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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러니까, 뭐라고? "


저택의 주인은 그간 묵묵히 제 일만 하던 군용 로봇이 이른 아침, 부탁이 있다며 불려진 것에 무언가 원하는 게 생긴 건가 싶어. 군용 파츠를 달 것을 재고해달라던가 좀 더 기동력이 좋은 터빈을 달아달라던가 하는 이야기일 거라 지레짐작했으나. 의외의 요청에, 순간 얼빠진 사람이 되어 다시 물었다.


< 제게- 새로운 신체를- 주십시오-. >


" 새로운 신체? 전투용 바디가 갖고 싶어? "


< 아닙니다. >


아니라고? 라며 의외의 소릴 들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주인. 그는 평소 경비로봇이 제약에 걸린 상태에서 나름 넓은 편임에도 거체의 바디가 돌아다니기엔 비좁은 공간이라 소형화된 것으로 교체하길 바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 아, 혹시 민원 들어오는 거 때문에 그래? 소음만 아니면 별 문제 없으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


< ……그것도- 아닙니다-. >


" 으음……?? "


주인은 약간 당혹스러웠다. 경비로봇이 평소에 무언가를 바란 적도 없었건만, 갖가지 제약에도 딱히 별 불만 없이 고분고분 따라주었기에 무언가 바램이 있다면 들어줄 예정이었다.


허나 경비로봇은 의견이 있다면 주저 없이 말하는 편인지라 이렇게 돌려 말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일이다.


"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렴. 해줄 수 있는 선에서라면 최대한 들어줄게. "


아무래도 경비로봇은 업무상의 요청이 아닌, '자신의 의사로 처음 해보는 사적 요구라서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고 주인은 그렇게 이해했다.


< …싶습니다. >


"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


< 저도- 안젤라 양 같은- 신체를 갖고 싶습니다-. >


" 안젤라 같은? "


주인은 깜짝 놀라 귀를 기울이던 자세에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 그녀의 신체는- 효율이 좋습니다-. >


" 효율… 효율이라…. "


확실히, 안젤라는 다재다능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가능했으며, 인간에게는 무거운 것도 손 쉽게 옮겼으니.


하지만 경비에 있어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인간의 사이즈로 이 저택을 사방팔방 경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던 주인에게 배티는 기존 감시카메라들과 연동한 감시체계와 비상시 기존 기체로 옮겨 경비를 서는 것으로 조율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확실히, 기존 기체는 거동을 위해 연료를 많이 먹는 편이었다. 안젤라 정도의 신체라면 연료 소모도 적으니 장기적으론 그 편이 나을 거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안젤라의 제조사에 주문해서 같은 기종으로 달라고 할까? "


< …가능하다면-, 전투용 커스텀과- 다기능 커스텀이 가능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


" 흠. 알겠어. "


아무래도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AI라 그런지 전투와 기능면을 중시하는 것이리라. 주인은 그렇게 짐작했다.




………………

…………

……




철컥- 위이잉-


기계 내부의 회로가 돌아가며 마찰음을 일으키는 소리와, 전력이 들어와 기동된 센서를 통해 화상 데이터를 받아들인다.


소리가 감지된다.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 데이터베이스에서 대조한 결과, 그 목소리는 주인의 목소리다.


빛을 감지했다. 눈이 뜨인다.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과 만났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대상을 확인한다. 나의 주인.


" 주인… 님. "


모노톤으로 울리는 기계음이 아닌, 성대를 모방해 목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지는 고음질에 스스로 놀란다.


이게 내… 목소리?


" 새 몸은 어때? "


그 말에 나는 내 몸을 내려다 보았다. 이전 기체는 자신의 몸을 둘러볼 수가 없어서 움직일 때 조심해야했으나. 지금의 외형은 주변을 조심할 필요 없이 뒤를 빼면 거의 대부분을 둘러볼 수 있었다.


" 기능에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


아직 익숙치 않은 소리. 주인님께 그렇게 보고하자 미소지으며 옆에 있는 전신거울을 가리키셨다.



전신거울을 통해 확인한 내 모습은 안젤라 양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기능면에서 차이가 날 거라 생각은 했으나, 외모가 다를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주인이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 마음에 들어? "


" 몸은… 마음에 듭니다. "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마음에 든다? 사전적 의미로는 좋다, 만족, 수용과 비슷한 말이다. 전투 성과의 효율이 상승하는 파츠를 달았을 때 쓰던 말이기에, 이럴 때 쓰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 하지만…. '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없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단지,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 안젤라 양과는 외형이 다르군요. "


" 응? 그쪽이 좋았던 거야? "


" 그건… 아닙니다. 다른 외형인 이유가 궁금한 것입니다. "


" 아아 그거. 기왕 새 몸을 마련하는 건데, 내가 생각한 인상대로 요청해서 만들어봤어. "


" 주인님의… 인상…. "


그 말을 듣고 다시 거울을 쳐다본다. 본래의 내 모습은 설계도상으로 알고 있어, 거울을 통해 보는 지금의 모습은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 거울에 손을 짚었다.


