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특히 눈이 온 직후의 산은 풍경이 참 멋져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겨울에는 여러 위험한 마물소녀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조심해야하지.


 설녀라던가 겨울잠을 자고 있는 그리즐리라던가, 배고파서 살짝 빡쳐있는 하이오크, 얼음의 정령 같은 아이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고, 잘 알려져 있어서 다들 잘 조심하니까 지금은 이야기 안 할꺼고,


 라미아는 냉동뱀 상태라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서, 실키 같은 아이들은 극지방 친구들이라 논외, 가끔 시베리아에서 천리행군해서 기어온 화이트혼이 목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로또사는 일이고.


 아무튼, 겨울과 관련된 마물들은 다들 미리 조심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드라이어드가 엄청 위험하다는 것을 잘 모르더라구.


 뭐, 온화하고 느긋하고 경계심도 없는 드라이어드가 위험하다는 소리 자체가 개소리로 들리는게 당연한 것이고, 지금부터 설명하는 것이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만 알려진 사실이라서 보편적인 드라이어드의 특성은 아니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변명은 드라이어드를 만나고는 안 통하니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세겨들어, 알았지?


 이제 설명할 이야기는 상록수에서 탄생한 드라이어드나, 열대나 냉대 같이 극단적인 기후에서 탄생한 드라이어드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야.


 그럼 어떤 아이들에게 해당하냐고?


 그건, 바로 낙엽이 생기는 나무에서 탄생한 드라이어드들이야.


 다들 릴리아우네나 알라우네 같은 꽃 계열 마물들이 주기적으로 꽃을 피우고 지는 것을 알고 있지?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낙엽을 만드는 드라이어드들도 꽃 계열 마물들처럼 날이 추워지면 잎의 색을 변화시키고 낙엽을 만들지.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해, 꽃 계열 마물에게는 식물의 꽃에 상동하는 기관이 몸을 이쁘게 장식하는 것에 해당해, 공작새의 꼬리깃이나 사람으로 따지면 머리띠, 팔찌, 발찌 같은 것과 비슷하지.


 하지만 나뭇잎과 상동하는 기관은 드라이어드에게는 바로 '머리카락'이야.


 상록수 친구들은 겨울에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고 갈라지는 정도로 끝나지만, 낙엽수 친구들은 낙엽, 그러니까 '탈모'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머리카락 색만 변화하는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낙엽도 같이 발생한다는 소리야.


 물론 드라이어드는 마물이니 인간 남성의 탈모나, 낙엽처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정수리쪽 두피가 조금 잘 보이거나, 신경쓰지 못하면 어깨에 머리카락이 소복히 쌓이는 수준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안타까운 사실은 드라이어드가 남성을 유혹할 때 사용하는 부위가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라는 점이었지.


 그렇기에 낙엽수에서 탄생한 드라이어드들은 겨울이 되면 머리관리에 예민해지고, 자신의 정수리를 남성에게 들킬까 항상 불안해 하는 시기이지.


 평상시에는 앞머리로 정수리를 가릴 수 있게 단정하게 머리를 묶는다거나, 나뭇가지 머리띠로 시선을 분산하거나 하는 노력을 보여줘서 머리카락 수가 적어졌다는 것을 모르는데, 아무리 신경쓰고 관리하더라도 씻고 있는 동안에는 머리를 숨길 수는 없단 말이지.


 이게 바로 등산시에 주의해야 하는 본격적인 이유야.


 계곡이나, 저수지 같이 물이 있는 곳에서 가끔씩 여러 마물소녀들이 몸단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낙엽수 드라이어드가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면, 최대한 들키지 않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


 드라이어드인데 왜 도망치냐고?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탈모는 못 참고, 장난꾸러기 체셔캣도 탈모인 사람에게 머리로 장난치는 일은 없어.


 짧은 머리나, 대머리가 비교적 허용되는 남자라도 죽을 맛인데, 여성이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다? 아마 방구석에서 사과 씹어먹던 그린웜도 너를 죽이려고 달려들거야.


 도망치는 것에 성공했다면, 너는 다시는 그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끝나는 짜릿한 헤프닝으로 끝나지만, 만약, 들켰다?


 너랑 낙엽수 드라이어드가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여줘, '서럽게 펑펑 울거나', '주변 나무에서 넝쿨을 생성해서 너를 포박하거나'


 어느 반응이던 너에게 좋은 결과는 아니야.


 드라이어드가 '이제 결혼 못해애애애......'라고 애절하게 말하면서 마력을 가득 담아 서럽게 펑펑 울고 있다면 그녀를 그냥 버려두는 남자는 아마도 고자거나 알프 직전일거고.


 넝쿨에 묶였다면 '너 때문에 결혼 못하게 생겼으니까 책임져.'라는 말과 함께 온화한 드라이어드가 쌍욕을 퍼부으며 착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거야.


 이런 반응차이가 나뭇잎의 색에 의해 생겨난다고 마물학자들은 생각하는데, 주로 붉은 빛 계열의 낙엽수들은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출했고, 노란 빛 계열의 낙엽수는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았거든.


 참고로 나는 은행나무 드라이어드랑 마주쳐서 '죄...... 죄송해요,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할게요.'라는 말 실수를 했다가 아내가 생겼고, 내 동료는 단풍나무를 만났다가 그대로 산에 정착했다.


 물론 낙엽수 드라이어드가, 씻는 동안, 우연히 사람이 저수지나 계곡, 샘을 지나치는 경우가 드문 일이라 산 속에서 돌아다니는 하이오크 누나나 고라니 계열 켄타우로스를 만나는게 더 확률이 높지만, 우리나라는 낙엽수가 많고 등산하는 사람도 많아서 조심하는게 좋아.


 그리고 나는 식물학자라 드라이어드도 충분히 좋은 신부감으로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마물들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계획 밖의 결혼을 하기 싫은 사람들은 특별히 주의하고.


 이제 아내 머리 트리트먼트 해줘야 해서 이만 글을 마쳐야 할 것 같아, 모두들 안전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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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여도 좋으니 옙븐 마물눈나랑 결혼하고 싶다.


모두 추운 겨울 탈모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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