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마물이 다 어느 정도 서큐버스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 상황이니까 오히려 서큐버스가 순정품 느낌 아닐까?



제일 기본적인 토대가 되지만 특색은 없는 느낌이지 않을까?



악마적인 느낌은 파란피부 데몬한테 밀리고



착정야스의 거센 정도는 키메라나 헬하운드 같은 애들의 박력에 미치지 못하는데다



그렇다고 순애착정이나 부드러운 쪽에 특화되었냐 하면 키키모라 같이 순한 애들한테 밀리지.



무력이 뛰어난가? 드래곤한테 밀린다.



마법을 잘 쓰나? 사바트한테 밀린다.



거기다 인간한테 안 박고 몬무스를 찾아간다면 결국 인외도가 있는 쪽을 선호하는 몬박이들이라는 건데 걔들 눈에 인간의 팔다리에 뿔, 날개, 꼬리만 달린 서큐버스는 유일한 특징이 음란성인데... 그걸 다른 마물들도 다 가지게 된 거잖아.





분명 서큐버스가 취업할 때도 다른 마물들은 힘이 세든, 특정 환경이나 작업에 특화된 몸이 있든, 마법도 잘 쓰든 특기 투성이인데 사회초년생 서큐버스는 이력서에 쓴 유일한 특기가 매혹•착정이고 면접관은 그거 보면서 요즘 착정을 못 하는 몬무스도 있냐면서 서큐버스만 집요하게 압박하다가 탈락시키는 일이 계속 일어나겠지.





결혼시장에서도 인간이 아니라 몬무스 찾는 남자들은 대부분 몬무스의 독특한 특징에 꽂힌 건데 다른 몬무스들이 다 서큐버스의 상위호환 테크를 타면서 몰개성해진 서큐버스는 결혼정보업체에 신상을 등록해도 선자리 하나 안 나고 나중에는 그것도 해지하고 그 돈으로 집에서 술이나 마시겠지.





그 와중에 친구들은 다 남편 생겨서 청첩장 보내고, 몇 번은 축하해줬지만 점점 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친구의 순수한 기쁨을 기만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생각해버린 자신을 혐오하게 되고.



일자리는 구해도 거기서도 오래 있지는 못하고 금방 좋은 사람 생길 거라며 위로해주던 부모님마저 안 보이는 곳에서 한숨을 쉬면서 자식의 모자람을 안타까워하는 걸 듣게 되고....



분명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생기넘치던 서큐버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집에 틀어박혀서 해 뜰 때 암막커튼 치고 자고, 해질 때 일어나서 게임이나 하는 칠칠치 못한 군살이 붙고 굽은 목에 식당가서 주문할 때 직원이랑 얘기할 때 눈도 못 마주치는 서큐버스만 남게 된 거임.



친구들은 다 결혼해서 몬스타 같은데 애기 사진 올리는데 거기다 답글 달면 너는 결혼했냐는 얘기 나올까봐 SNS도 아예 안 하고, 하는 일은 그나마 배운 웹디자인으로 가끔씩 어디 홈페이지 만드는 거 하고 받는 돈으로 온라인 게임이나 하는 거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에 접속해있으니 자연스럽게 서큐버스의 게임내 랭크도 꽤 높아졌고, 그러다보니 유명길드에서 스카웃도 들어와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수락했고,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길드원들이랑도 친하게 지내게 됐겠지.





근데 길드에 들어온지 반년정도 된 어느 날, 갑자기 정모를 한다는 거야. 길드에서 1년에 한 번씩 원래 정모를 여는게 전통이었다는데, 하필 장소도 서큐버스네 집 근처였고, 그 동네 산다고 옛날에 말했던 것 때문에 서큐버스가 자연스럽게 참석하는 걸로 처리되어버림.



서큐버스는 당황했겠지. 이제와서 자긴 안 나간다고 하면 길드원들이 친하게 안 대해줄 것 같고, 그렇다고 나갔다가 비웃음을 당하는 건 더욱 무서웠어.



결국 고민하던 끝에 서큐버스는 길드원들을 믿자고, 그리고 자기도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날 용기를 내야한다고 결심을 굳히고는 정모에 나가기로 결심했겠지.



거기다가 서큐버스가 정모에 갈지 말지 망설이는 모습을 게임 속에서 본 길드마스터가 서큐버스를 다독여주면서 서큐버스는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어.



그러면서, 인간 남자라고 들었던 길드마스터에게 서큐버스는 어쩐지 자신도 모르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 이런 친절을 받아본게 너무 오랜만이었던 거야.



서튜버스가 집에 틀어박히기 전에 사뒀던 외출용 옷들은 살이 찌면서 전혀 맞지 않아서 그나마 잘 늘어나는 스포츠용 레깅스에 넉넉한 티셔츠, 그리고 집 앞 나갈때 자주 입는 몬디다스 츄리닝 재킷으로 코디를 하기로 하고, 서큐버스는 오랜만에 있는 힘껏 꾸미고서는 정모에 나갈 다짐을 굳혔어.



