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던 글들: https://arca.live/b/monmusu/9779273



타닥, 타다다다닥, 틱ㅡ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는 키보드 자판의 건조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지금 작성 하고 있는 레포트만 끝내면 이번주는 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조그마한 벽만 넘으면 꿈꾸던 여가 시간이 눈앞에 펼쳐질 터이지만 애속하게도 한글자 한글자 글귀를 적어 내려가는 손가락이 영 말을 듣질 않는다.


머리 속을 멤도는 야한 생각, 그 탓인지 자꾸 이상한 단어를 적거나 오탈자를 내버리는 손가락.

그저 의자에 앉아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욕이 점점 나를 지배해가는 이유는 바로...



"저기~ 주인님~ 쉬면서 해~"

"......"


내 등 뒤에서 자꾸 깐족거리며 몸을 밀착하는 이 여자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쓰던 리얼돌인데 어느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와서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뒷통수가 얼얼한 기분이 든다.


"떨어져."

"왜애애~"

"떨어지라니까. 아니, 야! 손! 손!"


리얼돌이었던 그녀는 단호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어깨에 올리고 있던 손을 점점 밑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 목, 가슴과 배로 스르륵 미끌어져 내려오니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어 팔을 붕붕 휘두르자 그녀를 겨우 내게서 떨어졌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구 때문이겠냐고!"


총총걸음으로 침대로 돌아간 그녀를 증오하듯 노려본들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었다.

원래 같으면 끓어오르는 성욕탓을 이틀에 한번씩은 리얼돌을 이용해 방출 했을 터인데 보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2주 동안 그러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문잠그고 하자니 계속 노크하면서 신경쓰이게 하는 바람에 발기만 시킨채로 한발도 못뽑고 포기한 게 벌써 다섯 번이 넘는다.


"후우..."

"물이라도 한잔 줄까?"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내가 시키는 일은 곧잘한다. 요리 실력도 괜찮은 편이라 매번 신세지고 있기도 하고.

유일한 단점은 시도때도 없이 나의 자위...를 요구한다는 것. 일부러 알몸에 앞치마만 입고 아침식사 도중 기습을 하질 않나, 샤워하고 있는데 벌컥 들어와서 등을 씻겨주겠다던가 침대 위에서 재우고 나는 바닥에서 자는데 굳이 내 품속으로 기어들어온다던가 등, 보통이라면 남자들이 환장해서 바로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들만한 상황들을 여럿 접했지만 뭔가 거부감이 들어 성만 내고 있는 중이다.


애초에 리얼돌 베이스에 내가 하도 싸댄 탓에 마력이 모여 의식이 각성한 거라고 해도 두 눈을 깜빡이며 숨을 쉬고 생각한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게 생명체지 뭐가 리얼돌이냔 말이다.


깊어지는 생각에 점점 아파오는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순간 주방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뭐야. 무슨 소리야?"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바닥에 넘어져 있고 손에서 놓친 플라스틱 컵에는 물이 담겨져 있었는지 바닥이 흥건했다.


떨리는 팔로 바닥을 겨우 짚고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주, 주... 주...인...님..." 을 마지막으로 젖은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그걸 목격한 나는 순간 사고가 정지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박차고 달려나가 그녀를 감싸 안고 괜찮은지 계속 몸을 흔들어보며 눈을 뜨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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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나... 왜..."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곁을 지킨 지 30분째, 게슴츠레한 눈을 뜬 그녀가 움직이는 걸 본 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

"어? 어어... 아니야... 주인님."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고! 몸이 안 좋은 거야?"

"응... 그게 사실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물을 담다 쓰러진 이유를 별 거 아니라는듯 조곤조곤 말해주기 시작했다.


내 정액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주기적인 마력 흡수가 없다면 기능을 정지하고 리얼돌로 돌아가버린다는 것을 듣는 순간은 마음이 철렁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몬무스가 되었다면 분명 나보다 힘도 셀 텐데 왜 강제로 하지 않았냐고 묻는 내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싫어.. 항상 주인님이 먼저 와줬는걸. 그리고 강제로 하는 건 사랑 같지가 않아..."


이 말을 듣고 여태껏 그저 성욕만을 추구하는 몬무스라고 생각하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눈 앞에 있는 그녀도 마력 때문이라고는 해도 생각하고 말을하는 생명체임에도 계속 장난감이라고 여겼던 지난 시간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당장이라도 남은 시간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긋하게 웃는 얼굴을 한 그녀에게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미안하게 느껴졌다.


"울지 마. 주인니임~ 괜찮...아..."

"안 괜찮아!!"

"으왓, 놀래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 끝으로 닦아주는 그녀를 보고 결심이 선 나는 그녀에게 하자고 말했다. 의식이 생긴 뒤로 처음으로 먼저 하자는 얘기를 들은 그녀는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지만 놀란 표정은 금새 사라지고 생긋 웃는 얼굴로 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드디어 말해줬네? 그러면... 도와줄게? '자위'❤"

"응...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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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을 애끼고 정을 쌓아주면 언젠가 살아움직이며 앵겨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