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쩍은 메이드와 무면허 의사 (3)

 

 

 

 

키르메니아는 카자흐스탄의 남서쪽, 카스피 해(海) 중앙에 반도처럼 이어진 형태다.

 

그렇기에 키르메니아로 들어오려면 배를 타거나 북쪽 러시아와 이어진 육로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키르메니아 영토의 60%는 절벽과 산이어서 들어올 수 있는 항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었다.

 

“꽤…황량한 곳이군요.”


“전쟁 때 피해가 제일 컸던 지역 중 하나였으니까.”


키르메니아의 북쪽, 국경 지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다.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과 몇몇 주민들,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모를 수상한 인간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살지 않는다. 특산물도 없고 볼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시골이다.

 

우리는 기차역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우선 군인들을 만나보는 게 좋겠군.”


“그래도 됩니까?”


“이 동네 군인들은 거의 징집되거나 좌천된 놈들이야. 그다지 빡세진 않아.”


술만 조금 사줘도 금세 입을 열 것이다. 군인들에게 술이란 하느님과 같은 것이다.

 

“정보만 얻으면 바로 돌아가자.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 돼.”

“알겠습니다.”


그럼 군인들은 어디서 찾아볼까? 우리는 만만해 보이는 군인을 찾아 기차역 근처를 

 

둘러보았다. 한 40분 정도 돌아다닐 즈음, 골목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병사를 발견했다.

 

“이봐, 거기. 잠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요.”


나이는 한 22살쯤 됐을까, 아직 풋내 나는 애송이였다. 계급장을 보아하니 일병이었다.

 

“이름은?”


“내가 왜 댁한테 그런 걸 알려줘야 하나?”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경계하지 말게. 나는 닥터 레프, 여긴 내 조수 키리프.”


“그 옆에 그거 마물 아냐? 거 취향 특이하군.”


병사가 담배 연기를 후 내뱉었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혹시 요 며칠 동안 이상한 일 없었나? 오토마톤이 나타났다던가.”


“으음, 알코올이 좀 들어가면 입이 가벼워질 것 같은데.”


“술이라면 얼마든지 사주지.”


나의 말에 병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여간 이놈들은 나라를 지키는 건지 술을 마시려고 

 

입대한 건지 모르겠다. 하긴, 나도 저 시절엔 그랬으니 할 말은 없다.

 

“오토마톤이라. 그래, 일주일 전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사람을 총으로 쐈지.”


“누굴 쏜 거지?”


“짐에 숨어들어오다 발각됐다고 들었어. 짐을 검사하던 놈이 죽을 뻔했다고.”


그럼 밀입국한 건가. 하지만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온 걸까?

 

“듣기론 러시아의 스파이라는데 난 안 믿어.”

“이유를 듣고 싶군.”


“러시아는 지금 개판이 됐어. 어디 스파이 같은 걸 보낼 여력 따윈 없을 거라고, 안 그래?

 

차라리 구소련의 망령이라고 하는 게 훨씬 그럴싸하지!”

 

“구소련의 망령? 그게 뭐지?”

 

내 질문에 병사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짓밟았다.

 

“형씨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거야……세계 곳곳에 소련의

 

부활을 꿈꾸는 반동세력이 숨어있어. 위험한 새끼들이지.”

 

무슨 음모론 같은 이야기군. 나는 고맙다고 대답한 뒤 돈을 꺼내려했다.

 

“잠깐! 이왕 만난 거 같이 마시지 그래? 좋은 술집을 아는데 말이야.”


“아니, 우린 바빠서…….”


“남자답지 못하게 왜 이래? 그쪽 마물은 술 꽤나 잘 마실 것처럼 생겼는데.”

 

“저보다 잘 마시는 사람은 본 적 없습니다.”


“거봐! 형씨, 술집에 같이 가주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 이야기도 해주지. 어때?”


“……좋아. 그렇게 할까.”

 

어쩌면 이 병사에게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사의 제안대로, 우린 그가 안내해준 술집으로 향했다.

 

 

 


 

 

 

 

*****

 

 

 

 

 

 

 


“좋은 술집이라더니?”


“술이 있고 집이 있으면 그게 술집 아니던가?”


할 말이 없다. 병사가 안내해 준 곳은 정말 동네 술꾼들만 모이는, 그런 술집이었다.

 

아직 오후 9시밖에 안 됐건만 바닥에 쓰러져 토하고 있는 주정뱅이들이 보였다.

 

“나는 보드카로! 댁은 뭘 시키겠나?”


“맥주로 부탁하지.”


“그쪽의 마물은-”


“블랙러시안.”

 

주문을 하자마자 주인장이 능숙하게 술을 따라 우리 앞에 놓았다.


“일병, 저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내기?”


“둘 중 누가 먼저 뻗나 내기합시다. 지는 쪽이 술값을 다 내는 걸로.”


“하! 마셔봤자 얼마나 마신-”


“질 것 같으면 안 해도 됩니다. 뭐, 그쪽에겐 아무런 득도 없는 내기니까요.”


