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monmusu/31918219

2편 https://arca.live/b/monmusu/31962179

3편https://arca.live/b/monmusu/31986005

4편 https://arca.live/b/monmusu/32023176

5편 https://arca.live/b/monmusu/32030044

6편 https://arca.live/b/monmusu/32049595

7편 https://arca.live/b/monmusu/32103958

8편 https://arca.live/b/monmusu/32260076

9편 https://arca.live/b/monmusu/32422142

10편 https://arca.live/b/monmusu/32674891

11편 https://arca.live/b/monmusu/32781107

12편 https://arca.live/b/monmusu/33247305

13편 https://arca.live/b/monmusu/33313401


바알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른팔로도 그럭저럭 싸우는 건 가능했지만, 자신의 마력도 곧 있으면 바닥날 터였다.


"걱정 마라, 너희를 죽일 마음은 없다. 평생 동안 내게 마력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용이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웃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직접 천계에 가지 않은 이유는 그때처럼 당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천신마저 없어진 지금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녀의 몸에 난 수백 개의 비늘이 빛나더니 유도탄처럼 발사되어 바알과 레이첼에게 날아갔다.


"꽉 잡아!"


. 바알이 레이첼의 허리를 오른손으로 감싸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맞대응할 만큼 그에게 마력이 많진 않았기에 도주를 택한 것이다. 마법까지 써 가며 끈질기게 도망다녔지만 비늘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마력에 한계가 찾아오고 비늘과 충돌하기 일보 직전이 되자, 바알이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미안하다. 레이첼.."


 역부족인 것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바알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방어막을 쳤다.


"안 돼!"


바로 그 순간 지난번처럼 레이첼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비늘은 빛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이윽고 그녀에게서 저 멀리 바알의 성에서 보일 만큼 환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마왕은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지켜봤다.


잠시 후 빛이 걷히자 천신의 장비를 모두 착용한 레이첼과.... 날개가 백색으로 변한 바알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만신창이였던 그들의 몸은 어느새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신을 차린 마왕이 입에서 거대한 화염을 내뿜었다. 그에 질세라 레이첼이 검을 휘둘러 어지간한 산만큼 큰 참격을 날려 맞받아쳤다. 그녀가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바알이 왼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서도 눈부신 빛이 나기 시작했고, 또 한번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으.. 음.."


쓰러져 있던 이들의 머리 위로 새하얀 기운이 감돌더니 그들에게 내려앉으며 몸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천신을 필두로 용사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마왕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3000년 전 그날, 그녀는 수많은 병사들과 천신의 기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녀가 승리의 미소를 짓던 그 순간 천신의 손에서 빛이 일더니 쓰러진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마왕은 부활한 군사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그때 천신이 사용한 마법은 치유 마법의 상위 호환으로, 사람들은 이를 일컫어 '기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 같은 마법을 쓴 것은 다름 아닌 악마였다. 천신도 레이첼도 기적을 쓸 수는 없었다. 마왕이 그들을 확실히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분명.."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이건 기회다. 다들 정신 차려! 놈을 끝장내자!"


하나둘씩 일어난 용사들이 날개를 펴고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그 시각 레이첼과 힘겨루기를 하던 마왕은 바알의 협공에 밀리고 말았다. 참격이 적중한 그녀의 가슴팍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바알의 힘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레이첼의 힘은 정말 선대 천신과 맞먹었다.


본모습으로 변해 있던 루시퍼가 포효와 함께 마왕에게 돌격했다. 그의 정체는 거대한 뿔과 날개, 그리고 불타는 도끼를 손에 든 10m 가까이 되는 발록이었다. 마왕이 이전처럼 몸에서 광범위 폭발을 일으키려던 그때, 그녀의 등 쪽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고, 그와 동시에 날개 쪽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 부활한 천신과 미카엘이 날갯죽지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그들에게 정신이 팔린 동안 루시퍼는 그녀의 앞까지 와 있었다. 마법진과 함께 검은 사슬 수십 개가 그에게 날아들었지만, 다른 이들의 지원으로 곧 전부 파괴되고 말았다. 어느새 루시퍼 바로 옆에는 검을 든 바알이 있었다.


마왕이 입에서 거대한 화염을 뿜었지만, 바알은 피식 웃으며 순간이동 마법으로 그녀의 가슴 쪽으로 이동해 버렸다. 그녀가 미처 대응하기 전에 레이첼이 입힌 상처를 향해 루시퍼와 바알이 온 힘을 다해 검과 도끼를 휘둘렀고, 동시에 다른 이들이 상처입은 그녀의 날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피분수와 함께 마왕의 한쪽 날개가 통채로 잘려나갔다. 그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용사들은 그때까지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커헉..!"


간신히 일어난 마왕은 당장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검은 안개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좀전처럼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그 순간 빛으로 된 여러 개의 채찍이 그녀의 온몸을 결박하며 동시에 힘을 빼앗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녀로 변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천신의 소행이었다.


"이 버러지들이!"


"지금이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소멸시키자!"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마법을 날렸다. 레이첼의 검이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으로 변했다.


'어째서냐.. 어째서 너희는..'


죽음을 목전에 둔 마왕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어렸을 때 마계는 강하기만 하다면 누구나 마왕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잔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려진 그녀는 뒷골목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몸부림쳐야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도둑질을 하던 그녀는 그만 주인에게 들켜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머리가 짓밟히려던 바로 그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녀에게 내제되어 있던 막대한 힘이 깨어났다. 그녀는 즉시 상점 주인의 머리를 마법으로 짓뭉개버렸다. 


어렸을 적의 자신처럼 힘이 없는 자가 힘 있는 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잔인하고 냉혹하며,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는 것은 악마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에 직격당한 그녀의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용이 다시 한 번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레이첼의 창이 용의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마왕은 저 악마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당연한 지배를 거부하는지, 왜 천사들과 동맹까지 맺어가며 주인이고 상관인 내게 대항하는 건지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마왕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