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방심은 금방 커다란 불꽃이 되어,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었다.






호텔 8층에 위치한 연회장에서는 유명 주식증권의 임원인 타누키와, 경쟁사 사장이었던 인간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그 날은 오전에 발생한 지하실의 누수와, 그로 인한 단전으로 인해 호텔은 급하게 촛불들로 조명을 대체한 상태였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촛대가 누군가의 실수로 쓰러렸고, 촛불은 순식간에 테이블보 전체로 번져올랐다.


가장 가까이 있던 직원인 키키모라가 소화기를 가져오는 사이에 불은 순식간에 카펫으로 옮겨붙고, 연회장 전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지어져 실내 구조물의 대부분이 목조인 탓에 불은 너무나 빠르게 번졌고, 작동해야 할 스프링클러와 소화전은 누수를 수리하기 위해 밸브를 중앙급수시스템의 밸브가 잠긴 탓에 작동하지 않았다.



불길은 하늘 높이 솟았고, 연기는 그보다 더 높이 솟았다. 비명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출구를 찾아헤맸으나, 건물 내부를 가득 채우는 연기 속에서, 원래는 들어오는 자 모두를 환영했을 복도와 연회장, 계단들은 미로처럼 그들의 탈출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건물을 향해 붉은 불빛을 번쩍이는 트럭이 다가왔다.




"엔진 17, 현장에 도착했다."




검은색 원단에 노란색 줄이 들어간 방화복 위에 미리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리자드맨, 라일리 소방장이 상황실로 연결된 무전기에 보고했다.




호텔 주위의 길가에는 호텔에서 막 탈출할 사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지금도 연기를 뿜어내는 호텔의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엔진 17, 이보드빌 소방서의 17번 소방차는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소방차가 건물의 입구 앞, 작전구역 앞에 정차하자, 문이 열리며 소방관들이 우르르 내렸다.


라일리 소방장 외에도 그렘린 한 명과, 고블린 셋으로 이루어진 소방관들의 모습은 다들 약간씩 달랐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방화복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그들은 같은 전선에 선 전우였고, 생명을 나눈 자매들이었다.




라일리 소방장이 호텔로 먼저 앞서서 다가가자, 대피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던 메이드복 차림새의 키키모라가 다가왔다.



정갈한 인상의 복장은 검은 재에 물들어 엉망이었고, 깃털은 불에 타 녹기까지 했다. 심지어, 불에 탄 소매 사이로는 진피까지 드러난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라일리 소방장이 묻자, 겁에 질린 표정의 키키모라는 떨면서 말했다.



"불, 불이 너무 빠르게 번졌어요. 소화기를 다 써도 안 꺼져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다른 소화기를 가져오기도 전에 너무 크게 번져서……."


"괜찮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키키모라의 상태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라일리 소방장은 키키모라를 근처 보도에 앉혔다.


부상과 충격으로 공황상태가 된 피해자를 함부로 돌아다니게 방치했다간 더 큰 사고나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라일리 소방장은 아직도 떨고 있는 키키모라를 향해 물었다.




"화재가 몇 층에서 시작됐습니까?'


"8층…… 8층 연회장에서…… 결혼식 중에 촛대가 쓰러져서……."


"호텔 투숙객이나 결혼식 참석자 명단은 있습니까?"




키키모라는 떨리는 고개를 천천히 내리더니, 힘이 잔뜩 들어가 떨리는 손 안에서 구겨진 서류철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장식이 들어간 방명록에는 검뎅이 잔뜩 묻었고, 플라스틱으로 된 서류철은 반쯤 녹아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서류 사이에 꽂혀있던 마스터키는 다행히도 멀쩡했다.




"고맙습니다. 구급요원이 올 때까지 앉아계세요."


"연기가, 연기가 너무 많아서 안에 사람들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부턴 우리가 담당할 일이에요. 당신은 최선을 다 했어요."




라일리 소방장은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키키모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일어났다.



곧 이어 다른 차량들이 도착했다.


