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그.

세기가 바뀌면서 년도가 구분이 되지 않아 컴퓨터들이 오류를 발생시키는 현상.

이라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컴퓨터들이 먼저 오류를 일으켰고, 그 오류 덕분에 년도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라고, 재단 내부의 데이터에 기록되어있다.


뭐, 사실은 그거 말고도 조금 더 숨겨진 내용이 있긴 하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본 문서를 꽉 채워도 설명할 수 없으니 넘어가자고.


"대충, 자아를 얻은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돼."

"그, 그래?"

"어허, 나는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내가 내가 시공연속성에 대한 강의를 할 수는 없잖니."

"뭐, 그렇긴 해."


아무래도 밀레니엄 버그는 오랜만에 재단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서 자기소개를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것 같은데, 밀레니엄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하면 진짜 끝도 없으니 나는 적당한 곳에서 밀레니엄의 자기소개를 끊었다.

이어서 나는 밀레니엄에게 하우스를 소개시키려 했지만, 밀레니엄은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하우스의 자기소개를 중간에 끊어버렸다.


"그럼, 밀레니엄. 이쪽은 하우스. 재단에선 격리체 0064로 불리고..."

"건물을 장악, 섭취 후 물리법칙을 무시한 공간을 생성해내는 격리체잖아? 다만 나무로 이뤄진 물질은 섭취하지 못하지. 물질적 실체가 없는 격리체여서 격리하느라 재단이 꽤 애를 먹었지만, 자아가 있다는 게 밝혀진 이후 인질을 이용한 작전으로 격리에 성공. 뭐, 더 말해도 돼? 이쪽은 다 알고 있다고."

"그래도 형식이란 건 중요한 거야."

"귀찮게. 그냥,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나 하면 됐지?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 저 변태한테 홀딱 빠져버린 소녀씨?"

"어, 네? 반가워요?"

"후후, 귀엽긴 하네. 네가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알 것 같아."


그치, 내 좆침반은 틀린 적이 없다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자꾸만 밀레니엄이 자신을 애송이 비슷하게 취급하는 데 화가 난 걸까?

하우스는 볼을 부풀리며 밀레니엄한테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그나저나 밀레니엄씨는 대로 오빠하고 무슨 사이인 거에요? 동료? 아니면 협력자?"

"후후, 무슨 사이일까? 적어도 너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긴 하지."

"그러니까, 뭐 묘한 사이는 아니었단 거네요? 그럼 됐어요.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그거면 됐다는 듯 하우스는 콧방귀를 뀌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지만, 이내 밀레니엄의 반격이 들어온다.


"어머, 너무 단정짓는 게 빠른 게 아니니?"

"그치만. 밀레니엄씨는 몸도 없잖아요?"

"후후, 저 변태가 실체화 장치를 누구한테 실험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설마, 저 변태가 아무 실험도 안 하고 실체화 장치를 너한테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 그건."

"진짜. 첫 실체화 때 저 변태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참."


몸이 없다는 걸로 놀리려다가 역으로 세게 얻어맞은 하우스의 모습을 보는 건 가학적인 즐거움을 충족시켜줬지만, 계속 이대로 놔두기엔 하우스가 불쌍하니 나는 슬그머니 둘 사이의 기싸움에 끼어들어 밀레니엄의 말을 정정해줬다.


"봉인 때문에 30초밖에 실체화를 못했잖아? 왜 그건 빼놓고 말해?"

"후후, 그치만 귀여운걸?"

"으으, 이대로..."


하우스는 울먹이면서 슬그머니 내 품에 껴안기고, 하우스는 듣는 것만으로 발기할 것 같은 질문을 내게 해왔다.


"내가, 첫번째 맞지? 그치...?"

"음, 격리체 중에선 첫 번째 맞지. 앞으로 계속 격리체가 늘어나도, 나한텐 네가 첫번째야."

"진짜지? 거짓말하면 안된다?"

"그래, 그래."


그런 말을 하면 자꾸만 흥분해버리잖아.

하지만 일단 지금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나는 내 허리춤에서 하우스를 때어내고 밀레니엄에게 부탁했다.


