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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 간호사 ~수 & 라라 & 도페르~]




  "간호사, 수야. 합쳐서, '간호수'야."


  슬라임 수가 간호사복을 입고서 말했다.


  수가 머리 위의 머리카락인지 촉수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키미히토에게 "이거 봐, 이거 봐"라며 재촉했다.


  실제로, 수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희귀했다.


  "수, 웬 옷이야?"

  "여기, 병원에서, 특별히, 준비해, 줬어. 마스터, 어때?"

  "음, 잘 어울리네, 수."

  "잘, 어울려, 수, 잘, 어울려!"


  수는 기뻤는지 빙글빙글 돌며 간호사복을 피로했다.


  "수 건 내수성 있는 걸로 특별 제작한 거래. 다행이네."

  "도페르."


  방금 말한 것은, 팔짱을 끼고 씨익 웃는 갈색 피부 여성--도페르였다. 그녀 역시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다.


  "아, 오늘은 옷 입고 있구나."

  "으……."


  그 사실을 지적하자 껄끄럽다는 표정을 짓는 도페르.


  그녀는 애시당초 전라로 생활한다. 옷을 입는 것이 싫다는 모양이다. 가슴 끝부분과 다리 사이 등, 보여선 안 될 부분은 신기한 머리카락으로 어느 각도에서도 보이지 않게 계산하여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다.


  "나, 나도 입고 싶어서 입은 거 아니거든! 근데, 안 그럼 다른 사람들이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안 돼~도페르."

  "병원에 있는 이상은 제대로 복장을 갖춰야지. 알몸으론 보기 안 좋잖니."


  다른 간호사들이 킥킥대며 웃었다. 키미히토는 그 간호사들을 본 기억이 있었다.


  현재 키미히토측은 마지막 직업 체험을 위해 어느 한 시설에 와 있었다.


  바로 병원이었다.


  그것도, 아직 일본에는 얼마 없는, 이종족을 위한 병원이었다. 키미히토도 예전에 미아와 모두의 건강진단 등을 위해 몇 번인가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간호사들과도 안면을 튼 것이다.


  "시끄러워~! 난 애초에 직업 체험따위 반대했단 말이야! 악당이라도 잡는 편이 훨씬 사회에 공헌되거든~!"

  "그치만 수는 평범한 가게에선 일 못하잖니?"

  "도페르 얘, 수한테 딱 붙어서 지켜봐 달라고, 스미스 씨한테 부탁도 받았잖아."

  "끄으으으……."

  "하하……."


  키미히토는 웃음밖에 안 나왔다.


  슬라임인 수는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들어온 이종족 유학생이--아니다. 어느샌가 일본에 입국한 미지의 이종족이다. 어떠한 생태를 지녔는지 수수께끼도 많다.


  이종족 코디네이터인 스미스도, 수를 취급하는 데에는 애를 먹고 있며, 현재는 '그런 존재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모른 척하고 있다. 그러나, 수가 키미히토네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이래저래 편의를 봐주고 있기에, 신경써주고 있단 것은 틀림없었다.


  스미스로선 묵인해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수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놓인 존재인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은 이종족을 위한 병원에서 직업 체험을 시켜주게 된 것이다--병원의 간호사들은 몇 번이고 건강 진단을 받으로 온 수의 사정을 알고 있다. 그녀들은 간호사복을 입고 기뻐하는 수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 ♪"


  수는 내수성 있는 간호사복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들떠 있었다.


  "이봐, 남친 군. 뭘 빤히 보고 있는 거야?!"


  간호사복을 입은 도페르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불만을 내뱉었다. 마치 양아치나 일진 같은 언동이었다.


  "아니……도페르가 옷을 입은 걸 보다니, 감개가 무량해서……그만."

  "시끄러워~! 창피하니까 그만 좀 보라고!"

  "왜 옷 입는 게 부끄러운데?"

  "도플갱어는 원래 다 그래! 너희 인간들 상식으로 이종족을 가늠하지 말라고, 이 세상엔 사고 방식 다양한 종족들이 넘쳐나니까!"


  도플갱어라는 이름대로, 도페르는 머리카락을 이용해 온갖 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


  수도 몸 형태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겉모습을 다소 변화시키는 수준이다. '변신'이라는 도페르의 특기는 다른 종족이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존재건만--단순한 간호사복을 입는 게 부끄럽다는 모양이다.


  "설령 그렇다곤 해도, 옷은 제대로 입고 다녀야지. 일단 일본엔 일본의 상식이 있는 법이니까 말이야."

  "으으으……."

  "게다가 저기, 전에 같이 외출했을 때 약속도 했잖아."

  "그건 그때 한정이고! 아오, 진짜. 알았어, 알겠다고요! 오늘 하루만 이 꼴로 있어 줄 테니까, 고맙게 생각하셔, 남친 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도, 허리를 틀며 자세를 취하는 도페르.


  분위기를 잘 타는 성격이다.


  그보다 애초에, 도페르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때는 늘 변신한 모습에 따라 분위기를 잘 타곤 하기에, 그와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변신했을 때와 달리 얼굴은 새빨갛지만 말이다.


  "수도, 수도, 할래."


  수가 흉내를 내서 도페르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어디선가 가져온 주사기를 들고서 말이다.


  "수. 어엿한 간호사가 다 됐네."

  "에헤헤♪"

  "어디 보자~남은 건--"


  키미히토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직업 체험에 데려온 것은 수만이 아닌 것이다.


  "이봐."


  슬그머니 나타난 키가 커다란 그림자.


  "내가 진정 몸에 둘러 마땅한 것은 심연과도 같은 칠흑. 허나 이번엔 순백색 성의(聖衣)로 하여금 이내 죄를 뉘우칠 지어다……내 실로 본의는 아니나 갈아입었다."

  "아, 라라……."


  간호사복을 입고 나타난 것은 듀라한인 라라였다.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간호사복 차림이긴 했지만, 목에 항상 두르고 다니는 목도리를 두른 탓에 어딘지 묘하게 언밸런스한 인상을 주었다. 라라는 목과 몸통이 분리되는 듀라한이지만, 지금은 머리를 제대로 몸통 위에 올려 놓았다.