푸른 불을 번쩍이는 이보드빌 시경의 경찰차가 멈추더니, 귀가 쫑긋한 웨어울프 경찰관 둘이 내려 혼란스러운 피해자들을 한 쪽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엔진 17과는 다른 루트로 온 하얀 차체의 구급차, 엠보66가 도착하더니, 푸른 피부 위에 푸른 응급구조사용 유니폼을 입은 데몬과 데빌이 의료키트를 들고 부상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새로운 사이렌 소리가 호텔로 다가왔다.




그것은 언뜻 경찰차처럼 보였다. 최근 들어, 오우거 등 몸이 큰 경찰관들이 자주 사용하는 SUV 형태의 대형 경찰차.


하지만 하얗고 검은 경찰차와는 달리, 그 차량의 도색은 소방차의 붉은색이었고, 지붕에서 돌아가는 경광등 역시 소방차의 붉은 빛이었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SUV의 뒤를 수색구조용 장비와 인력을 실은 구조소대의 소방차, 레스큐 1이 맹렬하게 뒤따랐고, 교차로 반대편에서는 위에 구조용 사다리와, 소방펌프를 모두 내장한 엔진 45가 다가왔다.




일사분란하게 호텔 앞에 도착한 소방차량들은 메뉴얼대로 도착한 순서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정차하고, 소방차 안에 타고 있던 다양한 종족의 소방관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구조반에는 남들의 2배에 달하는 커다란 덩치의 오우거나, 팔 대신 달린 날개에 맞춘 특수 방화복을 입은 와이번도 있었고, 펌프차량에는 흐느적거리는 방화복 상의만 걸친 슬라임도 있었다.




그러나, 딱 한 군데. 도착 순서와 상관없이 정해진 자리에 SUV가 멈춰섰다.


그곳은 현장에서 제일 가까우며, 모든 소방차의 중앙에 위치한, 작전 지휘관을 위한 자리였다.


다른 소방차에 비해 훨씬 오래된 지휘관 차량의 문이 깡통 같은 소리를 내며 열리고, 운전석에서 한 명의 소방관이 내렸다.




오우거나 다른 건장한 소방관과는 비교되지 않는, 고블린과 유사한 수준으로 작은 몸이었으나, 그 소방관에서 느껴지는 기백은 다른 소방관들과 비교되지 않았다.



검은 빛 원단은 오래되어 회색처럼 보였고, 노란빛으로 빛나야 할 반사띠는 헤진 끝에 은빛으로 반사되는 부분만 남아있었다.



단호한 눈빛으로 불에 타는 호텔을 한 번 올려다보고, 그 소방관은 수많은 현장을 헤쳐오며 흠집과 얼룩이 가득한 헬멧을 늘어진 갈색 귀 위에 눌러썼다.



"라일리, 보고해."



이 작은 코볼트가 바로 이보드빌 소방국, 바탈리온 26의 치프인 로지 소방령이었다.



"8층 결혼식장에서 촛불이 넘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투숙객과 방문객 명단은 확보했고, 보니까 연기가 가득찬대다 정전이 일어나서 아직 못 빠져나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스터키는?"


"아까 직원 한 명이 명단과 같이 넘겨줬는데, 하나 뿐입니다."



로지는 라일리 소방장이 넘겨준 명단과 마스터키를 받아들고, 라일리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잘했어."



로지 소방령은 차량 옆의 문을 열고, 언제라도 내려지는 명령에 맞춰 행동할 수 있게 장비를 준비하는 소방관들을 향해 외쳤다.




"줄리아! 비비안! 소화전 송수구 연결해! 구조소대는 파피를 빼고 6층에서부터 위로! 3소대는 1층에서부터 위로 수색한다! 구조소대는 마스터키를 가져가고, 수색 끝나면 화재발생지점으로 가! 다들 움직여!"


"알겠습니다!"


"레스큐 원! 이동!"




