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https://arca.live/b/monmusu/6136487

(자동반복)



" 빠빠~ "


" 그래 그래, 우리 딸 착하지. "


모험가 생활을 은퇴하고 언덕 위에 하얀 집 짓고서 살아가는 나날.


어릴 적 고대하던 전설 속 이야기 처럼 대모험을 하며 영웅담을 떨치고 싶었던 나는 무작정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모험을 하고, 동료를 만들고, 던전을 돌며, 보물을 찾아내 일확천금을 노리는 보물사냥꾼이 되어 수 많은 일화를 써내려 갔다.


그러나 그 많은 모험들 속에 단 한 가지. 나를 모험으로 이끈 계기인 '불사조'의 전설 만큼은, 그 어느 곳에서도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이 없다.



" 빠빠, 바압━ "


" 배고프니? 슬슬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


불사조에 대한 희끄무리한 단서 하나라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쫓아 허탕만 치는 걸 반복하자, 그 짓에 지친 동료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동료가 없더라도 기필코 발견하고 마리라. 그렇게 다짐한 채 무의미하게 던전이란 던전은 다 돌아다닌 끝에, 한 던전의 보상으로 정체불명의 커다란 알을 얻게 되었다.


처음엔 뭐 이딴 보상이 다 있냐 하면서 오믈렛으로 해먹을까 하다가, 혹시나 희귀 생물의 알인가 싶어 부화시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부화장으로 들고갔다.


하지만, 육성소의 부화장에서도 별 반응이 없어 여관의 방 한 가운데에 두고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할까….



" 오늘은 뭐 해줄까? 먹고 싶은 거 있니? "


" 오무레! "


" 오믈렛 말이구나. 좋-아. 실력발휘 좀 해볼까? "


계란을 보울에 잔뜩 풀고서 휘휘 휘젓는다. 샛노란 계란물에 소금과 설탕간을 하고, 계란물이 버터를 먹은 후라이팬에 지글지글 익어갈 때, 요령 좋게 반을 접어 겉은 익고 속은 반숙인 오믈렛을 밥을 올린 접시 위에 얹는다.


몇 년이고 야영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요리실력 즈음은 자연스레 몸에 익기 마련이다.


반대로 몇 년이 지나도 요리실력이 발전이 없어 열외인 녀석 대신 내가 요리해야 됐지만. 그것도 나름 추억이다.



" 커팅식~ "


토실토실하게 오른 오믈렛의 배를 갈라 내용물이 접시를 가득 채운다.


" 와아아~ "


그런 모습을 언제봐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딸아이. 그 순진무구한 얼굴에 나 또한 절로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새콤달콤한 드레싱 소스와 후추 조금, 그리고 허브를 얹으면…


" 완성! 이제 먹어도 된단다. "


" 쟈 묵게슘미댜━ "


위를 향해 숟가락을 번쩍 들어 인사 후 입에 한가득 음식을 넣어 먹는 딸. 내가 예절은 잘 가르친 듯 하다.


눈을 감아 맛을 음미하는 행복한 미소를 쳐다보다 이내 나도 한 숟가락 뜬다.



불사조의 전설을 쫓다 웬 이상한 알만 얻으니 허탈감이 찾아와 슬슬 전설을 좇는 건 그만하고 다른 일을 해야하나 싶어 아무런 정보도 없이 애물단지인 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때, 한 물건이 알과 반응했다.


" 어라? 이건… "


'불사조의 깃털'. 불사조의 전설이 실존한다는 증거이자 이거 하나만있어도 집 몇 채나 몇십 년치 식비를 부담할 수 있는 물건으로, 죽은지 얼마되지 않은 자를 소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 이게 반응한다는 건……! "


부화장에선 알의 상태로는 죽은 알 같진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설마…?



" 푸하아~ "


" 맛있어? "


" 웅! "


" 그럼 양치하는 거 잊지말고. "


앗. 눈알을 또르르 굴리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딸.


" 간식 안 준다? "


" 에에에━ "


특단의 조치를 취하자 시무룩 해지며 아라써여… 하고 터덜터덜 화장실로 간다.


애는 역시 애라며 가볍게 웃곤 나는 설거지를 한다.


그나저나, 저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땐 참 고생이 많았다.