  "괜찮겠어? 병원에서 일을 하다니……."

  "지장 없다. 내게 있어 홍련 십자군의 임무따위 간단하지……."

  "-----"


  라라의 말은 언제나 독특한 표현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렵다.


  "잠시 실례할게."


  그래서 키미히토는--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윽!"


  목과 몸통이 떨어지자, 라라의 얼굴이 급격히 붉어졌다.


  특히 몸통의 반응이 적나라했다--익숙치 않은 간호사복을 입은 탓일까, 급격히 다릴 오므리고 우물쭈물했다.


  부끄러워 하는 티가 팍팍 났다.


  "무, 무례한 것. 돌려 놓아라!"

  "아, 응. 미안해……."


  키미히토가 라라의 머리를 몸통에 되돌려 놓았다.


  라라는 시적인 표현을 선호하기에, 본심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머리와 몸통을 떼어 놓아 버리면, 몸통쪽이 라라의 본심을 드러내어 준다. 간호사복을 입어 부끄럽다는 것이 틀림없는 라라의 본심인 것이다.


  "어쩐지 미안한걸, 라라. 직장일 같은 거 익숙하지 않을 텐데, 병원까지 오게 해서……."

  "아니, 난 이곳에서 달리 할 임무가 있다--"

  "어?"


  키미히토가 놀랐다.


  라라가 이종족용 병원에 개인적인 볼일이 있다는 것인가. 아까부터 그녀는 연신 두리번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앗."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안색이 나쁜 10살 정도 되는 소녀가, 아장아장 라라에게 달려왔다. 키미히토도 그 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이 뭐더라--키미히토가 떠올렸다.


  "사신 님!"

  "유, 유우히. 여기 있었나."

  "응. 사신 님은 어쩐 일이야? 오늘은 간호사 하는 거야?"


  라라의 차림새를 본 소녀가 물었다.




  소녀의 이름은 하지메 유우히라고 한다.


  이 아이는 예전에,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인간 소녀였다. 난치병에 걸려 수명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지만, 라라가 (멋대로) 좀비나의 치아를 이용해 좀비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우히는 좀비로 살아가게 되었지만--좀비가 된 결과, 유우히의 몸 상태는 얄궃게도 생전보다도 훨씬 좋아졌다. 지금도, 키미히토가 기억하던 때보다 표정도 밝고 부드러웠다.


  "이 수많은 피에 젖은 죄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홍련 십자군으로서 임무에 따라 봉사할 의무가 있다."

  "그렇구나. 직업 체험하는 거구나."

  "순백색 깃털 흩날리는 생추어리에서 죄를 씻어내기 위해, 이 성의를 착용하였노라."

  "그 간호사 옷은 직업 체험 때문에 입은 거구나."

  "우선 내게 주어진 정찰 임무는 달성하였다."

  "응. 난 건강해. 오늘은 방부액 교환하러 왔어."


  라라와 유우히는 말이 통하는 듯, 안 통하는 듯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키미히토가 보기에도, 라라가 유우히를 걱정해서 굳이 이 병원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우히는 인간용 병원이 아닌, 여기 이종족 병원에 다니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간호사들과 면식도 생긴 듯했다.


  좀비가 된 몸으로 건강하다고 표현해도 될지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세상 여행길, 괴롭지는 않은가, 유우히."


  라라가 말했다.


  "괜찮아. 사신 님이 와줘서 기뻐."

  "……그런가."

  "그만 가봐야겠다. 사신 님, 또 놀러 와."


  유우히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는 떠났다. 다른 간호사도 동반했다.


  "--유우히를 만나고 싶었던 거면,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아니다. 난 현세의 물정엔 관심없다."


  라라는 쌀쌀맞은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라라가 아무리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성격이라곤 해도, 그녀가 지금도 이렇게 유우히를 염려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키미히토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보다 그대여, 슬슬 시작하자."

  "어? 뭘 말이야?"

  "……얘길 듣지 못한 건가?"


  라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순간, 철퍽 달라붙는 감각이 키미히토의 어깨를 덮쳤다.


  "어, 수?!"

  "마스터, 진찰."

  "어? 무, 무슨 소리야?"

  "뭐야, 남친 군. 몰랐어? 그렇다면……보아 하니 스미스 녀석……일부러 설명 안 했구만……?"


  도페르의 머리칼이 슈르륵 늘어나 키미히토를 붙잡았다. 키미히토는 어째서 자신이 구속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도페르의 머리칼은 머리칼이라기엔 굉장히 탄력이 있어서 마치 굵은 촉수에 휘감긴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 봐, 날뛰지 좀 마셔. 여기 의사 양반들이 말이야, 남친 군을 좀 조사해보고 싶다지 뭐야."

  "어째서?! 여기 의사분들 이종족 전문 아냐?!"

  "그건 그렇지만 말이야, 남친 군은 몇 번씩이나 죽을 뻔 하면서도 생채기 하나 안 나잖아. 예전부터 여기 의사 양반들이 보고 받으면서 흥미진진해 하더라고."

  "아니 근데 나, 진짜 아픈 데 없는데?!"


  키미히토가 외쳤다.


  하지만 도페르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말이야……요전번에도 라미아가 막 졸라댔다며? 그리고 폴트네 카지노에서도 쓰러진 적 있다고 들었고. 그런데 뼈도 부러진 적 없지, 후유증도 없이 건강하지--혹시 인간 아닌 거 아닐까, 이종족 전문 병원에서 검사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지.

  "뭐어어어?! 얘기가 그렇게 된 거야?! 진짜로 괜찮다니까!"

  "그걸 판단하는 건 의사들 몫이지."


  키미히토가 끌려 갔다. 도페르의 머리카락은 마치 생물처럼 휘감겨 놓아주질 않았다. 덤으로 수가 옆에서 달라 붙고, 라라가 뒤에서 키미히토의 몸을 끌어 안았다.


  라라도 보기 보다, 평소부터 괜히 큰 낫을 갖고 다니는 게 아니라는 듯이 힘이 셌다.


  "자~환자 한 분, 들어갑니다~"

  "간호사, 수가, 돌봐, 줄게."

