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막의 프롤로그

 

 바닷속의 고대가 부상하고의지도 지성도 없는 신의 종복들이 지상으로 뛰쳐나왔을 때

 눈을 빛내는 별이 명계의 노래를 부르고과거의 공포가 몸을 일으켰을 때

 기어다니는 혼돈은 마침내 혀를 차며 지하로 사라졌느니

 역시나 인간은 나약하고 어리석고 단명함에

너희는 먼지일 뿐일지라.

 

I. 재의 세상

 

하늘을 덮은 눈은 뼈의 가루.

대지에 깔린 모래는 살의 재.

그대여숨을 삼가고 걸음을 살피라.

그것이 누구의 파편일지는 모르는 일이니!

 

 세상은 더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그래도 별들의 궤도를 지배하는 툴차의 섭리는 행성의 반면에 다시 햇빛이 스미게 했다별의 흉내를 내며 하늘로부터 대지를 주시하던 외신도 일출을 피해 서쪽으로 옮아갔다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하던 그의 권능이 사라지며 핏빛과 흑색뿐이던 하늘이 천천히 맑아졌다

 밤은 거의 가셨으되 여명이 채 오지 않은 시간그 짧은 사이가 인간이 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천상과 황폐를 가르는 선 위에 너울지는 노을의 전조 너머맑은 흑청색 공허에 새긴 찬란한 은하수의 새벽만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는 어제의 황혼이 이르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별을 잃은 점성술사인가그러나 그는 인간은커녕 잘 만든 석상에 가깝게 보였다돌덩이가 아니라면 어찌 인간이 십수 시간 동안 머리카락 하나 흔들지 않을 수가 있는가

 지평선 위로 여명이 기어오르는 때에야 그는 마침내 자신이 석상이 아님을 증명했다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인형의 관절이 움직이듯 혼자 벌어진 입에서 기이하게 공명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노인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기도 한 기괴한 목소리였다

인간의 해가 지고 있네벗이여마침내 기나긴 해가 역전하지 못할 하지의 첨단에 도달하고 말았네이제 남은 건 끝없는 동지를 향하는 내리막이야.”

자네의 혈관에 흐르는 절반의 피가 그것을 말해주나 보군그렇다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이제 어찌하겠나이 죽은 땅에 얼마나 오래 남을 셈인가?”

얼마나 오래.”

 혼자서 대화하듯 아리송하게 읊조린 남자는 목을 꺾어 서쪽을 바라보았다그림자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 가운데서 애꾸의 눈동자가 칙칙한 광휘를 흘렸다흑황색의 사이로 형언할 수 없는 빛을 가진 그것은 인간은 물론땅 위아래의 어떤 종족에도 허락되지 않은 섬뜩한 색채였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꺾은 채로 말을 이었다

비록 내 피의 절반은 이 땅의 것이지만그런 나에게도 시간의 개념은 이따금 모호하네내가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을 자네에게 어찌 표현하기란 조금 어렵군하물며 자네가 드림랜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지금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나.”

그래그럼 언제라도 그 땅을 떠나는지 아닌지나 말해보게보인다면 말이야.”

그것은 보이네그러나 그 역시 모호하군어디로 어떻게 떠나는지도 알지 못한 채그저 떠난다는 것만 알겠어세 번한데 자네의 시간 개념으로 따진다면 나는 일곱 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떠난 적이 없으니

아아신만이 아시는 일이라는 게군.”

어느 신이 아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남의 신앙을 조롱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네헨리.”

 키득거리며 웃은 남자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썩은 회색 머리칼이 발치 아래그림자 속으로 길게 늘어졌다햇빛에 사라지는 별빛들이 그를 마지막으로 굽어보았다놀랍게도 그는 모독적으로 아름다운중성의 젊은이처럼 보였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에 말투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래언젠가혹시나나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드림랜드와 세상의 경계에서 백은 기둥의 탑을 찾게그 근처라면 나의 뜻을 거스르고 자네를 속일 자가 몇조차 안 될 것이고그중 자네의 혈통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쪽은 신이 아닌 이상 없을 걸세.”

고맙군나에게는 신이라면 나를 속일 수 있다는 말로 들리지만… 잊지는 않겠네언젠가 다시 보게 되길 고대하지그때까지 외신 숭배자를 작작 좀 죽이게나.”

고려는 해 보지그럼.”

 껄껄 웃으며 혼잣말을 마친 남자는 고개를 휙 숙여버렸다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주위는 이전의 침묵보다도 더 적막해졌다

.”

 하늘에서 별들이 지고 해가 뜨고 있었다낮 – 누군가 죽여도 그를 위해 별이 지는 것을 볼 수 없는 시간이다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태양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그래서 그는 조용히 복잡하게 얽힌 폐허의 미로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자가 그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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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글도 써봄. 크툴루 신화풍 글이 써보고 싶어져서, 몬무스 찍먹하고 쓰기 시작했어.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