알이 불사조의 알일 거란 확신을 가지고 부화방법을 모색했다.


그나마 가능성과 신빙성이 높은 정보는 불사조는 온 몸이 불타오르기 때문에 알 또한 높은 온도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구운 계란행이기에 익지 않을 정도로만 뎁히고자 이프리트석을 갖다대어 알을 따뜻하게 했다.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가 알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돌아 확인차 불 마법을 날려보자, 알은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거금을 들여 초고열 화로와 인챈트 스크롤로 고열의 불을 상시 내뿜게 만든지 3개월, 알에서 금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 빠야… 나 쉬야…. "


" 어~ 잠시만- 설거지 다 하고. 금방 끝나. "


설거지를 끝내고 물기 젖은 손을 닦아 딸을 화장실로 데려간다.


딸에게 손은 없다. 정확히는 팔이 사람 손 대신 날개가 달린 하피의 일종 같은 형태다.


그렇기에 볼일을 볼 땐 내가 가서 속옷을 내려주어야 한다.


" 응…. "


끓인 물과 같은 온도를 배출하고 시원해진 딸이 몸을 부르르 떤다. 담요를 덮어주어 체온을 보존시킨다.



알에서 금이가고 그 속에서 나온 것은, 한 여자아이였다.


적어도 새의 형상일 거라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게 나와 당황하였으나, 적어도 고온의 열을 내뿜고 새의 팔다리를 가졌으니 불사조라면 불사조는 맞았다.


하피라기엔 몸이 불탈 이유가 없어 더더욱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물을 앞에 두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던 나는 우선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담요로 몸을 감싸주었다.


태어난 것은 좋은데, 아이가 배고프다고 우는 걸 어떻게 달래줘야할지 몰랐다. 무엇을 먹지? 모유? 염소 젖? 새들 마냥 이유식을 줘야하나?


그동안 던전의 지식만 빠삭하던 내가 처음으로 벽에 막힌 날이었다.



" 그래도 이렇게 쑥쑥 커주니 다행이야. "


" 우웅?? "


" 아냐, 아무것도. "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오늘의 동화책을 고른다.


"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


" 이거! "


아이가 고른 것은 '기사 이야기'였다. 내용은 한 기사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진부한 설정이지만, 용을 쓰러트린 이후의 이야기가 어른에게도 인기있는 동화이다.


" 이거 봤던 건데? "


" 또 볼래~ "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동화책을 읽어간다. 딸은 기사가 모험하는 장면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용을 퇴치하는 부분을 좋아했다.



" 위기의 순간, 기사는 요정에게 선물받은 팬던트가 빛나며 용의 숨결을 막아주었어요! "


" 흐읍…! "


딸이 클라이맥스에서 숨을 참는다. 좋아하는 장면이기에 호흡을 맞춰 내지르고 싶어하는 것이다.


" 고맙소 호수의 요정. 용이여, 이것이 내 혼신을 담은 마지막 일격이오!! "


" "  가라아아아아아━━━!!!!!!  " "


콰아앙- 그리하여 용은 기사의 혼신의 일격으로 쓰러지고, 기사는 공주를 구출하며 남작의 작위를 받게 된다.


보통의 동화는 공주를 구한 기사가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목걸이를 선물해 준 요정과 결혼한다.



" 죠케따아~ "


양 날개로 턱을 괴어 동화책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딸.


자기도 요정처럼 멋있는 기사와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행복한 상상을 한다.


" 그렇게 좋니? "


" 응! "


내 딸은 불사조이기에 평범한 사랑은 못 하겠다만… 지금은 그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라자.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 에헤헤…. "


쓰다듬어지는 것이 기분 좋은지 얼굴이 풀어지는 딸. 곧이어 입을 쫙 벌리며 하품을 한다.


" 졸려? 가서 자자. "


" 웅…. "


눈을 부비적거리는 딸을 안아올려 침대에 눕혀준다.


" 굿나잇. "


" 굿나잇- 안녕히 주무세요…. "



………

……



처음으로 해야할 일은 젖동냥이었다.


임산부를 찾아서 젖을 달라고 하기에는 그에겐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한시가 급한 일이다.


길가를 지나는 임산부에게 달라고 부탁을 하면, 길가여서 안 된다거나 뺨을 맞기 일쑤였다.