  "검사라……얼마나 무시무시한 이단심문이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저승을 향한 여행길엔 함께 해주마."

  "아니, 안 죽거든?! 저기, 잠깐만 좀 있어 보라니까!"


  키미히토가 날뛰었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헤이, 남친 군. 모처럼 이~렇게 귀여운 간호사들한테 둘러싸였는데 조금은 기뻐하지그래?"

  "아니, 아픈 데도 없는데 검사한다고 끌고 가면 당연히 싫어하지."

  "잔말 말고~! 가자~!"


  도페르가 주먹을 치켜 들었다.


  수와 라라가 와~하고 목소릴 높였다.


  키미히토는 일절 저항할 틈 없이, 병동 깊숙히 끌려갔다.




  "으~음.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인간 간호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전부 이상 무……네요……선생님들도 난감해 하고 계세요."

  "그, 그런가요--다행이네요."


  키미히토는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간호사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에 불만을 표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키미히토.


  "말도 안 돼, 이상하잖아. 얘 맨날 라미아한테 조여지고, 켄타우로스한테 차이고, 머메이드한테 물속에 끌려가고 하는데."


  도페르가 말했다.


  "실제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듀라한인 내가 보증하지."


  라라가 특유의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검사 결과만 보면 정말 건강하단 말이죠."

  "신체 구조가 어떻게 돼먹은 거야, 남친 군.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거 아냐?"

  "굳이 문제점을 꼽자면, 몸이 좀 굳었다는 것 정도일까요. 쿠르스 씨, 혹시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최근에 중노동이나 격렬한 운동을 하신 적이 있으세요?"


  간호사의 말에 키미히토가 고갤 저었다.


  "아뇨, 딱히 별 일 없었는데--"

  "거짓말 마. 스미스한테 부탁 받은 직업 체험 때문에 유학생들 가는 곳 전부 다 따라다니고 있잖아. 직업 체험하는 애들보다 네가 더 일 많이 했을걸."


  도페르가 허무하게 폭로해 버리자, 키미히토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폴트 부탁까지 들어줬지? 얼마나 일해야 성이 차는 거야?"

  "아니, 그건 어쩌다 보니 그런 거고……."

  "거절도 못하는 착해빠진 놈."


  도페르가 질색하며 고갤 저었다. 간호사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피곤한 기색이 보이네요. 모쪼록 몸조리 잘 해주세요."

  "아, 네……."


  아르바이트로 유학생들 식비를 지탱한 적도 있는 키미히토로선, 이 정도 피로는 피로 축에도 끼지 않았지만--간호사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아, 아무튼 말이야. 검사도 문제없다고 나왔으니까……난 이제 된 거지? 너희들 직업 체험이나 하자. 전 뭘하면 될까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되는데요?"

  "네?"


  간호사의 말을 들은 키미히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는 평범한 직업 체험 못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부르긴 했지만--면허도 없는 사람한테 함부로 의료 행위를 허가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간호사복이라도 입혀주자는 취지였죠."

  "그, 그런 거였군요."


  듣고 보니, 무면허 의료따위 가능할 리가 없었다. 환자 시선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보자, 쿠르스 씨도 피곤하신 모양이니……."

  "하, 하나도 안 피곤해요!"

  "신입 간호사 여러분께, 쿠르스 씨 간호를 부탁해 볼까요."


  터무니없는 제안이 나왔다.


  신입 간호사--무면허자인 수, 도페르, 라라가 일제히 키미히토를 보았다.


  "우리 병원엔 휴양 시설도 있으니까--의료 행위만 아니면, 이분들한테 부탁해도 문제없을 거예요……그렇지?"

  "수, 간호, 할게. 마스터, 치유할게."

  "어쩔 수 없지. 남친 군한텐 신세진 것도 있고……한번 해볼까~"

  "가, 간호……? 치유……?! 어, 어떻게 하면 되지……?"


  라라만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할 마음이 가득했다.


  "어, 저기~……."

  "그럼 난 다른 환자분들도 살펴봐야 해서--뒷일은 맡길게~"

  "어, 어어? 그렇게 적당히 맡기셔도 괜찮겠어요?"

  "건강한 쿠르스 씨 상대 정돈 괜찮아요. 임시적으로나마 직업 체험 잘 하고 가세요~!"

  "체험이 잘 될까?"


  키미히토가 고갤 갸웃했다.


  하지만, 다른 모두는 할 마음이 가득했다.


  "수, 간호, 할래."

  "마음은 고맙지만, 뭘 하려고……?"

  "저거."


  수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병원 한 구석에 놓인 안마 의자였다. 단, 평범한 인간용 안마 의자가 아니어서--무척 길이가 긴 것도 있었고 반대로 자그마한 것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얼핏 보기에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필시 이종족용이리라. 실제로도 근처에 설치된 광고에, '이종족용 안마 의자. 시범 운용중'이라는 표기가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는 개 발바닥을 표현한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이를 통해 어느 코볼트 지인의 회사 상품임을 짐작하는 키미히토.


  "수, 저거, 하고 싶어."




  "위이이-------------잉."


  수의 입(?)으로부터 울려퍼지는 소리. 수가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를 낸다기 보다는, 온몸이 진동중인 탓에 목소리도 자연히 떨리는 느낌이었다.


  "아~……기분, 좋다……."


  키미히토가 수 위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맑은 푸딩 같은 둥근 물체로 변신한 수 위에 앉아 있었다. 키미히토가 앉은 순간, 그를 받치듯이 푹 꺼져, 초록색 소파 같은 물체로 변했다.


  "손님, 많이, 뭉치셨네요."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오는 거야……?"


  수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도페르가 어이없어 했다.


  안마 의자가 된 수가 대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지 수수께끼였다.


  "그건 그렇고, 어때, 남친 군? 슬라임 안마 의자가 좀 효과가 있어?"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 이거 완전 뻑 갔네, 갔어."


  크크크, 도페르가 웃었다. 키미히토는 온몸이 딱 좋게 풀어지는 기분에 도저히 대화가 통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온몸이 파묻히는 듯한, 마치 무중력 같은 감각--그와 동시에 적절한 반발력으로 키미히토의 몸이 밀려난다. 더욱이, 어떤 원리인지 알 수 없지만, 부드러운 고무공 같은 덩어리가 덜덜덜 떨리면서 키미히토의 뭉친 부분을 풀어주었다.


