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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시간이 흘렀어.

소년은 그 셋에게 많은걸 배웠지.

중년의 남자, 릭에게 소년은 루갈에 대해 배웠어.

루갈의 약점이 은이라는 것부터 은이 감정에 오염되면 효과가 없다는 것, 루갈의 습성과 소통방식도 배웠지.

덩치 큰 남자, 루크에게 소년은 근접전을 배웠어.

작은 단검부터 큰 도끼까지 모두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는법을 익혔지.

쾌활한 남자, 잭에게 소년은 사격을 배웠어.

권총부터 산탄총, 소총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들을 정확히 사격할수 있게 되었지.

모든걸 스펀지처럼 흡수한 소년, 아니 청년은 오래전 그날 잊어버린 자신의 본명 대신 렐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

렐은 이제 세 남자와 동행하며 루갈을 사냥해나갔지.

그 네명은 여러 지역에서 루갈을 사냥했어.

안개 초원의 푸른 무리, 트로스트랜드의 잿빛 무리, 피의 골짜기의 외로운 루갈...

전부 다 이 네명이 사냥한 루갈들이었지.

하지만 그 네명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어.

그날 렐의 마을을 습격한 그 무리를 궤멸시키는것.

그렇게 무리의 흔적을 조사해가며 계속 무리를 추적하던 어느날, 무리에서 제일 앞서 나가는 발자국, 다시말해 리더의 발자국이 바뀌었어.

그 후로 무리의 흔적은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어.

이전엔 추적하던 말던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면, 이젠 노골적으로 흔적을 남겼어.

사냥해 먹고 남은 시체를 나무에다 걸어놓는다거나, 아직 피가 흐르는 시체를 들고 달려 핏자국으로 간길을 표시한다던가 하는식으로 말이야.

마치 따라올테면 따라와보라며 놀리는것 같았지.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일단 그렇게 대놓고 흔적을 남겨 추적은 훨씬 쉬워졌고 그 네명은 마침내 무리와 마주치게 됐어.

무리와의 싸움은 치열했어.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루갈을 사냥해온 넷이라도 이번 싸움은 꽤나 벅찼지.

회색 숲의 무리에 거의 비견될 정도의 물량에, 넷은 점차 지치기 시작했지. 

가장 먼저 당한건 루크였어.

도끼로 루갈들을 베어내던 루크는 그만 뒤의 루갈에게 기습당해 목을 물렸어.

그의 모습은 그대로 산처럼 쌓인 루갈들 속으로 사라졌지

평소에도 루크를 아들처럼 아끼던 릭은 그의 죽음에 분노했고 평정심을 잃었어.

그는 루갈들을 미친듯이 베어나갔어.

자신의 검이 감정에 물들어 검게 오염되어가는것도 모르고.

릭이 몇번째인지도 모를 루갈을 베었을때, 릭의 검은 완전히 오염되어 루갈에게 상처도 내지 못했지.

결국 릭 역시도 루크처럼 최후를 맞이했어.

두명을 잃은것에 슬퍼할 틈도 없이, 우두머리가 나타났지.

노골적으로 흔적을 남겨, 넷을 여기까지 유인한 그 녀석이.

우두머리는 암컷 루갈이었지.

그런데 렐은 그전에 그 루갈을 본적이 있던것 같았어.

분명 오늘 처음보는 루갈이었지만, 어딘가 낯익고 그리운 기분이 들었지.

그때, 우두머리가 루갈들에게 명령했어.


"저 둘은 내버려두고 회색 숲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더 시간과 목숨을 허비해선 안된다!"


명령을 들은 루갈 무리는 빠르게 철수했어.

둘은 어떻게든 한마리라도 더 잡아보려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

남은건 루갈의 시체와 형체도 거의 남지않은 두 사람의 시체뿐이었지.

살아남은 잭과 렐은 죽은 둘의 시체를 수습해 매장해주었어.

잭은 렐에게 오열하며 더는 안될것 같다고 했지.

