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나 오징어 같은 두족류는 지능이 매우 고도로 발달되어있다고 함. 몬붕이들도 문어가 처음 보는 병을 스크류 돌려서 열었다던가 문어가 도구를 썼다던가 하는 실험 이야기는 한번쯤은 들어봤을 거임.


근데 또 그게 사람처럼 뇌에 집중된게 아니라 전신, 특히 다리에 신경이 많이 퍼져있어서 몸 전체가 생각하는 신경의 네트워크, 즉 몸 전체가 생각을 할줄안다고 함.

그래서 사람은 눈앞에 무언가를 집을때 뇌가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해서 팔의 근육한테 '야 이렇고 저런 각도로 움직이면 저거 집을수있음' 하고 시키면 팔은 그저 따를 뿐인데,

문어나 오징어는 대충 뇌가 '아 저거 잡고싶은데?' 라고 생각하면 팔과 다리들이 다 그걸 전달받고는 '이렇게 움직이면 잡겠다' 하고 각자 생각해서 뻗어서 휘감거나 하는거래. 그래서 훨씬 유연한 사고나 움직임이 가능해지는거고. 때로는 위장색으로 바꾸고 잠복해서 킬각 재는중인데 다리들이 먼저 'ㄴㄴ 이정도면 충분히 가까워 원턴킬 씹가능임' 하고 슉 뻗어서 낚아채버릴때도 있다고 함.




이런 과학 잡지를 읽다가 문득 두족류 몬무스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보다가 마소도 크라켄 설정이랑 합쳐서 크라켄의 심리를 써봄.

인간들은 참으로 신기한 족속들이다.

너무나도 연약하다. 내 촉수로 힘 조절 잘못하면 그대로 가루가 되버릴 정도로 전투력도 약하고, 심지어는 물에 빠지기만 해도 누가 구해주지 않으면 익사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나무를 깎고 금속을 굳혀 만든 배 라고 부르는 물건을 타고 바다로 기어나온다. 저러다가 풍랑이라도 만나면 다 물고기 밥이 될텐데, 가엾기도 하지.


아, 시 비숍들이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포세이돈의 의식을 치뤄주면 익사하진 않던가? 암튼, 저런 존재들과 사랑을 나눈다니 시 비숍 애들도 취향 참 독특하지. 고귀한 포세이돈의 하녀들이 고작 저런 육상 생물과 사랑에 빠지다니, 요즘 바다도 말세야 말세.


아니면 의외로 인간 남성에게는 내가 모르는 매력이라도 있는걸까? 아니 잠깐, 나좀봐, 내가 미쳤나봐, 매력은 무슨 매력. 크라켄의 이름이 울겠다.


아, 마침 오늘도 또 배가 온다. 그래, 확인만 하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듣자하니 인간들 사이에는 내가 배를 촉수로 감싸서 두쪽내서 심해로 끌고 간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모양인데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놀라서 도망가버리겠지? 마침 섬이 근처에 있으니, 섬 뒤로 가서 고개만 내밀어보자.


그래, 이정도면 괜찮을꺼야, 나 아직 발견 못했겠지? 나좀봐, 무슨 죄라도 짓는거마냥 왜이렇게 두근대는거야.


저 작은 배 위에 저렇게나 많은 인간들이 타고 있구나, 파도가 좀만 거세도 홀라당 뒤집어 질 듯하게 생겼는데 어떡하지?

아니, 왜 내가 조마조마 하는거야 빠지면 그 잘난 시 비숍 애들이 가서 사랑을 나누고 구해주던지 하겠지?


근데 저 인간... 저 인간 만큼은 왜 이렇게 눈을 땔 수가 없는거지? 다른 인간들 보다도 어려보여, 신참 선원인가? 다른 뱃사람들이 갈구거나 하지는 않겠지?


저 연약한 팔뚝으로도 온힘을 다해 그물을 당기는 모습 좀 봐, 내가 촉수 하나만 거들어줘도 저정도 그물은 쉽게 들어올려줄텐데...