뭔가 사연있어 보이는 남자가 얼굴만 보이게 포대기에 감싼 아기를 들고 황급히 젖을 달라고 하는 건 안쓰러운 일이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창부들이 일하는 창관이라면 임산부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어, 돈을 지불할 테니 젖을 달라고 부탁을 했다.


창부들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약간의 돈 만을 받고는 젖을 물려주었다. 아기는 세상 행복하단 표정으로 배를 채웠다.


아기를 트림시켜주는 법이나 재우는 법, 모유를 떼면 이유식을 만드는 법 까지 가르침을 받아 감사한 마음에 큰 돈을 보상하려 했으나, 그녀들은 다음에 들를 때 '지명' 해달라며 거절하였다.


그녀들에겐 큰 신세를 졌다.



………

……



" 아빠, 무슨 생각해? "


" 음? 그 때 그렇게 어리던 애가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어서. "


" 나도 이젠 숙녀거든요~ 다 컸어요~ "


"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속옷하나 못 갈아입었으면서. "


" 므갸아아―――!!! "


딸은 그 점이 부끄러운 지 날개를 퍼덕이며 화를 냈다. 그 부분이 컴플렉스인가보다.


" 정말! 아빠는 세심함이라곤 없어! "


" 하하하, 미안 미안. 우리 공주님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요? "


" 물론! 옷 갈아입기 말고도 청소도 할 수 있어! "


" 우리 딸 장하다~ "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가 나부끼며 조그마한 불꽃이 일렁거린다.


배시시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 그런데 아빠. "


" 응? "


문득, 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개손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 나는 왜 아빠랑 손이 달라? "


" 아~ 이건 말이지…. "


올 것이 왔다. 언젠가 딸은 자기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때가 올 거라고.


하지만 나는 준비된 아빠다. 대답 정도는 생각해뒀다.


" 우리 딸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거든. 그래서 달라. "


" 천사? 천사가 뭐야? "


" 날개가… 달렸고, 하늘을 날아다녀. "


날개가 등에 달렸다고 하려다 그냥 달렸다고 정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 우와. 진짜? 나 하늘에서 왔어? "


" 그럼~ 하늘에서 내려준 아이지. "


" 에헤헤~ 나는 천사다~ "


무엇이 그리 신이나는지 날개를 펼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딸.


뛰어다니면서 발톱 때문에 바닥에 구멍이 송송 나는 걸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 원래 비싼 바닥이었는데…. '


지금은 코팅된 목제 바닥에 부드러운 가죽 카펫을 깔아두었다.


새의 발이어서 딱딱한 돌 바닥은 그다지 좋지 않다. 흠집나면 외관상으로도 안 좋고.


' 그래도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야…. '


………

……


모험을 그만두고 육아에 치중한 뒤로 어느새 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일을 안 하더라도 그간 벌어들인 돈이 많았기에 재정 걱정 없이 키울 수 있었다.


창관의 여인들에게서 이만하면 모유를 떼도 괜찮다며, 잘 키우라는 독려의 한마디를 들었다.


고마운 마음에, 그 이후로도 간간히 작은 선물을 들고가 인사를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딸이 알게되면 어쩔 거냐며 그녀들에게 혼났다.


으음, 앞으론 몰래 물건만 두고 가야겠군.



첫 육아는 쉽지 않았다. 그저 지켜봐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기저귀 갈아주기나 새벽에도 깨서 우는 것을 다독여준다거나 하는 것이 상상보다 고행이었다.


아이는 2년째가 될 즈음엔 여기저기 걸어다녔다.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입에 뭘 넣으려 하길래 날개가 닿을 만한 곳은 전부 정리했다.


처음 " 아빠 " 라고 불렸다. 감격스러웠다.


이래서 딸바보가 된다고들 하는 건가.


딸은 반이 마물이어서인가, 남들보다 성장 속도가 두 배는 빨랐다. 지금은 5살이지만 외견상으로는 10살이나 다름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절로 입가가 풀어졌다.


나날이 커가는 딸을 바라보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한 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언젠가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감을 느낀다면 어쩌지. 친아버지도 아닌 내가 사람처럼 키운 것에 반발심을 가질까.


