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게는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를 풀 때.


[그게 답이 아니라 3번이 답이야.]


장을 볼 때.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그거 상했어. 다른 걸 고르자.]


전화를 받을 때.


[보이스피싱이니까 당장 끊어.]


어디선가 내게 훈수를 두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렇다고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목소리의 말을 따를 때마다 이득을 볼 수 있었으니까. 


뭐 '쟤를 찔러 죽여라', '쟤가 네 욕을 한다' 같이 이런 종류의 위험한 환청이었으면 당장이라도 정신과에 갔을 것이지만, 그런 연유로 나는 정신과에 가지 않았다. 


괜히 갔다가 약을 처방받고 헤롱헤롱한 정신이 되어, 수험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것이 내키지 않은 것도 그 선택을 하는 것에 한몫했다. 


그렇게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환청이 내게 이상한 요구를 했다.


[저 모퉁이에서 서 있어.]


저기 서 있으라고? 왜?


그러나 물어도 답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환청은 언제나 자기 할 말만 하고 말았으니까. 


일단 저기 가있을까.


그래도 지금까지 환청이 한 말을 따랐을 때 그 결과가 안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위험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경험을 믿었다. 


아니지. 그렇다고 정체 모를 목소리를 믿는 건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 


하물며 마물들의 등장으로 마법까지 있는 세상… 세상…….


……뭐더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나는 멍한 상태로 이동했다.


그렇게 모퉁이에 도달한 순간.


반대편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앗……!"


촤아아악!


"아."


커피가 쏟아진다. 내 옷은 순식간에 갈색으로 염색되었다. 


내게 커피를 쏟은 범인은 입을 가리고 놀라더니 이리 말했다. 


"죄, 죄송해요! 정말,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이거 제 명함이에요! 연락주세요!"


그렇게 명함 하나만 남겨두고 떠난 소녀를 보며 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완전히 젖은 옷과 찝찝함 세 스푼. 그리고 약간의 분노와 함께, 그저 서 있었다. 


그러다 물었다. 


"야. 서 있으라고 해서 서 있었는데."


[......]


"이건 대체 뭐냐?"


환청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물어봐도 이럴 것 같아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후우우…….


냉정을 찾으니 이제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


이그드라실의 대리고, 이름은 올리비아 비르타넨? 이렇게 읽는 건가. 영어라 잘 모르겠네. 


그나저나 이그드라실이면 거기 아닌가?


라타토스크들이 사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던 기업. 


확실히 방금 내게 커피를 쏟았던 소녀 또한 라타토스크처럼 생기긴 했었다.


다람쥐 꼬리가 있었지 아마. 


꼬리. 꼬리라. 


예전에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라타토스크에 대한 게 떠서 본 적이 있는데, 꼬리가 정말 부드럽고 푹신하다고 했었다. 


세탁비 물어주는 대신 한 번 만지게 해주면 안 되냐고 물어볼까? 


물론 진짜 말하면 성희롱으로 고소당할테니 생각만 했다. 



******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냥 계좌로 돈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사정사정하길래 만나게 됐다. 


안 만나주면 콱 죽어버릴 거라나. 농담인 것 같지만 살짝 섬뜩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대뜸 머리부터 박았다. 


"그날은 정말 죄송했어요……."


"아뇨 뭐. 그럴 수도 있죠. 정말 급한 일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갑자기 미팅이 잡혀서요. 그래서 커피도 다 마시다 말고 가고 있었는데……."


"거기서 딱 저랑 부딪혔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계속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혹시 그렇게 미안하면 꼬리 만지게 해줄 수는 없나. 


"그러면 꼬리 만져도 되나요?"


아. 


나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러면은 또 뭔 그러면이야. 


맥락 없이 튀어나온 말에 나는 당황했고,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꼬, 꼬리요? 제 거요?"


"아니아니아니, 실수예요. 말을 잘못했네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나는 없던 일로 해버리고 싶었다. 저 말을 한 것 때문에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뇨. 이런 걸로 사과가 된다면… 네. 만져도 돼요."


정말 되나?


"진짜요?"


"네."


"만졌다가 막 성추행으로 고소하는 건 아니죠?"


"계약서라도 써드릴까요? 아니다. 그냥 이렇게 할게요."


저쪽에서 내 손을 붙잡고 자기 꼬리에다가 가져다댔다. 


"이러면 되겠죠?"


"네."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빼면 남자가 아니다.


나는 즉시 꼬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오오, 이게 라타토스크의 꼬리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더 막 만져도 돼요. 이런 식으로 문질문질."


저쪽에서 만지는 걸 허락해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만지는 건 좀 뭐해서, 나는 단지 소극적으로 꼬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그랬더니 저렇게 더 적극적으로 만져도 된다는 허락이 나왔다. 


허락을 받았으니 시도해야지. 


"이렇게요?"


"네. 근데 거긴…♡ 앗♡"


"어우."


"미,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셨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살짝 당황한 거라…… 더 만지셔도 괜찮아요."


그래서 더 만지려고 했는데, 주변을 보니 다 이쪽을 보고 있었다. 


대놓고 보는 건 아니지만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다. 아예 귀를 이쪽으로 대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갑자기 개쪽팔리네.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이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그 말을 하자 상대방도 주변 상황이 어떤지 파악한 것 같았다. 


"......그러네요. 일단 나갈까요."


"어디로 갈까요?"


"잠시 저 좀 따라오실래요?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네, 그러죠 뭐."


그 말을 한 순간, 난 이미 라타토스크의 덫에 걸려 있었다. 


그것도 밟으면 인생이 끝장나는 커다란 덫에.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호텔에서 몸을 겹치고 있었다. 


[더, 더 세게 해줘…….]


"아니, 해주세요… 서방님……♡"


뭔가 이상하지만 알게 뭔가.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그렇게 나는... 라타토스크의 남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