정시에 맞춰 가려던 서큐버스랑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다는 연락에, 서큐버스는 서둘러 정모가 열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지.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전에 유리창 앞에서 머리나 화장이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긴장을 풀면 자꾸 앞으로 숙여지는 목과 허리를 피려고 의식하고, 그러면 커진 가슴에 딸려올라가 뱃살이 드러날듯한 옷자락을 내려서 정리하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용기를 복돋운 서큐버스는 용기를 내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어.



활기찬 체셔캣 점원의 혼자 왔냐는 말에 한줌 먼지 같던 서큐버스의 자존감은 또 큰 치명상을 입었지만, 서큐버스는 떨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아마 체셔캣이 살면서 두 번 다시 들어보지 못할 법한 판타지 게임에서 갓 튀어나온 길드의 이름을 말했지.



체셔캣 점원은 자연스럽게 서큐버스에게 안쪽 예약석으로 안내하겠다며 답해줬고, 그 모습에 서큐버스는 자신이 성공적으로 점원과 대화한 사실에 기뻐했지만, 사실 체셔캣 점원은 '역시 게임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냥'이라면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마침내 서큐버스는 정모자리에 도달했지.



단체석이라 뭔가 고급스러워보이는 방 하나가 따로 배정된 곳이라, 커다란 문 너머에서는 이미 도착한 길드원들의 화기애애한 말소리들이 울려퍼지고 있었지.



서큐버스는 저 사이에 자신이 들어가서 낄 수 있을지 두려워졌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다고 용기를 짜내고, 문고리를 잡았어.



문을 활짝 연 서큐버스는 집에서 거울을 보면서 수십 번 연습한 인사말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그 말을 모두 끝마치지는 못했어.





서큐버스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방 안에 있던 길드원들을 바라봤고



길드원들도 당황한 눈으로 서큐버스를 바라봤지.







왜냐면 길드원들은 전부 초등학생 수준의 어린애들이었거든.



그 중에서 딱 한 명, 조금 나이가 많아보이는 아이가 일어나더니 서큐버스의 닉네임을 입에 담으며 서큐버스가 맞는지 물어왔어.



그 아이의 가슴팍에는 길드마스터의 닉네임이 적혀있았지.







서큐버스는 비어있던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아이들은 서큐버스의 닉네임을 수군거리면서 어른이었나? 나이는 안 물어보긴 했는데.... 근데 맨날 접속해있었잖아. 어른인데 어떻게 맨날 게임에 접속한 거야? 같은 순수하면서도 서큐버스의 숨통을 끝장내는 말들을 속삭였지.



서큐버스는 듣지 못한 척을 하고, 머릿속에서 연습해온 길드원들과의 화목한 대화 시뮬레이션은 새하얗게 잊어버린채, 그저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을 입에 담으면서 그 자리를 즐기려 했어.



그런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일까? 서큐버스는 쏟아지려하는 눈물을 포크립을 우물거리며 같이 삼켰어.









집에 돌아온 서큐버스는 단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출석 이벤트조차 내팽개치고,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그래도 정모는 재밌었지. 현실의 나이가 어찌됐든 지난 반년간 함께 한 길드원들이니까. 그 유대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던 거야.



사실은 아이들이 서큐버스를 배려해서 일부러 맞춰주고 떠밀어서라도 같이 놀 수 있게 판을 깔아준 거였고, 서큐버스도 그걸 눈치챘었지.



하지만 그걸 인정했다간 서큐버스는 죽을 것만 같아서 애써서 자신의 착각일 거라고 믿었지.









이처럼 서큐버스는 몬무스치고 애매한 능력과 위치로 현대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근데 또 그런 애매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서큐버스의 고등학교 동창에 자기는 귀찮아서 결혼 안 할 거라고 하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사귄 남자랑 졸업하자마자 결혼에 골인한 이 와이번의 아들처럼 말이야.



친구들이랑 같이 밥먹고 노래방에 갔다 온다던 아들이 돌아오자, 와이번은 재밌게 놀고 왔냐고 아들에게 물었지.



아들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게임에서 자기가 만든 길드의 길드원들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그냥 학교 친구들이라고 둘러댔는데, 그러다가 친구 중 한 명이 누나랑 같이 왔다는 말을 했지.



와이번은 그 친구네 누나랑 노는게 재밌었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투에서 수줍은 기색을 느끼고는, 아들도 벌써 이성에게 관심을 가질 시기구나 싶어서 흐뭇하게 웃어줬어.



그러고는, 나중에 그 누나랑 같이 단둘이 놀자고 해보라고 아들을 부추겼지. 놀러갈 돈이 없으면 엄마가 빌려주겠다고 까지 하면서 말이야.



아들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긴 그런 말 못 한다고 하고 자기 방으로 휙 도망갔어.



와이번은 아들에게 사춘기가 오나 싶어서 걱정하면서도, 순진한 자기 아들을 이렇게 사랑에 수줍어하는 소년처럼 만든 그 친구네 누나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어.



하지만 너무 캐물으면 아들이 싫어할테고, 자연스레 때가 되고 연이 닿으면 알게 될 거라 생각하고는 나중에 만날 것을 기대하기만 하였지.






















서큐버스가 고교동창의 아들을 따먹기까지 10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