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날은 점차 따뜻해지고 있다.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면 좋겠지만, 최근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큰 비는 아니고, 그렇다고 부슬비도 아니고 그냥 '비가 내리고 있다.' 정도의 비가 며칠째 계속 내리고 있다. 애들도 처음엔 밖에 나가려고 했지만, 지금은 집 안에서 노는 중이다. 원래 이맘때 쯤 비가 계속 내리던가?

  "언제 그칠지 모르겠네."

  "밖에서 뛰노는 애들은 있지만요."

  "저건...뛰논다고 해야 하나?"

  평소라면 물 속에 있는 아이들이 지금은 집 밖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덤으로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애들도. 그 외는 잠깐 어울려주는 정도로 놀고, 대부분 털고르기나 몸단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애들도 상당한 고생이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면, 상당히 애먹을 날씨야."

  "우리도 평범한데요?"

  "집 안에서 빨래가 순식간에 마르는 광경은 평범한 가정집에선 잘 볼 수 없는 광경이지. 덤으로 음식도."

  "바깥의 사람들은 우리보다 괜찮은 도구들이 있지 않아요?"

  "있어도 가진 사람은 극소수야. 꽤 비싸거든. 동력원이 그리 흔히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크리스티나에게 뜨개질을 배우는 보프를 옆에 두고 창밖을 보며 잡담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반쯤은 불평이 맞지만, 비 오는 날을 그리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서, 절반은 이런 날이 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 이런 날씨가 좋은 아이들이 몇몇 더 있다.

  "..역시 용은 엄청나군."

  "테라요? 밖에 있어요? 요즘 잘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아주 대단해.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도 비 한 방울 젖지도 않았어. 심지어 근처 땅은 마른 땅이지. 엄청난 불이야."

  "시원하긴 하겠네요. 앞으로 더워질테니 자주 밖에 나가야겠어요."

  "슬슬 물놀이 때가 왔네요."

  "따뜻해지긴 했지만, 벌써 물놀이를 할 때는 아니라고 보는데?"

  "테라는 항상 둘이서 시원한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때가 있어요. 더워지면 그 빈도가 잦아지죠."

  한참 밖을 보다 누군가 창문 옆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아, 아저씨 안녕~"

  "필라구나. 밖은 시원하니?"

  "응. 좋아. 앗, 더듬이 그만 건드려~ 간지러워~"

  "다른 아이들은?"

  "밖에서 자거나, 캘시 언니가 만들어준 미끄럼틀 타고 놀고 있어."

  "물 미끄럼틀이라..."

  대담하게도 3층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아이는 필라라고 하는 아이다. 날이 따뜻해지는 때에 깨는 아이들 중 하나다. 긴 머리에, 옷을 걸치진 않았지만, 몸을 감싼 피부가 하늘거리는 드레스와 마찬가지라서 굳이 입어도 불편하기만 하다는 듯 하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씨에 활동적이게 되는 아이다. 겉으로 보기엔 달팽이 같지만, 본인은 달팽이가 아니라고 한다. 덤으로 더듬이 감촉은 상당히 좋다. 자꾸 무의식적으로 건드리게 된다. 본인은 간지럽다는 듯 하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내려가렴."

  "걱정마~"

  하반신은 완전히 인간이 아니지만, 덕분인지 벽도 마음대로 탈 수 있다. 떨어지는 일도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까. 평소에는 천장에 붙어서 돌아다닌다. 밑에 깔린 카펫의 감촉이 본인에게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굉장히 느긋한 성격이 보이는 움직임으로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갔다.

  "..부럽군."

  "원래 없는 물건은 가지고 싶어져."



  밖은 비가 계속 와서 습하지만, 내부는 반대로 건조한 편이다. 이유는? 이 차가운 아이 덕분이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읏! 차가!"

  "아, 오카 왔다."

  "안녕, 보피! 뜨개질 배워?"

  "심심할 때 하기 좋아."

  "오카? 차갑게 할 때는 미리 말을 해주고 오렴."

  "싫어~"

  머리카락과 손목, 발목, 꼬리에 붙은 털이 어떤 원리인지 몰라도 본인과 그 주변을 아주 차갑게 만든다. 생각보다 더워 보이는 모습임에도 오히려 북실북실할 수록 더 차가워지는 신기한 아이다. 털이 젖지 않을까? 하는 물음도 본인은 아주 찰랑찰랑한 털을 보란 듯이 흔들어 보인다. 덕분에 집 내부 온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뜨개질을 가르쳐주는 크리스티나 옆에 앉아서 뜨개질 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어머, 뿔이 났네."

  "어? 정말?"

  "뿔?"

  크리스티나가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더듬거리며 뿔을 찾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만졌을 때 느껴질 정도로 자란 모양이다. 그나저나 개과 동물이 뿔이 나던가? 저번에 개뿔을 본 기억이 있다고 하던 유씨가 한 말이 사실이었나?

