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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꼬리가 무거워 보여서는 하늘을 날지도 못하겠군."


"응, 하지만 날 필요가 없지. 이렇게~ 너처럼 큰 어른이도 한 입에 꿀꺽할 수가 있으니까."



그리드 서큐버스들은 하나같이 현성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며, 그녀들의 뒤로 꼬리가 두껍지 않은 보통의 서큐버스들 몇몇도 날아들어오기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의미 없는 싸움은 피하고 싶었는데. 두 시간 걸려서 걸어왔다고. 다들 이러기야? 정말 나와 전투라도 벌일 셈이냐."


"방금 전까지 수녀 언니한테는 잘도 떠벌리더니, 막상 우리랑 싸우면 질 것 같으니까 이제와서 그러는 거야? 한심하네~"



현성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침을 길게 늘여 뱉어 그의 머리를 적시며 조롱하던 서큐버스.

때마침 본보기로 삼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하던 현성은 손을 휘적거려 한 자루의 검으로 그녀의 목을 베어버렸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 고기가 잘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 후,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에 이어 육중한 무언가가 나무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너희 같은 종자 세 명을 죽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버려진 듯한 성채에서 대여섯을 더 죽였지.

너희를 죽인다고 해서 내가 근본적으로 레벨업이라도 하는 게 아니니, 더 이상 불필요한 소모전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서큐버스의 피를 뒤집어 쓴 현성은 네 자루의 검 모두를 공중에 띄어올린 후 안제와 서큐버스들을 바라보고서 나지막히 말했다.



"생각해보니 너희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들이었지. 그리 생각하니 의미 없는 소모전이 아닌 것 같군."


"겨우 서큐버스 하나를 죽인다고, 제가 겁이라도 먹을 것 같나요? 단언컨데, 당신은 이곳에서 제 발을 기쁜 마음으로 개처럼 핥게 될 거에요."


"아니, 너는 여기서 회개할 거다. 울면서 빌겠지. 내가 진정한 신을 보여줄 테니까."




공중에 띄어올린 네 자루의 검의 끝 부분끼리 이어져 십자가의 형태를 이룬다.



"....춤추자."



허공에 뜬 검들이 일제히 교회 안에 휘몰아치며 무분별하게 베어나갔다.

현성 본인도 자신을 노리는 서큐버스들을 피해 이리저리 발바삐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가 움직이는 검들은 세밀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서큐버스들의 팔과 다리, 가슴과 배 등에 자상을 남겨 쓰라린 상처를 입힐 뿐에 그쳤기에 그녀들의 숫자를 단숨에 줄여나가지는 못했다.



'썩을, 하다못해 갑옷이라도 입고 있는 적들이었다면 움직임 자체를 봉쇄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현성은 권능을 다루는 능력에 있어 이미 대검 다섯 자루는 동시에 휘두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한손검 네 자루를 동시에 과격하게 움직이면서 본인도 숨이 차게 뛰다니고 있으니까.



"칼날을 휘둘러 고통을 주겠다니, 미련하네요. 정절을 지키는 기사를 무릎꿇리는 것은 피가 끓고 살이 짓눌리는 고문이 아닌 허리가 휘며 절정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쾌락인 것을."



안제의 검보랏빛 화살이 길게 당겨져 현성을 향해 쏘아지려 하고, 현성은 이에 질세라 두 자루의 검을 안제의 어깨와 무릎을 향해 날리려는데.

갑작스레 허공에 생성된 두 개의 빛의 구슬이 폭발하며 교회 안에 있던 모두의 시야를 잠시 빼앗았다.



"자, 다들 싸움은 이제 그만. 모처럼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파티를 열지는 못할망정 이래서야 되겠어요ㅡ 수녀님?"



섬광의 여운이 서서히 가시고, 선홍빛의 머릿결이 곱게 흩날리며 한 여인이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긴 간격으로 울리며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도 신기한 마법을 쓰는군요. 밖에서도, 지금도 당신에세선 어떠한 마력도 느껴지지 않아요."



한쪽 눈에 안대를 걸친 채, 가슴과 엉덩이뿐 아닌 몸의 굴곡진 라인이 모두 드러나는 의복을 걸치고 있는 그 여인은 현성의 옆에서 걸음을 멈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뭐죠?"



금방이라도 홀릴 법한 달콤한 물음에 평범한 남정네라면 실금이라도 저질러버렸을 테지만, 현성은 자신의 볼 살을 살짝 짓이겨 물고서 정신을 차리며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보시지. 이쪽과 아는 사이 같은데."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현성에게서, 자신의 한쪽 눈을 앗아간 사람들이 잠시나마 떠오른 시스티나는 한순간 차갑게 정색하였으나, 곧바로 조금 전처럼 온화한 얼굴로 돌아와 현성의 말에 답했다.



"저는 시스티나. 한때 용사님과 함께 마왕을 쓰러트린 왕궁 최고의 백마술사랍니다."


"왕궁 소속? 지금 왕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마물들과 작당을 하는 건가? 내가 지금 너희의 목을 그어도 이 나라는 내게 책임을 묻지 않겠군."



현성의 말에 서큐버스들이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기분나쁘게 그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가 눈을 돌려 그녀들을 바라보자, 자신을 비웃으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서큐버스들의 모습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현성.

아마 그의 예상과 달리, 이 나라에는 더 깊고 어두운 음모가 도사리는 것 같다.



"....그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손님들께 들어보시는 게 빠르겠네요."