' 차갑다. '


촉감 센서도 달려있는지 거울에 닿은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가 차가운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또한 매끈한 표면이라는 것도. 이전에는 무언가 닿았다는 것 밖에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나 감각이 다를 수가 있다니.


거울에서 손을 떼어, 얼굴에 가져다 댄다. 부드럽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설명서에서는 인공피부가 이식되어 있다고 한다. 앤 양은 인공피부 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내 모습은 앤 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약간 차가운 인상의 단발이었다.


앤 양은 밝고 따스한 편이던 것을 보면 주인님은 나를 이렇게 보고 계신 걸까.


그래도, 이 모습은 주인님이 직접 골라주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 부근이 따스해지는 걸 느낀다.


무엇일까. 동력구가 과열되기라도 했나.


손으로 가슴을 짚자 약간의 위화감이 다가왔다.


" …앤 양 보다 작군요. "


" 앤? 아~ 안젤라 말야? 아무래도 너는 전투형이라 큰 건 안 맞지 싶어서. "


" 그렇군요. "


" 혹시 큰 게 갖고 싶었어? "


" 아닙니다. 기능적 효용면에서는 이 편이 낫습니다. "


그래? 주인은 안심했다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나 스스로도 가슴은 전투에 큰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한다.


생각하지만은.


" 주인님은 큰 것을 좋아하십니까? "


" 큰 거…? 무, 무슨 말이야? "


" 앤 양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


" 윽. "


주인은 곤란하다는 듯 하하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 좋아… 하긴 한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 "


" 그렇습니까. "


배티는 주인이 앤의 가슴을 보는 시선 때문에 그녀처럼 큰 가슴이었으면 했으나, 평범한 사이즈인 것이 뭇내 아쉬웠다는 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다.


" 참. 그러고보니 이름을 정해야지. "


주인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떠올린 주제를 얘기했다.


" 이름… 말인가요? "


" 그래, 지금껏 이름도 없이 너라고만 불렀으니까. "


" 그거라면 정해둔 게 있습니다. "


" 어, 정말? "


" 안젤라 양과 대화하면서 생긴 애칭입니다. "


" 흐음~ 아까 앤이라고 했었지. "


그녀는 처음 안젤라가 왔을 때 처럼 메이드복 같은 스커트 자락을 잡아, 우아하게 인사해 보인다.


" 『기능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인공지능 배틀 로봇-』, 줄여서 【Battle AI】. 애칭은 Battle 에서 l을 i로 바꿔 ' 배티(Battie) ' 라고 합니다. 배티, 이 자리에 인사 올립니다. "


" 배티… 배티라…. 응, 어울리네. 다시금 잘 부탁해, 배티. "


" 네. "


그녀는 주인의 인사에 화답하며, 가벼이 미소지었다.



" 그럼 기동 확인도 끝났으니 실전 테스트하러 가볼까. "


그는 몸을 돌려 전투 테스트를 위해 방을 나서려 했다.


" 주인님, 그 전에 잠시. "


" 응? "


뒤에서 배티의 부름에 뒤돔과 동시에, 배티는 주인을 끌어안아 포옹했다.


" 배, 배티? "


" 그동안, 전하고 싶던 말이 있었습니다. "


갑작스레 안는 그녀에게 그가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 감사합니다. "


" 뭐… 뭐가 말야? "


" 그 날. 저를 창고에서 데려와 주신 것에 대해서요. "


" 아아……. "


주인은 이것이 그녀 나름의 감사 표현이란 것을 깨닫고,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 따스하다. '


이것이 무언가를 안는다는 감각일까? 이전 기체에선 겪어볼 수 없는 감각에 작은 기쁨이 느껴져 그의 체온을 더 느끼고 싶다.


' 앤 양은, 이런 걸 느끼고 있었군요. '


안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그녀가 말한 행위는 얼마나 좋은 걸까.


……부러웠다.


" 저기… 배티? 슬슬 가야하는데. "


" 아. "


배티는 그간 오래 붙들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주인에게서 떨어졌다.


" 죄송합니다. "


" 아냐, 신선해서 좋네. 그럼 갈까? "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테스트장으로 갔다.


그녀도 그의 뒤를 따라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하지 않은 두 발로 걷기에 조금 적응이 필요했지만 금세 평범하게 걸을 수 있었다.



방을 나와서 보는 세상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좁은 복도, 창가를 통해 내다보는 바깥, 지나다니는 식솔과 하인들.


저택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어 건물 외벽의 모습만 보던 것을 안에서 본다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 앤 양은 어디에 있나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


" 안젤라라면 테스트장에 있어. 기능 점검 받고 배티의 테스트를 준비하느라고. "


" 그렇군요. "


배티는 주인과의 대화에서 약간 신경 쓰이는 점이 생겼다.


" 주인님은 앤 양을 안젤라라고 부르시는군요. "


" 음? 안젤라는 안젤라잖아? "


" 그녀 자신이 앤이라 불러달라 하지 않던가요? "


" 아니? 그런 적은 없는데. "


그렇습니까. 화답하고는 사고에 빠진다. 그녀는 나에게 앤이라 불러달라 했으나 주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째서?


