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최근 레버리지 롱 ETF으로의 캐쉬 플로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9월 만기 포지션에서 10월 만기 포지션으로 롤오버하는 과정 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 중요한데요, 바로 지금 10월 VIX 선물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헤지용으로 SPX 풋을 매입하기 때문이죠-"


이나리 사장 앞에서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몬붕이. 해외의 명문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취직하게 된 곳에서의 첫 프레젠테이션인 만큼 만전을 들인 표시가 났다.


"-하지만 VIX 지수에는 만기일이 23에서 37일 남은 SPX 옵션들만이 반영됩니다. 이는 현재 9월 포지션을 위한 헤지들은 계산식에 반영이 더 이상 되지 않는 반면 10월 포지션을 위한 헤지들은 반영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VIX 지수는 상승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나스닥과 QQQ, TQQQ의 하락을 야기할 것이고-"


몬붕이는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는 이나리를 보면서 뿌듯함에 가슴이 차오르는 듯 하였다. 마물이 완벽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사회에서 인간 남성이 성적인 것을 제외한 요소로 인정 받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대부분의 마물들이 '연약하고 힘 없는' 인간 남성들은 집에서 내조만 하면 된다는 고정된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학창시절때부터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을 일구어 내겠다는 야심을 가진 몬붕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세계 굴지의 투자 회사의 사장 앞에서, 단독으로 앞으로의 투자 전략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해내고 있었던 것 아닌가! 몬붕이는 할 수만 있다면 학창시절때 '인간 남자가 뷰지만 잘 빨줄 알면 인생 핀거지 공부는 무슨 공부' 라고 자신을 비웃었던 일찐 몬무스들을 전부 모아서 현재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면서 도발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최근 TQQQ의 공매도 잔량이 상승하고 있는데다가, 앞으로 2주간 있을 롤오버 기간 동안 9월 만기 선물 투자자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안 그래도 하락하고 있는 자산들을 저평가된 상태에서 억지로 팔아치워야 할 것이며, 이는 결국 시장에 하방압력을 가중시키는 일을 불러와 나스닥과 TQQQ의 하락을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회사가 취해야 할 중장기 전략은 VIX 롱과 TQQQ의 공격적인 공매라고 판단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끝낸 후 자랑스러운 표정을 한 채 서 있는 몬붕이. 마치 애완견이 재주를 부린 후 주인에게 '나 좀 칭찬해줘!'라고 하고 싶을 때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나리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저....사장님...? 프레젠이션... 끝났는데요...?"


자신이 무언가 실수라도 했는지 흠칫대면서 말을 걸어보는 몬붕이. 속으로 제발 자신의 첫 프레젠테이션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빌면서 조심스럽게 이나리를 쳐다보자, 이내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이때까지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이나리의 고개 각도가 화면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은─


내 엉덩이?! 잠깐, 설마 이때까지 내 프레젠테이션은 듣지도 않고 내 엉덩이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사장님!!!"


분노와 당황 그리고 분개로 가득 찬 몬붕이가 크게 소리치자 이나리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반응했다.


"어!? 어! 어어 그래, 수고했습니다 몬붕씨..프레젠테이션 잘 들었어요. 공매도...네, 공매도를 해야겠네요, 네."


입가에 조금 흐른 침을 황급히 닦으면서 앉은 자리에서 옷매무새를 고치는 이나리. 자세히 보니 뺨도 약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몬붕이는 그 자리에서 절망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불과 30초 전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자랑스러워 했던 자신이 바보만 같았다. 뭐가 능력으로 인정받고 뭐가 성공이냐, 결국엔 여기에서도 자신은 그저 섹스심벌일 뿐이었잖나...


"더 이상 용무가 없으면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 가기 전에 잠시 한 가지만요 몬붕씨."


기분이 완전히 잡쳐진 몬붕이가 싸늘한 어조로 이나리에게 고하면서 회의실에서 나갈 준비를 하자, 몬붕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나리 사장은 평소 늘 짓는 그 어딘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몬붕이를 불러 세웠다.


"...뭔가요?"


몬붕이가 엄청나게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과 말투를 하면서 답했지만, 이나리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혹시 헬스 pt 어디서 받으시나요?"


".....예?"


너무나도 뜻밖의 질문에 잠시 이나리에게 화를 내는 것도 까먹고 어벙하게만 되묻는 몬붕이. 


"헬스 pt 어디서 받으시냐구요."


"....그건 대체... 왜....."


이나리의 미소가 한층 더 커졌다.


"아니 글쎄, 하체 근육이 워낙 튼실하시길래, 어디서 그렇게 잘해주나 싶어서─"


몬붕이는 이나리의 대답을 다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분노와 당황 게이지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는지 그의 목 뒤까지 새빨개진 것이 보였다.


이나리는 이 모든 것을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볼 뿐이었다.


---


"...내가 그런 빗치년한테 성희롱이나 당하려고 그 비싼 돈 주면서까지 미국갔다 온줄 알아?! 어?! 나 와튼 출신이라고, 와튼!!!!"


