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원본


◈ ◈ ◈ ◈ ◈ ◈

~ 『 Chapter.1 - 이상한 이야기 』 ~


흔히들, 마법이 있는 세계를 좋아하거나 꿈꾸고는 한다. 어디는 도시 자체가 마법화 되어있고, 어디는 탈 것을 마법 생물체나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던가 하는 그런 현실성 없고 허황된 것을 이상적이게 표현한 작품이 유명해지고 나선 그런 비슷한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법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지고 잘 안 되더라도 노력이 있다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하는, 그런 착각.

나 또한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에 꿈을 꾸던 시기가 있었다.


" 덥다~ "


앞섬을 약간 푼 가슴 앞 쪽이 꽉 끼는 셔츠의 빈 공간을 잡고 공기가 통하도록 팔랑거린다.


오늘 같이 더운 여름 날, 대체 왜 얇은 천 쪼가리만 입어도 되던 하복이 아니라 태양빛을 흡수해서 뜨겁다 못해 계란도 익혀먹을 빌어먹게 더운 가죽 재킷을 입고 이곳에 서 있어야 되는 건지.


" 더운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셔츠 잡아당기지 마라. 볼썽사납다. "


" 뭐래. 누가 선도부원 아니랄까봐 꽉 막혀가지고. "


더운 것도 적당히 더워야지. 더운 걸 넘어서 몸에 불이 붙은 채로 걸어다니는 파이어맨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인데.


"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 있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 가우―…. "


" 저건 말이 되고? "


오히려 몸에 불을 달고 다니는 불도마뱀인 샐러맨더들이 더워서 퍼져있는 지금 모습이 더 비현실적이 아닐까. 아니, 그 보다도 쟤네가 저리 더워할 정도면 지금 이렇게 서 있게 만드는 저 높으신 분들이 정신나간 게 아닐까?


아무래도 공간이 부족한 셔츠로는 바람 통하게 해봤자 별로 시원하지 않아서 이번엔 치맛자락을 잡아 팔랑거린다. 선도부 부장이 기겁한 표정으로 째려보지만 나는 양쪽으로 갈라진 혀를 내빼며 장난이라는 시늉을 한다.


어이없다는 듯 질렸단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부장. 참으로 놀리기 좋은 선배라니까.



더운데 바람 조차 불지 않아 짜증 수치가 오를 수록 좋은 환경에서 연설하는 놈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 지들은 시원한 빙판 위에서 내려다 보고 연설하고 하니까 살맛났지 아주. "


" 그런 건 생각만 하고 입으로 뱉지 마라. 징계받는다. "


연설대 위에서 정기연설을 하는 높으신 분들을 눈으로 흘깃 쳐다보며 악담을 퍼붓는다.

옆에서 같은 선도부인 부장이 하나하나 딴지를 걸지만 선배도 더운 건 마찬가지인지 땀을 잔뜩 흘리고 있다.


" 시원한 실내에서 하면 될 걸 꼭 밖으로 나오라 하는 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오는 걸까. "


" ………. "


" 아, 역시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죠? "


" 아니다. "


덤덤하게 부정한 선배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분명하다. 과묵한 선배를 골리는 것도 재밌다만 하도 덥고 짜증나고 심심해서 잡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에 떠들다보니, 안경 쓴 깐깐한 선생에게 주의 받았다. 명색이 선도부원인데 연설 중에 떠드는 건 있을 수 없다면서 징계를 각오하라는데 억울하다.


햇볕이 쨍 하고 내리쬐는 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봤다. 그 날도 이렇게 더웠는데.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억울한 시간도 잠시, 한 시간이나 이어진 일장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지옥의 연설장에서 해방되었다.


" 하~ 쓸데없는 소리를 서서 한 시간이나 들어야 한다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지 아주. "


" 방금도 징계 받아놓고 잘도 떠드는군. "


" 아니아니, 선배. 잘 생각해봐요. 자기들은 시원하게 앉아 있으면서 우리는 왜 땡볕에 서서 들어야 해요? 아무리 봐도 이상하잖아요? "


"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선도부원이라면 그걸 잊지 말도록. "


아아, 망할 선도부. 여길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여기 들어오면 반품 밀수입이나 검열 피할 수 있대서 온 건데 오히려 더 빡빡한 규칙 때문에 뭔갈 할 수가 없다.


