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를 한번 만나게 된다면, 자기 몸이 어딘가 바뀌기 시작한다. 작게는 자잘한 습관부터, 크게는 어...몸이 확 바뀌던가. 저번에 만났던 론이라는 의사는 명의인건 확실하지만, 몸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는 일에는 대단한 인재인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어디서부터 말을 해줘야 할까?

  "왜요, 아저씨 생각보다 잘생겼는데."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란다. 캘시."

  "그...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여버린건 죄송해요. 저도 그게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구요."

  "그건 이미 사과했잖니. 머리야 물들어버린건 나중에 알아서 없어지겠지. 정 아니면 내가 직접 염색을 하면 되고."

  "...그리고 머리가 좀...풀처럼 된 것도..."

  "...괜찮다. 나름 시원하니까...말이다. 적어도 햇빛을 보면서 뜨겁진 않구나."

  "근데, 아저씨. 겉모습이 그러니까 되게 깨는거 알죠?"

  "...어째? 내가 너희 또래처럼 얘기해야겠냐?"

  "딱 좋네. 우리 또래처럼 해봐요."

  "...피곤해서 못하겠다."

  "아! 왜요~! 해요~!!"

  "나이 40가까이 먹은 아저씨한테 너희 또래처럼 얘기하라니, 젊게 살라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주마."

  "거울이나 보고 말하시라구요~!!!"

  캘시가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 간단하다. 의사가 몸을 헤집어 놓고 치료를 위해 난 잠을 푹 잤다. 너무 푹 잤다. 의사가 말한 대로, 대충 4일 넘게 필요하다는 일수가, 정말로 4일 넘게 잘 줄은 몰랐다. 그래서 배가 고프지 않다는 뜻이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잠에서 깨고 일어나려는 순간, 왼팔에 물렸던 흉터도 없어져 있었고, 손끝과 발끝이 약간 녹색으로 변했다. 당황해서 곧바로 캘시를 바라보자, 캘시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빠르게 거울을 찾으러 온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고, 아무 빈 방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그 속에 있던 것은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얇은 풀잎처럼 변해버렸고, 키도 작아졌고, 무엇보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내가 있었다. 한창 공부하던 때의 내가 있었다.



  "그 망할 돌팔이, 대체 어딨나?"

  "음...돌팔이는 아니지만...지금 연락하면 오지 않을까요?"

  "언제 도망갔나?"

  "잠에 드시고, 하루정도 여기서 지내다가 온실을 잠시 들르곤 곧바로 돌아가셨죠."

  "...얼굴을 보고 얘기해주지 않겠니? 왜 자꾸 얼굴을 피해서 얘기하니?"

  "...지금 아저씨 얼굴이 좀..."

  "그래. 나도 좀 이상한거 안다. 그래도 대책을 얘기해보러 여기 왔잖니."

  "아뇨, 이상한게 아니라 그..."

  "연락책은 어딨니? 크리스티나가 가지고 있나?"

  "아마 엄마는 연락하실 수 있을거에요. 근데 정말 만나시게요?"

  "뭘? 그 의사를 만나서 당장 되돌려 놓으라고 해야지. 이게 대체...사람 몸 가지고 무슨 장난을 쳐둔건지..."

  움직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거슬린다. 귓가에 울리는 풀잎이 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불 때의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크리스티나의 방 문 앞에 와서 노크를 했다. 뒤에서 보프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크리스티나? 안에 있나? 들어가도 되겠나?"

  "...어...올리버? 목소리가 왜 그래요?"

  "...내 목소리 바뀌었니?"

  "좀...다르게 들리긴 하죠?"

  방 문이 열리고, 크리스티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곧바로 놀라움으로 바뀌고, 말을 잃은 모습에 잠시 시간을 줬다.

  "...놀랍나? 나도 놀랐네. 당장 그 의사와 연락을 해줬으면 하는데, 가능한가?"

  "어...네. 가능해요. 좀...바뀌었네요."

  "그래서 연락을 하고 싶다네. 서둘러주면 좋겠어."

  "우린 거실에서 기다리죠."