헬멧 대신에 땀이 눈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헤드스카프를 한 그렘린, 줄리아 기관사는 소방차에서 호스를 들쳐맨 채로, 호텔 입구에 붙어있는 송수구를 향해 뛰어갔고, 슬라임인 비비안 기관사도 소방차의 펌프와 연결된 패널에 몸을 넓게 밀착시키더니 수많은 버튼과 밸브를 동시에 조작하기 시작했다.




엔진 45, 엔진 17이 속한 스쿼드 3의 소방관들과, 구조소대인 레스큐 1의 소속의 소방관들은 산소호흡기를 얼굴에 쓴 다음, 구조용 장비를 들고 호텔의 입구로 다가갔다.



서로 닮은 세 명의 고블린들은 각자 자신들의 키만한 망치와, 잠긴 문을 효과적으로 열기 위한 헬리건 툴, 소방도끼를 들고 이동했고, 덩치가 커다란 오우거는 자신 전용으로 제작한, 소방차 외부에 걸려있던 2M에 달하는 통로개척용 망치를 들고 이동했다.





"저는 어떻게 할까요?"


혼자 진입대상에서 빠진 와이번, 파피 소방사가 묻자, 로지 소방령은 호텔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화재 확산세를 보고 와. 위층이나 옥상에 생존자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한 번의 큰 날개짓과 함께, 파피 소방사가 하늘로 도약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로지 소방령은 분주히 움직였다.




"바탈리온 26. 현장에 연기흡입 피해자가 많다. 추가적인 구급차량 지원을 요청한다."


[바탈리온 26, 수신완료. 엠보 24가 현장으로 이동 중이다.]


"알았다. 통신끝."



소방본부의 회신에 로지 소방령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옆에서 무전과 명령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경찰관에게 접근했다.



"지휘관님?"


"명단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비록 경찰과 소방으로 다른 부서에 속해있기는 했지만, 화재현장에서의 지휘권은 소방에 있었고, 고작 순찰대를 감독하는 경사급과, 구조작전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계급차이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나름 경험이 풍부한지 태도에서 노련함이 느껴지는 웨어울프 경관에게, 로지 소방령은 명단을 넘겨주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체크하고, 비는 인원은 보고해."


"알겠습니다."



경사가 경례를 붙이고 길 반대편에 모인 피난객들을 향해 다가가자, 로지 소방령은 다시 화재현장을 올려다보았다.









"소방서입니다! 대답하세요!"




연기가 무릎 위 높이까지 가득 찬 호텔의 내부에서, 소방관들은 헬멧과 산소호흡기에 달린 조명의 불빛에 의지해서 하나씩 객실을 확인했다.


문이 열려있는 객실은 내부를 수색하기만 하면 끝이었지만, 잠긴 문 앞에서는 강제로 문을 열 수단들이 필요했다.




"하나!"


"둘!"


"셋!"


고블린 셋은 헬리건 툴의 굽은 배척을 문틈에 쑤셔넣고, 그 뒤를 망치와 도끼 뒤로 때리면서 박아넣고, 그 다음에 비트는 익숙한 연계로 문을 금방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타격!"


구조소대 소속의 오우거는 큰 망치를 한 번 세게 휘두른 것만으로, 문을 손쉽게 박살내고는 안으로 진입했다.





"소방서입니다!"



스쿼드3의 라일리 소방장은 잠겨있는 문 하나를 또 강제로 비틀어 열고, 내부를 수색했다.



흐트러진 침대시트와 짐가방을 발견하자 라일리 소방장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객실은 누군가 사용했었다.



라일리 소방장은 랜턴을 구석구석 비추면서 침대 아래를 확인하고, 혹시나 해서 옷장도 열어봤다. 객실 가장 깊숙히 있던 욕실에 들어간 순간, 라일리 소방장이 외쳤다.




"504호에 요구조자 발견!"