  "엄청 좋아아아……!"

  "인간을 타락시키는 무시무시한 부정형 괴생물……수, 얕볼 수 없도다……!"


  애초에 수의 학습 능력은 뛰어나다.


  처음엔 말도 못 했는데, 점점 인간의 언어를 배워 나갔고, 메로와 라크네라를 중심으로 한 공부 모임에도 열심히 참가중이다.


  안마 의자를 본 것만으로 같은 기능을 재현할 수 있는 것도, 그 뛰어난 학습 능력 덕분이리라.


  "수, 굉장해? 대견해?"

  "그럼그럼. 수는 굉장해. 이대로 잠들 것 같아……."

  "마스터, 자면 안 돼."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키미히토.


  덜덜 떨면서도 입을 이용해 말하는 것이 가능한 수. 역시 짧은 시간 사이에 점점 기능이 추가되는 수의 학습 능력은 무시무시하다.


  "이야~저 슬라임, 진짜 뭐든 가능하구나."

  "그대도 변할 수 있는가? 저러한 것으로."


  라라의 물음에 도페르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변신'하는 거라서……다른 사람 모습으로 변할 순 있지만, 신체를 변형시키는 것과는 좀 달라.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짓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다지 무기물이나 인격이 없는 걸론 변하고 싶지 않아."

  "그런 차이가 있는 건가."

  "그러니까 저건 수밖에 못 한다 이거지."


  도페르가 팔짱을 끼면서 유쾌한 표정으로 수가 안마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한테 맡겨두면 우린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얼른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아, 아니. 그건 좀……."

  "응? 뭐야, 라라 너도 일하고 싶은 거야?"

  "으, 으으……."


  라라가 목도리로 입가를 감추며 수줍어 했다.


  "다들 자신의 직무를 다했다 들었다. 나는 사신이다……하지만, 동시에 이 사내에게 신세를 지는 몸이기도 하지. 이번 임무가 이 사내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훌륭하게 완수할 필요가 있다……그러지도 않고 이 사내의 집에 염치없게 돌아갈 순 없다--"

  "아하~? 오호~? 그렇구나~? 신세진 보답을 하고 싶은 거구나."

  "으, 으으……."


  라라와 도페르가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는 키미히토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의 압도적인 안마 실력, 릴랙스 효과가 평소 무리하는 경향이 강한 키미히토를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유하고 있었다.


  "지--------잉."


  키미히토의 온몸을 안마하면서도, 수는 주위를 관찰하고 있었다. 병원에 만들어진 휴양 시설에 있는 것은 키미히토측만이 아니었다. 안마기를 사용중인 오니족도 있었고, 장어형 인어에게 미용 마사지를 받는 켄타우로스도 있었다.


  문득 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카이로프랙틱이었다.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서양에서 비롯된 척추교정술의 일종.


  하피로 보이는 이종족의 팔을 카이로프랙터가 고치고 있었다. 하피의 몸은 균형이 무너지면 비행할 때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카이로프랙터의 기술로 치료하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평범한 일이었다.


  "수, 저거, 할래."

  "어?"

  "마스터, 치유할게. 몸, 고칠게."

  "자, 잠깐만, 수?!"


  키미히토가 놀랄 틈조차 주지 않았다.


  수가 몸을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키미히토의 몸을 감쌌다. 초록색 젤에 둘러싸여 얼굴만 바깥에 튀어나온 형태가 되었다.


  "헐? 남친 군?!"

  "잠깐만 기다려, 마스터."


  수가 말했다.


  빠득빠득, 뿌득뿌득, 우득, 우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뼈가 부러진 게 아닐까 싶을 만한 소리였다.


  "이, 이봐, 남친 군! 괜찮아?!"

  "억, 어어어어……거, 겁나 아파!"


  젤 형태 몸속에서 키미히토의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하지만 수는 그대로 계속했다. 자신의 몸속에서 키미히토의 몸을 주물러댔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져."

  "아니, 괜찮아질 것 같이 안 보이는데?!"


  도페르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수. 다시금 우득, 뿌득, 뽀득, 뚜둑, 소리가 울렸다.


  "어걱, 거거거걱!"


  키미히토에게서 도저히 인간에게서 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그뒤 얼마간, 으득, 뿌득, 뚜둑하고,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페르도 라라도, 그러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할 따름이었다. 함부로 손댔다간 키미히토의 몸이 이상하게 꺾인 상태로 고정될 것만 같았다.


  "이걸로, 끝."


  마침내, 키미히토가 풀려났다.


  수가 할 만큼 해 만족했다는 듯이, 아까 전 안마 의자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 하아……주, 죽는 줄 알았네……."

  "이보셔, 남친 군. 살아는 있어? 뼈 부러진 덴 없고?"

  "으, 응……어, 어라--?"


  키미히토가 일어서자, 수도 안마 의자에서 평소 같은 인간형으로 돌아갔다.


  "몸이……가벼운데……?"

  "수, 카이로프랙틱, 했어."


  키미히토가 어깰 돌렸다.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보기도 했다.


  팔을 들 때도, 다리를 들 때도, 말도 안 되게 편했다.


  "괴, 굉장한걸! 수! 대단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정말? 수, 제대로 잘 했어?"


  수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수의 안마 효과는 굉장했다. 키미히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쾌해진 자신의 몸을 확인하듯이 준비체조를 시작했다.


  "오~오~남친 군, 부러운걸~수, 잘 했어."

  "에헤헤."

  "농담이 아니라, 이거 진짜 엄청나! 조금 아팠지만--도페르도 해보지그래?"


  키미히토가 말했지만, 도페르가 고갤 저었다.


  "내 몸은 인간이랑은 전혀 다르니까 무리야, 무리."

  "할래? 할래?"


  수는 온몸을 주무를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그럼, 내가 하지."


  손을 든 것은 라라였다. 머릴 떼어 근처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몸만을 움직여 의자로 변한 수 위에 앉았다.