  깊은 바다의 자매가 내 머리에 관심이 가는 모양인지,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느껴진다. 손을 뻗어 살며시 머리 위에 얹었다. 머리카락 하나 하나에 물이 침투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살이 느껴진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시원하지만 뭔가 다른...느낌이다.

  "엄청 신기한 모양인데요?"

  "나도 신기하다."

  "...그리고 뭔가 자극을 받은 것 같은데요?"

  "..누가? 어디?"

  "밖에요."

  "바깥에?"

  밖을 보니, 꽤...아니 엄청 많은 수의 자매들이 내려와서 보고 있었다. 전부 집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큰일이긴 하니, 바깥에 있는 의자로 가는 것이 좋겠다. 머리 위에서 바둥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허참...그 돌팔이 오면 빨리 고치라고 해야지...



  "...헌데 이건 무슨 상황이니?"

  "선생님이 오는 사이에 관심이 엄청 쏠려서 저렇게 됐어요. 아저씨도 반쯤 포기한 상태구요."

  "~~(보글보글)~~"

  "아저씨, 이젠 목소리도 못 들어요. 하나만 있었으면 어떻게든 귀를 대고 듣겠는데, 저렇게 물 속이나 마찬가지면 아무 말도 못 해요."

  "(보글보글 부글부글)"

  "목소리 안 들린...아, 어차피 저기도 못 듣겠구나. 어때 보여요?"

  "그래서 원하는게 뭐라고?"

  "원래대로 돌려달라는데요?"

  "원래대로? 내가 한건 말 그대로 원래대로 돌려둔거 뿐이야. 너흰 모르겠지만, 저 사람 몸 속엔 이상한게 많이 껴있었어. 그걸 없애줬지. 말 그대로 예전에 손도 닿지 않던 그 시간으로. 근데 너무 되돌리면 문제가 되잖아? 그래서 너무 돌아가지 않게 조절도 했지. 근데 뭐가 문제란 말인데?"

  "일단 치우고 하는게 어떨까요?"

  "얘들아, 좀 비켜주렴. 얘들아? 안되겠다. 캘시? 여기 와서 도와줄래? 애들 숫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뭐에요, 둘이서 못해요?"

  "언니는 저게 가능해 보여?"

  "선생님이 알아서 할 줄 알았지."

  "저 사람이 익사는 안 하겠지만,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것 같으니까, 일단 치우도록 하자."


  "...그래서, 날 원래대로 못 돌려주겠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당신 원래 모습이야. 그...머리에 난 풀잎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걸 고쳐달라면 고쳐줄 수는 있어. 그거라도 할텐가?"

  "풀잎 말고도 내 손발. 이것도 해줘야겠지?"

  "...후..잠깐 시간을 주겠나?"

  "왜? 도망가진 않겠지?"

  "환자를 앞에 두고? 잠깐 캘시랑 대화를 할 생각이야."

  "좋아. 빨리 끝내."

  론은 잠시 캘시와 대화하러 덩굴을 타고 올라갔다. 캘시가 내려준 덩굴을 잡고, 캘시가 끌어 올려줬으니 금방 올라갔다. 그나저나 이게 내 원래 모습이라고?

  "...캘시?"

  "어...들켰죠?"

  "그 사람은 모르는 것 같지만, 이건 내 잘못이기도 하고, 온실에 둔게 미스였어. 생각 이상으로 마력을 흡수하는 체질이야. 근데 캘시?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자기 입맛대로 바꿔버리면 어떻게 하니?"

  "아니, 계속 파래지길래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이것저것 건드렸을 뿐이에요. 그래서 겨우 색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깨버린걸요?"

  "그래서?"

  "아, 알았어요! 얼굴이 생각보다 괜찮게 나오길래 색을 좀 입혀봤을 뿐이에요! 근데 예상외로 아저씨가 내 영향 밑에 있으니까 떼려고 한건데..."

  "사람은 장난감이 아니야. 캘시. 너도 잘 아는 나이인데 왜 그랬어?"

  "그러게요. 나도 모르겠어요. 뭔가 씌었나..."

  "뭐, 됐다. 내가 손을 보면 못 고치진 않으니까. 너도 적당히 하고 엄마처럼 행동해."

  "엄마처럼요?"

  "너도 애가 한둘이 아니잖니?"