되도록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주곤 있다만… 아이의 호기심은 분명 밖을 향할 것이다.


가능하면 주변의 손가락질에 상처받지 않기를 빈다.


아비로서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다.


………

……



" 아빠 아빠. "


" 어, 왜? "


어느새 사춘기 소녀 정도의 모습이 된 딸이 엎드려 양 날개로 턱을 괸 채 소설을 보다 말했다.


" 사랑이 뭐야? "


" 어…. "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데.


" 그게~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


" 우응…? "


딸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 사랑을 하면,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아울러 결혼도 하고 싶어지는 그런 거야. "


" 그럼… 나랑 아빠 처럼? "


" 응? "


" 아빤 맨날 나보고 사랑한다 하잖아. "


그게 그렇게 되나?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 나 아빠랑 결혼할래. "


" 그건…… 안돼. "


" 왜에? "


" 가족끼리는 결혼해선 안 돼. "


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심통난 표정을 짓는다.


" 세상 규칙이 그래.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야. "


" 그런 게 어딨어? "


그 후로 딸에게 윤리를 가르치려 했으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점점 반항적이게 변해간다.


" 아빠는 항상 그래! 맨날 안 된다고만 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


" 아빠는 널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밖이 얼마나 위험한데. "


" 잠깐 나가서 동네 애들이랑 놀 수도 있잖아! 계속 집 주변에서만 노는 것도 지루해! "


" 하아…. "


확실히 한창 놀고 싶을 시기일 텐데 집에만 두는 것은 가혹한 환경일 것이다.


그렇다고 밖에 내보내자니 딸의 특징이 눈에 띌 텐데 가릴 방법도 없다.


결국 안전하게 노는 게 제일인데….



" 아빠는 바보야!!! "


어떻게 답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이 내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졌는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 앗!? 딸아!! "


뒤늦게 쫓아가려 했으나, 딸은 이미 하늘 높이 날아올라 멀어진 뒤였다.


" 언제부터… 날 수 있게 된 거니. "


장을 보러 나가거나, 소일거리를 하러 나갈 때 몰래 연습해둔 건가?


자식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더니, 막을 수단 자체가 없구나.


" 녀석…. "


약간 소외된 기분에 씁쓸함을 느끼며 작게 미소짓는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돌아오면 맛있는 저녁을 해주자.


그리고 사과하자. 딸에게 정체를 숨긴 것을.




………

……



" 아빠는 정말 바보야. "


땅으로 내려와서 발치의 돌멩이를 툭 걷어찬다. 톡 데구르르- 굴러가는 돌멩이가 나무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 나도 이젠 다 컸는데 자꾸 애 취급이나 하고. "


게다가 요즘은 피곤하다면서 잘 안 놀아준다. 차라리 나도 나가서 놀 수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 몰래 나와서 놀고 싶지만 그럼 아빠가 걱정할 테고. "


한 번 멀리 가려고 했을 때 아빠한테 크게 혼났었지.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나무에 기대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을 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이 꺄르륵 거리는 소리 같은데…?


그때, 소리가 나던 곳에서 공이 날아와 발치에 떨어졌다.


부스럭-


" 어라? "


" 어? "


웬 아이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 눈나는 누구야? "


" 나? 나는…. 피이야. "


" 안녕 피이 눈나, 난 노마! 거기 공 좀 줄래? "


" 으, 응. "


날개로 엉거주춤 집어서 건네준다.



" 눈나 팔이 날개네? "


" 내가 천사라서 그렇대. "


" 다리도 새다리고, 이상해. "


" 이… 이상해? "


이상한 건가?


" 천사는 손이 있고 등에 날개가 달렸는데? 다리두 사람 다리야. "


" 그, 그래? "


아빠는 내가 천사라고 했는데….



당황하는 사이, 수풀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이번엔 여자아이가 나왔다.


" 오빠! 안 오구 거기서 머해? "


노마는 여자아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나를 삿대질한다.


" 노미, 여기 신기한 눈나가 있어. "


" 어? 안녕하세요~ "


" 으응… 안녕…. "


아빠 말고 다른 사람 만난 건 처음인데, 이상하다느니, 신기하다느니….


다른 사람 눈엔 내가 그렇게 보이는 건가?



