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공주님

 

 

 

 

 

나의 이름은 데드맨.

 

죽지 못해 살아남은 시체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찾는다. 간단한 의뢰였다.

 

문제는 그것이 G구역 심층부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G구역 외곽, 그곳은 한 때 마천루가 있던 시내였다. 

 

하지만 100층을 넘던 빌딩은 모두 쓰러졌거나 구멍이 뻥 뚫려 언제든지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분명 언젠간 무너지리라.

 

그런 장소에, 납작 엎드려 있던 초로의 남자가 의안을 조정해 배율을 맞췄다.

 

“저기 있군.”

 

운석은 한 때 주차장이었던 장소에 떨어진 듯, 그 주위가 완전히 박살이 나

 

아직까지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 떨어질 거면 좀 가까운 곳에 떨어지면 어디 덧나나.”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 41분. 달이 뜰 때까지 1시간도 안 남았다.

 

“시간이 부족해……그렇다고 놓고 갈 수도 없고.”

 

만약 다른 하이에나들이 나타나 운석을 탈취해가면 의뢰는 실패한다.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이 시간에 돌아다니진 않을 테지만…….

 

그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먹고 튀는 수밖에.”


다리에 달린 EXO 스켈레톤을 가동시키자, 그것이 우웅 소리를 내며 파랗게 빛났다.

 

그가 마치 절벽을 뛰어다니는 염소마냥 껑충껑충 뛰어 건물잔해를 돌파했다.

 

‘여기는 이글. 데드맨, 회수는 언제 끝나나?’

 

“좀 기다려. 이제 막 찾았다.”

 

‘달이 뜰 때까지 55분 남았다. 샘플이라도 좋으니 꼭 회수해라.’

 

“앉아서 커피나 빨고 있어.”


그가 무전 통신을 끊고 주차장의 입구까지 다다랐다.

 

한 때 자동차였던 고철들이 이곳저곳에 있어서, 꼭 폐차장을 연상케 했다.

 

이런 곳일수록 조심해야한다. 엄폐물이 많다는 건 뭐가 됐든 숨어있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데드맨은 EXO 스켈레톤을 끄고 돌격소총을 들었다.

 

“레이더 가동. 핑 타임 10초.”

 

그의 등에 매달린 작은 안테나가 철컥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띠이- 띠이- 10초 간격으로 미세한 소리가 울렸다.

 

“……괜찮겠지.”


저벅저벅, 그가 천천히 운석에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고 사방에 총을 겨누며 계속 걸었다.

 

“콜록, 콜록! 씨발, 이러다 암에 걸려 먼저 죽겠네.”

 

운석에 가까이 갈수록 연기도 심해졌다. 

 

그는 산소통과 연결된 방독면을 착용하고선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의……다 왔어. 거의 다…….”

 

그가 운석공에 다다랐다. 그리고 안쪽을 보았다.

 

“뭐야, 없잖아?”

 

없다.

 

그가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운석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첫째, 운석이 땅에 닿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둘째, 누군가가 이미 와서 가져갔다. 그는 두 번째 가설이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허탕-”


띠이-띠이-띠이-

 

그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가 레이더에 감지되었다.

 

“거기 있는 거 안다. 무기 버리고 투항해.”

 

연기가 자욱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무언가가 저기 서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인간? 아니, 다른 인간이 이 시간에 돌아다닐 가능성은 낮다.

 

인간이 아닌 경우, 답은 간단하다. 

 

“레이더, 추적 모드로 변경.”


그의 명령에 레이더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크륵, 크르륵.”


“……뭐야, 서번트였나.”


그것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었다.

 

피부는 검게 썩었고, 눈알이 있어야 할 장소는 텅 비었다. 온 몸에 털이 없고

 

몸은 기형적으로 말라 비틀어졌다. 형체만 인간일 뿐. 그가 서번트를 겨누었다.

 

“하여간 되는 게 없어.”

 

푸슉! 총알은 정확히 미간을 꿰뚫었다. 서번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좋아……의뢰는 실패다. 어서 돌아가야겠군.”

 

그가 의뢰인인 이글에게 무전 통신을 시도했다. 

 

“이글, 여기는 데드맨. 운석은 사라졌다, 반복한다. 의뢰 실패다, 운석이 없어졌다.”


‘-----글----탈----거기----’

 

“뭐라고? 안 들린다, 이글. 다시 말해라.”


‘탈출-----’

 

탈출.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띠이-띠이-띠이-띠이-

 

레이더가 갑자기 미친 듯이 온 사방을 가리켰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좆됐네, 씨발.”


연기가 걷히며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0, 30, 50……100……점점 늘어난다.

 

서번트 사이로 질럿이 보였다. 그것들은 서번트와 닮았지만 훨씬 덩치가 크고

 

지능이 남아있었다. 손에는 건물잔해로 만든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염병할 신이시여.”

 

“크오오오오-!!”


질럿의 외침과 동시에 서번트들이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가 EXO 스켈레톤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뭐 이리 많은 거야?! 이 동네 놈들이 다 모였군 그래!”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째서인가 가는 길마다

 

서번트들이 있었다. 아직 달도 뜨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모인 거지?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는 당장 그것들이 없는 길을 골라 도망쳤다.

 

“이글! 이글, 여기는 데드맨! 왜 이럴 때 무전도 안 되는 거야!”


전력 부족. 작동 정지합니다. 그것은 사형 선고였다.

 

EXO 스켈레톤의 전력이 다했다. 그리고 놈들은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뭐, 그래.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다만 이르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그래, 어차피 난 시체야. 이미 뒈졌는데 뭐 무서울 게 있어?”