소대 채널의 무전기에서의 울린 내용에, 복도에 있던 고블린들이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한 구석에는 메커스토드가 일산화탄소를 흡입해 기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양서류는 폐 뿐만 아니라 점막 전체로 호흡한다. 아마도 갑자기 연기가 차오르자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숨었다가, 결국 문틈으로 들어온 연기에 이렇게 됐다고 라일리 소방장은 추측했다.


다행히, 아직 심장은 뛰고 있었다. 라일리 소방장은 호흡기만 가리는 형태긴 했지만, 보조용 산소호흡기의 마스크를 요구조자에게 씌웠다.




"소방장, 소방장."


"어떻게 해요?"



어느새 뒤로 다가온 고블린 삼인방이 물어보자, 라일리 소방장은 잠시의 고민 끝에 판단을 내렸다.



"너희는 요구조자랑 같이 내려가. 나머지 객실은 내가 수색할게."


"하지만, 혼자면……."


"내 걱정은 하지 마. 수색 후에는 레스큐 1이랑 합류할 거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소방관은 언제나 두 명 이상이 한 조로 움직여야했다.


하지만 이 고블린 삼인방들은 자기네들 끼리가 아니면 묘하게 손발이 안 맞는다. 한 명이 빠지면 남은 둘도 살짝 어리버리하다.



고블린들은 원칙을 위반하는 명령을 따라야하나 고민했지만, 화재현장에서 고민은 금물이었다.


행동으로 옮겨야한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판단일지라도, 멈춰있는 것보단 나았기에.




"하나, 둘!"


쓰러진 메커스 토드를 머리 위에 얹고, 고블린들은 아래로 향했다.



라일리 소방장은 다시 한 번 남은 산소잔량을 체크하고, 여유롭다고 판단하고 아직 수색하지 못한 객실들을 향해 뛰어갔다.



"소방서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화재를 바깥에서 살피러 간 파피 소방사가 건물을 살피고는, 보고했다.



"화재는 8층을 벗어나서 9층이랑 7층, 위 아래로 진행 중! 8층 기반 붕괴 임박에, 옥상에 생존자 세 명 가량 포착했습니다!"


"8층 붕괴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이미 일부는 붕괴했습니다! 나머지도 곧 무너질 것 같습니다!"



상황은 다급했다. 목재로 된 구조물과 치렁치렁한 장식들, 그리고 카펫을 장작으로 삼아 불길은 거세게 타오르고만 있었다.


로지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면서, 무전으로 지시를 내렸다.



"파피, 옥상에 있는 사람들부터 구조해. 구조반은 현재 수색상황 보고바람."


"스쿼드3, 한 명 구조해서 내려갑니다! 연기흡입자에요!"


"레스큐 원, 7층 수색 중에 화재랑 마주했습니다. 현재 소화전으로 진화 중입니다."



로지는 문득, 통상적으로 3소대의 보고를 맡던 라일리 소방장이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쿼드3, 라일리는?"


"지금 6층 계단입니다. 5층까지 수색 끝! 레스큐 원이랑 합류하겠습니다!"


"단독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불가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과에, 로지 소방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초조해졌다. 8층이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로 아래층에 인원들이 있는 상황은 너무나 위험했다.


8층에서 또 무언가가 무너졌는지, 충격파와 함께 검은 연기가 확 뿜어져나오자, 결국 로지는 결단을 내렸다.



"레스큐 원, 라일리. 8층 기반이 붕괴하기 직전이다. 전부 빠져."


"잠시만요 치프! 7층에서 요구조자 발견했습니다!"



레스큐 원의 웨어울프, 플로라이드 소방장이 보고했다.



"서비스 룸 안에 잔해물 때문에 갇힌 생존자가 있습니다!"


"몇 명이나?"


"여럿입니다!"



생존자 다수. 로지는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구조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불 끄고, 접근해서 장애물 날리는데 2분이면 됩니다!"



플로라이드 소방장은 애원하듯 말했지만, 상황은 매우 위험했다.


