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뼈빠지게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참깨라면을 먹으며 폰겜을 하는 몬붕이.



그 몬붕이의 머리 너머를 날아가는 새 위에 뭉실뭉실 떠다니는 거대한 구름.


그 구름이 얇게 깔린 서리처럼 보일 만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천천히 유영 중인 인공위성,

그리고 그 인공위성의 머나먼 뒷편에 어렴풋이 보이는 달이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 태양계,

태양계의 위치도 찾을 수 없는 방대한 은하, 은하가 수억개 모여서 만들어진 은하 필라멘트, 그 모든게 담겨져 있는 우주.


우주적 존재인 마왕과 용사, 그리고 몇몇 신들 외에는 누구도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공간인 [우주]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무색하게 우주가 모래알처럼 깔려 있는 사상의 지평선을 혹자는 평행우주, 라고 부른다.


그 평행우주마저도 상위 차원인 4차원에는 원자 하나만큼의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그 4차원을 무한히 초월하는 5차원이 있다는 이론인 초끈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무한과 그것을 뛰어넘는 무한이 계속 반복되는, 감히 그 규모를 논하는 것조차 의미없을 정도로 끝없이 올라가는 레이어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만신전의 중심에서



마치 몇 번이고 돌려본 드라마를 또다시 보는 듯 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무한한 차원을 공허하게 내려다 보는 한 존재가 있다.


혹자는 그녀를 신(神)이라 불렀으며, 어떤 소설작가는 그녀를 아자토스, 라는 의미를 모를 이름으로 불렀으며, 자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한 마왕은 그녀를 '필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자신에게는 그저 먼지 알갱이와 같은 주신이라는 신의 영향으로 챗바퀴 굴러가듯 짜여진 용사와 마왕, 죽고 죽이는 관계에 왠지 모를 슬픔과 염증을 느껴가던 찰나에 자신의 예상을 멋지게 부숴버린 새로운 마왕의 등장에 열광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었고 지금도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으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절대자의 입장이란게 마냥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드는 그녀였다.


옷깃만, 아니 눈길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던가.


공허한 눈으로 바라본 한 청년은 매일매일이 격무에 찌달리는 고된 삶이었지만 그 눈동자와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를 삶의 열정과 내일을 향한 기대감,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한없이 공허하던 절대자의 눈에 총기가 서서히 돌아오고, 신 마왕의 탄생 이래 처음으로 소망이 생겼다.


'저 청년과 같이 [삶]이라는 것을 체험해보고 싶다'


절대자는 자신의 전능한 힘을 바탕으로 청년의 취향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매일 녹초가 되어 귀가하는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는 키키모라가 취향이라는 사실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마음을 굳힌 절대자, 아니 키키모라는 망설이지 않았다. 만신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헤아릴수 없이 강대한 에너지가 작고 아름다운 인간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서류더미와 씨름을 하느라 허리가 욱신거리는 몬붕이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옘병... 랭겜전 돌릴 기운도 없네."


그렇게 자기 집 층 앞에 도착한 몬붕이는, 한 키키모라가 자신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키모라는 몬붕이의 얼굴을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일 잘하는 가정부 안 필요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