"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건 알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



마법 학원도시이자 이 도시를 기능하게 만드는 도시 유일의 아카데미, 제대이느. 이 학원은 이 세상에 『마법』이라는 것을 가져온 기적의 마법사 【   】의 능력과 명성으로 지어진 교육학교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해 국가적으로 운영되는 국립 아카데미다.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라면 이 나라 전국에 있는 부잣집 부모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보내고 싶어하며, 해외에서도 유학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진학 루트를 물색하고 있다 한다.


그런 대단하신 명문학교의 교칙도, 그 만큼 대단하신 게 많겠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1. 엄숙, 엄격, 정진, 정갈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


2. 마력 실력 주의. 보유한 마력량과 마법실력에 따라 권위를 얻는다.


3. 교복은 남자는 갑갑하게, 여자는 얇게. 겨울에는 동복 말고도 자유 외투 가능.


4. 반강제 이성간 교제 허락. 단, 권위에 따라 상대별로 거부권 행사 가능한 수가 정해져있음.


5.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학교의 규칙을 따른다. 중대사항인 경우는 의회를 연다.


6. 학원도시에서는 학생, 관계자, 상업 주민 외에 일반 가정은 거주 불가능하다. 견학 및 관광으로서 출입과 단기 체류는 가능.


7. 학원도시에선 기존 법을 따르지 않고, 마법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은 불문율로 처리하나. 윤리에 어긋날 경우 선도부, 또는 재판부로 넘겨져 처벌된다.


8. 교칙을 만드는 의회와 재판부, 그 교칙을 따르는 선도부는 교칙을 일부 열외받을 수 있다.



…대충 이 정도다. 약간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을 텐데, 하나씩 풀어보자면.


1번은 넘어가고, 2번은 설립자의 기준으로 만든 마력 분석기를 척도로 학생의 재능을 재 보유 마력량과 마법 평가를 통해 등급과 순위를 매긴다. 이 수치가 높을 수록 규칙의 엄격함이 느슨해지고 온갖 혜택을 받으니까 재능과 실력이 출중하면 권력자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아까 덥다고 따지던 연설장도 그 권력있는 애들은 시원한 곳에 있었다. 꼬우면 올라와라 이거지.


3번은 좀 이상한데 남자만 규율이 빡세고 여자는 느슨하다. 혜택이랄지, 아니면 오히려 벗고다니길 유도하는 건지 입는 것 보다 벗는 게 더 쉬운 수준이다.


4번은 듣기로는 설립자가 마법 익히느라 여자를 못 만나고 살아서 한에 맺힌 게 교칙으로 남은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여자들 볼 때 마다 눈이 뭔가 매서웠다고.


5번은 대충 여기가 치외법권이란 소리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건드리지 말고, 심각한 사안이면 협력하긴 해주겠다 정도.


6번은 어른인 높으신 분, 선생, 상인이나 점주를 제외하면 전부 학생인 기숙사생, 자취생 뿐이라는 소리다. 어른 보다 아이가 많은 묘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7번은 우리가 무법지대로 둘 건 아니고 쪼끔 사건 터지면 처리할 단체는 만들겠단 소리. 그게 내가 속한 선도부이다. 보통 현장 뛰는 건 우리고 재판부는 사무 처리 담당.


8번은 교칙을 다루는 자들의 특혜. 권위가 없는 애들의 편법 수단 정도로 보고 있다. 실제로는 선도부는 현장에 불려나가는 일이 더 많은 짬 처리 집단이고, 재판부는 종이로 관짝을 짜도 될 정도로 파묻혀 지내는 어른들 할 일 대신할 노예다.


그만큼 나름의 특권이나 특혜도 있지만 진짜 절대 오지 마라. 여기 들어오려고 마법 공부했다가 고생만 한다.



아무튼, 적당히 할 일 하고 쉬는 시간에 밀반입한 만화책이나 읽을 생각이었는데 하필 오늘 연설하는 날이라 땀은 땀대로 흘리고. 징계를 받아서 지금 반성문이나 쓰고 있다.


