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반복)




작업할 거리가 많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끝내고, 다음 날은 휴일이기에 오늘은 푹 잘 수 있겠다며 침대에 몸을 던져 잠에 빠진다.


" 일어나! "


짜-악.


그러나 누군가가 뺨다구를 후려쳐 당신의 단잠을 방해한다. 순간 울컥한 당신은 웬 놈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번쩍 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주변을 확인하려던 당신은, 어느샌가 자신이 집의 침대가 아닌 전혀 다른. 푸르른 초원의 들판 한가운데에 누워있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여긴? 이라는 말을 들었는가 어떤가, 자신의 뺨을 후려쳤을 거라고 생각되는 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 이제야 일어났네. 나참… 얼마나 피곤했으면 아무리 불러도 안 깨고 그래? "


사과 한 마디 없이 당당한 태도로 나오는 그녀에게 어이 없음을 느끼는 당신은 무어라 따지려 했으나, 그녀는 다짜고짜 당신의 손을 붙잡고 끌어당긴다.


" 깼으면 얼른 일어나. 갈 곳이 아주 많으니까! "


어딜? 이라는 물음에 그녀는 덧니가 매력적이게 보이는 입을 씨익- 웃어보이더니, 명랑하게 말했다.


" 어디긴, 놀러가야지!! "



그렇게, 누구인지도 모를 그녀와 당신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빨리 와! 빨리! "


계속된 재촉에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니, 반 강제적으로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더없이 푸른 초원을 뛰어다니며 경사진 풀밭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굴러내리곤, 더러워진 옷을 씻기 위해 계곡으로 가 신나게 물장난을 쳤다.


분명 생판 모르는 초면인 그녀일 텐데. 신기하게도 붙임성이 좋은 그녀가 싫지만은 않다고, 당신은 그리 생각했다.


실컷 즐긴 뒤에 나와보니,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되어있자 그녀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옷을 금방 마르게 했다. 당신은 이거면 빨래 걱정이 없겠다는 소박한 감상을 표했다. 그녀는 그치~? 라며, 너 다운 반응이라고 웃었다.


어쩐지 당신을 잘 아는 듯한 말투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지를 물으니. 그녀는 그것에 관해선 말을 얼버무린다.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여서 더는 묻지 않았다.



옷은 말렸지만 내려간 체온을 올릴 겸 햇살이 잘 드는 바위 위에서 낮잠을 즐겼다.


햇살을 받을 때의 해방감이 좋다니 어쩌니. 일광욕은 전라로 즐겨야 제맛이라며 옷을 벗고 벗기려는 통에 생겼던 잠깐의 실랑이 조차도, 잠이 부족해서 생긴 피로 까지 날아갈 정도의 상쾌함을 주었다.


언제 부터 였을까.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스치는 느낌에 잠에서 눈을 뜨자, 어느새 서로의 숨결이 마주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옆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갑작스레 얼굴이 보여서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한 당신은, 입을 틀어막아 겨우 비명을 참아냈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그녀를 깨우기도 뭐해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그녀의 외형을 찬찬히 뜯어본다.



그녀는 당신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사이임은 틀림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당신에게 익숙한 모습이며, 또한 사람이 아닌 느낌이 든다.


기시감을 느끼며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던 당신은, 지금 보니 그녀가 아무 것도 안 입은 알몸이란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여 소리를 내고 말았다.


" 으응~…? "


소리에 잠이 깨버린 그녀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그러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히히, 하고 웃었다.


자신이 알몸이란 사실은 부끄럽지 않은지 묻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 너랑 있는데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


당신은 어쩐지 더워진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게 일어난 그녀와 당신은 여유롭게 걸으며 산책을 했다. 해가 중천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그녀가 슬슬 마을에 들리자고 했다. 당신은 여기에 마을이 있었냐며 반문했다. 그녀는 고양이 처럼 웃으며 말했다.


" 아직 즐길 거리는 많이 있으니까, 지쳐 쓰러질 때 까지. 각오해둬? "


매일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던 당신은, 오늘 만큼은 하루가 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진입한 당신은 마치 판타지 세상에 온 듯,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것들이 마을에 가득한 것을 보며 입이 벌어져라 놀란다.


