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타이펀이 페나르핀을 보러 조합에 갔던 때, 게르트는 홀로 페나르핀의 검 - 야츠후사를 쥐고 거리를 거닐었다.


"........"


레티에라에서 지팡구의 물건을 본다는것은 꽤 드문 일이다.


지팡구 출신의 인간도 이런 외지의 대륙까지 올 엄두를 내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지팡구의 물건들은 레스카티에나 드래고니아에서 흘러러들어오는 일부 뿐이다.


특히, 도검의 경우에는 더더욱.


"...후우."


게르트는 한숨을 내쉬며 야츠후사를 바라봤다.


성채도시는 레티에라 대륙의 가장 큰 도시이자, 가장 상인의 교류가 활발한 도시이고, 숨겨진 미궁이나 유적들이 잔뜩 있는 레티에라의 특성과 맞물려 많은 모험가들이 교통의 요지로써 모여드는 곳이다.


교통의 중심지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상단의 모임이 활발해지고, 상단들이 모여 길드가 되더니, 현 국왕 체재로 들어서자 모든 길드가 통합되어 '조합'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성채도시에만 존재하던 '조합'의  날로 드높아져만 갔으며, 이제는 레티에라 대륙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조합'에 가입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또한 '조합'이 만들어지며 각자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던 유물을 찾아오는 용병과 모험가들 또한 조합의 소속이 되어 등급이 나누어졌었다.


그리고 조합 소속의 모험가가 많아지니, 그들이 고대의 유적이나 각지에 숨겨진 미궁을 돌아 얻게 된 물건들의 가치를 알아봐줄 감정사들과, 그들을 향해 사업을 하는 상인과 대장장이들이 생겨났다.


그런 레티에라에 있는 게르트는 지팡구에서 온 이 알수없는 도검의 정체를 알수있을거라 생각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감정사들을 찾아다녔다.


"...고작 물건따위를 두려워해서 무슨 감정사 일을 하겠다는건지."


게르트는 야츠후사를 감정했던 감정사들에게 욕을 하며 불만스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왕래가 적은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감정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야츠후사를 보고는, '그 검은 저주받았다' 며 감정을 거부한 자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저주가 뭐길래..."


게르트는 페나르핀이 쓰던 이 검에 분명 어떠한 저주가 걸려있음을 그녀와 검을 나누며 인지했지만, 그 저주가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었다. 


게르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어둑한 숲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했다.


'전투 내내 보여주었던 그 광기어린 집착과 검붉은 마력...분명 어떠한 저주가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어. 오랫동안 사용하셨던 검이니만큼, 그 저주가 몸에 깊이 베어있었던거야. 그래서...'


"만약 검의 의지에 조종받아 그런 일들을 저지른것이라면, 그런 일이 있었던거라면, 나는 그분을 용서할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있구나. 호호호..."


복잡한 얼굴로 야츠후사를 바라보던 게르트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게르트는 흠칫 놀라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오래간만이로구나, 루윈의 아들, 피에 젖은 길을 걷는 상처투성이의 아이야. 이렇게 운명처럼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그렇지 않니? 호호호."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남색 로브의 노파가 구석진 골목에 앉아 게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숙련된 전사인 게르트의 옆에서, 기척없이 다가와 말을 걸어보이는 이 노인을 향해 야츠후사를 땅에 떨구고 엘레메실을 뽑으려 하는 게르트.


"...저번에는 시간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마치 유령처럼 기척없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왔군. 당신은 대체 뭐지?"


"....너는 참 어릴적부터 호기심이 참 왕성하구나, 꼬마야."


노인은 그저 기이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수정구를 어루만졌다.


"대답하기나 해. 대체 당신은 정체가 뭐야?"


"...글쎄..그저 지나가던 점쟁이일 뿐인데?"


"시치미 떼지 말고 대답해라. 이걸 뽑기 전에."


"......"


게르트가 검자루에 힘을 주고 엘레메실을 뽑아내었다. 칠흑의 도신의 날이 퍼렇게 빛났다. 노인은 게르트를 보며 말없이 기이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어릴 적,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했던 숲에 들어와 내게 그분의 진실을 알려주고, 저번에는 시간을 멈추고 불길한 예언을 해대고, 이번엔 나밖에 없는 이 거리에 기척도 없이 나타나서 말을 걸어대는데도, '지나가던 점쟁이' 따위로 둘러대지 말란 말이야. 이 망할 할망구."


게르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노파를 바라봤다. 녹색과 청색이 섞인 마력이 그의 눈에서 불타오르며 빛났다.


"호호호호! 살기가 대단하구나! 역시, 아트리아에서 살아남은 전사는 뭐니뭐니해도 다르구나!"


여차하면 베어버릴 기세의 게르트를 보며 노파는 크게 웃었다.


"...역시 노망이 들면 자기 멋대로 말을 지껄이시는군. 다시 한번 묻지. 당신은 대체 뭐야."


게르트는 엘레메실을 꽉 쥐고 자세를 잡았다. 칠흑의 도신에서 그의 마력이 타고 흐르며 불꽃처럼 빛났다.


노인은 그저 말없이 수정구를 어루만지며 그를 향해 미소지을 뿐이었다. 노인의 손길을 받으며, 수정구에서는 희미하게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구나. 하긴... 나는 너를 이곳에서 만나왔으니, 어린 너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불가해한 내 능력을 보고 경계하는것은 당연할수도 있겠구나."