흘긋. 지금 나를 감시하는 저 안경 선생도 할 게 없으니까 심심한지 책을 읽고 있다. 결국 자기도 이럴 거면서.


나는 펜에다 마력을 불어넣어 반성문을 자동으로 쓰게 조작했다. 어차피 반복문만 쓰는 거 뭐하러 일일이 고생해서 쓸 필요가 있어?


" 거기, 뭐 하는지 다 보이니까 헛튼 짓 할 생각 마요. "


칫, 쓸데없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저 선생과는 척 지낸지 꽤 되었을 정도로 악연이 깊은데, 이 쯤 되면 저 선생이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나만 꼬집어 징계를 주고 싶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두고 봐라. 언젠가 선생 보다 권위가 높아지면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




◈ ◈ ◈ ◈ ◈ ◈




반성문을 다 쓰고 제출한 뒤 드디어 석방. 이상하게 저 방에만 갇히면 기분이 찜찜하단 말이지. 뭔가 기운을 흡수하는 술식이라도 짜여있는 게 틀림 없다.


" 이제 나왔나. "


" 어, 선배. 마중 나온 거에요? 두부 안 줘요 두부? "


" 사건이 생겼다. 방금 나온 참에 미안하지만 급한 일이니 갔다올 수 있겠나. "


" 엑. 방금 나왔는데? 아무리 사건이 많다지만… 그보다 제 농담 안 받아줘요? "


" 다음에는 고려하지. "


확답이 아니라 고려를 하는 겁니까.


" 에휴…. 까라면 까야지. 그래서 어디래요? "


" 연구동 유기화합실 쪽이라고 한다. "


" 알슴다. 선배는 안 가요? "


" 나는 다른쪽으로 파견이다. 이쪽도 급한 일이니 당장 가야한다. "


나머지는 맡긴다. 라며 우락부락한 덩치로 쿵쿵 소리 내며 달려가는 선배. 아무리 봐도 마법사 체질이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여기 오게 된 걸까… 힘법사인가?


그나저나 연구동은 맨날 사고가 터져? 이럴 거면 그냥 연구 같은 거 하지 말고 폐쇄해버리는 게 낫지 않나? 거기 있는 약품이나 기기들 비용도 만만찮을 건데 대체 왜 계속 유지를 하지?


이번엔 무슨 사고가 터졌길래 급하다고 하는지 원….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야하기에 나도 신발에 가속의 진을 활성화 시키고 달려나갔다.


재미없는 일이기만 해봐 아주, 선도부 권한으로 사고 일으킨 놈들 싹 다 때려눕혀야지.



한참을 달린 끝에, 마법적인 시설과는 상반되게 과학적인 하얀 건축 시설이 돋보이는 연구소에 들어가 유전자 조작 키메라 합성술을 시도하는 실험실로 들어갔다.


" 뭐, 뭐야. 여기 왜 이리 어두워. "


학교에서 과학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낮 말고 저녁이나 어두운 시간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은 없을 것이다.


과학실에 가지 않았더라도 학교 7대 불가사의라거나, 괴담 같은 게 유행할 때 과학실의 인간모형 귀신이야기를 들어보진 않았나? 밤 중에 과학실에 가서 뭐 하고 있으면, 그 놈이 뒤에 와서 걔를 덮친다. 같은 얘기.


그리고 우리 학교 또한 그런 비슷한 괴담이 있긴 하다.


내용인 즉슨, 연구동에는 연구욕에 미친놈들이 가득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실험들을 해댄다.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호문쿨루스 연성은 항상 실패만 하지만 생명부여 자체는 성공해서, 기괴하게 꿈틀대는 무언가가 죽여달라며 덮쳐온다던가.


생명체 연성에 실패해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는 생명 조립 키메라 형성 시도는 더욱 끔찍해서, 아예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대로 잘라 다른 생명체에 붙여 만드는데. 이게 진짜로 성공해 다양한 생물들이 키메라가 되어 철창에 갇혀있다는 등, 연구동 학원생들을 싸이코 취급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그 괴상한 소문들은 실제로 정확하다. 선도부가 사건이 터져 출동하는 것의 반은 이 놈들이 원인이다. 뭔 시발 실험정신 투철하고 실험욕 가득한 건 좋은데 적당히 해야지 진짜. 선도부가 줘패는 권한이 없었다면 이 학교는 이미 날아가고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침 떠오른 괴담이 키메라 실험 관련이었는데, 이번에 각 부마다 활동경험을 보고 겸 피로하는 콘테스트가 열리는 시기가 다가오니, 역작을 시도하는 유기화합 연구부가 아주 미친 걸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였다.