동네를 뛰어다니는 수인족 아이들, 거리를 노닐며 수다를 떠는 스큘라 부인들,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모험가들, 무기를 파는 리저드맨, 수상쩍은 약물을 파는 마녀나, 점집을 운영하는 망토를 두른 그림자 등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보았다.


그 모든 곳들을 돌아다니며 오락용 물품이나 커플용 장신구를 잔뜩 산 그녀는 당신에게 장난을 치며 활짝 웃는다.


이따금 방어구라고 입은 건지 의심스러운 차림의 이종족 모험가가 지나갈 때면, 당신이 한눈을 판단 사실에 그녀가 토라져 삐진 척을 하다, 당신의 사과를 듣고서야 화를 풀고는 가볍게 혀를 내밀며 용서한다며 연인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숨을 돌리기 위해 레스토랑 같은 카페에 들어선 그녀와 당신은, 커플용 파르페를 주문하여 하트 모양의 빨대를 입에 물고 음료수를 마셨다.


파르페에 꽂힌 과자를 입에 물던 그녀는,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스틱형 과자 끄트머리를 입에 문 채 당신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챈 당신은 주변에 누가 볼까 걱정했지만, 주변은 더하면 더했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듯해. 과자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은 집중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 처럼, 당신은 줄어드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점점 가까워져가는 그녀의 얼굴과 숨결이.


이 순간이 즐거운 듯 포근한 햇살에 비쳐 투명한 구슬 마냥 비치는 맑은 눈동자와, 유리 조각이 깨어져 퍼져나가는 것 처럼 빛이 반사되는 눈망울이.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띄운 그녀의 사과 같은 얼굴에 홀리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겹친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한 채 카페에서 나선 당신과 그녀는 어느덧 뉘엿뉘엿 져가는 석양을 바라본다.


그녀와 자연스럽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게 된 당신은, 짧지만 즐거운 이 순간이 끝나감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말 없이 석양을 바라보다 살며시 손에 들어간 힘은, 그녀에게 전해져 그녀 또한 말 없이 꼬옥 손에 힘을 준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그녀에 관한 이야기, 당신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로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맞물리지 않는 기분이 들었으나. 그녀도 당신도,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당신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흥미 깊게 들어주었고, 당신도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단지 그것 뿐인데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각에 약간은 대하기 어려웠던 그녀에게 먼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적당히 장난을 치고나서 어깨를 마주대어 쉬는 당신과 그녀.



해가 완전히 저물어 어두워진 마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조명을 키기 시작해. 맛있는 냄새와 밤 무대 공연의 퍼포먼스를 펼쳐대었다.


잠시 야경을 구경하던 그녀는 기운을 차리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 이제 충분히 쉬었지? 달릴 준비됐어? "


그녀가 내미는 손을. 당신은 힘차게 붙잡는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노상 음식점의 도마뱀 구이나, 묘하게 생긴 쌍알 사탕, 기계 부품 처럼 생긴 초콜릿 등을 휩쓸며 가게 별로 준비된 오락에서 경품을 따내기도 하는 등.


당신과 그녀는 지루할 틈 없이 알찬 시간을 보낸다.


모든 코스를 지나쳐, 대공연장의 온갖 종족들이 펼치는 기예와 춤사위를 구경한 후.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마을에 인접한 언덕으로 향한다.


그곳은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야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그녀가 진짜는 다른 것이라고 답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기다리는 동안 앉아있으라는 그녀의 말에 언덕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사뭇 쓸쓸한 표정으로. 오늘 어울려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다소 느닷없는 얘기지만, 당신은 나야말로 고마웠다고 답했다.


당신의 말에 그녀는 살며시 미소 짓는다.



" 있지. 너는 날 처음 볼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널 보고 있었어. "


어떻게?


" 아까 갔던 점집 있지? 거기서 파는 수정구는, 운명의 상대가 보인다구 해. "


수상쩍게 생긴 거기?