위층에서부터 나무 바닥을 태우며 내려온 불은 이미 저 멀리에서부터 천장에서 스멀스멀 거리며 다가왔고, 카펫에 의해 불이 확 번진 호텔 내부는 열기와 연기로 인해서 물을 한 번 뿌린 자리에서도 뜨거운 수증기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규정대로라면, 구조를 포기하고 퇴출해야한다.



소방관의 목숨과, 시민의 목숨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하겠는가?


소방관들은, 전부 바보 같은 놈들 뿐이라 언제나 시민을 먼저 생각하고 만다.


그렇기에 로지에게 주어진 일은 소방관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로지는 입을 열었다.



"1분. 그 안에 안 되면 포기해."


"알겠습니다!"



레스큐 원은 로지가 거절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계속해서 불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였다.



로지는 연기들 사이에서, 마치 파도치는 것 같은 흐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순간 연기를 뿜어냈다가, 갑자기 다시 안쪽으로 빨아들였다.



숨이 멎는 것만 같은 감각 속에서, 로지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폭발이다! 엎드려!"




다음 순간, 호텔이 폭발했다.


8층에서 터져나온 폭발과 함께 건물의 외벽과 창문이 사방으로 튕겨나갔고,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리는 와중에도, 로지는 그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레스큐 원, 보고해!"



로지는 다급히 무전했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레스큐 원!"


"치프! 스쿼드3 라일리입니다! 폭발로 7층이 붕괴됐습니다!"



그 순간, 라일리 소방장이 놀란 목소리로 로지에게 보고했다.



"레스큐 원이 보입니다! 잔해 사이에 깔려있는데, 폭발 때문에 기절한 것 같습니다!"


"접근 가능한가?"


"불이 너무 거셉니다! 거기에…… 헬리건툴로 개척하기엔 잔해가 너무 크고 많습니다. 전기톱이 필요해요!"



라일리 소방장은 비통하다는 듯이 말했다.


동료들이 눈앞에 있다. 평소라면 그저 걸어가면 되는 거리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멀었다.


로지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고블린즈! 줄리아!"



로지는 막 요구조자를 들고 내려와, 구급대원들에게 인계한 세 명의 고블린과, 펌프차량 앞에 서있던 그렘린을 불렀다.



"지금 당장 절단기랑 클로 챙겨서 7층으로 올라가! 빨리!"


"알겠습니다!"



숨이 찬 고블린들 대신에, 펌프 앞에 서있던 그렘린이 있는 힘껏 대답하고, 황급히 고블린들과 함께 구조장비를 나눠들고 계단으로 다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화복에 산소호흡기, 거기다 구조장비까지 든 상태로, 방금 막 계단을 뛰어내려온 소방사들이 제 시간 안에 도착할 가능성은 적었다.



"라일리, 함부로 나서지 말고 기다려."



결국 로지는 또 다시 규칙을 어기기로 했다.



"파피, 구조 현황은?"


"마지막 사람만 내려두면 끝납니다! 7층으로 갈까요?"


"아니. 지휘차량으로 와."



한 명씩, 옥상에 있던 구조자를 땅으로 내리던 와이번을 부르고, 로지는 지휘차량의 짐칸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평소엔 쓰지 않지만, 그럼에도 잘 관리된, 그러면서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소방도끼와, 산소호흡기가 있었다.


로지는 방화복 위에 산소호흡기를 걸치고, 양압을 체크하고 조절했다. 방화장갑도 손에 끼고, 그 다음에 무거운 머리를 가진 소방도끼를 들었다.



"바탈리온 26."


[바탈리온 26, 말하라.]


"소방사 다수가 잔해에 깔렸다. 소방연대 추가지원을 요청한다."


[바탈리온 30를 지원하겠다. 피해 상황은?]


"7층에서 구조작업 중 8층이 붕괴했다. 의식불명. 직접 구조 시도하겠다."


[알겠다. 바탈리온 26.]




지상으로 내려온 와이번, 파피는 산소호흡기를 쓴 로지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설마 직접 들어가시려고요?"


"그래."