" 눈나도 우리랑 가치 놀래? 우리끼리만 노는 건 심심하거든. "


"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랑 가치 놀지 말래써. "


" 엄마? "


남매의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엄마라고?


" 응! 울 엄마는 째째하고 성질이 드러워! 맨날 잔소리만 해! "


" 그건 오빠가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글차나. "


" 그건… 그거고! "


남매 둘이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엄마… 내 엄마는 누구일까? 그러고보니 동화에서는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던데.


아빠는 내가 하늘에서 왔다고 했다. 천사라고 했지만, 남매는 천사가 아니라 했고….


나는… 뭘까?



" 어휴, 내 동생이라지만 이렇게 말을 안 듣는데 이래서 누구한테 시집을 가겠어. "


" 오빠가 할 말이야? 오빠야 말로 평생 장가 못가겠다 뭐. "


" 뭐어? 이게! "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갑자기 내 고민이 시답잖게 느껴졌다. 풋, 하고 웃자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 너희 정말 사이 좋구나. "


" 얘랑? 나랑? 그럴 리가. "


" 흥, 웃기셔. 언니~ 나랑 가치 놀아요. "


아이들이 내 날개를 잡아당겨 자리에 앉혔다. 서로 자기랑 놀 거라며 잡아당기는 것이 곤란했다.


아빠도 나를 대할 때 이런 기분이셨을까? 조금은 이해가 갈 듯 하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내가 아기역, 남매가 부모역을 하며 역할극을 했다.


소꿉놀이는 처음 해봐서 여동생이 주는 흙경단을 정말 먹을 뻔 해 놀림 받았다.


남매의 역할극을 통해 다른 집의 가정 분위기는 이렇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하는 일이 달랐다.


우리 아빠는 가끔 '일'이라며 나가는 경우는 있지만 대개 집안일과 장작패기만 했기에 사실상 엄마역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 우리 이제 셋째를 가져도 되지 않소? "


" 어머 당신, 애들 앞에서 그런 소리 하기에요? "


" 그럼 싫소? "


"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는데, 아이들도 내용은 모르고 그냥 따라하는 거라고 한다.



" 너희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있니? "


" 나는 공주님! "


" 나… 나는…. "


얼굴을 붉게 물들인 여동생이 입만 가린 채 오빠 쪽을 흘끔 본다.


" …? 왜 날 봐? "


" ……아무것도. "


" ?? 이상한 녀석. "


" …바보. "


투닥거리는 남매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 눈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 이써? "


" 나? 나는… 아빠랑…. "


" 아빠아? "


노마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 이, 이상해? "


아빠는 가족끼리는 결혼하면 안 된댔는데, 남들도 그렇게 여기는 걸까?


" 아냐 언니. 이상하지 않아. "


여동생 노미가 강하게 부정했다.


"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상관없어. "


" 음~ 하긴, 나도 결혼할 땐 엄마 같은 사람이 좋을지도. 잔소리만 안 한다면. "


" 진짜? "


" 왜 니가 묻는 거야? "


여동생 노미가 눈을 빛낸다.


노미의 말을 듣고서, 마음 속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그래, 나는 아빠를 좋아해. 이 기분은 틀림없는 '사랑'일 거야.



슬슬 헤어질 시간이 되어, 노미에게 악수를 신청했다. 그리고 노미에게 작게 속삭였다.


" 노미야, 네 사랑이 이뤄지길 바랄게. "


" 응! 고마워! 언니두! "


" 눈나 잘가~ 다음에 또 놀자! "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날개를 흔들어 주면서, 집을 향해 날아간다.


돌아가자, 집으로.


아빠에게 사과해야지.






………

……






집으로 도착했을 때, 아빠는 집에 없었다. 장을 보러 가셨나? 아니면 가끔하는 '일'?


집에 오면 바로 사과하려했는데 안 보이니 조금 뻘쭘하다.


으음… 청소라도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끼이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아, 아빠? 다녀오셨… "



………

……






오늘은 실력 발휘를 해서 진수성찬을 차릴 준비를 하려고 마을에 내려가 장을 봤다.


딸에게 줄 선물인 예쁜 브로치도 사 작은 케이스에 담아서 보관했다.