" 수상하긴 하지? 그래도 거기 꽤나 오래동안 해온 전통있는 집이야. 그 수정구 덕에 이렇게 너를 만났고. "


기쁘긴 한데….


" 응. 믿을지 말지는 자유지만. 나는 항상 네가 나를 생각하던 것을 기억하거든. "


내가?


" 너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


음… 현실은 아니지?


" 맞아. 여기는 네가 아는 세계가 아니야. 정확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사념이 모이는 곳. "


사념?


" 내가 뭘로 보여? "


그녀의 뜬금 없는 질문에, 당신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려 했다.


하지만 이전 보다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지면서, 원래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 나는 아마도 네가 생각하던 이상형에 가까운, 보고 싶은 존재일 거야. "


당신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당신은 지금껏 그녀에게서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 내 이름?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잖아~ 난 ―――야. "


기억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설명하니.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 그건 네가 ' 바라는 이상형 ' 이 아니라, ' 나 ' 를 바라게 되어서 그럴 거야. "


그녀는 그리고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구. 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녀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 그렇게 용 쓰지 않아도 돼. 내가 ' 누구 ' 일 필요는 없어. ' 나 ' 라는 것만 기억해주면 되니까. "


당신은 그게 무슨 말인지 물었다.


" 글쎄~? 나는 정해진 형태가 없거든. 어찌보면 도플갱어 같은 걸지도? "


그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은하수가 흐르는 밤 하늘에 떠있는 달을 올려다 본다. 어딘가 초연한 모습이다.



" 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생각해? "


조용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즐거웠지만,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 나도 아쉬워.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기뻐. 왜냐하면. "


그녀는 당신을 마주보며, 보이진 않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만난다는 것 조차 불가능의 영역에 있던 것이,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했다는 게 내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니까. "


그녀는 그 말을 하고는 당신 곁으로 다가왔다.


" 너는 어때? 지금, 행복해? "


당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려 했으나,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당신의 입술을 살며시 가로막는다.


" 여기서가 아냐. '거기서' 행복한 지 묻는 거야. "


당신은 답하지 못했다.


" 매 순간 순간이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서도, 즐거울 때나 기쁠 때는. 제대로 즐기길 바래. "


될 수 있으면 그러겠다고, 당신은 약속한다.


"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어떨 지는 모르지만… 이것 만은 기억해줘. "


그녀는 당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 힘들거나 슬플 때, 나는 언제나 너를 지켜 보고 있을 거란 것을.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밤하늘을 향해 커다란 굉음을 울리는 불꽃이 쏘아올려진다.


퍼엉-. 귀를 찌르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검은 도화지를 메운다.


" 어때? 이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


당신은 말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 응, 그 표정이면 충분해. 가끔 있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니까. 가장 화려하거든. "


그녀는 그리 말하며 당신의 어깨에 몸을 기댄다.


당신도 어깨를 맞대며 몸을 실어, 불꽃놀이를 조용히 구경했다.


" 마지막 불꽃이 쏘아지면, 너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야. 이대로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어. "


당신은 그녀의 말에 집중한다.


" 실수를 하거나, 과거에 있었던 일을 후회하고, 앞으로 있을 일을 두려워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줘. "


그녀는 당신의 손을 꼬옥 잡는다.


" 네가 바라는 ' 나 ' 는, 항상 너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 당신의 뺨에 입술을 맞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 불꽃이 터졌다.










아침이 찾아와 햇살이 비치는 방 안, 당신은 즐거운 꿈을 꾼 듯 개운한 상태로 눈을 뜬다.


어쩐지, 오늘 하루는 느낌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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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써보네. 몬챈콘 작업하고 노래 듣다가 노래가 좋아서 급하게 휘갈겨 봤어.


하루를 열심히 사는 몬붕이들에게도, 어디선가 응원하는 몬무스가 있지 않을까?


여기서 쓴 몬무스는 외형을 정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생각한 그 모습을 대입해서 봐주면 좋겠다.


여기까지 봐줬다면 정말 고맙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