" 안젤라랑 많이 친한가봐? 애칭으로 부르고. "


" 잘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 친하다 ' 라는 개념을 그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정회로가 달린 신체로 넘어오면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애매한 표현에 적잖이 놀란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다. 부족한 것도.




………………

…………

……



테스트장에 도착하여 설비 점검을 끝내 빈둥거리던 앤이 주인과 배티를 발견하고는 화색이 돌아 총총걸음으로 다가온다.


" 배티? 배티죠! 어머~ 정말 어울려요! 새 기체를 받으신다길래 어떤 모습일까 했는데 딱 배티 양과 어울리는 모습이네요. "


" 그렇… 습니까. "


만나서 반가운 건지 배티의 의체가 신기한 건지 다가와서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당황한 배티가 말을 더듬었다.


" 그런데 신기하네요, 저랑 비슷한 구조신 거 같은데 이 몸으로 어떻게 싸우는 거죠? "


" 그건 이제부터 테스트해볼 겁니다. "


" 좋아요. 멋진 모습, 기대할게요~ "


앤이 그렇게 말한 후 장비 점검을 끝낸 기술자가 다가와 테스트 준비가 끝났으니, 테스트를 시작해도 된다고 알렸다.


주인은 배티에게 무기사용 허가를 내려 과녁이 나오면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시작을 알리는 부저음이 울린 뒤 여기저기서 과녁이 튀어나온다.


배티가 오른 소매를 걷어올리자, 손목과 팔뚝에서 총열이 빠져나와 부품이 조립되어 총기 모양으로 변하고는, 총구를 조준해 납탄 세례를 퍼붓는다.


과녁당 두-세발씩. 정확하게 맞추고, 왼 소매를 걷어 칼날을 꺼내 인간형 과녁의 사지를 베어 무력화하거나, 팔꿈치 까지의 팔 한쪽을 와이어 사출로 날려 전기충격을 가하기도 한다.


어느 표적은 몸을 감싸고 있어 멱살을 잡아 들어올린다거나 방패를 든 표적은 강력한 발차기로 표적째 날려버렸다.


" 워우…. "


전투용 커스텀을 주문하긴 했으나 상상 이상의 성능에 주인이 놀란다.


그 옆에 있는 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합격이네. "


" 이 정도군요. 기체가 작아지면 위력이 상당히 줄어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


기술자의 테스트 여부와 함께 태연하게 성능 평가를 내리는 그녀.


" 아니, 저렇게 위협적이게 싸워도 되는 거에요? 실 상황에서? "


" ? 가능합니다만. "


앤은 가정용으로 만들어진 AI이기에 전투기능은 제외되어 위협적인 행위는 할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배티에게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 멋있어요! 이러면 경비에는 문제 없겠어요. "


" 내 생각도 그래. 조금 돈이 들긴 했지만, 믿음직 해. "


" 그런가요. "


앤과 주인이 칭찬하자, 배티는 무표정으로 감상을 받아들였으나. 내심 그런 말을 기쁘게 여겼다. 자신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주인님. "


" 응? 왜? "


배티는 주인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


"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건, 저는 주인님을 지키겠습니다. 반드시. "


" 하하. 응, 고마워. "


둘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 옆에서 앤이 불쑥 끼어든다.


" 저는 안 지켜줘요? "


" 앤 양? ……지킬 수 있을 때는 지켜드리겠습니다. "


" 뭐에요~ 째째하게. "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에 툴툴거리는 앤을 보며 주인이 쿡쿡 웃는다.


" 테스트가 끝났지만 재사용하려면 다시 탄약을 보충해줘야 하네. "


" 아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배티, 오늘은 정비만 받고 쉬도록 해. "


" 쉰다…고요? 저는 휴식이 필요 없습니다만…. "


로봇에게 휴식이 필요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앤 양이 옆에서 거들었다.


" 그만한 위력을 이런 작은 몸으로 내려면 전력 소비가 클 거에요.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


" 아아…. "


앤의 보충 설명을 듣고 배티가 수긍했다. 작아진 만큼 동력의 에너지 보유량이 적은 것이다. 작은 몸이면 이런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 그러면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


" 그래. 오늘은 푹 쉬어. "


" 내일 보도록 해요~ "


주인과 앤 양이 각자 인사하며 떠나간다.


" 어딜가 이년아. 여기 잔해들은 치워야지. "


" 아얏! 머리 잡아당기지 마요! "


…앤 양은 그러지 못했다.


기술자에게 질질 끌려가 뒤처리를 돕게 되어 뾰루퉁해진 얼굴로 배티 옆에서 조잘거리는 앤을 보는 배티는, 그녀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의외스런 표정을 지은채 정비를 받았다.



' …즐거운 하루였어. '


배티는 오늘, 행복도 패러미터가 50% 상승한 것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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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참고용 이미지.

개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게 있어서 예전에 썼던 글인데 어떻게 이을까 두루뭉실한 상태에서 써서 좀처럼 진척이 잘 안 남.

여러개 쓰면 좋은 점은 하나 쓰다 질리면 다른 걸로 넘길 수 있는데 단점은 원래 쓰던 거 감을 못 잡아서 이어쓰기 거시기함.

이제 이 다음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