  "이제 뿔이 다 커질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다!"

  "그때가 빨리 오면 좋겠구나."

  "뿔이 자라다니?"

  "오카는 뿔이 자라요. 엄마도 나도 오카도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저게 자랄 때까지 시간이 엄청 걸렸죠. 성장기가 온거에요."

  "..평범한 동물은 아니구나."

  "뭐 어때요, 본인이 좋다는데."

  "그럼, 나 그거 열어봐도 돼?"

  "그래. 열어 보렴. 정말 오래 기다렸구나."

  "와~!"

  "..예전에 그 사실을 알아내고 뿔이 자라면 열기로 한 선물이 있거든요. 그거 열어보러 간거에요."

  "헌데, 난 그 뿔이 어떻게 자랄지 상상이 되지 않는구나."

  "꽤 멋지던데요? 다 크면 볼만할거에요."

  선물을 보러 간 오카가 한참이 지난 후 돌아왔다. 안에 든 물건이 옷이었나 보다. 녹청색 머리카락과 흰 옷이 잘 어울린다. 군데군데 노란색 장식도 꽤 멋들어지게 달려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쁜 옷이 아니라 멋진 옷이다. 본인이 저렇게 완벽하게 옷을 입진 않았을테고, 시간이 꽤 걸린 것을 봐서는 옆에서 누가 도와준 것 같다.

  "..작을 때 옷을 사면, 커서 못 입지 않겠나?"

  "특별주문품이라 걱정 마세요. 몸이 커져도 몸에 맞게 바뀌니까요."

  "꽤 비쌌어. 그래도 저런 물건이 흔한건 아니잖아?"

  "어때? 이뻐?"

  "응. 아주 이뻐."

  꼬리가 흔들리면서 바닥을 탁탁 쳐댄다. 앞으로 어떻게 커질지 궁금해지는걸.



  꽤 오랜만에 온실로 올라가 봤다. 최근에 비가 계속 와서 그런지, 풀내음이 비교적 멀리서도 맡을 수 있게 됐다. 안에 있던 아이들이 자라서 그런가? 

  "뭐야? 아저씨 왔어?"

  "오랜만이구나 캘시. 바깥에 있는 물미끄럼틀은 뭐니?"

  "그거? 단순히 줄기를 쭉 뻗어준거 뿐이야. 그리고 내 애들도 많이 커서 밖을 보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아졌거든."

  "그래서 그게 10층으로 이어져있구나?"

  "이 주변은 뭘 해도 안전하니까. 여기서 떨어져도 내가 받쳐줄 수 있어. 그래서 애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지."

  "..헌데, 더 커진 것 같구나?"

  "아저씨가 줄어든게 아니고? 뭐..요즘 비가 와서 물을 좀 많이 마셨지."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몸매가 물이? 올랐다. 물을 마셔서? 몸에? 물이? 찬?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교적 통통해졌다. 그래도 큰 차이는 없지만. 그리고 주변에 있던 떡잎들은 조금씩 쫄래쫄래 움직이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정말로 정강이까지 오는 크기라서 자칫하면 발에 채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아~"

  "반갑구나. 얘들아."

  "와~"

  머릿결은 가느다란 잎을 쓰다듬는 느낌이 난다. 거기다 아이들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가벼워서 살짝 위로 들어 던지면 나풀나풀 천천히 내려온다. 머리맡에는 각자 다르게 생긴 꽃봉오리가 있는데, 다들 자라면 각자의 꽃을 피우는 것 같다.

  "이거 먹을래?"

  "이건..코디악이잖니? 가져왔니?"

  "몇개 가져왔지. 나 정도 되면 이 정도야 금방 키운다고."

  "그걸 한달만에...대단하구나."



  그리고 비가 와서 항상 저기압인 아이가 있다.

  "실?"

  "우응..."

  솔직히 저기압이 아니라 그냥...엄청 늘어진 셈이지만.

  "슬슬 일어나렴. 계속 웅크리고 있을거니?"

  "후아암..."

  "...그리고 티아라는 왜 여기 있니?"

  "응? 나도 같이 자고 있었는데?"

  삐약거리면서 실이랑 웅크리고 있는 티아라가 보였다. 날이 이러니 날기도 그렇고, 거기다 날개도 평소와 비해서 조금 축축하다. 몸이 무거워서 날기 힘든 모양인가?

  "메리가 여기 있으면 좋댔어."

  "..오카 곁에 있으면 더 시원할게다."

  "너무 추워."

  삐야악~하는 하품이 들린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 며칠 계속 비가 오고 있으니 아이들이 할 일이 더 없긴 하다. 한창 그루밍을 끝낸 실이 내쪽으로 붙어 왔다. 물렸던 곳을 한창 빤히 보더니 살짝 물고는 핥기 시작했다.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많이 까매진 털을 천천히 쓰다듬자, 기분 좋은 듯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언제 쓰다듬어도 부드럽네.

  "..비 언제 그쳐?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