헉, 아니아니 미쳤나봐!!! 내 세번째 촉수가 멋대로 왜 슬금 슬금 그물로 기어가는거야, 미쳤어? 도와주긴 커녕 놀래켜서 달아나게 만들려고? 다시 돌아와 돌아와.


후, 방금은 위험했어. 이게 다 저 인간 때문이야. 천하의 크라켄이 지금 이게 뭐하는꼴인지 모르겠어...그래서 저 인간 이름은 뭘까? 


아...몬붕이라고? 이름조차 앙큼하네 한번만 만져보고 싶어 한번만이라도 껴안고 싶어...아니아니 진짜 내가 오늘따라 왜이래,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단단히 미쳤나봐, 얼굴도 화끈거리고 아까부터 두근거림은 멈추지가 않고, 가슴이 답답해서 견디질 못하겠네.


후...바닷물에 다시 들어오니 좀 진정되네, 분명 방금 현상들은 너무 오랫동안 고개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생긴 부작용 이겠지?


아니면 최근 시 비숍들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다보니 나도 머리가 이상해진 걸지도 모르겠어, 앞으로 당분간은 조용히 심해에서 명상하는 시간이나 가지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심해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다시 보고 갈까? 본다고 닳는것도 아닌데 뭐 어때. 


아, 웃고있어, 웃으니까 더 사랑스러워. 아니 아니 사랑스럽다니 무슨 소리야, 암튼, 나를 보고 저렇게 웃어준다면 좋을텐데, 누구를 보고 웃는거지?


.....다른 인간 여성?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해, 물론 나도 어디가서 외모로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지. 나는 천하의 고귀한 크라켄인걸. 그렇지만 저 여자는 몬붕이랑 저렇게나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는걸, 나는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밖에 못하고....에이 그럴 리가 없어, 여동생이나 누나겠지? 그래그래 머리색도 비슷한걸, 분명히 그럴 꺼야


아아, 배가 떠나려고 하고 있어, 그물 회수 작업이 끝났나봐, 많이 잡았으면 좋겠네, 아니지, 생각해보면 적게 잡아야 나를 보러 또 자주 와주겠지?


잠깐, 또 와준다는 보장이 어디있지? 만약 저 여자가 남매가 아니라면? 이대로면 돌아가서 저 여자랑 결혼식 올려버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버리는거 아니야?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나는 기억 속에조차 남지 않겠지? 난 이제 이대로 영원히 차가운 심해속에서 널 때때로 기억하면서 혼자 살아야 하는거야?


안돼 안돼 배가 멀어지고 있어, 이대로 놓쳐버리면 평생 후회하고만 말 거 같아, 어떡하지? 냅다 쫓아가서 처음뵙겠습니다 크라켄 이라고 해요 라고 해버릴 수도 없고, 머릿속이 하얘지고만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배는 점점 수평선 위의 점이 되어가고 있어, 안돼 안돼 이대로 날 두고 가지 마, 날 봐줘 날 보고 아까 그여자를 볼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환하게 웃어줘 제발, 이대로 떠나게 냅둘순 없단 말이야 하으으으 어떻게 하면 좋아어 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떻게 하면.....



와지끈



아, 부숴버렸네.

정신차려보니 내 촉수가 이미 배를 두쪽내서 끌어내리는 도중이네, 


잠깐, 몬붕이는?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이럴려던게 아니야 정말 정말 미안해, 살짝 멈추고만 싶었어 살며시  다가가서 뭐라도 말이라도 걸고 싶었어, 그걸 부숴버리다니 미친거아니야???? 내 촉수들만 아니였어도 정말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밉네, 이제 날 정말로 미워하겠지? 아니 미워할 몬붕이가 남아 있기는 한거야? 죽여버렸으면 어떡하지? 


아, 있다 있어, 나무판자에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있네, 이런 생각 하면 안되지만 그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조차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걸, 천하의 내가 놀다가 화분을 실수로 깨트린 어린아이마냥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니,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알고나 있어?


같이 빠진 다른 선원들을 노리고 수많은 해양 몬무스들이 몰려들고있네, 응큼한 년들 같으니.....그치만 그딴거 신경 쓸꺼같아? 난 이제 너만 있으면 충분한걸.


