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는 피를 마시는 마물이다. 하지만 흡혈 행위는 공복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력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다.


 흡혈귀는 인간에게서 태어나며, 따라서 영혼과 정신은 인간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육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 


 흡혈귀의 육체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지만, 지속적으로 정신을 갉아먹는다. 인간의 정신으론 흡혈귀의 몸을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신이 완전히 마모된 흡혈귀는 이성을 잃은 괴수가 되어버린다.


 이성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피를 마시는 방법 뿐이다. 흡혈귀가 인간의 피를 마시면 정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흡혈귀가 오랫동안 피를 마시지 못하면 서서히 이성을 잃어간다. 


 그래서 흡혈귀는 공복을 채우기 위한 일반적인 식사와 정신력을 채우기 위한 흡혈을 모두 해야한다.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는 것을 원하는 흡혈귀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런 괴물에게 참살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따라서 흡혈귀의 적당한 흡혈 행위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피나 마시면 되는 것은 아니다. 흡혈귀의 정신은 인간이므로 인간의 혈액, 또는 인간보다 높은 정신력을 가진 존재의 혈액만이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혈액이 누구의 것인지도 중요한데, 싫어하는 사람의 피는 큰 효과가 없고, 좋아하는 사람의 피는 우수한 효과를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피야말로 최고의 혈액이다.


 이는 맛에도 반영된다. 흡혈귀는 특수한 감각으로 인간 피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싫어하는 사람의 피에는 불쾌감마저 느끼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피에는 굉장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각은 일반적인 미각과는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데, 흡혈귀가 혈액으로 느끼는 쾌감에는 약한 의존성이 있기 때문이다. 흡혈귀는 사랑하는 사람의 피에 중독되며,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마시지 못하게 되면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이런 의존 현상은 흡혈귀의 정신에 큰 영향을 준다. 따라서 흡혈귀는 왠만해선 사랑이 식지 않으며, 거의 모든 흡혈귀는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 쪽에서 흡혈귀를 먼저 배신하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흡혈귀는 피를 마실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체액을 주입할 수도 있다. 이 체액은 신경에 영향을 주는데, 통각을 느끼는 신경을 마비시키고, 일반적인 촉각을 느끼는 신경을 활성화한다. 따라서 흡혈귀는 흡혈 이전에 피부를 핥아 통각을 마취시킨 다음 흡혈을 한다. 


 이 체액 덕분에 흡혈당하는 사람은 흡혈 도중에 통각을 잘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얼얼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통각을 느낀다고 해도 처음 순간에만 통각을 느끼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진다.


 흡혈귀의 체액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체액이 있는데, 인간이 이 체액을 일정 이상으로 주입당하면 육체가 흡혈귀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흡혈귀의 유일한 증식 방법이다. (흡혈귀가 임신을 하면 그 아이는 인간으로 태어난다.)

 

 흡혈귀들 사이에서는 이 행위를 포옹, 또는 권속화라고 말한다. 이렇게 흡혈귀가 된 이들은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장본인에게 이끌리기 때문이다.


 간혹 이를 이용하여, 짝이 없는 흡혈귀가 사람을 습격하여 강제로 흡혈귀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흡혈귀가 된 희생자는 흡혈귀에게 이끌려 호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흡혈귀의 습격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해지며, 희생자는 생성된 호감으로 곧 사랑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흡혈귀의 특성 상, 흡혈귀가 가정을 이루면 적어도 가정이 파탄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권장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