아직 성인이라기엔 이르지만, 이젠 어엿한 숙녀로 인정한다는 뜻을 담아 줄 예정이다.


" 딸이 기뻐하려나? "


이따금 만나서 술 한잔을 하는 옛 동료들이 나를 보면 항상 팔불출 딸바보라고 놀린다.


내 딴에는 걱정되서 하는 일인데, 남이 보기엔 그저 과보호 아버지라고 생각되나 보다.


아무래도 좋다. 걔는 내 딸이니까.


내 딸은, 괴물이 아니니까.



집으로 도착하자, 이변을 감지했다.


분명히 잠궈놓았을 문이 열려있고, 딸이 반항한 듯한 흔적이 보이는 어질러진 거실.


'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


딸이 밖에서 날아다닌다면 분명 누군가 볼 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당연히 했다.


하지만 내 딸은 약하지 않다, 어디서 분명 불길이 치솟을 거라 믿었던 게 착각이었다.


그들은 불사조 대책용 장비라도 가지고 있던 건가?


후회하기엔 이르다. 얼른 그들을 쫓아야한다.


마루바닥 아래에 숨겨진 해치를 열고 그 안에서 내 장비를 꺼낸다.


복귀할 때가 온 듯 하다.


오랜만에, 진짜 실력 발휘를 해야겠군.




………

……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 따라가자 어느 동굴까지 이어진 것을 확인해, 투명화 스크롤을 찢어 염탐했다.


소리를 죽여 안 쪽으로 들어가니 말 소리가 들려와 귀를 기울였다.


" 괴물년 답게 거 반항적이네. 널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까 그만 질질짜. "


" 싫어!! 아빠!! 구해줘요!! "


' 딸…! '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구하고 싶지만, 아직 놈들의 전력이나 진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용히 참자. 놈들이 딸에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하면, 바로 숨통을 끊으리라.



" 이익…!! "


딸이 의자에 묶인 채 몸에서 불을 내뿜으려고 힘을 주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어이쿠 이런~ 아무리 용을 써봐야 이건 내화성 스크롤이 발린 마력차단 밧줄이거든? 소용없어. "


" 크헤헤, 이런 비싼 물건을 써보다니. 두목! 이 꼬맹이가 정말 그렇게 비싼 괴물일까요? "


" 비싸고 말고. 그런 '거래'였으니 말야. "


두목이라 불린 자와 그 부하들 열 넷 정도. 동굴은 그리 넓진 않으니 저들이 다일 터다.


생각 보다 적은데? 저런 밧줄을 쓸 정도면 돈이 많거나 대규모 집단일 텐데.


좋게 봐도 산적 들러리들로만 구성된 놈들이 샀을 리는 없고, 누군가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누가? 일부러 저런 놈들을 고용해서 시킬 바에 직접 움직이 거나 전문 용병을 고용할 터….



쐐액-


' …! '


텁, 갑작스레 날아온 볼트 화살을 손으로 붙잡았다. 내가 보인다고?


" ! 웬 놈이냐! "


화살을 붙잡는 소리가 들렸는지 당황한 두목이 소리를 질렀다.


' 이런…. '


상황이 좋지 않다. 투명화 스크롤도 방금의 행동으로 풀렸을 거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그곳엔 30명 가량의 갑옷으로 중무장한 고위기사 같은 자들이 있었다.



" 이거 이거~ 몰래 숨어들어온 쥐새끼가 있었구만 그래. "


" 뭐야 저놈? 언제부터 여기에? "


고위기사들 사이에서 기름지게 생긴 오크를 닮은 돼지가 화려한 장식을 치렁치렁 달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높으신 분 같은데, 저 놈이 산적들을 고용한 듯 하다.


"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사주한 거지? "


' …! 아빠…? '


그녀는 두건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안심했다.


아빠라면 분명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 흥, 알아서 뭐하게?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텐데. "


" 이봐! 말한 대로 이 괴물년을 붙잡아 왔으니, 보상은 두둑~히 가져왔겠지? "


" 보상? 무슨 소리냐. 나는 엄연이 범.죄.집.단의 소굴이 있다해서 내 손수 처단하러 왔다만? "


" 무, 뭬야!? 거래하고 다르잖아!! 이 년을 넘기면 평생을 놀고먹을 돈을 준다더니!! "


돼지는 기름기가 넘쳐흐르는 턱살을 출렁거리며 기분나쁜 얼굴로 낄낄거린다.