"하지만, 그러면…… 지휘는 누가 하고요?"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라일리가 맡을 거야. 바탈리온 30이 오고 있으니까 거기 치프가 도착하면 그 쪽 명령을 따르고."



로지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파피는 망설였다.


그도 그럴게, 소방령은 지휘관이다. 지휘관은 후방에서 지휘를 해야지, 직접 전선에 나서선 안 됐다.


전선에서 지휘관이 죽었다간 지휘체계가 붕괴하고, 곧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파피. 명령이다."



하지만 로지가 강요하듯 말하자, 결국 파피는 자신보다 작은 로지 소방령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지 소방령은 자신의 발 아래에서 점점 멀어지는 지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호텔 건물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8층에서 처음 시작된 불은 이제 10층까지 번지고 있었다. 원래 8층의 바닥이었던 목재들은 마치 장작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파피는 11층에 위치한 객실의 테라스에 로지를 내려주었다. 고작 몇 층 위가 옥상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내려가라는 배려에서였다.



로지는 방금 전까지도 사람이 묵었던 것 같은 객실을 지나고, 연기가 가득 찬 복도를 지나고, 비상계단을 내려가, 7층까지 접근했다.


라일리나 다른 소방사들이 접근한 것과는 반대편 비상계단이었는지, 라일리와 만나지는 못했다.



로지가 마지막으로 호흡기와, 방화복, 그리고 방화후드를 점검한 뒤 문을 열자, 지옥과 같은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 때처럼.





로지는 도끼를 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일 두꺼운 기둥을 앞에 두고, 도끼를 휘둘렀다.




주인님, 우리집, 행복한 날들.


자고 일어나면 주인님과 놀고, 산책하고, 맛있는 걸 먹고, 그런 날이 언제나 지속될 것 같았다.




무거운 도끼날이 박힐 때마다, 불타는 기둥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여러 번 찍으면서 약해진 기둥이 부러지자, 로지는 기둥을 옆으로 밀어내며 길을 냈다.


그렇게 한 발짝 나아가고, 불타는 바닥을 밟은 채로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그저, 이상한 냄새가 나서 눈을 떠보자, 이미 주위는 온통 연기로 가득 차있었고, 뜨거운 불이 사방을 가로막았었다.


주인님은 보이지 않았고, 로지는 혼자였다.




얇은 마루 판자 하나를 부수자, 그 판자가 지탱하고 있던 불타던 테이블 잔해 같은 것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로지의 헬멧과, 방화복의 어깨 위로 작은 충격과 함께 뜨거운 불꽃이 쏟아져내렸다.


로지는 그것을 툭툭 털어내고, 바닥에서 불타는 잔해들을 짓밟아 끈 뒤, 다시 앞으로 나갔다.




애타게 주인님을 불렀다.


무서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침대 아래에서 숨어서.


연기는 차오르고, 멀리 있던 불은 어느새 방 문 앞까지 다가와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가까워져만 오는 불길 앞에서, 로지는 너무나 무력했다.




로지는 이를 악물었다.


도끼가 한 번 찍을 때마다, 로지의 몸보다 몇 배는 두껍고, 몇 배는 큰 기둥이 쩌억 쩌억 갈라졌다.




두려움에 떨고만 있던 로지를 구한 건 소방관이었다.


소방관은 무섭게 타오르던 불길을 꺼주고, 숨어있던 로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로지의 집은 불에 타서 사라졌다.


로지는 주인님을 찾으려 했다. 너무나 무서웠다. 그 품에 안겨서 울고 싶었다.




"레스큐원! 플로라이드! 응답해!"


로지는 불에 타며 무너져내리는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도끼를 휘두르며 전진했다.


뜨거운 불꽃의 열기는 방화복을 뚫고 들어왔고, 로지의 숨을 차게 만들었다.


무심코 무전기를 내려다보자, 플라스틱으로 된 몸체가 마치 끓는 것처럼 기포와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로지는 이 두려움을 처음 겪어보지 않았다.