 

그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도망쳐봤자 따라잡힌다. 그럴 바엔 한 놈이라도 더 많이 길동무 삼는 게 나았다.

 

“덤벼. 나 혼자 죽진 않을 테니까.”

 

“크라라아아아-!”

 

서번트들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문이 좁은 탓에 다 들어오지 못하고 문에 끼어 막혔다. 

 

“뒈져!!”


드르르륵-! 소총이 화염을 뿜으며 서번트들의 몸을 꿰뚫었다.

 

죽은 서번트의 시체는 또 다른 방어벽이 됐다.

 

드르르르륵- 티잉!

 

“후……총알 아낄 필요 없다는 건 좋군.”


총알이 다 떨어졌다. 평소라면 다른 무기를 더 들고 왔을 테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덤벼, 그래 덤비라고. 날 죽이고 싶어? 이 염병할 시체 새끼들아!”

 

“크아아아아-!”


시체를 뚫고 서번트들이 들이닥쳤다. 

 

데드맨이 한 손에는 나이프, 한 손에는 방금 주운 쇠파이프를 들고 다가오는

 

서번트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뒤로 물러나면서, 한 놈씩 대가리를 박살냈다.

 

“하, 그래! 덤벼! 더 들어와, 너희 역겨운 새끼들 대가리를 박살내주마!”


그렇게 외치면서도 그는 정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잔해로 막혔고, 유일한 입구는 서번트들이 틀어막았다.

 

“억!”


서번트 하나가 그의 등에 달라붙었다. 이어서 다른 서번트들이 달려들어

 

그를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웅크리는 것뿐이었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허무하게 사라질 뿐.

 

둔탁한 고통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지옥도 천국도 이미 없어졌지만,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그리고 그 때야말로 꼭 말해주겠다고.

 

 

 

 

 

 


 

 

“……쿨럭, 쿨럭…….”


그렇다, 드디어 죽었다. 마침내 죽어버렸다, 데드맨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어째 죽었는데도 몸이 아팠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많아 보이진 않지만, 달이 저 너머에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그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달을 보아선 안 된다.

 

“내가 어디 있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숨을 멈췄다.

 

끝도 없이 많은 서번트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마치 절을 하듯이.

 

“이게 다……뭐야, 이게 다 뭐냐고……?”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왜 나한테 절을 하는 거지?

 

“이, 것 의식. 너, 제물.”


쩍쩍 갈라지고 쉰 목소리가 들렸다. 거적을 뒤집어 쓴 서번트가 말한 것이었다.

 

말하는 서번트. 사제, 프리스트. 서번트 중에서도 가장 보기 드문 놈.

 

“달. 공주님. 너 제물. 바친다.”


“이 쌍놈의 새끼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그가 일어서려 했지만 팔다리에 사슬이 묶여있었다.

 

“오오, 보아라, 보아라, 보아라!”

 

프리스트가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생물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생물이라 부를 수도 없었고, 애초에 지구의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색으로 반짝거리는 부정형의 무언가가 나타나

 

그를 보았다. 아니, 눈이 없으니 정말 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순 없었다.

 

이거다. 이게 그 운석이다, 데드맨은 보자마자 확신했다.

 

“제물, 바친다! 제물! 제물, 오오! 오오, 공주! 달! 공주!”


“…….”


차라리 맞아 죽는 게 나았다.

 

아니, 어차피 그는 곧 죽는다. 너무 많이 맞은 탓에 피가 멈추질 않았다.

 

아마 10분, 어쩌면 5분 정도 지나면 다시 의식을 잃는다. 그 다음……죽는다.

 

“일어나질 말 걸 그랬지.”


푸슈욱-

 

촉수가 그의 이마를 꿰뚫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두엽과 접촉했다.

 

읽는다.

 

마치 컴퓨터가 파일을 읽듯, 데드맨이라는 남자의 기억을 읽는다.

 

인간.

 

지구, 땅, 생명.

 

여자.

 

강한 기억. 뚜렷한 기억, 여자의 기억이다. 인간 암컷의 기억.

 

흥미를 느낀다. 그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의 감정과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리리리…….”

 

이윽고 그것은 모방했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인간의 형태를 흉내 낸다.

 

인간 여성을 닮은 무언가. 데드맨은 본능적으로 혐오를 느꼈다.

 

“넌 뭐야…….”


“ㄷᅟᅡᆯ 고ㅇ주.”

 

어설프게나마 따라한 인간의 단어로 말한다.

 

부정(不定)하고 또 부정(不正)한 존재가 말했다.

 

“아ㄹ고시다”

 

“제물을! 더 많은 제물! 공주께 많은 제물을!”


프리스트가 외쳤다. 이윽고 그것은- 그를 집어삼켰다.

 

이번에야말로 죽는다.

 

하지만 곧 그는 깨달았다. 아직 죽음이 찾아올 때가 아니라는 것을.

 

찢어지고 부서진 육신에 스며든다. 마치 깨진 바위 틈새에 물이 스며들 듯.

 

“가지, 고, 싶어.”

 

“내 몸에……내 몸을……!”


비명 소리가 울려퍼진다. 서번트들의 비명 소리 너머로, 달이 떠오른다.

 

본래 죽었어야 할 남자는 달을 보았다.

 

이미 달이 아니게 된 달을.

 

그리고 이젠 인간이 아니게 된 자신의 몸을.

 

이것은 죽었어야 할 남자의 이야기.

 

이것은 부정한 것의 이야기.

 

이것은.

 

한 남자와 공주의 이야기다.

 

 

 

 

 

 

 

 

 

 

 

쓸 거 없어서 단편으로 써봤음

코즈믹 호러에 로맨스를 끼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