" 어째 여긴 맨날 오는데도 소름이 끼치고 그러냐. "


정확한 사실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루머가 가득했지만 그나마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키메라는 다른 생명끼리 누더기 마냥 붙여서 짜집기하는 것과는 달리. 그 녀석은 유전자 부터 짜올려 탄생시킨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아니, 너네 마법 연구부 아니었냐고. 뭔 현대과학의 결정체 같은 짓을 하고 있어.


" 애초에 현대 문명에 마법이 자리잡았으니 어찌 보면 어울리긴 하다마는. "


마법이 생기고 나서 공부의 대부분을 마법학으로 때울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인 셈이라 공부량이 두 배로 늘어난 건 오히려 마법을 싫어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아무튼 이 끔찍한 실험실에 발을 들이고 싶진 않지만, 말단원 인생이 별 수 있나. 얼른 사건 처리하고 휴게실에 가서 몰래 가져온 게임이나 룰루랄라 즐겨야지.



" 근데 어두워도 너무 어두운데… 보통은 항상 밝고 훤했는데. "


연구동은 학생이고 선생이고 틀어박혀서 연구에 매진하거나 아예 살림을 차려놔 낮밤이 바뀔 정도로 살기 때문에 늘 불이 들어와있다. 그런 곳이 전부 불이 꺼져 있다니, 정전인가? 하지만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하는 건 효율이 나빠 전기석으로 때운, 일종의 보조 배터리로 가득찬 곳이라 정전이랄 게 일어날 리가 없다.


" 그렇다는 건 누군가의 소행이란 건가. 제길, 연구동 놈들을 팰 기회였는데. "


누가 들으면 사람 패는 걸 좋아하는 양아치 같이 들리겠다만. 나는 연구동 놈들 때문에 쉴 시간도 없이 매번 불려나와서 빡치니까 하는 소리다. 너네 같으면 밥 먹다 뭐하다 출동하는 소방관들이 짠하게 보이지 않겠냐고. 그렇다고 소방관은 사람 패진 않지만.


이 연구동 내부는 보통 사람들이 오컬트 느낌 물씬 나는 인테리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현대적인 연구소, 과학 실험실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선반에 약병이 진열되어 있고, 플라스크에 약물 시험 중이거나 광학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등 나름 시설이 잘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곳은 보통 밖에서 잘 안 보이게 차광막이 달려있다던가 유리창 같은 게 없는 구조인 방이 많아서 불이 없으면 매우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곳이 되어버린다.



" 보자… 유기화합실 쪽으로 가야된댔지. "


손전등을 들고서, 아직 대낮인데도 새벽 같이 어두워서 그런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소리가 울려 공동이 울리는 것이 약간 공포게임의 프롤로그 장면 같다.


" 하, 이럴 때 보통 비명소리 같은 게 들리곤 하는데―― "


끼아아아악――――!!!!!


" 흡…!! "


뭐, 뭐야!? 뭐야!! 내가 말해서 그래? 왜 진짜 괴물 비명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건데!?


아. 오지 말걸. 하 X발 내가 괜히 선도부 같은 데를 지원해서.


" 아 씨 진짜. 안 가볼 수도 없고! "


썩어도 명색이 선도부원인데 혹시나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을 무시할 순 없잖아!


나는 발에 담긴 가속진의 출력을 높여 빠른 속도로 복도를 질주했다.


까짓거, 괴물이 나와주면 오히려 줘팰 수도 있고 좋지 뭐!



그렇게 복도를 가로질러 유기화합실 문을 벌컥, 열기 전에 잠깐 심호흡 좀 하고. 열어 젖혔더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왼쪽 벽면에 동굴 입구 같은 커다란 굴이 파여있었다.


" 뭐야… 이거. "


나 어느샌가 공포게임 속으로 들어오기라도 했나? 왜 이런 무서운 게 여기 있는 건데.