  "위이이-------------잉."


  다시금 수가 진동했다. 라라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이, 이 어찌도, 마성적인가……아아아, 하아아앙……!"

  "수, 라라도, 릴랙스시켜 줄래."

  "중독돼 버려어어어어어어엇!"


  탁자 위에 놓인 머리가, 마치 극락에 이른 듯한 숨결을 토했다.


  "하~나 원 참. 하여간, 남친 군을 치유하로 와 놓고는, 자기가 기분 좋아지면 어쩌라는 거야--어쩔 수 없으니까, 나도 도와줄게. 안심해, 남친 군."

  "어? 마음은 고마운데--뭐 하려고, 도페르?"

  "그건 나중에 알게 될 테니 기대해. 일단은 몸도 풀린 모양이고, 목욕이라도 하고 오는 게 어때? 난 그 사이 준비 좀 해둘 테니까."

  "준비--?"


  대체 뭘 할 생각인 것일까.


  간호사복을 입은 도페르는, 간호사답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장난치길 좋아하는 도페르의 그러한 표정에, 키미히토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자, 됐으니까 얼른 가 봐. 여기 온천도 있대. 가급적 느긋하게 있다 와."

  "으……응."


  안마에, 목욕에, 극진한 대접이 따로 없었다. 이종족을 위한 시설이 아직 많이 없기 때문에, 한 곳에 중점적으로 시설을 지은 것일까.


  키미히토는 도페르에게 떠밀러 목욕탕으로 갔다.


  "아아아으, 흐으으으으응-----"


  뒤쪽으로부터 라라의 숨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후우------"


  넓은 목욕탕.


  어깨까지 푹 담근 키미히토가 숨결을 토했다.


  몸도 가벼워졌고, 온천에까지 들어갈 수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키미히토 자신은 무리한다는 자각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육체에는 피로가 쌓여있던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넓네……."


  키미히토는 목욕탕을 둘러 보았다.


  아마 이종족용이라 그런 듯했다.


  욕조도 엄청나게 수심이 깊은 부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동용이라 생각될 만큼 작은 욕조나, 1인용 원형 욕조 등도 있었다. 이종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인 것은 명확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인간인 키미히토에겐 넓었다.


  "그래도……혼자 전세낸 것 같아서 좀 그렇네~……."


  수가 안마해준 덕도 있어서, 키미히토의 몸은 충분히 상쾌해졌다.


  다른 이용자가 전혀 안 보이는 건 조금 신경쓰였다. 안마실만 해도 이종족 몇 명인가가 이용하고 있었는데--목욕탕엔 키미히토밖에 없었다.


  "뭐, 느긋하게 쉴 수 있으니까 나야 좋지--"

  "헤----이, 남친 군! 한가하게 목욕하고 있냐~!"


  중얼대며 기지개를 켜던 순간이었다.


  남성용 목욕탕에선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핫하하! 그 얼빠진 표정! 청소부 아줌마로 변신한 보람이 있구만!"


  들어온 것은, 벌거벗은 도페르였다.


  --벌거벗었다곤 해도, 도페르는 애초에 옷을 입는 편이 드물기 때문에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도, 도페르! 뭐야?!"

  "뭐긴 뭐야, 지금 내가 간호사니까 그러지. 너한텐 평소에도 신세 많이 지고 있으니까, 이럴 때 등이라도 밀어줄까 해서 말이야."

  "아니, 그……옷부터 입어줘!"

  "목욕탕에서 옷 입는 사람이 어딨냐~?"


  어떻게 해서든 벌거벗고 싶은 도페르.


  어차피 도페르의 가슴과 다리사이 같은 아슬아슬한 부분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긴 하지만--그건 둘째치더라도, 혼욕은 위험한 것 아닐까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 들어오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 와. 입구에 청소중이라고 안내판 세워 놓았으니까."


  용의주도했다.


  "됐으니까 이리 와. 등 정도는 밀어줄 테니까 말이야!"


  도페르가 스펀지에 물비누를 뿌려 거품을 일으켰다. 그녀의 흑갈색 피부에 흰 거품이 잘 어우러졌다.


  고양이가 네 발로 기듯이 엎드려 세면장의 의자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런 자세가 돼도 중요한 부분이 하나도 안 보이다니, 이쯤 되니 놀라울 지경이네, 하고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하는 키미히토.


  "모, 못 말려……알았어."


  마지못해 받아들인 키미히토가 타월을 허리에 두르고 욕조에서 나왔다. 도페르가 스펀지를 한 손에 들고 준비 됐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까지 드러내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키미히토가 묙욕탕 의자에 앉자, 도페르가 스펀지로 키미히토의 등을 건드렸다.


  "이런 거 누가 보면 어떡해……."

  "그러니까 아무도 안 온대도~? 만약 온다고 해도 남자로 변신하면 그만 아냐?"

  "그런가……."


  등에서 거품이 일었다. 도페르가 쓱싹쓱싹 키미히토의 등을 문질렀다.


  "아무렴 어때, 이 몸께서 친히 봉사해 주신다는데. 가만히 받기나 하셔."

  "고, 고마워……."

  "좀비나, 티오, 마나코가 무던히도 신세를 진 모양이니까 말이야."


  키미히토의 등을 밀어주면서 도페르가 말했다.


  "안 그래도 호스트 패밀리라서 고생 많을 텐데 우리 MON까지 폐를 끼쳐대서, 이래봬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이건 그 보답이라 이거지."

  "폐라니……다들 열심히 했는걸."

  "핫하하.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네. 티오는 아이돌이 되어볼 수 있었다고 기뻐했고, 마노코도 다소는 낯가림이 덜해졌겠지. 뭐, 좀비나는……술 마셔서 좋았다고 했던가. 죽은 주제에."


  킥킥킥, 도페르가 웃었다.


  키미히토로선 뜻밖이었다. 도페르는 장난을 치거나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건 좋아하지만, 동료 의식 같은 건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뭔데. 뭐 할 말 있냐."


  도페르가 키미히토의 등을 스펀지로 문지르며 수상쩍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 저……도페르가 동료들 얘기를 다 하다니, 별 일이다 싶어서."

