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내고 창업을 하자,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급변했어. 호형호제하던 거래처는 처음 보는 사람마냥 그를 냉대했고, 온갖 높은 연봉과 혜택으로 그를 유혹하던 다른 회사들은 이제는 온갖 방해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지.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한때 아버지처럼 따르던 전 직장의 사장이 그 방해 공작의 필두에 있다는 사실이었어.


이런 실정이다 보니, 회사 상황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열악했어. 처음에 돈 대신 미래를 보고 가겠다며 의기투합하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지. 창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남은 것은 단 한명의 리자드맨 여사원 뿐이었어.


솔직히 그녀는 일을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회사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고 있었지만 사장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남은 사원이었어. 그와 그녀가 노력한 끝에, 가까스로 사업은 안정화될 수 있었지. 사업이 안정화되자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던 그는 그녀에게 그동안 받지 못한 보너스나 승진 등 여러 가지를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히죽 웃으며 거절했지.


그러던 어느 명절, 창립 이래 최초로 전 직원이 명절 휴가를 보낼 수 있던 그때, 그녀는 그에게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멀리 이국의 고향으로 함께 놀러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어. 아직 그녀에게 뭔가를 해 준 적이 없어 항상 미안했던데다가, 가족이 없어 명절날 방문할 곳도 없는 그는 흔쾌히 승낙했지.


그녀의 고향에 도착하자, 둘은 맨 먼저 그녀의 집에 향했어. 그녀의 가족들은 그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지.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친절했지만, 딱 하나 문제가 있었어. 그가 리자드맨의 말을 모른다는 거였지. 그녀가 중간중간에 통역해주긴 했지만 그녀의 가족들과 그녀가 하하호호 웃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진 그는 나중에 번역기에 돌려보기로 하고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어.


그날 밤에, 그는 그녀의 가족들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되었어. 손님용이라는 커다란 방이 그에게 주어졌지. 아무리 접대를 융숭하게 한다고는 하더라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방이었어. 그 부담스러움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은 그는 녹음해 놨던대화 내용을 번역기에 돌리기 시작했어.


"얘, 아이는 몇이나 낳을 거니? 너무 많이 낳았다가는 고생한다는거 알잖니."

"적어도 다섯은 낳아야죠. 헤헤헤.."

"아직 한번도 같이 자지도 못했다면서?"

"이이가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요."

"그래? 오늘 밤 판 깔아줄 테니 해봐."


그제서야 그는 그녀가 엉터리로 가족들의 말을 통역했다는 것과, 왜 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지를 알 수 있었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그러자 그녀가 나타났어. 

전통 술을 잔뜩 마시고는 취해 있었지.

"너..."

"사장님♡"


그렇게 그녀는 그를 덮쳤어. 인간의 완력으론 리자드맨을 이길 수 없었지. "헤헤헤.. 이젠 안 참을 거예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어서야 그는 풀려날 수 있었어.  둘은 이후에도 같이 그녀의 고향을 여행했지만 둘 사이에는 최소한의 대화만 오갔고 일주일 내내 그가 그녀와 각방을 잡은 탓에 단 한번도 첫날밤을 재현할 순 없었지. 배신감에 그는 휴가가 끝나자마자 이 괘씸한 직원을 자를 생각이었어. 


그러나 휴가 마지막날 밤, 고국에 돌아와 각자의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그의 카톡에는 그녀가 보낸 사진 한 통이 도착했어.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였지. 


예정대로 그녀는 회사에서 잘렸어. 그녀에게는 퇴직금 대신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만 덜렁 주어졌지.  울고불며 거부하던 그녀가 활짝 웃게 된 것은, 남자가 일부러 왼손을 뻗어 자신의 손에 끼워진 똑같은 반지를 보여준 뒤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