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젊은 주인과 일꾼들은 당황했어. 

축사 안의 소들이 다 피가 빨린 채 죽어 있었거든

벌써 이번 달에만 세번째였어.

이 농장은 소를 키워 고기나 우유를 파는 곳은 아니었어.

하지만 소들은 밭을 가는 것에 필수적인 존재였지.

워낙 돈이 많아 소 몇마리 값 정도야 부담도 아니었지만, 멀리 시장까지 가서 소를 사 오는 과정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주인은 범인을 그게 마물이든 들짐승이든 사람이든 일단 잡기로 했어. 일단 소가 더 죽어 나가지 않아야 할 테고, 여기에 더해서 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사람 귀찮게 하는지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지. 하지만 딱히 발자국 같은게 남은 것도 아니었고, 흨적이라고는 소의 목덜미에 깊게 박힌 송곳니 자국 뿐이었지.


주인은 꾀를 냈어. 자기가 소 행세를 해서 녀석이 주인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할 때, 제압하는 거지. 마침 주인은 군인 출신이라 덩치는 비슷했고, 여기다가 소 가죽을 뒤집어쓰자 감쪽같았어. 그렇게 변장을 하고, 오후 6시부터 주인은 축사 하나에 엎드려 소 행세를 하기 시작했어. 옆에는 올가미 등으로 무장한 일꾼들이 잠복 중이었지.


뭔가가 튀어나온 건 자정 때였어. 작고 검은 형체가 폴짝 하고 도약하더니 주인 옆의 수소의 목덜미를 움켜쥐었지. 소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피를 쭉 빨리더니 그대로 벌러덩 쓰러졌어. 검은 형체는 다시 폴짝 뛰올라 주인에게 달려들었지. 주인은 재빠르게 형체를 손으로 잡아 바닥에 메다꽂았어. 일꾼들이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와 올가미로 녀석을 묶었지. 주인과 하인들은 녀석을 그대로 미리 준비해둔 쇠창살 우리에 가두었어. 그리고 그제서야 횟불을 가져와 녀석의 생김새를 보았지.


녀석은 몸집이 작고 허리가 굽은 마물이었어. 온몸이 얼굴을 제외하곤 검은 털에 덮여 있었는데, 얼굴만큼은 꽤 예쁘고 귀여웠지. 저게 뭐지 하고 일꾼들과 주인이 신기해하자 오래 전부터 일해 온 늙은 일꾼이 말하길 저 녀석의 이름은 츄파카브라로 짐승의 피를 좋아해서 빨아먹는데, 보통 잡히면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해. 원래 흉측한 외모인데 새로운 마왕의 영향으로 외모가 변했고 말이지.


주인은 불에 태워 죽이기엔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힘깨나 쓰는 것 같으니 일꾼으로 써먹을까 생각했지. 소 피 정도는 푸줏간에 부탁하면 얻을 수 있을 테고 말이지. 주인은 녀석을 자기 숙소로 데리고 갔어. 거기서 녀석을 씻기고 수프를 먹였지. 녀석은 처음에는 악을 쓰고 반항했지만 어느샌가 가만히 주인을 쳐다볼 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게 되었어.


해가 뜰 무렵 녀석은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어. 아무래도 야행성이니 낮시간대가 되면 졸린 듯 했지. 주인은 숙소의 자기 침대에 녀석을 눕히고는 자신도 피곤했기 때문에 침대 옆에 돗자리를 깔아 잠을 청했어.


하지만 녀석은 자는 것이 아니었어. 배도 채웠겠다, 오히려 더 팔팔해져 있었지. 녀석은 소 대신에 자던 주인에게 달려들었어. 주인은 화들짝 깼지만 반항은커녕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 녀석은 주인의 피 대신 다른 걸 가득 빨아먹었어. 


녀석의  포식이 끝나고 그제서야 몸이 자유롭게 된 주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상하게 녀석을 버리고 싶지 않았어. 대신 예의범절과 말을 가르치고 농장의 소를 잡아먹는 등의 돌발행동은 못하게 했지. 얼마 안 있어 녀석의 배가 빵빵해지자 버릴 수도 없게 되었어. 녀석은 어눌한 말로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씨익 웃으면서 말했지. "주인..! 아기다..! 멋지다..!"


이후 인간생활에 적응하게 된 녀석은 일꾼들에게  마님 소리를 들으며 농장의 안주인 노릇을 하게 되지만 그건 아무래도 먼 훗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