아니지 아니지 나는 너뿐이지만 너도 과연 그럴까? 저 수많은 음탕한 년들중 누가 낚아채 가는거 아니야? 그렇게 둘순 없지, 어떻게 손에 넣은 너인데.


안돼안돼 이번엔 또 촉수가 멋대로 몬붕이를 끌고 내려와 버렸어, 하으으, 뭐라고 말해야할지 머릿속이 하얘져버려, 어떡해 어떡해 나랑 눈이 마주쳤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벌써 코앞까지 끌고 내려와 버렸어, 촉수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좀 천천히 끌고 오란 말이야, 내 두근거리는 소리에 몬붕이가 놀랄까봐 걱정될 정도로 격렬하게 심장이 뛰고 있잖아.


"저....안녕 몬붕아?"


"............"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방금전의 나 자신을 촉수로 후려패고 싶은 기분이네, 자기 촉수로 배를 부숴서 끌고 내려와놓고 안녕 몬붕아? 라니  세상에 그런 작업 멘트가 어딨어, 그렇지만 나 연애는 커녕 남자랑 이야기해본거도 처음이란 말이야 어쩜좋아, 긴장되서 웃음도 잘 안지어지네, 안돼안돼 몬붕아 나 원래 이런 여자 아니야, 나도 제대로 웃을 수 있단 말이야. 그런 와중에도 겁에 질려서 말도 못하는 모습까지 어쩜 그렇게 사랑스럽니 너는. 아냐아냐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겁먹지 말아줘, 나를 무서워 하지 말아줘. 나는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걸.


어쩜 좋을까 이대로면 진짜 단단히 미친 괴물년으로 몬붕이 기억속에 각인되고 말꺼야 심지어 침몰 현장으로 달려든 주변에 떠다니는 저 수많은 해양 몬무스들에게 뺐겨버리고 말거야, 안돼 이 음탕한 년들아 그런 눈길로 내 남자를 바라보지 말아줘.....


잠깐...보지 말라고? 그러고보니 난 먹물이 있었지? 역시 난 똑똑해, 자. 내 마력을 담은 먹물은 주변을 나 말고는 아무것도 안보이는 칠흑의 세계로 만들어 줄꺼야. 칠흑의 세계 속에서 나만이 너의 유일한 빛으로 빛나고 싶어, 내가 지금 이렇게 너만을 바라보듯이 너도 나만을 바라봐줘. 오직 나만.....


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어떡해 그러고보니 인간은 물속에서 숨 쉴 수 없다는 걸 까먹고 있었어, 안돼 이대로면 몬붕이가 죽어버려 익사해버려 내 사랑이 이대로 내 촉수 사이로 미끄러져 하데스의 품으로 가버려. 그러고보니 인간들은 코와 입으로 숨을 쉰다고 하던가? 저 몬붕이의 야들야들해 보이는 입에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어주면 되겠지? 우리만의 첫 키스는 좀 더 로맨틱 하길 바랬지만 어쩔 수 가 없네.


"꼬르륵..."


아, 눈을 떴어, 내가 보여? 이번엔 제대로 미소를 지어주자, 몬붕아 이번엔 제대로 보여? 너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이 제대로 보여?


"당신이...저를 구해 주신건가요?"


엥? 아 내가 배를 부순 장본인 이라는 건 모르나봐 어쩜 좋아, 어쩜이렇게 순진하지? 지금 당장 널 원해. 그치만 제대로 상황 설명은 해주자.


"으응 맞아...다른 크라켄이 배를 부순걸 내가 널 구해줬어"


"그렇군요...당신이 제 생명의 은인이군요 고마워요"


아 웃었다, 웃었어 미소를 지어줬어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줬어!! 비록 변명을 하느라 동족을 팔아먹었지만 그런게 지금 중요해? 중요한건 이제 이 칠흑의 세계에는 우리 둘뿐이란거지...아아, 몬붕아...내 사랑.....널 영원히 내 촉수로 감싸줄께, 너도 영원히 나만을 바라봐줘....영원히....이 밤하늘과 같은 심해에 너와 나 둘이서 쌍성이 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