키리프가 씩 웃었다. 그녀가 웃을 땐, 보통 누군가를 비웃을 때뿐이었다.

 

“좋아! 대신 지면 그쪽이 술값에 내 외상값도 다 갚아줘야겠어!”


“승부 앞에서 도망치는 겁쟁이는 아니라 다행이군요.”


“키리프, 너-”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승부가 시작됐다.

 

두 사람이 앞에 나온 술을 단숨에 들이마신 후, 보드카를 병째로 주문해 마셔댔다.

 

“이봐, 그 혼자만 아는 비밀 이야기 먼저 해주지 그래?”

“아참, 그랬지……근데 별 거 아니야. 그 오토마톤에 대한 소문일 뿐인데.”

 

소문? 병사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트림했다.

 

“끄윽……그거 말이야, 그 오토마톤.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그건 평범한 오토마톤이 아니래.”

 

“무슨 뜻이지?”


“듣기론 엄청 비밀스러운 시설에서 왔다 그러더군. 그게 뭔지는 몰라도 말이야.”

 

비밀스러운 시설? 그 때, 키리프가 갑자기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딴 건 됐으니까 빨리 마시세요. 뭡니까, 벌써 뻗는 건 아니겠죠?”


“젠장, 이거 완전 술고래 아니야?”


“말을 못 했는데……키리프는 진짜배기 술꾼일세. 냅두면 하루에 보드카를 5병씩 마신다고.”


“이런 미친-”


그 후, 오후 11시가 됐을 무렵 승부가 끝났다.

 

이름 모를 병사는 인사불성이 되어 엎어졌고, 키리프는 그 옆에 앉아 다음 술을 주문했다.

 

“히끅……벌써 뻗다니, 하여간 약해빠졌어…….”


“이제 그만 마셔, 주인장. 여기 하루 머물 곳이 있나?”


“바로 건너편에 여관이 있소.”


“술값은 저 청년한테 받으시게. 그럼 이만.”


내기는 내기니까. 나는 키리프를 등에 업고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 주인은 나이 많고 몸집이 큰 아줌마였다. 그녀가 우리 둘을 흘깃 쳐다보더니

 

나무패가 달린 열쇠를 건네주었다.

 

“방을 따로 쓰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하나뿐이올시다. 이 시간이 되면 술꾼들이 방을 다 차지해서.”


“젠장.”

 

어쩔 수 없군. 나는 돈을 지불하고 키리프와 함께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쭈인님, 쭈-인님!”


키리프가 킥킥 웃으면서 내 뺨을 꼬집었다.

 

“아하하하, 얼굴 못 생겼어! 쭈인님, 왜 이렇게 못 생기게 태어났어요?”


“우리 엄마한테 가서 따져! 그, 그만해-”


키리프는 어지간해선 취하지 않지만, 한 번 취하면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성격이 된다.

 

“쭈인님, 쭈인님. 팬티 보여줄까요? 와!”


“치마 내려!”


“저 오늘 검은색이에요!”


“안 물어봤거든!”


나는 키리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들어올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어라? 혹시 흰색이 더 좋아요? 그러-면 내일부턴 흰색으로 입을게요!”


“필요 없어! 안 보여줘도 되니까 제발 내려!”

“내리라는 건 팬티 말씀하시는 거죠? 쭈인님의 명령대로오!”


“아니야!!”


제멋대로 날뛰는 키리프를 겨우 제압하고, 나는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주인님.”


“왜 자꾸 불러.”


“저 주인님 좋아요.”


키리프가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주인님은 나 좋아해?”


“……뭐, 그럭저럭.”


“뭐야 그게! 저 말이죠, 주인님이 덮쳐도 저항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해도 돼! 허락! 합법!”


“시끄러워 바보야. 진짜 그러면 내일 아침에 죽이려고 할 거면서.”

 

“안 죽일게요, 약속!”


나는 키리프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쩔 수 없지, 바닥에서 자야 하나……그 때, 키리프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이번엔 뭐야.”

“나한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주인님밖에 안 남았어요.”


“……응.”

“다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주인님은 떠나지 마요…….”


“안 떠날 거야. 널 두고 어딜 가?”

 

“…….”


키리프가 잠들었다. 내일 아침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방금 그건…….

 

아니.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

 

 

 

 


 

 

나의 아침은 역겨운 구토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키리프가 양동이를 붙잡고 거기다 요란하게 토하고 있었다.

 

“우엑, 으으으…….”

“너무 마셨지?”


“저도 나이를 먹긴 먹- 우윽……!”


“어휴, 제발.”


그 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열려고 하는 듯 문손잡이가 움직였다.

 

“뭐야? 문 앞에 누구요?”

“……! 엎드리세요!!”

“뭐?”


문이 폭발했다.

 

말 그대로, 문이 박살나며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그 너머엔,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키리프의 주정목록

 

주인님을 쭈인님이라고 부른다

옷을 벗으려고 한다

느닷없이 춤춘다

섹드립을 친다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