시스티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등을 살며시 떠밀어 교회 문을 함께 나섰다.



"....뭐야, 한 명 더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브라이언 오넬.

전 용사 파티에서 탱커 포지션을 맡았던 사내.

2미터에 육박하는 커다란 체구를 가진 그는 어지간한 성인 남성만한 대검을 한손검 휘두르듯 가볍게 휘둘러 수많은 마물들을 뼈채로 베어갈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피비린내, 역겨워 죽겠네."



하르티시아.

전 용사 파티에서 궁수 포지션을 맡았던 여인.

선녹빛 머릿결이 풀 내음과 함께 살랑거리며, 1km 밖에서도 마물들의 머리를 꿰뚫는 화살을 쏘아내던 엘프들의 자랑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지금은...



"....못 보던 사내인데."


"우와, 새로운 친구 한 명 더 생기는 건가? 야, 넌 이름이 뭐야??"



시리우스 안젤라.

루시우스 안젤라.

왕국 북부기사단장.

쌍둥이 자매이며 언니인 루시우스는 햇빛과 같은 금발을, 동생인 시리우스는 달빛과 같은 은발을 가졌다.

둘이 합쳐 북부기사단장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북부기사단은 왕을 호위하는 최정예 부대로 군림하고 있다.



"....뭐냐 너희는."



하지만 그들이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고, 그저 고집 세게 생긴 네 명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귀찮음이 서서히 피어오를 뿐인 현성은 그들을 번갈아 노려봤다.



"여러분, 이 분은 신기한 기술을 사용하실 줄 안답니다. 검을 손에 쥐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어떠한 마력도 감지되지 않았어요."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기분나쁘게도 떠벌리는군."



쇼호스트 옆의 상품이 된 기분에 현성은 검 한 자루를 움직여 시스티나의 목에 가져다대었고, 그 모습은 그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의 이목을 끄는데 충분했다.



"우와, 어떻게 한 거야???"


"....확실히, 마력은 감지되지 않는군요."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지?"


"....인간 주제에."



시리우스는 루시우스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콕 두드리며 물었고, 루시우스는 마력을 감지해봤으나 아무런 마력이 느껴지지 않음에 의문을 가졌다.

브라이언은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었다. 아마 현성과 한 번 겨뤄보고 싶은 거겠지.

하르티시아는 짜증이 가득한 경멸의 눈초리로 현성을 노려보며 나지막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기사단장님들 두 분이서 이 분과 함께 왕궁에 다녀와주셨으면 해요. 아무래도 저희에게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그 오해를 풀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오해? 오해라니, 난 그저 저 년들 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들을 죽이려는 것 뿐이다. 돈도 벌 겸."



돈도 벌 겸. 그 한마디에 루시우스, 시리우스, 브라이언 세 사람의 입가가 씰룩이며 '그럼 그렇지.' 하는 그윽한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면, 하르티시아는 '역시 그럼 그렇지.' 하는, 음식물 쓰레기 통을 보는 듯한 경멸의 눈초리로 현성을 쏘아보았다.



"네~ 백마술사님~ 이 신기한 기술을 쓰는 오빠 데리고 임금님 뵙고 올게요~"


"뭐, 시스티나 당신이 말한 거니 믿어보도록 하지요."



시리우스와 루시우스는 성큼성큼 발을 옮겨 강현성을 향해 다가간다.



"잠깐, 내가 언제 너희와 함께 간다고 그랬지? 내 몸에 손대는 순간 너희의 목을 그어버릴 ㄱ



검들이 칼끝을 안젤라 자매에게 겨누며 위협하지만, 현성의 등에 검보랏빛 화살이 꽂히고 온 몸에 힘이 빠진 그는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무슨..."



자신의 몸을 뚫고 가슴까지 튀어나와 있는 검보라색의 화살을 만지는 현성. 힘겹게 뒤를 돌아보니 수녀 안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 갈 길은 머니까 마차 타고 가자?"


"...되도록 자기 발로 타 줬으면 좋았겠는데."



안젤라 자매는 의식이 흐려져가는 현성의 몸을 들어다 마차에 싣고서 왕궁으로 향했다.



"....저 사내가 어디에서 온 거죠?"


"아마....두 시간 정도 걸었다고 그랬으니 남부 지방 마을이겠네요."



시스티나와 안제는 현성이 목을 베어버린 서큐버스의 피로 젖은 교회 안에서 홍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이 사내에게 진짜 절망을 보여줘야겠네요."


"절망이라 함은..?"


"아가씨들~ 남부 지방 마을을 침공해주세요~ 단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 마음껏 하셔도 상관 없답니다."



시스티나가 해맑게 웃으며 수다를 떨며 기다리고 있는 서큐버스들에게 주문하자, 그녀들은 흥분한 듯 얼굴에 홍조를 띄고서 교회를 나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안제가 불안한 눈으로 시스티나를 바라봤지만, 시스티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홍차를 마시며 답했다.



"괜찮아요. 오히려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한 마을에 매복해서 먹잇감을 기다리는 습성을 가진 그리드 서큐버스들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와 줬잖아요.

그리 굶주린 그녀들이 남부까지 간다면 그 마을이 어떻게 될지....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시스티나의 눈은 순수했다.

생기를 잃지도 않았고, 미소를 잃지도 않았다.

그저, 죄의식조차 갖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이 마물들에게 '포식'당하고 '전생'당하는 것을 방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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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씨발

항상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