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대악마시여.”


 그로부터 며칠 후, 오늘도 어김없이 부름이 들려왔다. 인간들에게 비현실적인 존재를 상상하는 건 금기시되는 행위였지만, 어디에나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류는 있는 법이었다. 


 한가롭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펠리아트는 테이블에 팁을 올려두고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가게문을 나서자마자 옥좌에 강림했다. 


 “하찮은 인간이여, 소원을 말하라.”


 펠리아트를 부른 소녀는 진짜로 만남이 이뤄질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펠리아트를 보았다. 


 “대악마 남색의 절망 펠리아트가 네 소원을 이뤄주마.”


 펠리아트는 상대가 갓난아이건 다 늙어 죽어가는 노인이건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나 경험, 성격 등과 관계 없이 영혼의 가치는 평등했다. 


  “아,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난다 한들 도망칠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다. 자, 소원을 말해라.”


 소녀는 주저앉아 연신 눈물을 흘렸다. 턱은 멈출줄 모르고 떨렸고, 폐는 탐욕스럽게 공기를 탐했으며, 코에선 물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이윽고 소변까지 지리기 시작한 소녀에게 펠리아트는 한걸음 더 다가갔다. 


 “도, 돌려보내 주세요!”


 이런 경우 펠리아트는 돌려달라는 소원을 수락하고 영혼을 수확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렇게 해왔고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귀중한 소원을 이룰 기회를 무의미하게 날렸을 뿐이었다. 


 소녀가 어떤 인물인지 펠리아트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흥미본위든 우연한 기회든 옥좌까지 왔다는 건 그렇게까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는 뜻이었고, 그걸 이뤄주고 영혼을 수확하는 것이 펠리아트의 업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그러나 오늘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하고 수 천 년. 펠리아트는 유래 없는 자비를 배풀기로 했다. 


 “앞으로 네가 다시 한 번 이곳에 왔을 때, 너는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영혼을 잃게 될 거다. 더불어 너의 5대손까지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 대가로 너의 영혼마저 거두어 갈 것이다.”


 펠리아트는 약정의 증표로 소녀의 배에 낙인을 찍었다. 


 “이것은 앞으로 너의 삶을 구속할 낙인이다. 언제나 이것을 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거라.”


 소녀는 공포에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신 이곳에 오지 말거라.”


 펠리아트는 그렇게 말하고 소녀의 기억의 일부를 지운 후에 옥좌에서 추방했다. 이로서 소녀는 조건부이긴 하나 영혼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것이 결코 행복을 담보해주진 않을지라도. 


 옥좌에서 내려온 펠리아트는 아지트로 향했다. 오늘은 흥이 깨졌으니 책을 읽기보단 잠을 자고싶었다. 


 아지트로 향하던 중 펠리아트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지나다니는 인간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펠리아트가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라고 한다면 예의 그 청년밖에는 없었다. 


 “아,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청년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펠리아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펠리아트는 살짝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적당히 넘어갔다. 


 “뭐지?”


 “혹시 이 근방에서 마족 못 보셨나요?”


 “그걸 왜 나에게?”


 청년은 멋쩍은듯 웃으며 말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면목 없네요.”


 솔직하게 사과한 청년은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펠리아트를 지나쳐 다음 사람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 


 펠리아트는 이제 마음 편하게 아지트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대로 돌아가면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마족은 왜 찾고 있는 거지?”


 청년은 반색하며 다시 돌아왔다. 


 “실은 제가 그 분한테 실례를 저질렀는데 제대로 사죄를 하지 못해서요. 다시 만나서 사죄를 하고 싶어요.”


 펠리아트에겐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청년은 딱히 무례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마족도 손을 대지 않고 넘어갔으니 인간에게도 좋은 일일 터였다. 


 그럼에도 구태여 슬럼에서 마족을 찾는 위험천만한 행위를 하는 청년을 보고 펠리아트는 황당함을 느꼈다.


 펠리아트는 더더욱 청년에게 관심이 갔다. 


 “별 생각 없을 터인데?”


 “그래도요.”


 펠리아트가 어떻게 말해도 청년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쯤이면 펠리아트의 정체를 알아챌법도 하지만 청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특징 같은 건 아느냐? 이 몸이 도와주겠다.”


 펠리아트는 영혼을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지만, 이번엔 대가 없이 도와주기로 했다.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 자체가 펠리아트에겐 대가나 다름 없었다. 


 “음. 그러니까······.”


 청년은 고민에 빠졌다. 무작정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있긴 하지만, 청년의 기억속엔 그 마족의 모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보고 들었던 음영과 음색만이 청년이 기억하고 있는 전부였다. 


 “솔직히 잘 기억나진 않네요. 그래서 찾고 있는 거기도 하지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청년이 펠리아트를 기억하고 있다면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라. 재미있구나.”


