그리고 추잡한 결합음과 교성이 한데 섞였다. 둘은 다양하게 몸을 섞었다. 매화가 소년의 몸을 꽉 묶고 위에 올라타 허리를 살살 흔들며 소년을 애태우다 허리를 놓아주면, 소년은 매화를 바닥에 눕히고 강하게 허리를 흔들어 찍어 눌렀다. 그러다 애처롭게 날개를 퍼덕이며 사정하면 매화는 소년의 목덜미나 날개깃을 살짝 깨물었다. 고통에 반응하듯 음경에 남은 정액은 서로를 밀어내며 토해져 나왔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사정하고 땀에 젖은 젖무덤 위로 쓰러져 얼굴을 묻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소년을, 매화는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

 

! 어제는 일이 그렇게 됐지만... 저 예전부터 쭉...!”

 

말하지 않아도 안다. 괜히 신령이 아니야.”

 

돌아가는 길. 소년은 날아오르기 전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매화는 웃으며 소년의 입을 입으로 막았다. 그리고 소년의 손에 무엇 하나를 쥐어주었다.

 

검은 비늘이었다.

 

내 마지막 잡념. 널 향한 마음이었다.”

 

이제 후련하구나...”

 

소년은 물끄러미 손 위에 놓인 비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한 마음. 그 증표였다,

 

이제 탈피 전까지는 쭉 자게 될 거다. 당분간 작별이구나.”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 매화를 소년이 불러 세웠다.

 

저도 줄 게 있어요!”

 

그것은 자그마한 나무 조각이었다. 삐뚤삐뚤하게 깎은 매화 조각이었다. 서투른 솜씨로 조각한 것을, 붉은 물감으로 괴발개발 칠해놓은 것이었다.

 

절 향한 마음. 다 떨어져 나온 건 아니겠죠?”

 

손 안의 나무상은 귀엽고 애처로운 소년의 진심이었다. 매화는 어쩐지 기분이 상쾌해져 맑게 미소 지었다.

 

뭣하면 한 번 더 확인하고 가겠느냐?”

 

매화는 소년의 앞머리를 올리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소년의 귀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매화는 소년의 양쪽 귀를 양손으로 가볍게 잡았다.

 

여기도 빨간 매화꽃이 폈구나.”

 

걱정 말거라. 너를 향한 마음. 비늘이 아니라 내 가슴속에 평생 간직할 터이니.”

 

다시 눈 녹고 매화꽃 피거든 보자구나.”

 

약속이에요.”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구나.”

 

두 사람의 손가락이 서로 얽혔다.

 

내년 봄에 꼭 보기에요.”

 

그래.”

 

평생... 좋아하기에요.”

 

귀 끝까지 빨개진 채로 소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평생 사랑하마.”

 

약속, 또 약속이에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소년을, 매화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돌아온 소년의 목덜미를 보고 응룡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날 그녀는 홀로 밤을 삭였고 마을은 밤새 천둥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