" ………. "


지원… 불러야겠지? 혼자 가기엔 너무 무서운데. 그러고보니 긴급출동이라 해놓고 어째서 나 혼자만 여기 온 거래? 다른 몇 명도 투입되지 않나?


머릿 속에 의문이 가득한 와중, 바닥에 떨어진 잔해 중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이 있어 집어들었다.


" ! 선도부 뱃지…. "


나 혼자가 아니다. 이미 다른 몇 명이 여기 왔다가 연락이 끊겼을 뿐이다. 보고는? 도청을 막기 위해 무전기를 지급 받지만 거리가 짧아 경찰을 부르려면 휴대폰을 써야 한다. 아마 이미 왔던 선도부도 그렇게 하려다 기습을 당해 끌려간 걸 수도 있다.


" 상황 보고할 시간 없어. 이대로 돌격한다! 헤이스트! "


비명소리의 정체 부터 확인하고 해도 늦지 않으니까, 우선은 정황 확인 및 수색 구조가 먼저다!




◈ ◈ ◈ ◈ ◈ ◈




" 꼼짝 마! 선도부다! 허튼 짓 하는 놈 있으면 팬다! "


선도부만의 아이덴티티, 일단 패고보기. 선도부가 도착하면 뭔 짓 하던 놈들은 알아서 도망을 갔다. 그러면 수상한 놈들이란 소리니까 움직이면 붙잡아서 패고 이야기를 듣는다. 라는 건 내가 만든 거라 선도부 이미지가 좀 나쁘긴 해도 덕분에 사건 해결률이 상승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렇게 인기척이 느껴진 곳에 멋있게 외치며 나타난 내 눈에 보인 것은, 약간 점액질이 녹아 붙은 듯 흉측하게 생긴 웬 남성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엉덩방아를 찧은 갈색의 부스스한 장발 안경 연구원 여학생을 덮치려는 듯한 상태에서 갑자기 들이닥쳐진 것에 놀라 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 팬다! "


뻐―억!


" 커헉!? "


" 꺄악!? "


즉결처형. 이 녀석은 일단 패고 본다!


퍽퍽퍽퍽. 발로 차 넘어뜨린 녀석에게 마운트 자세를 잡아 이미 곤죽인 얼굴을 다시 곤죽으로 쳐서 행동불능으로 만들었다.


" 뭐하는 거에요! 그 사람은 절 도우려 했다구요! "


" 엑? 정말? "


나는 곤죽인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미 기절해 있다.


" 앗차아… 하도 수상해서 그만. "


솔직히 누가 봤어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이걸로 또 반성문 쓰진 않겠지.


" 아무튼, 비명 소리 듣고 왔는데 무슨 일이야?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는 걸 알아야 내가 정당했다고 입증할 수 있거든. "


" …선도부 맞아요 당신? 아니, 그보다 조심해요! 뱀이 있으니까! "


" 배-앰? "


키메라 합성이나 화학실험을 위해 여러 동물을 기르는 건 알고 있어도. 뱀 까지 길렀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뱀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했으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 어디 있다는 거야? "


" 방금 걷어차이신 분이 제게서 떼어내고 있었어요. 아마 그가 들고 있었지 싶은데…. "


아, 그래서 엉거주춤한 자세였던 건가? 어쩐지.


" …그렇다는 건 바로 옆에 있을 수도 있었단 거네? "


" 아마도요. 물리지 않은 건 다행인데, 조심해요. 독이 있으니까. "


" 뭐? 그럼 위험하잖아. 발견하면 죽여도 되지? "


" 안돼요! 그건 중요한―… "


대화에 집중한 나머지, 나는 내 발 바로 옆에 그 뱀이 코 앞 까지 다가왔던 것을 모르고, 왼쪽 허벅지를 물리고 만다.


" 으악! 이 개자식이! "


스칵! 손에 바람 칼날을 만들어 뱀의 몸통을 잘라내고 대가리를 떼어냈다.


" 안돼에에에―!! 죽이지 말라니까! "


" 야 이, 아무리 소중한 연구재료라지만 물린 사람 걱정도 안 하고. "


연구원은 그런 게 아니라며 말하고는 내 뱀! 내 뱀! 거리며 두 조각난 뱀을 부여잡아 울고 있다.


