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 이 새끼 거기 안서? 야!"


"……!"



몇 분 전만 해도 원아들로 가득했던 한 작은 빌라의 거실은 이전의 소란이 무색하게도 곧 고요해졌지만, 조금도 지나지 않아서 사내의 노성과 지면을 두드리는 발톱의 소리로 다시금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 졌다.


원아들은 대부분 돌아갔고, 거실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존재는 그 둘 뿐이었지만, 싸구려 충전재로 채워져 있어 지나치게 푹신한 소파에는 한 명이 더 앉아 있었다.


하얀 털을 바탕으로, 그 위에 점박이 무늬를 지닌, 작은 몸집의 아이는 그런 그 둘의 소란을 말 없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앉아 둘을 바라보았다.



"……."



한참을 전신에 비늘이 돋아있는 아이를 쫒아다니던 남자는 그 시선이 못내 불편했는지 그것을 쫒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곧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그다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도망치던 쪽의 아이도 이 침묵이 신경쓰였는지, 거실 구석에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는 멀찌감치서 마주보고 있는 둘을 말 없이 구경하기 시작했다.



"왜? 할 말이라도 있어?"


"……딱히 아무것도……."


"……."



남자는 석연치 않다는 듯 얼굴을 찌뿌린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전히 뚫어져라 자신을 보고있는 아이를 노려보았으나, 곧 자신이 쫒던 비늘이 달린, 그러니까 몬바퀴년이 자신의 발치까지 슬그머니 다가와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옳지! 잡았다! 이 놈!"


"……!!!"


"야, 뱉아. 뱉으라고. 아휴, 이 새끼는 대체 자꾸 어디서 계속 개 사료같은걸 가져오는거야."


"!!, !!!!"



그것이 방심한 사이, 재빠르게 그 작은 몸을 낚아챘다.


남자는 곧 몬바퀴를 단단히 붙잡고, 그 입에 손을 넣어서는 바둥거리는 그 생물과 다시금 실랑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둘을 딱히 따스한 눈초리로 보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서도 그 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 아이였지만서도, 이 남자가 자신을 귀찮아 하고, 성가셔 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다.


사실, 그 곳의 원아들이 다 그러했다.


비록 어린 원아들은, 그 남자를 차갑고 불친절하다며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제법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그를 '원아들을 쓸데없이 무책임하게 동정하지 않는다.'고 여겨서 퍽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매일 학교를 마치고 몬바퀴를 데려다주겠다는 이유로, 이전에 했던 약속을 앞세워 이 집에 놀러오곤 했다.



이 집이 딱히 머물기 좋은 장소인 것은 아니었다.


주인의 태도는 제쳐두더라도, 이 낡아 빠진, 재개발이 시급해 보이는 빌라는, 그 겉면의 비루함에 뒤지지 않게 안 쪽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현관문의 힌지는 덜렁거리는데다 자주 걸렸으며, 벽지 곳곳은 얼룩이 져 있으며, 장판은 찐득찐득하고 곳곳이 패여있는데다, 딱히 명확한 원인 없이 집 전체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집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딱히, 그녀가 머무는 보육원의 시설이 이곳보다 더욱 열악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보육원은 자체 예산 외적으로 원장이 사비를 들여 철저하게 관리하는 덕에 시설은 늘 깔끔하고 쾌적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원아들이나 직원들 사이에서 그녀가 괴롭힘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 곳에 머무는 것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처음부터 당연한 일상이라고 해도, 그녀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없는 누군가들과 부대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 없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막연한 질투를 품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몬바퀴와 싸움을 한 이래로, 그녀는 그것을 처음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이 곳에는 그녀가 원하는, 그녀를 해방시키는 고독이 있었다.


좁고, 어둡고, 퀴퀴한 집이라고 해도, 그 풍경은 어째선지 낯선 그리움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고독의 다음에야 비로소,


그녀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자각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사람을 곁에 아무리 데려다 준다 해도,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그런 부류의 것이었다.


때로는 한 마디 말도 섞지 않다가도, 때로는 노성을 지르며 소란을 피우고, 그러면서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두 존재, 그 둘을 바라볼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다.


비록 그녀 자신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둘이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해 나가던지, 그 사이에 자신의 존재가 낄 공간은 영영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그럼에도 그 외로움은, 고독조차 느끼지 못한 채, 무리 속에 짓눌려 있는 것보다는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틈만 나면 계속 이곳을 찾아와선,


머물러 있을수 있는 한, 그러니까 최소한 보육원의 통금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는 계속 있으려 했다.



"하, 씨발 진짜 이 지긋지긋한 사료는 대체 어디서 계속 튀어나오는거야. 야, 이거 차고 앞장서. 이거 어디에서 났어?"



남자는 한참을 이어진 실랑이 끝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몬바퀴의 목에 목줄을 채웠고, 그 생물은 남자가 화나있다는 사실에 조금 움츠러들어 있었지만,


이 상황을 나들이라고 여겼는지, 슬그머니 어딘가 모르게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집에 들어온 남자는 자신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던 그녀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지만, 잠깐 망설이더니 곧 입을 다물고 현관으로 향했다.



"――, 일단 여기 있어."



그것은 그녀가 별로 듣고싶지 않았던 말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못내 듣고싶어해 마지 않던 말 이기도 했다.


저 남자가 그녀에 대한 일을 성가시게 여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육원의 통금시간이 되었을때 외에는, 그녀 자신에게 한 번도 직접적으로 나가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몬바퀴와 싸우고 나서, 남자와 약속을 하고, 이곳에 놀러오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녀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비록, 영원히 저 둘 사이에 끼지는 못하더라도, 이 장소에, 이 사람들 곁에 계속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순 없었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텅 빈 집을, 이 곳을 마치 자신의 집 처럼 여기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는, 그대로 소파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근원 모를 편안함과, 이유 없이 그녀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외로움을 곱씹으며, 그녀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좋은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그녀는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튀어오를 뻔 했다.



"아, 안돼겠다. 역시 너도 따라와라."



현관에는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집 주인 남자가 있었고, 그 발치에는 마치 자신이 그의 애완견인양 목줄을 차고 매달려있는 몬바퀴가 자신을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그녀는, 금세 남자의 시선이, 자신과 그의 방 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깨달았다.


필시, 그곳에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에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 둘은 그녀에게 있어서 고독 끝에 남은 외로움 마저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그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현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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