 펠리아트는 이대로 청년의 기억을 돌려주고 반응을 살피는 것이 재미있을지 아니면 찾는 걸 도와주는 척을 계속 하는 게 재미있을지 저울질을 해보았다. 


 “재미있어 보이니 도와주도록 하겠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


 펠리아트의 말에 청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고맙습니다. 좀 더 확실하게 알면 좋았을 텐데요.”


 둘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마족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나 슬럼에서 마족을 찾는 정신 나간 이들에게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있는 마족도 자기의 정체를 숨기는 판에 찾는 걸 도와주길 바라는 건 크나큰 사치였다. 


 “엉? 마족? 가서 뒤지고 싶으면 저기 5번가 초록색 현관문의 집이나 가봐. 젊은 처자 혼자 사는데, 마족이거나 창녀겠지.”


 머리가 모두 까지고 넝마로 이루어진 옷을 걸친데다 말을 할 때마다 악취가 풍기는 괴악한 사내였으나,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해주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문답을 마친 청년은 곧장 들은 곳으로 향했다. 펠리아트는 그런 청년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뒤늦게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그 마족을 찾는 이유는 뭐지? 사과를 한다고 했지만, 그 사과하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펠리아트의 물음에 청년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민하며 신음을 흘렸다. 펠리아트는 걸어가며 여유롭게 기다려 주었고, 청년은 그에 보답하듯 차분히 생각한 뒤에 답했다. 


 “실은 얼마 전에 기억에 공백이 있어서요. 혹시 그분이 연관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같이 있으면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물론 사과도 하고요.”


 “혹시 그 마족이 널 덮치려고 그런 거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거기까진 생각을 못해봤네요. 혹시 그렇게 되면 옆에서 말려주시겠어요?”


 바로 그 기억을 지운 장본인인 펠리아트는 말없이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펠리아트가 자신을 보자 자신도 고개를 돌려 펠리아트를 보았다. 


 “이 몸이 어디까지 도움이 될 진 모르지만, 그러도록 노력하마.”


 청년은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만으로 든든하네요.”


 둘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사내가 말한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한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여기는······.”


 청년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펠리아트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당연히 잠겨있었다. 


 “그렇게 막 들어가도 되나요?”


 청년의 물음에 펠리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서 열쇠를 꺼내 능숙하게 열고 들어갔다. 청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펠리아트를 따라갔다. 


 “설마 그, 성함을 몰라서. 아무튼 숙녀분의 집이었나요?”


 “펠리아트.”


 “네?”


 “이 몸의 이름이다. 모르면 불편하겠지.”


 갑작스런 문답에 청년은 혼란을 느꼈으나 금방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펠리아트 씨가 제가 찾던 분이셨군요.”


 “언제 눈치채나 보고 있었다.”


 청년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슬럼가의 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내부였다. 칠이 벗겨지거나 금이 가거나 하지 않았고, 물건이 어지럽혀 있거나 허름한 잡동사니가 있지도 않았다. 


 집안에선 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매일 시궁창 냄새를 맡고 사는 청년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집이 좋군요.”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군.”


 펠리아트는 인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대악마로 살아오며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을 봐왔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세상의 모든 것을 보았다.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전부 펠리아트의 손바닥 안이었다. 


 그렇기에 청년의 반응이 펠리아트에겐 더 와닿았다. 청년 같은 사람이 얼마나 희귀한지는 펠리아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났거든요. 목소리 라던가. 그래도 좋으신 분이라 다행이네요.”


 우둔하디 우둔하다. 청년은 조금도 펠리아트에게 적의나 경계를 보내고 있지 않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도, 이대로 마족에게 덮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어느 하나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채념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청년은 그저 펠리아트를 믿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사람이라. 이 몸이 그렇게 불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펠리아트는 철저히 본인의 흥미 본위로 살아갔다. 통상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을 뜻했고, 그렇게 본다면 펠리아트는 절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간만에 좋은 경험을 했다. 얼마만에 다른 사람과 얘기해 보는 건지 모르겠다.”


 펠리아트는 뭐라 말하려 하는 청년의 입을 막고 미간에 손가락을 짚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청년의 기억을 지우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암시를 걸었다. 청년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집에만 있는 거로 할까?”


 아지트의 소재가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다. 한동안 집에 있으면서 소문을 잠재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펠리아트는 차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낮에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뭔가 아쉽네.’


 평소라면 그거로 충분했을 터이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유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마치 해야 하는 일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너무 오래되어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펠리아트는 떨쳐내려고 노력하며 독서에 집중했다. 하지만 막 집중이 될 무렵마다 주전자가 끓는다던가, 밖에서 소란이 들린다던가, 책에 오타가 보인다던가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펠리아트는 이내 독서를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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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모에 좋아.


초월자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면 피곤하긴 할듯. 


다음편이 마지막이니까 기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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