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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시곗바늘의 시침이 북동쪽을 향하면 잠에서 깨어난다. 완전한 동쪽을 지나 남동쪽이 될 때까지 기도를 한다. 작은 종을 울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주님이 내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감히 말을 올려본다. 새벽기도는 성녀로서 홀로 주님을 향하여 행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흠모하는 이도 흑심을 품는 이도 존경하는 자도 없다. 

 

어둠 속에서 홀로, 촛불 하나에 의지하고 종을 울린다. 청아한 종소리는 그 울림으로 듣는이에게 진정을 유도하였다. 지붕 위에서 날아갈 채비를 하던 새들도, 나무 위에 앉아 열매를 채집하던 작은 동물들도, 사람의 마음 속에 깃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 악도 전부 잠에 빠져들 듯 얌전해진다. 맑고도 고운 목소리가 무거운 언령처럼 울린다. 

 

성역을 만들어내는 힘이 펼쳐진다. 미니엄의 작은 교회, 세인트크레우스 교회의 자랑스러운 다중성역의 결계는 이러한 목소리와 울림, 기도 속에 깃든 주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글을 깨우치지 않아도 된다. 성경에 적힌 구절을 자세히 알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간절함, 인간의 행복을 원하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간절함과 소망만 있다면 이 성역을 만들어내는 주문은 힘을 내었다. 

 

작디작은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키는 154cm 언저리, 백금발의 머리칼이 찬란하게 빛을 머금는 성녀님. 마을 사람들에게는 백의의 순례자라 불린지도 8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신앙심이 있어서 성녀가 되었다기 보단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서 간택을 받은 것에 가까웠다. 

 

여러 가지 악재로 인해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양아버지에게 성경의 내용에 대해 잘못 물어봤다가 혼났던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어째선가 나는 성녀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자신이 싫지 않았다. 두렵긴 하였다. 모두가 성녀라고 나를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이름을 부여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성녀가 아닌 고아에 가까웠다. 빗속에서 마차사고로 인해 늠름한 아버지와 하염없이 예쁜 어머니를 잃었다. 친척들은 죄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 죽어나갔다. 겨우 연락이 닿아도 재산도 가치있는 족보도 없는 나는 버림받는 존재였다. 

 

그런 내게 신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믿지 않아도, 심지어 저주를 했는데도 속삭여주셨다. ‘ 나아가라.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다른 이들이 겪는 걸 원치 않는다면, 연옥 속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싶으면 이 길을 따라가거라. ’ 상냥한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상냥하고 다정해서 그동안의 슬픔을 다 내뱉을 정도였다. 

 

과거를 잠시 회상하자 순간 균형을 잃고 살짝 쓰러졌다. 오늘은 목사님이 없는 날이시다. 한참 기억에 혼란이 생긴 그를 위해 특별히 내가 도회지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몇 닢의 동전과 가죽 가방, 약간의 식량이면 충분히 요양은 가능하다. 며칠 전부터 목사님의 상태는 좋지 않아서 걱정하였는데, 최근에 호전되어 다시 오겠다는 쪽지를 내게 보내셨다.

 

기쁘면서도 걱정되기도 하였다. 내일이면 목사님이 온다. 흑색의 사제복을 멋지게 입으신 왕자님같이 아름답고 선한, 그 사람이 온다. 하지만 바보같아요. 조금만 더 빨리 오기를 전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냐면... 왜냐면... 

 

“ 오늘, 교회가 주최하는 요리체험 행사가 있단 말이에요. ”

 

◇ 

 

특별한 일을 기념하기보단 정기적으로 소통을 하고 싶어서 멋대로 만든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매 주 마다 하루 정도 일정에 끼어있는 이름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쿠킹데이. 누가 들으면 아!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 강습회인가?! 싶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진짜로 평범하게 다 같이 요리해서 나눠 먹는 거 어때요? 라는 취지가 담긴 이벤트였다. 재료와 기구는 전부 교회에서 준비한다. 참여할 사람은 누구든지 환영! 단, 재료를 이용해서 독이나 위협적인 것을 만드는 건 금지. 취지에 맞춘 요리를 위해서였다.

 

시곗바늘이 완전히 남쪽 방향을 가리킬 때,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재료와 도구들은 며칠 전부터 목사님을 기다리며 준비해뒀다. 원래라면 목사님이 오는 날은 오늘이었어야 했다. 햇볕이 가장 아름다운 금요일, 황금의 금요일 아침에 그가 감자가 든 포대를 들고 깜짝 등장!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 없어졌다. 목사님은 내일 도착하시며, 행사는 오늘이다. 