로지는 마침내 주인님을 찾았다.


로지를 구한 소방관은, 불에 타서 무너진 집 안에서 한 구의 시체를 찾아냈다.


새까맣게 타버린 그것은, 시체라기보다는 사람 모양의 숯과 같았다.


로지는 부정했다.


이게 주인님일 리가 없다. 주인님 냄새가 안 난다. 그냥, 불에 타버린 그 매캐한 연기같은, 무서운 냄새뿐이었다.


부정하는 로지에게 결국, 소방관은 잔인한 진실을 전했다.


주인님은 로지가 자는 사이에 외출했고, 그 때 무슨 일에선지 지하실에서 화재가 시작됐다.


집에 오는 길에 불이 난 모습을 본 주인님은, 소방관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로지를 찾겠다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연기가 가득 찬 복도와, 폐마저도 녹여버리는 그 뜨거운 열기를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곳에 뛰어들 사람은, 주인님을 제외하면 없다.


로지는 그제서야 그것이 주인님이라고 믿게 되었다.




"플로라이드!"


"치프?!"


로지의 부름에 불타는 복도 너머에서 플로라이드 소방장의 놀란 대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있어! 금방 간다!"


"조심하세요! 이젠 여기 바닥도 못 버틸 겁니다!"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불길은 이미 바닥을 활활 태우고 있었고, 한계에 봉착한 바닥은 삐걱거리면서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지는 물러나지 않는다.




주인님의 냄새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모든 걸 빼앗아간 불이 두렵다.


두렵지만, 밉고,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일어난 그 불보다도 더 미운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주인님을 죽게 만든 자신이었다.




"뒤로 물러나!"


로지의 외침과 함께, 마지막 남은 마루와 기둥이 뒤얽힌 장애물이 두 동강났다.


레스큐 원의 소방관들은 생지옥처럼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나타난 자신들의 지휘관의 모습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봤다.



상태는 모두 엉망이었다.


플로라이드는 다리를 다친듯, 제 발로 못 서서 헬리건 툴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오우거인 소피아는 폭발 때의 손상인지 산소호흡기의 렌즈가 녹아내려, 옆면에서 산소가 새는 모습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 외 다른 대원들도, 전부 하나 둘 다친 곳이나 장비의 손상이 눈에 들어왔다. 사망자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치프……."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오히려 로지의 상태가 더 심각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방화복과 소방도끼의 자루가 마치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전기와 헬멧의 표면은 검게 녹아내린 자국이 역력하고, 그 등 뒤로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과 같이 타오르는 복도가 쭉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생명체가 저런 곳을 맨몸으로 뚫고 올 수 있단 말인가?



경악한 소방관들의 주의를, 로지는 주변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돌렸다.


"생존자가 있는 문은 이쪽인가?"


"네. 장애물은 치웠는데, 도어락이 불 때문에 고장났는지 먹통입니다. 지금 문을 개방해보려고……."


"안 돼. 보안문이라서 절단기가 오기 전까진 안 열릴 거야. 절단기로도 한 세월 걸릴 거고."



로지는 문의 주위를 잘 관찰하더니, 천장에서 부터 조금씩 불길이 일렁거리며 떨어지는 벽을 두드렸다.



"다들 뒤로 물러서."



로지가 자루를 고쳐쥐며 한 말에, 소방관들이 로지에게서 떨어졌다.


그걸 확인하고는, 로지는 소방도끼를 휘둘렀다.





그 날, 주인님이 나가실 때 혼자 내보내지 않았다면.


용기를 내서 불을 뚫고 밖으로 혼자서 대피할 수 있었더라면.


무력하게 겁먹고 숨어있지만 않았더라면.


주인님은.


주인님은.





로지가 휘두르는 소방도끼는 불에 타는 벽을 타격하며 부숴나갔다.


목재라고는 해도, 단열재가 덧대어져 있어서 보강된 벽은 결코 쉽게 도끼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지는 온 힘을 다해서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는 듯한, 필사적인 감정이 실린 로지의 도끼질이 이어졌다.