" 아니 그만 울고. 백신이나 뭐 없어? 독이 돌기 전에 해독해야 할 거 아냐. "


" 독이 있다곤 했지만 사람 죽이는 독이 아니라구요! 그거 내가 몸매 좋은 여성이 되고 싶어서 만든 독뱀인데! 그걸 죽여버린 거라구요!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난 몰라 이제, 으아앙~! "


" 뭐, 뭐? 뭔… "


'뭔 개소리를' 이라며 말을 이으려다, 독이 몸에 돌았는지 머리가 어지러워져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 ◈ ◈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며칠이 훌쩍 지난 뒤였다.


" 아고고… 머리야…… 응? "


이상하게 머리가 욱신거리는 건 둘째 치고, 목소리가 톤이 높다?


" 게다가 어깨가 엄청 무겁――우왁!? "


뭐, 뭐야 이게!?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랄 정도로 아래에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표현이 좀 이상한가. 다르게 말하자면, 「거대한 무언가」가 시야를 가로막아 내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이, 이거 설마… 가슴? "


만져도 되나? 아니, 되고 자시고 내 가슴인데. 남자인 내가 내 가슴을 만져 뭐하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독으로 인해 부엇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봉긋한 가슴이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결국 부여잡아 본다.


" ……!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 "


하긴, 남자가 안에 뭔갈 입고 다닐 리가 있나. 만져지는 감촉은 뭔가… 부드럽고, 생각보다 딱히 기분 좋다거나 그런 건 없고 엉덩이살을 쥔 것과 비슷한 느낌. 그나마 셔츠에 쓸리는 유두 부분만이 오묘한 감각이 느껴지는 정도의――


…내가 뭐래. 이런 변태 같은 감상을 할 게 아니라 내 몸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덮힌 이불을 걷어 일어서려는데, 땀을 머금은 옷이 기온차로 인해 시원해지는 것과 동시에. 가랑이 사이도 시원한 것이 느껴졌다.


" ! 아침 텐트가… 없어? "


남자라면 알 것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나 소변 마려울 때 약간의 텐트가 쳐지는 느낌을.


그런데 없다. 그것이. 단지 시원할 뿐이다.


일어날 땐 몰랐으나 제복이던 옷이 어느새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어 가랑이 사이를 확인하기 쉬웠다. 그리고 보았다.


없다. 그것이.


나는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충격과도 같은 감정을 느낀 채 엉거주춤 거울을 향해 달려갔다.



" ………누구? "


그 거울에는 머리색은 이전과 같은 연회갈색이지만 약간 자라 어깨 위 까지 오는 단발에, 진분홍색의 세로 동공이 찢어진 눈을 하고, 양쪽으로 갈라진 혀를 가진. 매우 큰 가슴의 여자가 보였다.



그곳에는, 


누군지 모를 내가 있었다.




==========

이 글은 1화 밖에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굉장히 고퀄의 그림으로 연재소설을 써줬으면 한다길래, 딱히 가져갈 생각은 없고 소재가 맘에 들어서 써봄.

요소: 연회갈색 단발, 쿨함? 요망, 진분홍 뱀눈, 갈래혀, 뱀 인간?, 한쪽 귀걸이, 앞섬 틈(개방적), 제복(명문 느낌, 현대, 마법이나 초능력?), 한쪽 검스 한쪽 초크(개성적), 커피 좋아함.

그림에서 따본 설정은 대강 이런 느낌이고, 허벅지 초크는 뱀이 문 부위를 가리려고 찼다는 식으로 개연성 부여.


갑자기 끌려서 쓴 글이지만 이런 게 맘에 든다면 누구든 알아서 가져가 써도 됨.

설마 이런 걸 상업 소설로 쓰겠어.


==========

라고 TS채널에 썼던 거 가져옴. 뱀이랑 연관되기만 하면 하반신 뱀으로 변하든 인외가 되든 좋다는 듯. 자세히는 모르겠다.

표지 이미지와 비슷한 뱀녀? 아카데미물이면 된다 하니까 무료 표지 도전하고 싶은 몬붕이 있으면 "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