 

벌써부터 요리실력을 뽐낼 생각, 사교활동으로 친목을 다질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은 특별히, 마을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다 같이 왁자지껄 만들고 먹고 놀면서 슬픔을 달랬으면 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면에 있는 나의 나약한 외로움 때문이려나.

 

문이 열리자 역시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다행히도 교회 부지가 시골의 변방에 있는 터라 소음이나 공간 부족의 걱정은 없었다. 단지, 어느 한 사람이 시선에 걸렸을 뿐이었다.

 

나와 키가 비슷하거나 더 작은 여자아이가 와있었다. 금빛의 문양이 독특하게 얼굴의 하단에 자리잡은, 성녀라고 불릴만한 화사한 소녀. 심지어 날개까지 있다. 성령님처럼 등에 있는게 아닌 머리에 있으나, 이곳 사람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본다. 이쪽도 성녀에요! 라면서 친해지고 싶었지만, 프라이드가 있다. 먼저 고결하게 인사하려 애를 써본다.

 

“ 환영합니다. 자매님. 저는 세인트크레우스의 성녀 레티시아, 오늘 있을 행사에 참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사람 앞에서 만큼은, 성녀의 눈에 성녀처럼 보이는 소녀 앞에선 최대한 사회가 제시하는 성녀의 모습으로 있자. 그러지 않으면 얕보일지도 모른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부담일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양아버님께 꾸지람을 들었기에, 프라이드를 가져보기로 하였다. 세상에 다른 성녀들을 배출하느라 바쁘신 분이 내게 성녀답지 않다며 편지를 보내신다. 

 

“ 행사? 아...! 분명히 쿠킹 데이라고 말하셨죠? ”

 

이상하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 네! 쿠킹 데이랍니다. 요리를 하는 것도 먹기만 하는 것도 오케이, 하루 정도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급하게 만들어버린 행사에요. ”

 

혹시 말했던가?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철회하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프라이드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어디에 갔는지 이상적인 성녀의 말투가 아닌 평상시의 조금은 아이같은 말투로 말해버렸다. 

 

어린 소녀처럼 보이는 성녀 앞에서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성녀가 말을 하였다. 이 광경은 서로 요리를 하며 대화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혔다.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조금 씁쓸해지는 대목이었다.

 

“ 좋은 이름이네요. 정말로 단순한 이름이라 머릿속에 깊게 남겠어요. ”

 

단순한 이름, 맞는 말이다. 그러니 이 단순한 이름에 걸맞는 행사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그렇게 처음 본 성녀와 함께 교회 내부에 비치된 주방으로 들어섰다. 야외에 설치된 조리기구로는 바비큐와 관련된 조리를, 교회 내부에 있는 조리기구로는 스튜나 빵 제조가 가능했다. 

 

주방 안에 들어서니 확실히, 사람이 많아진 것이 느껴졌다. 혼자, 혹은 목사님과 둘이서 사용하던 주방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주방치곤 넓은 공간을 인간의 따스함이란 온기로 틈을 없에버린다. 그곳에서,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성녀와 반죽을 주물러본다. 익반죽이면 쫄깃해지고 그냥 반죽이면 푹신해진다. 그것이 내가 알고있는 제빵의 기본이다. 근거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반죽을 만들면 그만이니까.

 

어쩌다보니 가끔 어두운 표정을 보여버리는 성녀님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었다.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난다고 했던가. 반죽에 온기가 깃들어 따뜻해지고, 서로의 깨끗했던 손은 밀가루 반죽으로 몽글몽글 더러워진다.

 

“ 그러고보니 자매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

 

“ 엘리야에요. 이곳에는 잠시 요양 겸 들렸어요. ”

 

요양겸... 어째선가 목사님의 이미지와 겹쳐보였다. 언제나 밝아 보이며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가끔 어떤 연유로 교회나 성당 밖을 나서선 하루를 보내는 사람, 그리고 어두움을 가지고 있는 슬픈 눈동자를 보이는 것 까지. 누가봐도 이상적인 성녀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럼에도 그럼에도 어째서 제 눈에는, 주님의 말씀과 가호가 들아가버린 제 눈에는 그 아이의 슬픔이 고스란히 보이고 느껴지는 것입니까. 

 

그보다 앨리야...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시골 변방에 위치한 교회에까지 괴담처럼 딸려들어오는 이름과 관련된 소문.

 

다른 곳에서 축복을 내리고 어린양을 인도하는 구원자이자...

 

추악한 괴물의 손아귀에 잡힌 사탄의 선한 가면이 되어버린 희생양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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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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