  "그야 평소엔 안 하니까. 내가 딱히 뭐라 안 해도, 평소엔 같은 부대 동료로서 다들 착실히 일하고 있기도 하고……하지만, 이번 업무는, 말하자면 사적인 볼일 같은 거거든."

  "그래?"

  "아님 뭐겠냐! 티오만 해도 순 자기 취향에 맞춰서 아이돌했던 거잖아!"

  "아하……듣고 보니."


  그러고 보니 티오는 염원하던 아이돌이 될 수 있어 기뻐했었다.


  "결론은 말이야, 그런 부분까지 MON 애들 신경써줘서 고맙다고.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스미스보다 한발 먼저 말이야. 땡큐, 남친 군."

  "으, 응. 천만의 말씀."

  "알았으면……귀여운 여자애가 아니라서 유감이겠다만, 도페르 님과 혼욕 타임을 실컷 즐기라 이거야."


  키미히토의 등을 뒤덮은 무수한 거품을 샤워기로 씻어내는 도페르. 혼욕이라는 말을 들은 키미히토는 이제와서 새삼스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도페르가 한 말 중 한 부분이 다소 신경쓰였다.


  "그렇지 않아, 도페르."

  "엉?"

  "도페르 너도 내가 보기엔 귀여운 여자애인걸."

  "---------"


  말문이 막히는 도페르.


  키미히토는 도페르에게서 등을 돌린 채였기에 알지 못했다--도페르의 안면이 굳어, 수줍은 표정을 머리카락으로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을.


  "도페르?"


  키미히토가 뒤돌아 보려던 순간, 그의 머리에 도페르의 머리카락이 휘감겨 강제로 앞을 향하게 되었다.


  "꽤애애액?!"

  "시, 시끄러워~! 지금 이쪽 보지 말라고!"

  "어, 어어……왜……?! 그렇게 부끄러우면 역시 옷을 입는 편이……."

  "그딴 게 아니라고~! 자, 씻는다! 움직이지 마!"

  "어푸푸푸풉!"


  난폭하게 샤워기 물을 맞으며, 키미히토가 신음했다.


  도페르는 멋쩍음을 감추려는 듯, 더 많이 물비누를 짜 거품을 일으켜, 키미히토의 몸을 씻겼다. 키미히토는 그저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 자. 다음엔 앞쪽 씻겨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어? 어어어?! 앞쪽은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워! 간호사 도페르한테 맡겨주기만 하면 된다고!"

  "왜 살짝 화난 건데!"


  시끌시끌 요란스러웠다.


  자신의 허리에 감긴 타월을 억지로 벗기려 하는 도페르에게 저항하는 키미히토. 억지로 벗기려 하는 도패르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변태였다.


  "돼, 됐다니까! 나 그만 가볼게!"

  "이, 이봐. 어딜 도망 가려고."


  도펠의 마수로부터 빠져나가는 키미히토.


  그는 생각보다 재빠르게 탈의실로 가버렸다. 동거중인 이종족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모색해 왔기에, 이럴 때도 재빠른 것이다.


  "뭐, 감사 인사도 했으니, 됐나……."


  도페르가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가끔은 이런 도페르도 나쁘지 않겠지--어디 그럼, 나도 잠깐 뜨끈한 탕에 몸 좀 담궈볼까~"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도페르가 중얼댔다.




  "…………으."

  "저기~"

  "…………으으."


  목욕을 마치고 나온 키미히토가 옷을 갈아입고 커피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어째선지 라라도 그곳에 있었다. 아직도 간호사복에 목도리라는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라라?"

  "아니, 그게……저."


  라라가 우물쭈물댔다.


  아까까지만 해도 시적인 표현으로 얼버무리던 것처럼--원래부터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말투도 독특하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제법 오래 알고 지낸 키미히토마저도, 라라가 입을 다물어 버리면 난감할 따름이었다.


  "뭔가……고민이라도 있어?"

  "아--저기."


  라라가 목소리로 얼굴을 감싸며 키미히토를 보았다.


  "부정형 신성모독자와 변화무쌍한 칠흑과 같은 자 모두, 저마다 책무를 다하였으므로……."

  "어? 아, 응--어?! 도페르가 목욕탕에 들어온 거 알고 있었어?! 어떻게?!"

  "스, 스스로 말했다--지금부터 그대와 혼욕하겠다고."

  "허얼……."

  "방해하지 말라--고도 했었지. 그렇기에야말로, 이 몸도 이 몸의 의무를 다해야 할지니. 그러니까, 그, 간호사 일을 말이다."


  라라는 어쩐지 그것 때문에 고민중인 모양이었다.


  "허나, 이 몸은 영혼을 거두는 사신. 죽음으로 이끄는 길잡이. 유우히에게 이번 자초지종을 설명은 하였으나……그, 역시 그대를 치유한다고는 해도……어,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이, 이 몸에게 고민따위 없다! 이 몸은 사신! 다만, 저……자신의 직책과 너무나도 다른 의무를 지워져 곤란을 면치 못하고 있을 뿐이다……."


  목소리가 점점 모기만해졌다.


  라라가 당장에라도 주눅들 것 같았기 때문에, 키미히토가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말했다.


  "--커피 우유 마실래?"

  "마, 마시겠다……."


  동전으로 뽑은 커피 우유를 라라에게 내밀었다. 라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머릴 떼어, 목구멍에 직접 커피 우유를 부었다.


  인간이 보기엔 너무나도 상식을 벗어난 식사 방법이었지만, 키미히토는 진작에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꿀꺽, 꿀꺽……푸하앗."


  마치 뚜껑을 다시 닫듯이 머리를 원위치에 돌려놓는 라라.


  "어때? 좀 진정됐어?"

  "으, 으음--그렇다. 역시 난 사신이다. 백의 입은 천사는 될 수 없다."

  "그렇지 않아……."


  키미히토가 격려해 주려던 순간--.


  라라가 어디선가 커다란 낫을 꺼냈다. 항상 지니고 다니니 놀랍진 않았지만--저게 다 어디에 들어가는 것일까. 대체 어디에 숨겨두는 것일까.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


  "어? 자, 잠시만?!"

