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카트리오나는 페나르핀의 오른쪽 허리춤에 메어진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칼, 지팡구에서 만든 칼이지? 너, 지팡구에 가본적이 있니?"


"이 검 말이냐?...글쎄, 나는 지팡구에 가본적은 없다. 여러 대륙을 돌기는 했다만, 중간에 여행을 그만두고 은거해버렸으니까."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 거리며 페나르핀이 말했다. 그런 페나르핀을 보며 카트리오나가 질문했다.


"그럼 그건 어디서 얻은거야? 늘 궁금했거든."


허리춤에서 풀어내어, 테이블 위에 검을 올려놓은 페나르핀이 말했다.


"이건 우연히 이국의 검사와의 결투에서 승리해 얻은 물건이다. 꽤 힘든 상대였지. 지금도 기억난다. 내 실력에 감복했다면서 이걸 줬었지."


"녀석의 이름은?"


".....코요리."


기억해내기 위해 생각하던 페나르핀이 말하자, 역시나. 하는 표정의 카트리오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지팡구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이름이야. 아마 네가 싸웠다는 그 이국의 검사는 지팡구 출신이었겠지."


"그랬군.... 지팡구의 물건을 지니고 있다면, 오치무샤가 될수 있는건가."


"그게 아니야. 그럴리가 없잖아? 너는 그 '칼' 때문에 죽지 못하고 살아나게 된거야."


"...뭐라고?"


"잠시 검을 뽑아봐. 그럼 알게될거니까."


턱짓으로 지시하는 카트리오나의 말에, 페나르핀은 반신반의하며 자루를 쥐고 힘을 주었다.


"...! 이건..!"


"........"


검을 조금 뽑아내자, 흉흉한 붉은 색을 발하는 도신이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놀라며 도로 검을 집어넣는 페나르핀을 카트리오나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걸 처음 받았을때는, 꽤나 공들여 만든 이국의 검이라 생각했는데... 생전에 썼을땐 이런 모습도 아니었고."


페나르핀이 변명하듯이 말을 늘어놓자, 굳은 표정의 카트리오나가 말했다.


".....그랬겠지....정말 그랬을까 의문이 들지만."


"...그게 무슨 뜻이지?"


"너는 생전, 어떤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했지?"


"...그래."


조금 슬픈 표정으로 페나르핀이 답하자, 깊게 한숨을 푹 쉬고는 카트리오나가 말했다.


"하아.... 한번이라도, 내게 이걸 보여줬다면 눈치채고 알려줬을텐데. 지금의 상태로 봐서는 아마 처음부터 평범한 칼은 아니었을거야."


"........"


"너, 정말 기억나는게 없어? 다시 생각해봐. 그 이국의 검사가 이걸 줬을때 뭐라고 했었는지. 분명 평범한 물건이 아니야."


"...녀석과 나는...하얀 산맥 근처의 마을에서 처음 만났지. 꽤 특이한 성격이었다.."


페나르핀은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엘프를 알아보는 지역 주민들은, 겉모습보다 나이가 많은 나를 속으로는 두려워 하면서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거긴 인간들만 사는 마을이었으니까."


"그들 모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에 대한 거리를 분명히 지키면서 나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 어떤 생각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척박하고 추운 환경의 마을에서, 평범한 외지인도 꺼려하는데, 그 외지인이 엘프였으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숲에 사는 엘프들도 그건 똑같았으니, 그런 취급은 익숙했다."


카트리오나는 다시 페나르핀의 대화에 집중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페나르핀은 테이블에 올린 깍지낀 손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코요리가 내게 말을 걸어왔었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눈이 내리는 북쪽의 하얀 산맥 끝자락. 눈에 뒤덮인 어느 마을의 여관. 금발 벽안의 아름다운 외모, 뾰족한 귀에 허리에는 엘프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검을 찬, 100년 전의 페나르핀이 술잔을 기울이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인종이군. 뾰족한 귀......그대는 오니인가?"


그때, 어떤 여자가 페나르핀에게 말을 걸어왔다. 검은색의 긴 포니테일에 검은 눈. 허리에는 검을 찬 독특한 분위기의 인간 검사였다.


".....뭐라고?"


"아니...자세히 보니 뿔이 없구만....오니가 아닌건가."


"...넌 뭐지? 알수없는 말만 중얼중얼 거리기나 하고."


페나르핀이 검사를 노려보며 말하자, 멋쩍게 웃으며 검사가 말했다.


"아아...미안허이. 그대의 귀를 보니, 잠시 내 고향 땅의 마물이 생각나서 말일세. 무례를 용서해주게나."


"....특이한 말투로군. 이곳 지역의 사람은 아닌거같은데. 넌 뭐지?"


"하하하... 그 뾰족한 귀. 그대는 평범한 인간은 아닌듯 보이네만, 그대는 이종족인가?"


"....같은 질문을 세번 하는게 네년의 고향에서는 흔한 일인가보군. 넌 뭐지?"