몬붕이가 마시던 컵을 술집 테이블에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몬무스들은 보지로만 생각하는거야 뭐야, 어?! 어깨 위에 달고 다니는 것들은 뭐냐고 대체?!?!"


일반 소주잔이 아닌 그냥 물컵에 소주를 콸콸 들이붓고 있는 몬붕이의 어깨를 몬붕이의 친구가 토닥여줬다.


"니가 참아야겠지 어쩌겠냐...너만 그런거 당하는 거 아냐 임마."


"아무리 그래도 그 사장년은 뭔가가 잘못됐다고!!"


정말로, 그 이나리 사장은 뭔가가 잘못되어도 확실히 잘못된게 분명했다. 몬붕이는 그 치욕스러웠던 자신의 첫 '프레젠테이션' ─ 몬붕이는 그걸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조차도 의문이었다. 그 이나리 사장은 분명 마음의 눈으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스트립쇼나 감상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 이후에는 적어도 그 정도의 치욕은 다시 없을 줄 알았으나, 그 희망 또한 철저하게 부숴졌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나리 사장은 사소한 건수만 있다 싶으면 사장실에 불러 몬붕이를 괴롭혀댔기 때문이다.


"저기 몬붕씨. 샴푸 뭐 써? 어떻게 그렇게 좋은 모발을 유지하는거야? 누구 꼬시려고 그렇게 다니는거야??"


"저기 몬붕씨. 나 최근에 향수 바꿨는데 어때? 에이 거기서 향이 맡아나 지겠어? 가까이 와서 맡아보라구~ 부끄러워 하지 말고~"


"저기 몬붕씨. 오늘 안 바쁘면 오늘은 퇴근할 때까지 여기서 서류작업하는거나 도와줬으면 하는데. 뭐? IPE? 아 그거~ 그거 내가 2팀에 할당했어~ 그러니까 몬붕씨는 오늘 여기서 느긋하게만 있다 가면 돼~"


"저기 몬붕씨. 나 스타킹 찣어졌는데 편의점에서 새로 사와주면 안돼? 여기 이거, 헌 거는 좀 버려주고 후후~"


몬붕이는 최근 몇주간 있었던 사장과의 대화를 생각만 해도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대화 그 자체도 충분히 화를 일으킬만한 것이었지만, 몬붕이를 진심으로 입에 거품을 물게 할 정도로 분노케한 것은 이런 사장의 행동에 자신은 완벽하게 무력했다는 것이었다.


"...인권위같은데 찔러봤자 잘해봐야 벌칙금? 정도만 나오겠지. 씨발! 법원까지 끌고 가본다고 한들 판사들도 다 마물들인데.."


그 정도로 심각하면 뭔가 조취라도 취해보지 그랬냐는 친구의 말에 몬붕이가 테이블에 대가리를 박은 채 대답했다.


"게다가 투자회사란게 인맥도 중요한거라서...여기서 내가 사장을 찌르면 앞으로 이 업계에서 난 못 있어..."


너무나도 보기 드문, 완벽하게 패배한 듯한 몬붕이의 어조에 몬붕이의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테이블에 놓여있던 소주병을 들어 원샷하고는 소주병을 테이블에 세게 내리치면서 아직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몬붕이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야 이몬붕. 너 우리 고등학교때 그 좆같은 몬무스년들이 포기하라고 했을때 포기했냐? 대학 때도. 남자가 미국 유학 가봤자 돈낭비라고만 하던 년들 말 들었어?? 이때까지 안 굽혀왔는데, 이제와서 그러기야???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이몬붕!!"


 "너..."


몬붕이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투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울컥하면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모두가 몬붕이를 의심하고 조롱해왔을 때 이 친구만은 자기만을 믿어 왔던 것 아닌가. 이 친구가 아직도 자기를 믿어주는데, 몬붕이가 먼저 포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임마. 천하의 이몬붕이 여기서 포기하면 안되지."


아직도 자신을 어깨동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몬붕이는 진심으로 감사 어린 미소를 지어보이곤 이내 자신의 표정이 부끄러웠는지 재빨리 술잔을 들어 마시며 얼굴을 가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언제 묻나 했다! 내가 말 안듣는 몬무스 잡는 방법은 잘 알지!"


"?? 그런게 있어?? 뭔데 그게!!"


몬붕이가 재빨리 술잔을 내려놓고 친구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그건..."


"그건???"


"그건 바로 성적으로 우위를 점하는거지!!!"


친구를 향한 존경과 친애가 가득 담겼던 몬붕이의 표정이 한꺼번에 싹 사라졌다.


"...뭐?"


"그래! 성적! 우위!! 섹슈얼!! 도미넌스!!!! 마초마초맨이 되는거지!!" 몬붕이가 자신의 어깨동무를 풀고 테이블 반대편으로 가버린 것도 깨닫지 못하고 친구는 가슴을 피며 당당하게 얘기했다.


"....야. 취했으면 걍 집에 가라....?"


"무슨 소리!! 마초맨은 이정도 가지곤 끄덕도 없지!!"


자신이 테이블 위의 술병을 전부 쓰러뜨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친구는 몬붕이에게 '마초 포즈'를 잡아 보였다.