더이상은 자긴 버티지 못할것 같다고, 이젠 그냥 쉬고 싶다면서 말이야.

렐은 그런 잭을 다독여주며 자기 혼자서라도 그녀석들에게 복수할테니 편히 쉬라고 했지.

렐은 발걸음을 옮기다 뒤를 돌아보고 잭에게 손을 흔들었어.

잭은 약실에 남은 탄환을 확인하다 애써 웃으며 렐에게 손을 흔들었지.

렐이 다시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가 한번 들렸어.

렐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


그 뒤로 렐은 혼자서 회색 숲까지 이동했어.

겉으로는 멀쩡해보였지만 안쪽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어.

눈은 완전히 탁해졌고, 표정은 점차 사라졌지.

말 그대로 이번 사냥을 끝마치겠다는 일념 하나로만 움직이는 기계같았어.

이동하는 길에 루갈을 몇번 만나긴 했지만, 모두 머리에 은탄이 박힌채 쓰러졌어.

얼마 지나지않아 렐은 회색 숲 근처의 한 마을에 도착했어.

일단은 좀 쉬는게 낫겠다고 생각한 렐은 마을의 여관에 들어갔어.

여관에선 사람들이 술을 마셔대고 있었지.

그중 하나가 렐에게 다가왔어.


"옷차림을 보아하니 사냥꾼같은데 여긴 왜 오셨나?"


그사람은 렐이 별로 달갑지 않은것 같아보였어.


"...회색 숲의 무리를 잡으러 왔소."


그말을 듣자, 여관에 있던 모두가 비웃었어.

사냥꾼인줄 알았는데 미친놈이 왔다고, 농담 하나는 재밌게 잘하는놈 같다고, 자살하고싶다면 그냥 편하게 자기가 죽여주겠다고 떠들어댔지.

렐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방에 들어갔어.

앞으로 있을 사냥에 대한 준비를 위해서.


사냥의 준비는 꽤 오래걸렸어.

루갈들이 머무는 곳은 아니 추적에 대한 부분은 빼더라도 준비해야할게 꽤 됐지.

이전의 싸움에서 소모한 은탄들을 다시 구하고, 날이 무뎌지거나 부러진 무기들을 교체하는데만 며칠이 걸렸어.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그날이 됐어.

렐은 일몰 직전에 숲으로 향했어.

수많은 노란 눈들이 렐을 바라봤지.

그렇게 마지막 싸움이 시작됐어.


숲은 아수라장이 됐어.

들리는건 총성과 루갈들의 하울링 뿐이었고 보이는건 렐의 총에서 나오는 총구의 화염과 루갈들의 노란 안광, 사방에 튀는 피뿐이었어.

긴 전투에 탄약이 떨어져갔어.

처음엔 소총이, 그다음엔 산탄총...

그렇게 계속해서 싸우던 렐은 결국 검을 꺼내들었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루갈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있었지.

렐은 끊임없이 루갈들을 베어나갔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오른손엔 루갈의 이빨이 박혔고 왼쪽 어깨는 발톱이 쓸고 지나갔어.

그래도 상관없다는듯이 렐은 숲의 루갈들을 썰어나갔지.

시간이 꽤 지나고 어느덧 해가 뜰 때가 되자 얼마 남지않은 루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어.

렐이 해낸거야.

단신으로 회색 숲의 무리를 거의 몰살에 가까운 수준으로 소탕해낸거지.

렐은 다 끝났다 생각하고 주저앉았어.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


"마침내, 다 끝냈구나."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그 목소리가.

뒤를 돌아보자 그때의 우두머리 루갈이 있었어.

그 얼굴을 보자, 그때 느꼈던 뭔지 모를 그리움이 마음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어.

그 요동치는 감정은 렐이 오랫동안 가슴 한켠에 묻어두었던  한 낡은 이름으로 표출됐어.


"아린?"


-계속-


아마 다음편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야기 쓰고 소녀시점에서 이야기 풀고 끝낼듯 하루면 된다했는데 일주일동안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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