그 날 이후로, 로지의 가슴 속에는 증오만이 남았다.


불을 증오하고, 자신을 증오했다.


너무나도 밉다. 무력한 자신이 싫고, 모든 걸 앗아간 불이 싫다.


그래서, 소방관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구하지 못할 때에 분노했다.


그저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비없이 모든 걸 불태우는 불에 대한 증오심을 담아 몸부림치던 끝에.


로지는 다른 소방관들을 지휘하는, 소방령이 되었다.




묵직한 도끼날이 박힐 때마다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더니, 곧 벽 너머로 도끼날이 구멍을 뚫으며 들어갔다.


"소방서입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로지는 방 안을 향해 소리친 뒤, 도끼날을 구멍 안으로 밀어넣은 뒤, 약해진 벽 째로 당기며 구멍을 넓혔다.


한 번 당길 때마다 안쪽에서 형태만 남은 벽이 벽지를 찢으며 무너졌고, 곧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까지 구멍이 넓혀졌다.


로지가 마침내 다 뚫은 구멍을 통해 방 안에 들어서자, 자욱한 연기 아래로, 소방포를 뒤집어쓴 채 버티고 있던 키키모라들이 로지를 일제히 바라봤다.


곳곳에 굴러다니는 소화기와, 포장 뜯긴 소방포를 통해서, 이들이 어쩌다 여기에 들어왔다 갇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침착하고, 낮은 자세로 대피하세요.."



로지가 지시하자, 키키모라들은 입을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감싼 채 천천히, 벽에 난 구멍을 향해서 이동했다.




그 뒤로, 일은 다행히 잘 풀렸다.


타이밍 좋게도 스쿼드 3가 절단기와 유압식 집게로 장애물을 제거하고, 소화전으로 불을 끄면서 등장했다.


요구조자들과 함께 모두가 비상계단으로 대피했고, 그 직후 거대한 불길과 함께 7층이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지상에 도달한, 레스큐 1의 부상자들은, 현장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후송되었다.


곧이어 도착한 바탈리온 30의 지원이 합세하여, 이제는 6층에서 11층까지 번진 불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로지는 바탈리온 30의 치프인 마녀에게 지휘를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섰다.


헬멧을 벗는 순간 타오르는 것처럼 김이 위로 솟구쳤고, 방화후드가 미처 막아주지 못한 열 때문에 벌겋게 화상을 입은 귀와 목이 드러났다.


장갑을 벗은 손은 열기에 익은데다, 도끼를 휘두르며 쓸리면서 가죽이 벗겨졌고, 오랜 기간 써온 방화복도 직접 불에 타 녹아내리며 살 곳곳에 열기를 전해서, 점점이 데인 자국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방화 소재로 된 부츠마저도 밑창이 녹아내려 높이가 달라져버렸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로지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로, 불에 타들어가는 호텔을 바라봤다.


살아있음에 기뻐하지도 않고, 자신의 상처에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본인이 연약하디 연약한 코볼트가 아닌,


원래 지옥의 불길을 누비는 헬하운드라도 된다는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동료들은 존경을 담아, 로지를 헬코볼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로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구해도 기뻐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사인사를 표해도, 시장이나 소방국의 높은 사람들이 훈장을 주어도, 사무적으로 감사하다는 말만 내뱉고는, 동료들의 찬사나 격려에도 늘 무기력하게, 하지만 언제나 단련과 정비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사람들은 그런 로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만약에 그들이 로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로지를 가엾게 여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로지가 진짜로 구하고 싶은 사람은, 이제는 로지가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주인님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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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한테 감사하다 하는 사람 보고 떨떠름한 로지쟝


본 글은 몬챈에서 딴갤럼이 쓴 글에서 나온 늠름한 코볼트 소방관에서 영감을 얻었음
https://arca.live/b/monmusu/6581688?target=all&keyword=%EC%86%8C%EB%B0%A9&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