하고싶은 말만 늘어놓고있는 여자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페나르핀이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러자 검사는 곤란하다는듯이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이거 실례했군. 미안허이. 나는 저 멀리 지팡구라는곳에서 온 코요리 라고 하네."


그리고는 멋쩍다는듯이 웃었다.


".....지팡구의 코요리..인가. 그래서, 아까 그건 뭐지? 오니?"


"아, 그거 말이네만.... 그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게지? 그 뾰족한 귀를 보면, 절대 평범하다고는 못하겠군."


'답을 얻기 전까지는 또 똑같은 흐름이겠군. 번거로운 녀석.' 페나르핀이 생각했다.


"오니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엘프라는 종족을 들어봤나?"


"들어본적은 있네. 이 대륙에 살고있는 숲에 사는 이종족이였나. 꽤나 장수하는게 특징이라고 하던데."


"...또 다른 특징이라면, 모두가 뾰족한 귀를 지니고 있지. 마치 나처럼 말이야." 비아냥 거리듯이 페나르핀이 말했다.


그러자 코요리가 눈을 빛내며 페나르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가 검은 눈을 빛내며 페나르핀을 바라본다.


"오오! 과연! 그대가 바로 그 엘프였군! 이야, 실물을 보는건 처음이네만! 만나서 정말 반갑네! 꼭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는데,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더군!"


손을 잡고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밀며 호감을 표시하는 코요리. 페나르핀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그녀의 태도에 얼굴을 구겼다.


"....보통 엘프들은 숲에 숨어서,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한번도 본적이 없는것도 이상하진 않지..." 말을 마친 페나르핀이 붙잡힌 손을 빼내며 다시 술잔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아 주문을 시키며 생글생글 웃고있는 코요리를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페나르핀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나저나 자네, 엘프인데도 활을 쓰지는 않는건가? 활도 화살도 보이지가 않네만."


"모든 엘프는 명사수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도록 하라고. 나는 활에 재능이 없어."


"그렇군. 검을 차고있는것은 그래서였나. 꽤나 멋진 검을 가지고있군 그래." 페나르핀의 오른편에 풀어놓은 검을 바라보며 코요리가 말했다.


"과연. 세상을 떠도는 엘프 검사라. 나쁘지 않구만."


씨익 웃으며 페나르핀을 향해 웃어보이고선, 코요리는 주문시킨 에일을 들이켰다.


"....내게 말을 건 이유는 뭐지? 목적이 있어보이는데, 설마 엘프라서 말을 걸어본건 아닐테고."


"당연히 아니지.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부탁이라?"


쭉 들이켜 잔을 비운 코요리가 눈을 빛내며 페나르핀을 바라봤다.


"멀리서도 보이는 자네의 그 범상치않은 기백에 이 내 몸이 근질거리더군."


"...말인 즉슨?"


"나는 저 멀리 바다건너 지팡구에서 세계를 돌며 무사수행을 위해 여행중인 몸이네. 언제나 강자와 싸우며 그 강함을 익히고 싶어서 말이지."


페나르핀은 코요리의 말에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번 싸워보고싶다 이거군. 내 실력을 알고싶은거냐?"


"그럴리가. 그저 한수 배워보고 싶을 뿐일세."


"하. 점잔떨기는. 눈에서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페나르핀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코요리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실력에는 자신있다는 그 오만 방자한 표정... 너, 한번도 진 적이 없나보군."


"....내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겼나?"


페나르핀이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코요리를 노려봤다.


"애송이가. 거만한게 마음에 안드는군. 좋아. 네 말대로, 한수 가르쳐주지."


페나르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은화 두장을 내려놓고서 밖으로 나왔다. 코요리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나왔다.


마을을 빠져나온 두사람은 새하얀 눈이 잔뜩 쌓인 공터에 멈춰섰다. 코요리가 크게 외쳤다.


"내 이름은 이카루가 코요리. 고명한 무사가문의 여식이다. 그대의 이름을 듣지."


코요리가 이름을 밝히며 검을 뽑아보였다. 물결이 새겨진 날에 처음보는 글자가 새겨진 휘어진 검이었다.


"고요의 숲 엘라인의 수호자 하겔의 딸, 페나르핀이 그대의 질문에 답한다."


이름을 밝힌 페나르핀이 검을 뽑아내며 자세를 잡자, 코요리가 말했다.


"...특이한 검이군. 꽤나 잘 만든 검으로 보이기도 하고."


"칭찬 고맙군. 내 고향 땅의 이름없는 도검장인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든 오래된 물건이네."


"그나저나..페나르핀이라 하는가. 예쁜 이름이군."


페나르핀이 눈썹을 찡그리자, 코요리가 웃어보이고는 자세를 잡았다.


"애송이 녀석. 한수 가르쳐주마."


"하하하하! 부디, 가르쳐주게!"


코요리가 페나르핀에게 달려나가자, 페나르핀이 검을 휘두르며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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