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 좋아한다. 9년전 어벤져스1을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였을 거다(이게 벌써 9년전이라니 세월 참;). 그전까지 아이언맨은 커녕 다크나이트도 안 봤던 내게 뉴욕에 집합한 히어로 떼거지는 가히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히어로물이란 장르에 제대로 입덕했다. 최근엔 좀 시들해지긴 했다만, 근 10년간 파왔으면 할만큼 했지.


사실상 처음 넷플릭스를 접한 것도 마블 덕이다. 어벤져스 1편의 대성공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던 중인 마블이 그 시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발표했기 때문. 



본격적으로 디펜더스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드라마가 있다.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실드. 시기적으로는 어벤져스1의 대박 이후에 기획되었고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았던 드라마였다. 나도 이 기획에 굉장히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장 영화의 TV 스핀오프 드라마 자체는 그 전에도 몇 가지 사례가 있었지만(사라 코너 연대기 등), 이렇게 실시간으로 극장 영화와 내용이 연계되는 드라마는 처음이었으니까. 사실상 마블이 개척한 '유니버스' 체제가 매체까지 넘어 확장되는 것이었다.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에오실이 성공할 대로 성공한 현 mcu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뒷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기획 자체는 좋았는데, 장기방영하는 미드의 고질적인 문제인 뇌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시즌 몇개 가지도 못해서 영화의 스핀오프 드라마라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다. 연계는 커녕 설정 안 맞는 걸 떠나 이제 와선 걍 아예 딴 동네가 돼버림...


특히나 이 드라마의 중심인물이었던 필 콜슨은 2012년까지만 해도 마블 본가인 만화로 역수입될 정도로 인기 캐릭터였는데, 그만 이 드라마로 유배를 오는 바람에 모두에게서 잊혀진 비운의 캐릭터 되겠다.



각각 영화, 코믹스, 애니메이션의 필 콜슨. 지금 이 아재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리오...



뭐 드라마 자체는 시즌7까지 제작될 정도로 망했다고 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다만, 사실상 마블이 구축한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패한 셈이다.





뭐 알 수 없는 일이다만 나는 마블에서도 나랑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에오실 이후에 마블이 발표한 드라마 시리즈는 형태가 조금 달랐으니까.


마블의 새 드라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로, 총 네 명의 히어로(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아이언 피스트)의 단독 시리즈를 런칭한 뒤 이들의 팀업영화 '디펜더스'를 제작한다는 기획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시리즈를 편의상 '디펜더스 시리즈'라고 부르는데, 사실 공식은 아니다. 굳이 따지면 '마블 넷플릭스 시리즈'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


여기에 사족이 붙었다. 영화판과 세계관을 공유하긴 하지만 직접적인 연계는 없을 거라는 것. 에오실의 실패를 지켜봤으니 나도 이 기획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첫 타자로 출격한 것이 다름아닌 데어데블. 영화와의 연계를 최소화하고 단독 작품에 집중한 결과물은 대호평이었다. 리얼리티를 살린 느와르풍 슈퍼히어로가 어색하지 않게 잘 연출됐고 액션도 상당히 멋있게 잘 뽑혔다. 특히 각 시즌마다 하나씩 있는 롱테이크 액션씬은 백미.




그리고 두 번째로 공개된 제시카 존스 역시 데어데블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여태 본 히어로 관련 영상물 중에서도 손꼽히게 독특하기도 한데, 사실상 이게 마블 원작이 아니었다면 히어로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싶을 정도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제시카 존스는 분명 초능력자이고 sf스러운 설정이 가미되어 있지만 거의 양념 수준이다. 드라마 자체는 좀 거칠게 요약하자면 초능력 탐정수사물. 히어로물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액션도 거의 없다. 사실 아예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과 속도감의 부재를 심리 스릴러스러운 연출과 악역의 카리스마로 무마한다. 특히나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빌런 킬그레이브는 이 드라마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 킬그레이브 없으면 시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리는 평. 그리고 슬프게도 시즌2에서 진짜로 킬그레이브 없어지니 시체 되더라...


시공을 떠돌다 MCU 세계를 발견하고 눌러앉아 악당으로 살기로 한 10대 닥터




그리고 다음 타자는 흑인 히어로 루크 케이지가 되어야 했겠으나, 그보다 먼저 나온 데어데블 시즌2.


하지만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했다만, 시즌1과는 달리 영 아쉬운 평을 들었다. 전작부터 이어진 좋은 액션과 느와르 분위기, 특히나 깜짝 등장하여 원작 팬들을 놀래킨 퍼니셔는 분명 열광할만한 요소였으나, 중반부터 등장한 엘렉트라라는 캐릭터, 그리고 디펜더스 전체의 빌런이 될 조직 핸드 때문이었다.


이놈의 핸드가 왜 문제인가 하니, 이놈들이 닌자들이기 때문; 복장도 진짜 나루토에서도 안나올 정도의 정통 닌자 패션이다; 아무리 양놈들이 닌자랑 사무라이에 환장한다지만 요즘에 대놓고 폼잡으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닌자가 어딨냐고요... 그 외 이 닌자들은 심장 박동을 숨기는 기술을 쓴다거나 죽었다 살아난다거나 환장할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게 리얼리티를 잡은 히어로물이라는 찬사를 들은 그 드라마와 같은 작품 맞다.


복장까진 넘어가줄 수 있는데, 사슬낫은 진짜 좀 아니지 않냐



그래도 시즌2도 시즌1보다 못할 뿐이지 자체적으로 보면 나쁜 편은 아니다. 분명 시즌1때의 장점들도 잘 살아있고, 실컷 욕하긴 했지만 적어도 여기까지는 핸드도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다 보고 나면 뭔가 병신같은 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아서 그렇지.



쓰다보니 길어져서 2부에 계속. 글을 간결하게 쓰는 법을 연습해야겠다