  "그대에겐 미안하지만--그, 이, 이 몸에겐 역시 이쪽이 더 어울리는군."

  "그 낫으로 뭘 어쩌려고--"


  키미히토의 항의는 끝을 맺지조차 못햇다.


  라라가 낫의 손잡이 부분으로 퍽, 키미히토의 머리에 한 방 먹인 것이다. 키미히토의 눈앞에 별들이 춤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의식이 암흑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흑."


  죽음의 문턱을 코앞에 두고, 키미히토는 생각했다.


  분명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하고 말이다.




  강이 흐르고 있었다.


  새 울음소리 같은 것도 들렸다.


  평화로운 소리였다--하지만 키미히토는 알고 있었다. 여긴 이른바 삼도천, 죽기 직전에 이른 자가 보게 되는 풍경이란 것을--.


  "아, 맞다……라라!"


  의식을 되찾은 키미히토가 허둥대며 라라를 불렀다.


  라라는 키미히토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으로 받치고 있었다. 예전에 여기서 봤을 땐 희고 청순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지금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간호사복 차림이었다. 삼도천에서도 간호사 노릇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정말~……무슨 중요한 얘기 있을 때마다 죽기 직전으로 만드는 것 좀 그만해……."

  "그, 그렇지만 여기가 아니면, 제대로 얘길 못 할 것 같아서……."


  라라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사후 세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과 사의 경계에 위치한 곳이다. 라라는 중요한 얘길 하고 싶을 때--하지만 선천적으로 말주변으로 인해 차마 말을 못할 때, 키미히토를 이곳에 데려온다.


  키미히토로선 임사 체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환영할 만한 사태는 아니었다--심지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되살아난 순간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라라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무슨 얘길 하고 싶은데?"

  "저기……."


  라라는 이곳에 있을 때 평소보다 좀 더 적극적이게 되며, 편안해 보이기도 한다.


  그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죽음의 문지기를 자칭하는 이종족, 듀라한에게 있어서는, 생사의 경계야말로 가장 안심감 느껴지는 곳이리라.


  "나, 나도 조금은……다른 이들처럼--그대를 치유해주고 싶었다."

  "치유 받긴커녕 죽을 뻔 하고 있는데?!"

  "하, 하지만! 현세에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다……!"

  "그렇구나~그, 그럼 어쩔 수 없지."


  키미히토가 한숨을 쉬었다.


  라라가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죽을 뻔한 것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이해하는 순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쿠르스 키미히토가 온갖 이종족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이유이기도 했지만--키미히토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그, 뭐야, 여기선 뭔가 좋은 생각이 나?"

  "그래……말하자면 여기 있는 동안 그대는 영혼 뿐이니까, 육체는 아마, 수와 도페르가 치유해 주었을 테니까……나는 영혼을……다시 말해 네 정신을 치유하려고 생각한다."

  "아, 아하."


  듣고 보면 치유되는 공간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게 개인 하늘, 강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 주변에 피어난 화초들. 소풍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임사 체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하다. 나는 죽음의 문지기 듀라한. 영혼을 관리하는 자……영혼 조작은 특기지."

  "그, 그렇구나……."


  키미히토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긴 라라의 공간이다. 발을 들이기만 하면 라라의 지배하에 놓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말이 잘못됐을 리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뚝.


  라라가 자신을 목을 분리했다. 자기 머리를 무슨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지만--라라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키미히토도 항상 경악할 따음이었다.


  "머리 좀 부탁한다."

  "아, 응--"


  라라가 자신의 머리를 키미히토에게 건냈다.


  살아있는 머릴 품에 안고 있다는 엽기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키미히토도 제법 익숙해졌다. 이런 게 익숙해져도 되는 것일까, 의문은 있었지만 말이다.


  주인을 잃은 몸통쪽은 키미히토 곁에 다소곳이 앉았다.


  "--머, 머리 들었는데."

  "…………----으음."

  "이 다음엔 어떻게 해야 돼……?"

  "………------"


  라라의 대답이 없었다.


   키미히토가 의아하게 여겨 라라의 얼굴을 살펴보았을 때--.


  "…………쿨~"


  그녀는 자고 있었다.


  키미히토 무릎 위에 놓인 얼굴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 잠깐, 라라, 일어나 봐!"

  "헉."


  기분좋게 자던 라라가 황급히 눈을 떴다.


  "……안 잤다. 안 잤어."

  "어떻게 봐도 잤거든--왜 라라 네가 릴랙스하고 있는 건데. 반대 아니야?"

  "네 품속이 편안한 나머지 그만 안정을 너무 취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긴 정신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잠들 리가 없다."

  "아니, 잠 잘만 자는 것 같던데--"

  "자는 것 같이 보였을 뿐이다."


  어흠, 라라가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날 들고 있어라."

  "--으, 응."

  "어떻지?"

  "어떻냐니?"

  "봉제인형 같아서 치유되지 않나?"


  살아 움직이는 머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봉제인형……같다고, 해야 하나?"

  "치유되지 않는 건가?"


  음색에 아주 조금, 슬픈 듯한 기색이 묻어나왔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우와-엄청 치유된다-! 볼살 감촉도 말랑말랑하고-그러고 보면 이런 마스코트 있지 않아-?!"


  사실 키미히토는 머리만 있는 마스코트 같은 게 진짜로 있는지 잘 몰랐지만, 일단 라라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말했다.


  "--그럼 얼마간 이렇게 안고 있어라."

  "으, 응."

  "몸통쪽은……춤이라도 추게 할까?"


  머리가 말했다.


  갑작스런 소릴 들은 몸통이 깜짝 놀란는지 벌떡 일어나 춤췄다. 삐걱삐걱 움직임이 영 시원찮은 것이, 딱 봐도 이런 것엔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아, 아니, 무리는 안 해도 돼."


  라라의 몸통쪽을 보고 말하는 키미히토.


  몸통은 안심한 것인지, 다시금 키미히토 옆에 앉았다. 라라의 머리와 몸통은 떨어져 있을 때도 이어져 있는 듯 했지만--그런 것치고는, 서로 다른 의지를 지닌 듯도 보여서, 좀처럼 어떤 구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는 굉장하다."