몬붕이는 눈을 질끈 감고는 두통의 예감에 손가락으로 자신의 콧등과 이마 사이를 집을 뿐이었다.


"응? 알겠어?? 본디 마물이란 무엇이냐. 몬무스. 몬스터걸. 몬스터 무스메 아니냐 몬스터 무스메!! 결국엔 몬스터라고!! 당연히 그 어딘가엔, 문명화 되지 않은, 지울수 없는 동물적 야성이 남아 있는거지!!"


"야, 목소리 좀 낮춰라 제발..." 너무나도 종차별적인 친구의 발언에 술집의 주변 손님들이 몬붕이의 테이블로 더러운 시선들을 보내왔으나 친구는 당연히 아랑곳 하지도 않고 자신의 광설을 이어만 나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대처법도 당연히 야생으로 돌아가서 찾아야지!! 어설트 더 도미넌스!!! 니가 한번만 우위를 점해버리면!!! 그걸로 몬무스는 너한테 꼼짝 못하는거지, 그 동물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몬붕이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는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내가 이런 놈한테 진정으로 감사하다고 느꼈다고...?


"....그래서, 그게 그렇게 효과적이면 너는 왜 '어설트 더 도미넌스'를 안하는건데?"


자신의 열띤 연설에 목이 메이고 말았는지 물을 마시고 있는 친구에게 몬붕이가 물었다.


"뭐?! 뭔 개소리야!! 나만큼 '알파 메일'이 어딨다고!!"


친구가 분개에 가득찬 목소리로 물컵을 내려놓으면서 소리쳤다.


몬붕이는 그저 눈썹 한쪽만을 치켜 올릴 뿐이었다.


"너 와이프한테 붙잡혀 살잖아."


몬붕이의 추궁에 친구는 코웃음만을 칠 뿐이었다.


"우리 와이프가 워낙 사나운 종족이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제 우위는 내가 점하고 있다고!"


"....니 와이프 코볼트잖아."


"그 중에서도 완전 사나운 종이지!"


".......니 와이프 골든리트리버 코볼트잖아."


"야! 골든리트리버가 얼마나 무서운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야수 중에 하나인거 몰라?!"


몬붕이는 대답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친구를 노려보았다. 


친구는 그래도 수치는 아는지 몬붕이의 시선에서 고개를 돌리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한번 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니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같은 마!초!남은 항상 알파 메일의 위치에서 주도권을 ─"


띠로리~ 띠로리로리로


그 순간 울려퍼지는 토가타와 푸가.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친구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친구는 벨소리를 듣자마자 술이 다 깨버렸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휴대폰을 낚아 채듯 가져가 받았다.


"자..자기야!! 응... 응!! 아, 아니 자기야, 나 오늘 고등학교 친구 만나고 들어간다고 했잖아... 아니아니아니 남자야 남자! 남자친구!! 아니아니아니 그런 의미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전화를 받으면 받을수록 공손해져만 가는 친구의 자세. 그의 상체는 점점 낮아져만가 테이블 위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자기야 아직 10시도 안됐잖아...아니 곧 갈꺼야...응...아니 진짜야...응...어...? 어??? 아니 자기야, 나 분명히 오늘 아침에 말했잖아...게다가 방금도 통화음 세번 울리기 전에도 받았고...그러니까- 아니 자기야...? 잠..잠깐만 자기야...? 여보? 허니?? 달링???? 나 내일 출근, 출근해야된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5번은─"


이젠 거의 땅바닥에서 석고대죄하면서 전화를 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몬붕이는 차갑게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술잔을 기울였다. 저런 놈이 뭘 어쩌고 어째?


하지만 자신의 친구의 필사적인 애원을 배경음으로 술을 마시면서, 몬붕이는 다시 한번 더 친구의 '조언'을 곱씹어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술을 너무 마셔버린 멍청이의 헛소리인건 분명했지만....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의미가 없다는 소리였을까?


몬붕이는 최근 몇주간 사장의 성희롱에 대해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대처방법은 모두 시도해보았다. 완전히 무시한다던가, 화를 내본다던가, 심지어 한번은 애원까지 해본적도 있었다. 하지만 몬붕이의 그 모든 시도는 늘 그렇듯 능글맞은 미소를 짓는 사장에 의해 좌절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제는 자신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해볼 차례가 아니었던가?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똑같은 시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이 광기의 정의라고.


어쩌면...정말로 어쩌면, 친구의 말대로 '섹슈얼 도미넌스'에 그 답이 놓여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 성희롱엔 성희롱으로 대항해보는거지. 우위를 점해보자고. 지금 나하고 전쟁을 하자는거지, 이나리 사장? 그러면 나도 전쟁을 해줄 수 밖에.


자신의 술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드디어 찾아낸 복수의 희미한 가능성에 희열을 느끼며 알콜에 절여진 뇌를 열심히 굴려 계획을 세워가는 몬붕이.

하지만 끝내 그는 깨닫지 못했다, 알콜에 절여진 뇌로 세운 계획들이란건 대부분은 할 만한 것들이 못된다는 것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