"그럼 밀레니엄. 내가 일 좀 하는 동안, 하우스한테 기초 상식 좀 알려줘. 얘가 90년대 초반에서 상식이 멈춰있어서."

"후후. 맡겨만 줘. 내가 아주 잘~ 가르쳐 줄게."

"좋아. 고마워."


하우스의 품 안에 밀레니엄이 머무르는 노트북을 안겨주고, 나는 조용히 안주머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서 내용물을 쇼파 위에 흩뿌린다.

도저히 서류봉투 하나에서 나올 양을 훨씬 넘어선 서류들이 흩날리고, 나는 서류들 사이에 털썩 드러누워 돈을 벌 방법을 고민한다.

일단, 내가 저금해둔 금액은 격리시설 하나를 건설하면 그걸로 끝날 것이다.

아무리 하우스가 날 도와준다고 해도, 격리체를 격리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첫 번째 목표를 따먹으려면... 한 달 안에 격리시설을 완성해야 하는데."


돈, 돈, 돈.

언제나 돈이 문제다.

재단 또한 언제나 돈에 시달렸고, 나 또한 돈에 시달릴 예정이니까.


"아예 돈이 나오는 격리체를 탈취해버려?"


무한히 돈이 나오는 격리체는 재단에 넘쳐 난다.

단지 시장 경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다고 재단이 사용하지 않는 것 뿐인데, 그것들을 어떻게 좀 긴빠이해올 수 없나?

하지만 재단 내부에서 탈출할 힘은 있어도, 재단에 침입해서 격리체를 뺏어올 힘은 내게 없다.

좀 더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다시 재단을 습격할 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재단 외에 다른 녀석들 역시 말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으니, 제대로 열심히 땀 흘려서 돈을 버는 방법 밖에 없다.


"인방...?"


거, 요즘에 인방이 그렇데 돈을 잘 번다는 데 나도 시도해 봐?

하지만 인터넷 방송을 하려고 해도 빌어먹을 재단이 정보를 격리한다며 차단해버릴 게 분명하고.

역시, 답은 악의 과학자답게 기술로 승부보는 수 밖에 없나?


"흐음."


이 세상에 공간을 다루는 격리체는 무척 많다.

그 때문인지 공간을 다루는 기술 또한 상당히 상용화가 된 편인데 내가 가져온 이 서류 봉투 또한 공간 관련 격리체들을 연구해서 탄생한 결과물들 중 하나다.

말 그대로 서류가 아니면 다른 물건을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한데, 이런 걸 시중에 판매하면 꽤 잘 팔리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물건들을 시중에 팔아버리면 분명 재단이 발작하겠지만, 뭐 어때?

난 이제 재단 직원도 아니고, 재단이 발작할수록 즐거운데 대충 재단이 발작하며 판매를 막을 때까지 한탕 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한 돈을 벌기 힘들다.


그럼 역시 답은 재단이 아닌 다른 조직의 지갑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일단 전직 재단 소속 연구원이 만든다는 것부터 꽤 괜찮은 브랜드 가치가 되어줄 것 같지 않아?

그럼, 재단이 아닌 다른 조직이 탐낼만한 아이템을 만드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흐음, 이거 어렵네."


아무리 내가 알고 있는 재단의 기술력이 압도적이라지만, 재단의 설비를 이용할 수 없는 지금 만들 수 있는 장비들엔 한계가 있다.

뭔가 지금 수준의 장비들로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데.


"으음..."

"저, 저기..."


도대체 뭔 아이템을 만들어야 할 지 고민하던 그때, 갑자기 하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널브러진 서류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올리자, 하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저 안쪽에서 하우스의 목소리만이 들린다.


"조, 조금 도와줄 수 있어?"


뭔가 무척 부끄럽다는 듯한 하우스의 목소리가 나한테 자꾸만 신호를 보내는데?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일어나 하우스의 목소리를 따라가자, 전에는 없었던 벽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벽 가운데에는.


"저, 저기. 여, 여기서 좀 빼줄 수 있어?"


벽 한가운데에 박힌, 하우스의 앙증맞은 엉덩이가 있었다.

당황스럽다는 듯 말을 동동거리며 씰룩거리는 하얀 엉덩이를 보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하우스."

"으, 응?"

"넣을게?"


크르르.

못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