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에 처음 만난 넌

나를 보고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다가와서는

새순같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주었지


어느 여름에 다시 만나게 된 넌

더위를 피하려 했는지 내가 사는 곳에 찾아와서는

태양같은 웃음 소리를 울려퍼지게 해 주었지


낙엽이 지는 산에서 다시 만난 넌

바위 틈에서 쉬고 있을 뿐인 나에게 다친 곳은 없냐며

모닥불같은 목소리로 걱정해 주었지


눈 쌓인 공원에 있던 넌

눈사람처럼 그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털장갑같은 목소리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지


다른 어느 봄날에 넌

목 놓아 우는 소리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않은 채 가만히 누워있었어


무더운 여름이 와도 태양같던 웃음소리는 더 이상 없겠지

쌀쌀한 가을이 와도 모닥불같던 걱정어린 말은 없을 거야

추운 겨울이 와도 털장갑같던 너털웃음은 들을 수 없어 


눈에 뵈는 게 없는 겁쟁이였던 난

너에게 조금도 다가갈 수 없었지만

너를 쉽게 잊을 수도 없을 거야







. 이번 주제는 짝사랑하는 동굴박쥐씨(사람보다 오래 삶)

뭔가 욕심나서 이것저것 섞어보긴 했는데 괜찮을랑가

흔히 시각묘사가 들어가는 부분에 죄다 청각으로 땜빵할라니까 그냥 맹인 화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 편의 시같은, 전해질 수 없는 러브레터라고 믿고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