노인은 후드를 벗고, 게르트의 눈을 바라보며 기이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의 눈에서 밤하늘의 별빛과도 같은 동공이 게르트를 비추었다.


"....나는 저 너머에 기거하시는 고대의 존재를 모시는 자들 중 하나. 언제나 꿈을 꾸시며 이곳을 지켜주시는 위대하신 분, '꿈꾸는 노인'의 하수인이란다."


"...꿈꾸는...노인이라고?"


노파는 수정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보여선 안될 것들이 보였단다. 눈을 뜨고 있는 낮에는 누군가에게 닥칠 미래, 언젠가 다가올 파멸이 보였고, 눈을 감고 꿈을 꾸는 밤에는 저 너머에 존재하시는 보여서는 안될 분들이 보였단다."


"......."


게르트는 이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파를 향했던 검을 거두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미 게르트는 아까와 같은 경계심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꿈을 꾸던 나는 언제나 애써 무시해왔던 눈앞의 위대하신 분과 눈이 마주쳤고, 그분의 형용하기 어려운 사악하고 끈적한 부정형의 마력에 침식되어,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했지."


백발의 노파는 벗었던 후드를 다시 쓰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위기에 처한 나를, 백발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형상을 한 그분께서 나를 구해주셨단다. 몸에서 내뿜어지는 그 찬란한 빛으로,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사악한 마력을 씻어내주시고는, 내게 사명을 주셨단다."


노파가 게르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너와 같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자들을 구원해주고 앞으로 이끌어주는것. 그것이 그분께서 내게 내려주신 사명이란다."


"...그럼 왜, 나와 그분의 사이를 갈라놓을 말을 했던거지?"


게르트는 엘레메실을 꽉 쥐고 노파를 향해 일갈했다.


"만약, 어렸던 네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때 펼쳐진 미래가, 지금의 미래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을거니까."


노파는 어느 틈에 주웠을지 모를 땅에 떨어진 도검 - 야츠후사를 살짝 뽑아내고 말했다.


"이 검... 주군을 지키지 못했던 불사의 무사가 깃든 이 검은... 지니고 있는 사람과 합쳐져 사용자의 욕망을 과잉시켜 해소하려하지. 그것이 이 검에 깃든 저주란다."


"불사의...무사?"


"내가 만일, 너에게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네 어머니는 검의 마력에 홀려, 너를 집에 가두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을거야. 점점 남자가 되어가는 너를 보며 듫끓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결국 너를 덮쳐버렸을거란다."


"...뭐라고?"


".....네 어머니와 너는 서로 사랑을 나누겠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엔 우연히 진실을 마주한 너는 어머니이자 아내인 그녀와 혈투를 벌이고, 이내 서로를 찌르고 죽게 되었을게야."


게르트는 야츠후사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검에 홀려서...나를 덮친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 검이 네 스승을 변질시킨건 검의 탓이 아니란다. 어느쪽이 원인이였느냐를 따지자면...너를 어머니로만 사랑하지 못했던 사용자의 마음이 원인이 되어서, 검은 그녀의 소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들어준 것 뿐이지."


"....그럼...그분이 언데드가 된건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뜻인가?"


게르트의 질문에, 노파는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애매한 답변을 해주었다.


"...그녀와 너의 관계는 네 결정에 달려있단다. 감옥에서 꺼내주었을때 내민 손을 마저 내밀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손을 거두고 아내와 둘이서 떠날 것인지는...네 선택에 달렸단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부디 신중히 결정하려무나..."


".........또 내게 선택하라고 하는건가"


"그녀는 너를 연인으로써 사랑하고 싶어하니까... 그것에 답을 주는거라 생각하렴. 여기서 손을 거둔다면, 그녀는 영영 네 곁을 떠날테니까."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야? 그분이 나를 이성으로써 사랑한다니? 그건 검의 저주가 원인인거 아니였나?"


"호호호.....부디 너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고 있으마, 루윈의 아이야."


노파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게르트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윽?!"


"아, 이 검은 그녀에게 되돌려 주어도 괜찮단다. 검에 깃든 악귀는 하루종일 네가 뿜어내는 강력한 정기에 짓눌려 사라져버렸으니까."


노파는 야츠후사를 게르트의 발치에 내려놓고는, 저 멀리 펼쳐진 골목길을 향해 걸어갔다.


언덕길에는 존재할 리가 없는, 평평한 골목길을 걸어가며 노파는 게르트를 향해 말했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너를 지켜보고 있으마. 루윈의 아이, 피에 젖은 길을 걷는 상처투성이의 전사 에크하르트여..."


노파는 게르트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말해주고는, 천천히 골목으로 걸어들어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노파가 사라지자 게르트의 움직임을 막고있었던 속박이 풀렸다.


"........"


게르트는 점점 흐릿해져가는 평평한 골목길을 바라보다, 땅에 떨어져있는 야츠후사를 줍고 여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이미 어둑해진 겨울의 하늘에서, 무성한 별과 달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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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노인


한때 바다의 지배권을 놓고 포세이돈과 다투었던 혼돈의 마물들과 먼 친척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꾸는 꿈 속에 존재하는 혼돈의 마물의 일종.


일단은 이종족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꿈 속에서는 백발의 늙은 남자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바다에 봉인된 혼돈의 마물들이 내뿜는 강대한 마력에 피해받는 자들을 구해준다.


꿈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달리, 본체의 모습은 작은 어린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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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합니다 몬붕쿤들


요즘 좀 바빠서 망상할 시간이 업내요


또 0.5화로 날먹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