  "어?"

  "영혼에 피로감이 거의 없다--아니,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즐거움이 더 크군. 직업 체험 따라다니느라 힘들지 않았나?"

  "힘들긴 했지만, 즐거웠거든. 평소엔 볼 수 없던 모두의 표정도 볼 수 있었고 말이야."


  키미히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라라는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너이기에, 영혼에 피로감이 없는 것이로군. 내가 할 일이 그다지 없다."

  "그렇진 않아. 가끔은 여기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뭐, 그럴 때마다 임사 체험해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어어……그건, 미안하게 됐군."


  라라는 사과도 잘하는 착한 아이구나, 키미히토는 생각했다.


  "육체에 영향은 없을 거다. 일어나면 상쾌하게 눈 뜰 수 있을 거고--가끔은 조용한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육체와 정신에 좋을 거라 생각한다."

  "응--그렇네."


  직업 체험이 시작되고부터 줄곧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미아도 파피도 센토레아도, 수도 메로도 라크네라도--그리고 라라도.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것 자첸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키미히토로선 소중한 일상의 일부였다. 그러니까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혀 부정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라라가 직업 체험하러 온 건 좀 의외였어. 그런 거 별로 관심없을 줄 알았는데."

  "관심은 없다."


  라라가 즉답했다.


  그녀는 이곳에 있을 때, 평소에 비해 뚜렷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쿨하다. 이게 분명 라라의 원래 모습일 것이다.


  평소보다 다정하면서도, 평소보다 조금 차가운 모습이 말이다.


  "다만--약속을 했으니 말이다."

  "약속?"

  "그래. 다 같이 약속했다. 네 힘이 되어주기로--너도 참, 사랑받고 있군."

  "그, 그런가."


  자각은 없었다. 그렇지만--모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 이 순간, 키미히토는 깨달았다.


  "어쩐지 다들 열심히 하던 게, 직업 체험을 할 수 있어서라던가,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볼 수 있어서라던가……그런 거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더니……라라, 혹시, 뭔가 아는 거야……?"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하지만 알았더라도 입밖에 내진 말아줬으면 좋겠군."

  "그게 좋겠지--모르는 척할게."


  키미히토가 웃었다.


  어차피, 여기서 일어난 일은 깨어나면 잊어 버리게 된다. 여기서 뭘 깨닫더라도,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아--슬슬 시간이 됐군."


  라라의 머리가 무언가 깨달은 듯 읊조렸다.


  "시간? 깨어나야 된다는 거지?"

  "음. 걱정 마라. 자연스럽게 눈이 떠질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키미히토는 졸음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임사 체험을 겪고 의식을 회복하는 중인 것이다. 몇 번이고 경험해본 키미히토이기에 알 수 있었다. 늘 죽음의 문턱을 헤매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당하고도 건강한 이유는 아마, 이 장소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넌 언제나 다른 이에게 다가와 주지."


  키미히토의 눈이 껌뻑껌뻑 감겼다.


  마치 최면이라도 거는 듯한 라라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강물 흐르는 소리도 좀차 멀어져, 시야가 서서히 안개에 뒤덮이고 말았다.


  "네가 그런 사람이기에, 우리도 너와 함께 있고 싶은 거다."


  라라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 퍼졌다.


  키미히토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고갤 떨어뜨린 순간--라라의 몸뚱이가 슬며시 그의 목을 받쳐주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품속에서, 키미히토는 더욱 깊이 의식을 잃었다.


  "잊지 마라. 사후에 네 영혼은 내 것이지만--"


  키미히토가 품에 안은 라라의 머리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미히토는 이미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였지만--그녀의 목소리가 들뜬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현세를 어떻게 즐길 지는, 어디까지나 네 몫이다."




  "마스터, 마스터."

  "이봐, 남친 군! 대답 좀 해 봐!"


  목소리가 들렸다.


  키미히토가 눈을 뜨자--초록색과 갈색, 각각 다른 피부를 지닌 여성들이 뛰어들었다.


  "어라--수? 도페르?"

  "이제야 눈을 떴구만! 왜 이런 데에 쓰러져 있는 거야?!"


  키미히토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수가 걱정스레 키미히토의 몸을 만졌다. 철퍽, 점성이 있는 감촉이 느껴졌다.


  "--어라? 나 분명……."


  분명 커피 우유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째서 쓰러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괜찮아? 마스터, 몸, 아픈 곳, 없어?"

  "아니……딱히 없는데."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서 좋을 정도였다.


  "오히려 몸이 가볍기만 한걸. 수가 안마해준 덕분인가 봐."

  "정말? 정말로?"

  "정말로."


  키미히토가 일어서서 팔을 빙빙 돌렸다. 기운차다는 어필을 한 것이었지만, 수는 여전히 극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곤해서 잠들기라도 한 거야?"

  "응.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도페르의 말에 키미히토가 고갤 끄덕였다.


  "너희 둘이 여러 가지 해준 덕에, 깜빡 잠들었나 봐."

  "에이, 무슨. 그렇게 칭찬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


  도페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수도 이제야 웃는 얼굴을 되찾았다.


  "그대여."


  스리슬쩍.


  라라가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몸에 이상은 없나."

  "라라……? 으, 응. 괜찮대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이 의상이 수치스러우니, 슬슬 돌아가고 싶군."


  라라가 말했다. 그러자 도페르도 양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말했다.


  "그러게~슬슬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남친 군 아직 좀 피곤한 모양이고, 집에 가서 제대로 쉬어."

  "하나도 안 피곤한데……."


  키미히토가 중얼댔다.


  라라가 힐끔 키미히토쪽을 쳐다보는 듯했지만--금방 다른 곳으로 고갤 돌리고 말았다. 그 행동에 담긴 의미를, 기절했을 뿐인 키미히토로선 알 턱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키미히토는 이미 잊어버린 상태였다.


  "마스터, 집에, 가자."


  수가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서늘한 그녀의 손의 감촉을 느끼며, 키미히토는 웃었다.


  키미히토 자신은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몸과 마음 모두 치유받은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그의 상쾌해진 심신이, 그러한 시간이 분명히 있었음을 증명했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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