  "구체적으로 어떻게까지 해줬으면 한가?"

  "머리에 이거랑, 피부색, 그리고...정체를 알 수 없는 관심을 끄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도 없애주고, 키는 왜 줄였어?"

  "키? 그게 자네...한 22년 전의 키다만?"

  "뭐? 내가 이렇게 작았어?"

  "몰랐나? 자네는 지금도 크고 있었다만? 성장이 느리지만 멈추진 않았어. 억지로 다시 키우는건 가능하지만, 할텐가?"

  "평소에 닿던 거리가 닿지 않으니까 불편해. 당연한거 아냐?"

  "그래, 그거랑?"

  "...그리고 나 사람 맞나?"

  "그럼 뭐로 보이나?"

  "아니, 뭔가 이상해서 그래. 혹시 사람이 아니면 바꿔 달라고 하려고."

  "여기서 자네만큼 사람인 사람은 없어."

  저번에 흐릿하게 보였던 물체들은 작은 기계들이었다. 쐐기처럼 생긴, 작고 두툼한 흰색 바탕의 푸른 선이 보이는 기계들이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면서 내 몸 주위에 떠있다. 시술을 시작하니, 쐐기 끝에서 빛이 나면서 몸에 가까이 붙어 색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머리에 붙은 것들은 꽤...아프다. 저번처럼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아프진 않지만, 그래도 꽤 아프다.

  "다 됐어. 이제부터는 웬만해서 다른 아이 방에서 잠을 청하거나 하진 말게. 체질이 그렇거든."

  "체질이라니?"

  "자네 몸에 이상한게 껴있었어. 억지로 막아둔 느낌의 이질적인 뭔가가 있었네. 평범한 사람이랑 비슷한 정도로 마력을 차단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지금 빠진 상태야. 숨 쉬듯 마력을 빨아들이고 뱉을 수 있네. 근데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 뱉는 양이 생각보다 적어. 그 탓에 자네 몸에 있는 마력을 억지로 쥐어 짜서 뺐지. 앞으로 자주 들릴 일이 생겼군?"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뭔가 빠져서 일이 커졌다?"

  "비슷해. 원래 자네 것도 아니었으니 빼서 별 일은 없겠지. 아, 그리고 염색은 직접 하게. 염료는 많지?"

  "뭐? 아직 녹색이야?"

  "여긴 병원이지, 미용실이 아니라고."



  "돌아왔네요?"

  "그래. 염색은 직접 하라고 하더라고, 나중에 캘시에게 염색에 필요한 염료를 얻을 수 있길 바래야지."

  "아저씨 정말 큰일날뻔한거 알죠?"

  "큰일?"

  "머리에 있던 풀, 생각보다 위험했어요. 입맛이 도는 느낌이었다고요. 계속 씹어보고 싶어서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됐네요."

  "그랬어?"

  "저만 이런게 아니라 엄마도 그랬을걸요?"

  "크리스티나도?"

  "그럼 왜 여태 아저씨를 보러 안 왔을까요?"

  "..가늘고 긴 풀이 입맛이 도나?"

  "아뇨, 아저씨 풀이 신기하게 그랬어요. 계속 씹어 먹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했다고요."

  "못 참았으면 정말 위험했겠구나."

  "거기다 이왕 젊어진 김에 말투도 바꿔봐요, 아까처럼 오빠 같은 느낌도 괜찮은데. 이제부터 오빠라고 부를까요?"

  "아니, 됐다.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거라."

  "어머, 왔어요? 보기 좋네요. 녹색 머리도 어울리구요."

  "크리스티나도 내 머리가 그렇게 입맛이 돌았나?"

  "보프가 말해줬어요? 네, 정말 참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많이 젊어졌고요."

  "그래. 갑자기 20년 넘게 젊어졌다니, 나도 믿기 힘들어."

  "이제 아버지 같은 느낌보다 오빠 같네요. 후후."

  "당신도 그런 말을 하는군? 편하게 아저씨로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나이로 보면 도저히 아저씨로는 안 보이는걸요?"

  둘이 장난을 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아이들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반년 넘게 보호자에서 같은 가족 같은 느낌으로 변하다니, 앞으로 일상이 어떻게 변할지 참 고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