" 멍청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멍청할 줄이야. 너희같은 쓰레기들에게 돈을 줄 자가 어디있겠나? "


" 이… 자식이! 이딴 놈에게 정보를 파는 게 아니었는데! 야그들아!! 연장들어라!! "


" " " 목숨만 살려주십쇼!!! " " "


산적 두목은 전투 태세를 갖췄지만 부하들은 싸우기는 커녕, 넙죽 업드려 목숨 구걸을 했다.


어찌보면 시정잡배들 다운 행동이다.


그나저나… 내 딸의 목격정보를 판 건 저놈인가 보군. 그래서 돼지가 딸을 노리면서, 동시에 산적 떼 까지 처리할 방법을 떠올렸고. 돼지 주제에 나름 머리 굴릴 줄은 아네.



" 쏴라. "


돼지가 손가락으로 산적들을 가리키자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산적 두목은 물론이고, 그 부하들마저 비명 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 남은 건 네녀석이군. 네 놈도 목격자이니 죽어줘야… 뭐냐? "


돼지 곁으로 마법사 처럼 보이는 사내가 귓속말을 한다. 내 투명화를 간파한 건 저자 이리라.


" 뭐? 장비들이 특A급? 그래서 뭐? 죽이는 거면 죽이는 거지 뭔 말이 많아. "


마법사는 내 수준에 대해 어느정도 눈치 챈 모양이지만, 돼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로서도 이 만한 수는 상대하기 버거운데… 하지만 적어도 저 돼지는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명령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돼지만 노린다면 붕괴하거나 후퇴할 터. 그 점을 노리자.


나는 자세를 잡았다.



" 뭣들 해!? 당장 가서 죽여! "


" 옛! "


전열의 다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진열을 유지하는 걸로 보아 훈련을 잘 받았나 보군.


스팟-


" !? 사라졌다? "


" 뒤다! "


눈 깜짝할 새에 뒤를 파고들어간 그를 두 번째 열의 병사가 발견해 외쳤다.


두 번째 열은 창병들로, 그에게 창들이 쇄도했다.


쐐액, 빠르게 내찔러진 창은 바람과도 같았으나 그는 번개같이 민첩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창을 밟아 뛰어올랐다.


" 어엇!? "


3-4열은 석궁병들로, 뒤늦게 그를 쏘아 맞추려 했으나 이미 그는 그 사이를 파고들어 석궁을 쳐내거나 갑옷 틈새의 체인메일을 뚫고 단검을 찔러넣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단말마가 울려퍼졌으며, 3-4열은 진형이 붕괴되어 사실상 전투불능이 되었다.


그 뒤 5열 바로 근처에 있는 돼지를 노리기 위해 달려들 즈음, 법사 몇 명이 갖가지 원소 화살을 쏘아 날려댔다.


범위가 작은 계열은 그가 가볍게 피하거나 쳐내고, 큰 계열은 뛰어올라서 범위 밖으로 빠져나갔다.


피하는 동안 전열에 있던 자들이 마법을 맞아 쓰러졌다.


' 이제 돼지만 노리면… '


후열에 있어서 몸을 지킬 자나 수단이 없는 놈은 허수아비나 다름 없다.


" 큭…! 이거나 먹어라! "


순간, 돼지는 근처에 있던 마법사에게 스크롤을 붙이더니 그를 향해 밀쳤다.


" 으악!? 무슨―― "


" ――!? "


콰앙- 귀가 울릴 정도로 강한 파열음과 강렬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 자기 부하를… 덫으로 쓰다니…. '


믿을 수 없는 행동에 그도 당황하여 피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 이런 쓸모도 없는 녀석들! 이런 거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 단체로 모가지 날아가고 싶어!!? "


씩씩거리며 부하들에게 성질을 부리던 돼지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쓰러진 그를 향해 발길질을 한다.


" 아… 아빠아아아―――!!! "


" 아빠~? "


딸이 쓰러진 아빠를 보고 소리치자, 돼지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하, 마물이랑 떡이라도 쳤나? 마물년이 아빠라? 이딴 쓰레기에게서 어떻게 불사조 자식이 태어나? "


" 아… 아빠 괴롭히지 마 이 뚱돼지야!! "


뚱돼지란 말이 자극적이었는가, 돼지는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핏대를 세우며 길길이 날뛰었다.


" 마물년 주제에 더러운 주둥이를 나불대는구나! 네년은 나중에 내 우월한 유전자를 담는 씨받이로 정화해주마. "


" 아빠―!! 일어나―!! "


' 딸… 의식이… 딸을 구해야…. '


그는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입속에 머금어 둔 '비약'을 깨물어 삼켰다.



" 저년 끌고가! 빨리빨리 움직―― "


푸욱. 단검이 살점을 꿰뚫는 소리.


" ――끄흐어어아아악……!! "


폐를 관통해서 찔렀으니. 사제가 회복 주문을 외워도 고치지 못하리라.


" 공작 님!! "


당황한 병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피해 전열에서 가장 가까운 병사의 머리를 밟고 뛰어넘어 딸이 있는 곳으로 갔다.


" 아빠! 괜찮아!? "


" 딸, 잘 들어. 지금 아빠는 비약의 힘으로 잠깐 움직이는 거야. "


단검으로 밧줄을 끊으면서 말했다.


" 이제부터는 네 힘으로 싸워야 해. 잘 할 수 있겠지? "


" 아, 아빠…? "


의자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딸과 눈높이를 맞춘다.


" 미안하구나, 네게 모질게 대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조심했던 건데. "


" 으으응…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


" 언젠가 네게 진실을 얘기할 때가 되면, 나를 미워할까 두려웠단다. "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딸의 어깨를 붙잡으며 나지막이 웃었다.


" …언제나 사랑한단다. "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휘청이며 쓰러졌다.



" 공작 님이 쓰러지셨다! 사제를 데려와! "


" 너무 깊게 찔리셨어요! 치료마법으론 소용 없어요! "


" 아이씨…! 일단 저 년이라도 잡아! "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동굴 안 쪽에서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 앗뜨거!! 뭐, 뭐야!? "


그들이 바라본 곳에는, 어리던 마물소녀는 어디가고 웬 등에 붉타는 날개와 꼬리가 달린 여인이 서있었다.


" 뭐… 뭐야 저 괴물은!? "


당황한 마법사와 석궁병들이 일제히 마법과 화살을 날리지만,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녹거나 불타서 사라졌다.


" 이… 이건… 후퇴하라! "


근위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주하려 했으나, 동굴 입구는 거대한 불의 장벽으로 인해 도주로가 막히고 만다.


앞은 불의 벽, 뒤는 점점 다가오며 이글거리는 업화의 여인.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 히이익…! 괴물…!! "


두려움에 떨던 이들에게, 여인은 손짓 하나로 강렬한 불꽃을 날렸다.


그 불길은 그들의 철로 이루어진 갑옷이 녹아내릴 정도로 고온의 열을 내뿜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이윽고, 비명소리가 잦아들 즈음에는 그곳엔 시커먼 덩어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 아빠…. "


불사조의 힘을 각성한 그녀가 열을 내뿜는 몸임에도 차갑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상체를 안아올렸다.


동굴 안은 그렇게 고온의 열기로 가득찼음에도 정작 아버지의 몸은 그슬림 하나 없다.


무의식 중에 아버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위력이 조절된 것이리라.


" 미안해… 내가 말을 안 들어서…. "


그녀는 사과했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서.


" 미안해… 아빠를 의심해서…. "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 미안해… 아빠를 구하지 못해서…. "


그녀는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이제는 줄 수 없는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서.


" 미안… 미안해요… 사랑해요… 아빠…. "


아비를 잃은 딸아이의 구슬픈 울음 소리만이 동굴 속을 가득 메웠다.


그녀의 눈물이, 눈을 감은 아버지의 뺨 위로 떨어져 스며든다.















그의 눈꺼풀이 움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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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9천자 썼는데 이틀만에 또 공백 제외 11000자 가량... 나 죽어...

이런 필력 떨어지는 글이라도 마음에 들었다면 좋겠다...

-수정

아 미친 글에 음악 넣는 거 잊음ㅋㅋㅋ 밤새도록 안 잤더니 머리가 안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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